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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 서쪽 구간 남쪽 부분에 자리한 중랑전망대는 서울 시내가 있는 서쪽을 향

해 고개를 내민 전망대이다. 여기서는 중랑구 일대를 비롯해 봉화산,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

구, 노원구,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구리시 갈매, 남양주시 별내 지역이 훤히 두 망
막에 들어온다.

 

2.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본 중랑구와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3.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본 중랑구와 봉화산, 성북구, 노원구, 도봉구,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수락산

 

4. 중랑전망대에서 바라본 중랑구와 봉화산, 북한산(삼각산), 수락산, 불암산, 노원구, 구리 갈매지구

가운데 부분에 우뚝 솟은 뫼가 중랑구의 북쪽 지붕인 봉화산이다.

 

5. 중랑전망대에서 보이는 곳들

 

6.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길(인문학길 사잇길) 서쪽 구간 (중랑전망대 남쪽)

 

7. 차중락묘

이번 망우산 나들이에서 처음으로 만난 무덤은 1960년대 유명 가수였던 차중락(1942~1968)의 유택

이다. 그는 내 고향인 서울 신당동 출생으로 부친 차준달과 모친 안소순의 8남3녀 중 3남이다. 부친은

시내에서 큰 인쇄소를 운영했는데, 학창시절에는 보성전문학교 마라톤 선수를 지냈고, 모친은 경기

여고 단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또한 1950~60년대 대표적인 시인인 김수영은 큰 이모의 장남이었다.

 

이렇게 부모가 운동 선수다 보니 차중락 형제들은 역도, 야구, 육상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 선수로

활동했는데, 차중락은 장충초교(내가 나온 학교임)를 나와 경복중고에서 육상 선수로 뛰기도 했다.

1961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는 보디빌딩까지 했었는데, 그 시절(1961년) 미스터코리

아에 출전하여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허나 그는 체육보다는 영화감독을 꿈꾸었다. 게다가 대학교 공부도 영 맞지가 않아서 20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왜열도에서 영화를 공부하려는 목적으로 왜열도로 가는 밀항선을 탔으나

밀항 사기에 걸리면서 실패하고 만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서 사촌형 차도균의 권유를 받아 1963년 10월 키보이스 밴드에 들어가 보컬로 활

약한다. 그는 운동 뿐 아니라 가창력도 좋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시민회관 공연 때 가죽부츠 대신 검은색 고무장화를 신고 노래를 부른 모습은

오지게 히트를 쳐서 한국의 엘비스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키보이스는 1965년 해운대에서 한국록그룹 사상 처음으로 단독 야외공연을 하여 한국의 ‘비틀즈’, ‘

비치보이스’로 추앙을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며, 1966년 11월 10일 신세기레코드 사장의 아들

인 강찬호 작사에, 정민섭이 엘비스프레슬리의<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편곡해서 만든 노

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완성되었다.

1967년 신세기레코드의 전속 작곡가 홍현걸의 주선으로 솔로로 데뷔했고, 같은 해 TBC(동양방송)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인 <사랑의 종말 : 이봉조 작곡>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 연말에 동양방송 방송

가요 대상 신인상을 수상, 동갑내기 배호와 함께 트로트와 팝으로 가요계를 양분하는 스타가 되었다.

 

허나 너무 무리를 한 탓에 1968년 9월 29일 청량리 동보극장에서 한참 공연을 하던 중에 돌연 쓰러

져 혼수 상태가 되고 만다. 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취입한 날인 11월 10일, 많은 팬들이 병원 앞을 지키는 가운데 뇌막염으로 2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

고 만다.

 

그의 묘비에 있는 글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지었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글씨를 새겼으며, 묘

비의 아랫부분에는 가수 배호, 배우 허장강 등 당시 연예계 인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가 사망한 이후 1969년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을

뽑아 상을 주었는데,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이 받았으며, 1972년 제4호 때는 김세환, 이수미

가 받았다.

 

8. 검은 피부의 차중락 묘비

차중락 묘는 작은 봉분과 주름진 검은색 묘비가 전부이다. 묘비에 쓰인 '낙엽의 뜻'이란 글은 조병화

시인이 지었으며, 그의 맏형 차중경이 글씨를 새겼다.

 

9. 이장된 무덤의 흔적 (차중락 묘 주변)

망우리묘지에는 왕년에 47,000기가 넘는 무덤이 둥지를 틀었으나 무덤 이장, 화장을 권고하여 무덤의

갯수를 계속 줄여나가 지금은 7,000여 기가 남아있다. 무덤이 떠난 곳에는 봉분터와 버려진 상석이 있

어 이곳에 무덤이 있었음을 알려주며, 무덤터에는 딱히 손을 대지 않아서 수풀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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