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남산골한옥마을(남산골 전통정원) 정문

서울 도심의 영원한 남주작인 남산(목멱산)의 북쪽 끝자락에 남산골전통정원(남산골공원)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충무로역(3,4호선) 남쪽이자 남산제1호터널 북쪽으로 도심의 늙은 기와집
5채를 가져와서 닦은 남산골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등을
지니고 있으며, 이 일대를 남산골전통정원, 남산골공원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서울을 지키던 수도방위사령부 군부대가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 9월 이곳 일대를 매입했다. 1990년 그 사업의 기본방침을 확정하고 100인의 시
민위원회를 구성했으며, 1993년 11월 남산골 조성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를 완료했는데, 그해 11월
16일 남산골 조성사업을 '남산골 제모습찾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3년 12월 28일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전통정원과 군부대로 망가진 이곳의 지형 복원을 진행
했으며, 1994년 1월 사업지구 내에 서울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한옥 5채를 이전하기로 결정해 1995
년 11월 28일 남산골한옥마을 조성 공사에 들어갔다. 이 공사는 한옥 5채를 그대로 이전 복원한 것
으로 1998년 1월 24일에 마무리 되었으며, 1998년 4월 18일 남산골한옥마을이란 이름으로 속세에
개방되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면적 7,934㎡로 한옥 5채와 전통공예관, 전통체험 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한옥
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을 제외한 공간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정원을
닦았다. 군부대로 망가진 지형을 최대한 복원하여 남산에 많이 자라고 있는 전통 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했고, 정자와 연못, 산책로를 달달하게 입혔다.

전통정원 남쪽이자 남산골공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만
든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 지하 15m에 보신각종 모양의 타임캡슐이 고이
묻혀있다. 그 캡슐에는 1994년 당시 서울의 모습과 시민 생활 및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이 들어있으며, 캡슐을 묻은 날(1994년 11월 29일)로부터 무려 400년 후인 2394년 11월 29
일에 개방될 예정이다.

 

남산골공원에서 남산골 한옥마을은 관람시간에 제한이 있는데, 9시부터 21시까지(11~3월은 20시
까지) 개방을 하며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아걸고 쉰다. (입장료 없음) 허나 한옥마을을 제외한 공간
은 24시간 개방이다.

2. 남산골 전통정원(남산골공원) 안내도

 

3. 청학지와 천우각

남산골 전통정원 정문을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천우각이란 누각이 마중을 한다. 이들은 남산골
전통정원 수식용으로 지어진 것으로 전통방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이곳 동쪽에 남산골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4. 천우각

청학지를 굽어보고 있는 천우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누각 내부는 들어갈
수 있으며, 남산골전통정원의 쉼터 역할을 한다.

 

 

5. 청학지와 연못 한복판에 있는 섬

청학지는 북쪽이 동그랗고, 천우각이 있는 남쪽은 딱 각이 진 모습으로 연못 한복판에 작은 섬을
두둥실 띄워놓아 운치를 크게 돋군다. 섬은 동그란 모습으로 반송 스타일의 소나무가 그 섬을 차
지하며 그만의 작은 세상을 그려낸다.

 

6. 청학지에서 바라본 남산골한옥마을의 옥인동 윤씨가옥

 

7.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남산골한옥마을은 도심에서 가져온 늙은 한옥 5채로 이루어진 작은 한옥 공간이다. 한옥마을을
칭하고 있지만 사람은 살지 않으며, 거의 민속촌 같은 모습이다.

한옥마을의 정문은 3칸짜리 맞배지붕 문으로 바깥 세상과 한옥마을을 유일하게 이어주고 있다.
후문으로 쓰이는 별도의 기와문도 있지만 거의 개방을 하지 않으며, 관람시간에 제한이 있어 9시
부터 21시(11~3월은 20시)까지만 문을 열어둔다. (매주 월요일 휴관)

 

8. 남산골한옥마을로 들어서다 (정면에 보이는 집은 옥인동 윤씨가옥)

9. 관훈동 민씨가옥의 바깥 모습과 그 앞에 있는 우물과 기와굴뚝, 부뚜막 모형

 

10.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남산골한옥마을 한옥 5형제의 일원인 이승업 가옥은 1860년대에 도편수 이승업이 지었다. 그는
흥선대원군의 최대 프로젝트였던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인물로 중구 삼각동 36-2번지에
이 집을 짓고 살았는데, 1889년 이후 빚 때문에 경주이씨 집안인 벽동군수 이규상에게 매각했다.

이규상을 비롯한 그의 4대가 이곳에서 75년을 살았으나 주변의 극심한 환경 변화로 1970년대에
조흥은행에게 넘겼으며, 조흥은행은 이곳을 사료관 등으로 사용하다가 1970년대 후반 서울시가
매입하여 지방민속자료(현재 지방민속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했다. 그러다가 1998년 이곳으로 옮
겼다.

한때 문간채와 앞행랑채, 뒤행랑채, 사랑뒤채, 사랑채, 안채, 중문 등 8채의 집을 지녔던 고래등 한

옥이었으나 집 매각과 관리소홀 등으로 사랑채와 안채, 중문만 남아있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몸채와 그에 직각으로 붙어있는 날개채로 이루어져 있다.

몸채는 날개채보다 더 크고 두꺼우며 지붕도 더 높고 웅장한데,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로 낮은
담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으며, 사랑채 부엌 문도 안채 쪽으로 나 있어 사랑채 영역과 구분을 지었다.

 

19세기 후기 서울의 주거 문화와 한옥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공간의 중요도에 따라
지붕의 높낮이와 모양을 달리했다. 또한 안채 곳곳에 난간과 툇마루가 적절히 설치되어 있다.

 

 

11. 이승업 가옥 사랑채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 이승업이 자신의 솜씨를 모두 발휘하여 만든 집으로 경복궁
중수 때 동원된 좋은 자재들을 가져와 지었다.

이승업은 빚 때문에 1889년 이후, 벽동군수 이규상(1837~1917)에게 이 집을 팔았는데, 서울 장안
에서 '남문안 홍문섯골 이벽동댁'이라 널리 불렸다. 하여 그 이름으로 우편이 그냥 배달되었으며,
덕수궁(경운궁)에서도 집이 뻔히 바라보여 고종황제가 저 집 대문은 왜 저리 높냐고 물어서 집 솟
을대문의 높이를 낯추고자 땅을 파냈다. 그랬더니 오히려 집채가 더 크게 바라보였다고 한다.

 

이규상과 그의 후손 4대가 75년을 머물며 애지중지 했으나 주변에 요정, 여관이 마구 들어서 주거
환경이 안좋아지면서 집을 팔았다. 이때 이곳을 매입한 곳은 조흥은행이었다. 조흥은행은 이곳을
은행 사료관으로 사용했는데, 1970년대 후반에 서울시가 매입해 서울 지방민속자료(현재 지방민
속문화재)로 삼아 관리했으며, 1998년 남산골한옥마을로 옮겨 한가로운 노후를 보낸다.

이곳에 붙여진 문화재 지정 명칭은 이규상의 4대손인 이상억이 제안한 것이다. 자신의 할아버지
인 이규상의 이름을 제안해 '이규상 가옥','홍문섯골 이벽동댁'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처음 지은 사
람을 존중하고자 '이승업 가옥'이라 하였다.

 

이곳 사랑채는 대청과 방 2개,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예전에 담이
있었다.

 

12. 이승업가옥 뜨락 (안채 앞)

13. 이승업가옥 사랑채의 뒷쪽 굴뚝

14. 주인이 가고 없는 이승업가옥 사랑채 방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