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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만연산(만연사)


' 화순 만연산 늦가을 나들이 '
만연산 오감연결길
▲  만연산 오감연결길
 


가을이 늦가을로 익어가던 가던 10월의 끝 무렵, 광주(光州) 동남쪽에 자리한 전남 화
순(和順)을 찾았다.
이번에는 남동임해지역 일행들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만연산 큰재에서 10시에 만나기
로 했다. (그들은 남동임해지역, 나는 서울에서 출발) 그 시간을 맞추려면 1박이 아닌
이상은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타야 되는데, 하늘길은 첫 비행기가 9시대라 부득불 고속
열차를 타야 된다.
그래서 수서역 출발 SRT 고속열차를 타고자 햇님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서울 남쪽 끝부분에 매달린 수서역으로 이동, 목포(木浦)로 가는 SRT 첫 차
에 나를 담았다.

열차는 오송역, 익산역, 정읍역을 거쳐 1시간 30여 분 만에 광주송정역으로 나를 고스
란히 옮겨 주었다. 여기서 광주1호선을 타고 광주 도심을 가로질러 소태역으로 이동하
여 화순으로 가는 광주152번(전남대치과병원↔화순 도웅리)을 타고 너릿재터널을 넘어
화순읍내로 진입, 화순우체국에서 하차하여 만연산이 보이는 북쪽으로 15분 정도 걸으
니 신기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 큰재로 이어지는 안양산로를 들어서면 만연폭포로 인
도하는 시골길이 살짝 손을 내민다. 여기서부터 만연산 더듬기가 시작된다.


♠  만연산(萬淵山) 둘러보기 (만연폭포, 큰재, 오감연결길)

▲  만연산으로 인도하는 유천리 시골길

만연산(해발 668m)은 화순읍내의 든든한 뒷산으로 무등산국립공원의 일원이다. 북쪽으로 무등
산(無等山)과 이어져 있으며 산세는 완만하고 숲도 짙다. 서남쪽 자락에는 만연사가 안겨있는
데, 그곳 창건설화로 인해 나한산(羅漢山)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물맞이 명소로 유명한 만
연폭포가 큰재 밑에 숨어있고, 만연산 물을 먹고 자란 만연저수지가 산 밑에 누워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이 산은 숲과 둘레길을 닦아 건강을 주제로 한 이름을 붙여 속세에 내놨는데 만연사 주변 숲
을 다듬어 '치유의 숲'이라 하였다. 또한 '건강회복숲','건강오름숲' 등의 숲과 '오감연결길
(3.1km)','치유숲길(3.3km)','만연산숲길(1.4km)' 등의 둘레길을 다져 천하에 크게 어필하고
있다. 또한 큰재 북쪽에는 만연산 산림공원(철쭉공원)이 닦여져 있어 '한국의 알프스'란 별명
을 지니고 있으며, 봄철에는 철쭉의 향연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  만연폭포로 가면서 바라본 화순읍내
읍내 한복판에 발을 내딘 것이 정말 몇 분 전 같은데 그새 읍내와 저만치
떨어져 버렸다. 내가 정말 저기서 왔는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  글씨가 또렷한 만연폭포 비석

▲  만연폭포 돌담 바깥


▲  인공티가 진한 만연폭포(萬淵瀑布)

화순 땅에서 만연폭포가 제법 이름이 있어서 잘생긴 자연산 폭포라 여기고 기대를 했으나 정
작 와보니 물맞이 장소로 지어진 조그만 인공폭포가 나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그 폭포가 맞았다. 얼마나 허무감이 들던지 새벽 일찍
부터 부산을 떤 보람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 허나 어찌하리오. 이것도 엄연한 폭포이니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는 없다. (만연폭포 도착시간은 8시 40분 정도)

나에게 허탈감을 선사했던 만연폭포는 만연산 남쪽 끝 170m 고지에 걸려있다. 인근 계곡물을
가져와 10m 정도의 폭포를 다지고 그 밑에 물맞이와 목욕 공간을 닦았다. 남자용과 여자용이
분리되어 높이 2m 이상으로 담장이 쳐져 있으며 옷을 갈아입는 공간도 설치되어 있다. 옛날부
터 물맞이 명소로 유명해 신경통 환자와 노인들이 많이들 찾고 있고 물이 차갑고 숲속에 짙게
잠겨 있어 피서의 성지(聖地)로도 존재감이 크다.
허나 약간은 쌀쌀한 늦가을 아침이라 폭포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름에 왔었다면 벌써부터 사
람들로 봐글봐글했을 것이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붙여놓은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전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어느 옛날,
'만석이'와 '연순이'란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여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만석이가
전쟁터에 끌려가면서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연순이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는 부모의 극성을 견디며 버텼으나 결국 굴복해 다른 사
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만석이가 몰골이 상한 상태로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소식을 들은 연순은 바로 신방을 뛰쳐나와 꿈에 그리던 만석이를 만났고 그렇게 둘은 폭포에
이르게 되었다. 허나 이제 와서 어긋난 인연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저 세상에서 나머지 사
랑을 일구자며 폭포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 사연으로 그들의 이름 앞 자를 따서 만연폭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현실은 만연
사에서 산 이름이 비롯되었으며, 산 이름에서 폭포 이름이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투
신을 할만한 절벽이나 못(소)도 주변에 딱히 없다.

* 만연폭포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유천리


▲  만연폭포의 삼삼한 숲길
폭포 주변에는 폭포에 물을 대주는 계곡이 흘러간다. 계곡 역시 피서지로
아주 좋은 곳으로 여름 제국도 이곳만큼은 눈치를 보며 피해간다.

▲  큰재로 이어지는 만연산 남쪽 숲길

▲  큰재 정상

만연폭포 주변 그늘에서 조금 머물다가 큰재로 길을 재촉했다. 숲길로 그곳까지 가려고 했으
나 길을 잘못 들어 '안양산로'로 나오게 되면서 별 수 없이 지나가는 차량의 눈치를 보며 그
길의 신세를 졌다. (뚜벅이길이 길 옆에 닦여져 있음)
구불구불 고갯길을 20여 분 오르니 비로소 해발 350m 고지인 큰재 정상에 이르렀다. (그때 시
간 9시 30분) 경사가 느슨한 길은 분명했으나 전날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탓에 대관령처럼
은근히 높고 거칠어 보였다.

큰재는 화순읍에서 이서면을 빠르게 잇는 고갯길로 만연산 동부에 자리한다. 만연산 등산로의
동쪽 기점으로 만연산숲길이 여기서 시작되며, 고개 너머로 높은 산이 시야에 보이는데 그 산
이 바로 무등산이다. 무등산이 생각 외로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무등산은 광주, 담양, 화순
에 걸쳐있는 큰 뫼임)


▲  큰재에서 바라본 무등산의 위엄

▲  큰재약수터

큰재에 도착해 그늘진 서쪽 숲속 쉼터로 들어가 잠시 꿀휴식을 취했다. 그곳에는 큰재약수터
가 있어 만연산이 베푼 물을 마음껏 음미했는데 화순읍내에서 이곳까지 두 발로 올라온 고생
끝에 마신 물이라 거의 꿀맛 같다. 수질은 아직 정정하여 섭취에 문제는 없었으며, 여기서 40
분 정도 머물다가 남동임해지역에서 온 일행들과 만나 만연산 숲길로 들어섰다.


▲  만연산 숲길 (큰재 서쪽)

만연산숲길은 큰재에서 오감연결길을 이어주는 1.4km의 숲길이다. 큰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내리막길과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지며 숲도 삼삼하다. 단 반대로 갈 경우에는 오르막길의 연
속이라 조금 힘들 수 있다. 울퉁불퉁한 구간에는 나무데크길을 닦아 통행의 편의를 극대화시
켰다.


▲  만연산 숲길 ①

▲  만연산 숲길 ②

▲  만연산 숲길에서 만난 돌너덜지대

▲  만연산 숲길에서 바라본 화순읍내와 푸르른 가을 하늘

▲  만연산 오감연결길 쉼터

오감연결길은 큰재 밑 유천리에서 만연산 치유의숲센터까지 이어지는 3.1km의 숲길이다. 해발
고도가 좀 차이가 나는 만연산숲길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높이를 유지하고 있어 오
르락 내리락이 적다. 그러다보니 거의 구름 위를 거닐듯 편안하며 숲 또한 짙어서 지루할 틈
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탐스러운 길이다.

이 길은 다산 정약용(丁若鏞)과도 인연이 깊다고 한다. 그가 10대 시절이던 1777년 화순현감
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화순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만연산을 자주 찾아 독서
를 즐기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웠다고 한다. (만연산 동림암에서 거처하기도 했음)
산림청에서 '치유의 숲' 사업의 일환으로 만연산에 둘레길을 닦고 숲을 정비했는데 누구나 편
하게 산길을 거닐고 오감(五感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자극하여 건강을 증진시킨
다는 의미에서 오감연결길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곳 숲에서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
하게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은 몸과 마음을 순화시키고 속세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어 면역력을
높여준다.


▲  오감연결길 속으로 빠져들다 ①

▲  오감연결길 속으로 빠져들다 ②

▲  오감연결길 속으로 빠져들다 ③

▲  오감연결길 속으로 빠져들다 ④


♠  만연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산사
화순 만연사(萬淵寺)

▲  '나한산 만연사' 현판을 내건 만연사 일주문(一柱門)

큰재에서 시작된 만연산 둘레길 산책은 만연산 치유의숲센터에서 쿨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여
기서부터 흙길 대신 읍내를 향해 뻗은 딱딱한 포장길(진각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이
곳에서 반대 방향(북쪽)으로 올라가면 만연사의 부속암자인 선정암(禪定庵)이 나온다.

읍내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니 만연사를 알리는 표석이 마중을 나온다. 그의 안내로 동쪽 길을
오르면 '나한산 만연사' 현판을 내건 일주문이 나오고 그 너머로 화우천이란 2층 누각 건물이
경내를 가리며 앉아있다.
일주문 앞에는 하늘 높이 솟은 큰 전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27m에 이른다. (둘레는 3m) 기껏해
야 높이 2m도 안되는 인간들을 제대로 주눅 들게 만든 그는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만연사 창
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며 추정 나이가 무려 770년 이상을 헤아린다고 한다. 허나 그 품격에
걸맞게 지방문화재나 천연기념물의 지위도 얻지 못했고 딱히 안내문 조차 없어서 속세의 대접
이 너무 형편없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세한 사연을 알지 못한 채, 속절없이 그
앞을 지나간다. (나무 사진은 너무 흐리게 나와서 생략했음)


▲  경내를 가리고 선 화우천(華雨天)
이름도 특이한 화우천은 2층 누각 건물로 강당과 매점, 종무소를 품고 있다.
화우천은 하늘에서 빛나는 비가 내린다는 뜻(또는 불교에서 좋아하는
꽃비가 하늘에서 내린다는 뜻) 정도 될 것이다.

▲  대웅전 뜨락에 우두커니 선 늙은 괘불대 (조선 후기 유물)

만연산 서남쪽 자락에 둥지를 튼 만연사는 조계종 소속으로 순천 송광사(松廣寺)의 말사(末寺
)이다. 1208년에 만연선사(萬淵禪師)로 표현된 진각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그는 무등산
원효사(元曉寺)에서 수도를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오다가 만연산 골짜기에서 잠시 쉬었다. 그
자리가 현재 만연사 나한전 자리라고 한다.
잠시 쉰다는 것이 꾸벅 잠까지 들었는데 16나한이 석가여래를 봉안할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꿈이 하도 이상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그새 눈이 내려 천하를 뒤덮고 있었는데,
글쎄 그가 누웠던 자리 주변만 눈이 녹고 김이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신기한 광경에 보
통 자리가 아님을 여기고 그 자리에 토굴을 짓고 불도를 닦다가 만연사를 세웠다고 하며 꿈
속에 16나한이 나왔다고 해서 산 이름을 나한산이라 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 400년 동안 적당한 사적을 남기지 못했으나 왕년에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사리각
(舍利閣)과 대웅전, 시왕전(十王殿), 나한전, 승당(僧堂), 선당(禪堂), 동산실(東山室), 서상
실(西上室), 동별실(東別室), 서별실(西別室), 수정료(守靜寮), 송월료(送月寮) 등 3전8방(三
殿八房)과 대웅전 앞에 규모가 큰 설루(說樓)와 사왕문(四王門), 삼청각(三淸閣), 그리고 학
당암(學堂庵), 침계암(枕溪庵), 동림암(東林庵), 연혈암(燕穴庵) 등의 부속 암자를 지니고 있
던 큰 절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 시절에는 만연사에서 종이와 식량 등을 마련해 전방에 보냈으며, 1793년 화
재로 진언집(眞言集) 판각이 불탔으나 이듬해 중건했다.
구한말에 이동백(李東伯), 이날치(李捺致) 등의 명창(名唱)이 이곳을 찾아와 소리를 닦았고,
임방울(林芳蔚)과 정광수 등의 명창들은 여기서 창악을 가르키며 소리를 익혔다. 또한 다산
정약용은 10대 시절, 만연사 동림암에서 잠시 머물며 독서를 했다.

국악(國樂)의 성지로 추앙까지 받으며 명성을 드날렸던 만연사는 6.25전쟁 때 정신 나간 총탄
의 먹이가 되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후 1978년부터 4년 동안 주지 철안(澈眼)이 중창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 화우천, 요사채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으며, 부속암자는 선정암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보물 1,345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괘불탱(掛佛幀)과 선정암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
는데, 괘불은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등 특별한 날에만 잠깐씩 외출을 하는 비싼 존재라
친견은 매우 어려우며 그 외에 석가3존상과 시왕상, 16나한상,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하는
700년 이상의 전나무가 전해 절의 오랜 내력을 유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원주 고판화박물관
에는 만연사에서 1777년에 발간된 '진언집'이 전시되어 있음)


▲  높이 자리를 다지고 그 위에 들어앉은 대웅전(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만연사의 중심 건물(법당)이다.

▲  대웅전 석가3존상
향나무로 다져 도금을 입힌 것으로 무려 고려 후기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맞는다면
전나무를 제외하고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로 정말 지정문화재감인데 아직까지
무명으로 있는 것을 보면 탄생 시기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과 명부(冥府, 저승)의 식구들이
들어있다. 건물 앞에 야자수가 펼쳐져 있어 이곳이 따스한 남쪽임을
알려준다. (전남 내륙에서 야자수를 보는 건 처음임)

▲  달랑 1칸의 단출한 모습인 산신각(山神閣)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건물로 산신과 동자, 호랑이 등
산신 식구를 머금은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  나한전(羅漢殿)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의 거처이다. 절을 창건한 진각이 피곤에 쩔어 잠을 잤던
곳이 바로 이 자리라고 하며, 그의 꿈 속에 나타난 16나한 덕에 만연사가 탄생했으니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애지중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  만연사 장독대
장독대 주위로 녹색 펜스를 쳐서 이곳에서 숙성되는 것들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장독대에서 숙성된 된장과 고추장을 속세에 판매하고 있음)

▲  만연사의 명물, 연등이 달린 배롱나무

대웅전 앞에는 만연사의 명물인 배롱나무가 있다. 늦여름과 초가을에 백일홍을 펼쳐보이는 나
무로 인간이 달아놓은 꽃인 연등이 대롱대롱 걸려 있어 백일홍의 빈 자리를 채워준다. 햇님이
퇴근한 이후에는 연등에 불을 밝혀 요염한 야경을 선사하며 겨울 제국(帝國) 시절에는 눈덮힌
풍경도 아름다워 나무를 담으려는 사진쟁이들의 발길이 잦다.
단순히 나무만 있었다면 감흥이 덜했겠지만 붉은 연등을 앙증맞게 걸쳐놓은 주지승의 작은 센
스가 그를 일약 만연사의 스타로 만든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현장이라
고나 할까?


▲  앞에서 바라본 배롱나무의 위엄

▲  만연산 밑에 그림처럼 펼쳐진 만연저수지 (북쪽에서 본 모습)

만연사를 둘러보고 읍내 쪽으로 4분 정도 가면 너른 호수인 만연저수지(만연제)가 모습을 드
러낸다. 만연산이 베푼 물을 먹고 자란 그는 1945년에 조성된 80년 묵은 저수지로 유역 면적
264ha, 수혜 면적 55ha, 만수 면적 4ha, 유효 저수량은 약 22만 톤이다. (제방 높이 13m, 제
방 길이 165m)
저수지 주변에는 공원과 산책로를 닦아 만연호수공원으로 삼았으며, 화순군에서 세운 석봉미
술관이 호수 남쪽에 뿌리를 내려 현대 미술의 향기까지 호수에 덧붙여졌다.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수면에는 만연산과 주변 나무들, 지나가는 구름과 햇님, 달님, 하늘이
고스란히 비춰져 그들의 아름다운 거울 역할을 한다. 남쪽 제방에서는 화순읍내가 훤히 바라
보여 조망도 괜찮으며 산 바람과 호수 바람이 어우러져 은근히 시원하다.


▲  만연저수지 제방 (제방 너머로 화순읍내가 바라보임)

▲  남쪽에서 바라본 만연저수지
저수지 속에도 또 다른 만연산이 짙게 피어있다.


만연저수지를 끝으로 아침부터 시작된 만연산 더듬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만연산을 80% 이상
살핀 것은 아니지만 만연폭포와 만연산 숲길, 큰재, 오감연결길, 만연사, 만연저수지까지 만
연산의 주요 명소는 거진 둘러보아 정신적, 기분학적으로 포만감이 아주 넘친다. 이번에 인연
을 짓지 못한 곳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이란 강물에 모두 던져버리면 된다. 그것이 돌고 돌
아 나에게 온다면 다시 인연을 짓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마는 것이다.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분량상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만연사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179 (진각로 367, ☎ 061-374-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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