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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족산 용화사 석불입상
대전 도심의 북쪽 지붕인 계족산(423m) 서남쪽 자락에는 용화사라 불리는 조그만 산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 경내에는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늙은 석불입상이 있는데, 그를 후광으로 삼은
절이 있었으나 이름과 역사는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그 석불을 통해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
이며, 동국여지승람의 '회덕현 불우조(佛宇條)'에 계족산 동북쪽에 봉주사(鳳住寺)란 절이 있었다
고 나와 있어 그곳이 이곳에 있었다는 절의 전신으로 보인다. 허나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는 과정
에서 절은 사라지고 석불 또한 의지처가 오랫동안 상실되면서 대자연에 의해 다리 중간 부분까지
파묻힌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 주지가 그를 발견하면서 이곳에 그를 내세운 절을 짓기로 결심했고, 1961년 12월 여
기 주지로 들어와 오래된 석불을 미륵불로 삼아 절 이름을 용화사라 했다. 1962년 용화전과 요사채
를 세웠으며, 1981년 기존 용화전을 증축하여 대웅전으로 삼았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요사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입상이 전하
고 있다.
용화사는 비록 옛 절의 내력은 산산히 흩어졌지만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를 한 토막 간직하고 있
다. 이 설화가 옛날부터 있던 것인지 아니면 1961년 이후 절을 세우면서 그럴싸하게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언제인지 모르는 아주 먼 옛날, 나라를 잘 통치하던 제왕이 있었다. 그는 왕자가 없어서 크게 근심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왕비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깊은 영산에 절을 짓고 100일 기도를 하면 왕
자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여 적당한 기도처를 물색하다가 계족산 현 자리를 발견하여 석
불과 절을 세운 다음 100일 기도에 들어갔다.
그렇게 기도를 한지 딱 100일째 되던 날, 난데 없이 하늘에 오색구름이 휩싸이고 그 오색구름이 절
로 퍼지더니 갑자기 청룡으로 변했는데, 그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왕과 왕비가 기도하는 곳에서 오
색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후 왕비는 태기가 있어 왕자를 생
산하니 그의 이름을 청룡이라 했으며, 절 이름을 용화사라 했다고 한다. (용화사란 이름은 1961년
에 붙인 것임)
그 설화를 속세에 격하게 어필한 탓에 아들 낳기를 기원하러 오는 수요가 많다고 하며, 석불의 가피
로 아들을 얻은 이가 많다고 한다.

2. 옆에서 바라본 용화사 석불입상
용화사의 든든한 후광이자 꿀단지이며, 여기서 가장 늙은 존재인 석불입상은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
으로 여겨진다. 대전 지역에서 가장 늙은 석불로 꼽히는 그는 높이가 광배(光背)를 포함해 2.5m이며,
광배를 제외한 불상은 사람 키와 비슷하다.
무려 1,000년 이상 묵었음에도 보존 상태가 나이를 무색할 정도로 아주 정정한데, 광배와 광배에 비
해 상대적으로 작은 석불이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돋음새김으로 묘사되었으며 불상의 얼굴과 신체,
수인(手印), 법의(法衣) 등이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경직된 듯 보이나 너그러운 인상
이며, 얼굴 뒤에는 별도로 검은색의 두광이 표현되어 그의 광명을 표현한다. 양 어깨에 걸친 옷에는
형식적으로 두꺼운 옷주름선이 표현되었는데,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
대고 있고, 왼손은 배 앞에 대고 있다.
얼굴과 체구의 형태가 단아하고 얕음새김으로 새겨진 볼륨감과 세부적인 선, 옷주름선이 다소 딱딱
하긴 하나 9세기 후반의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마치 진하게 현신한 듯 생생하고 감동적인 모습이라 20세기에 조성된 석불 같다. 석불 밑에는 근래
달아놓은 하얀 피부의 연꽃 대좌가 있는데,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생생한 피부라 늙은 돌(불상과
광배)과 어린 돌(대좌)이 다소 어색한 조화를 보인다.
그에게는 여러 믿거나 말거나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그중 1가지만 끄집어보면 대략 이렇다.
옛날에 소를 잃어버려 근심에 빠진 농부가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용화사를 찾아와 석불에게 소를 찾
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꿈에 석불이 현몽하여 소를 훔쳐간 도둑을 잡았다.
그 도둑은 관아에 잡혀가 감옥살이를 하였고, 감옥에서 풀려난 후, 용화사 석불이 현몽했다는 소문을
듣고 뚜껑이 뒤집혀 도끼를 들고 절을 찾아가 석불의 목을 쳤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전한다. 그때 인근 동네 주민 3명이 꿈에서 뒷골(용화사가 있는 동네) 석불의 목에서 피가 흐르는 꿈
을 꾸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지역 주민들이 절에 알려준 것이라고 하며, 석불 목에 금이 간 부분이 있
다고 한다.
이곳 용화사는 2번째 인연으로 계족산 나들이를 벌이다가 여로 살찌우기 용으로 간만에 찾았다. 예전
에 인연을 지었을 때는 읍내동에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계족산 정상에서 내려갔다. 계족산 정상에서
이곳은 빠르게 가면 20분 내외면 이르는데, 나는 길을 크게 우회하여 접근한 터라 30분 이상 걸렸다.
(이번에는 석불입상만 간단히 폰카로 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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