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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덤 사이를 지나는 망우산 능선길

망우산은 아차산의 일원으로 그의 북쪽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용마산은 가운데, 아차산은 남쪽 부

분) 망우산 능선은 사색의길 서쪽 구간과 동쪽 구간 사이에 솟아있는데, 능선 중간에 망우산 정상

(282m)이 있다.

오솔길처럼 펼쳐진 능선길에는 고구려 것으로 여겨지는 망우산2보루, 3보루 유적이 있으며, 산길 주

변으로 무덤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무덤 사이사이를 지나는 구간이 적지 않다. 특히 20세기 초/중기

에 활동했던 근현대사 인물의 무덤이 능선길 주변에 상당히 자리잡고 있어 그들을 찾아다니는 재미

가 쏠쏠하다.

 

2. 망우산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동남쪽 방향)

푸른 숲 너머로 한강과 구리시, 강동구, 하남시, 예봉산, 검단산 등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망우산 능선에서 만난 오기만 묘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 오기만 묘소)

오기만(1905~1937)은 1905년 8월 21일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1928년 4월 신간회 배천지회 설

립대회의 준비위원으로 홍세혁 등과 격문을 배포하려다 체포되었는데, 해주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원대륙 상해로 건너가 1929년 1월 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에 가입했으며, 유호한인독립운

동자 동맹을 결성하여 한인들에게 격문을 반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였다. 또한 구연흠,

조봉암 등과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여 청년반제상한인청년동맹을 결성했다.

 

1931년 6월 김단야로부터 국내 김형선과 협력하여 적색노동조합과 조선공산당 재건 명령을 받고 귀

국했으며, 그해 7월 서울에서 김형선을 만나 진남포에서 활동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1932년 10월 진남포에서 한국형, 심인택 등과 적색노동조합부두위원회를 조직하고 활동했으며, 진남

포상공학교 적색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평양에서는 면옥노동자총파업을 선동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

다. 그리고 1933년 다시 상해로 건너가 코민테른 원동부에 상황을 보고했다.

 

1934년 4월 조선총독부에서 파견한 왜경에 체포되어 경기도경찰부로 압송되었으며, 그해 12월 경성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중병을 얻어

1936년 6월 형집행정지로 출옥했다. 허나 고문 후유증이 상당하여 결국 1937년 8월 사망하고 만다.

 

우리나라 정부는 2003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묘역은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로 지정되었다.

 

4. 오기만묘 묘비(묘표)

호석이 둘러진 네모난 봉분과 묘비로 이루어진 단출한 모습으로 망우산 능선길 동쪽에 자리해 있다.

묘비에는 오기만 대신 '오세동가 대대지묘'라 쓰여 있어 잠시 혼돈을 주는데, 여기서 오세동은 오기만

의 부친이다.

가로로 쓰인 '오세동가 대대지묘' 옆을 보면 모친과 자식 등 가족들의 이름이 쓰여있는데, 이 무덤은

오세동, 오기만 부자 가족의 합장분이다. 즉 가족들의 시신을 화장해 이 봉분에 모두 봉안한 것이다.

 

5. 망우산 정상 주변에 박힌 국가기준점(망우산 삼각점)

 

6. 망우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중랑구, 서울 동북부 지역,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망우산 정상(282m)에는 망우전망대가 닦여져 정상부의 높이를 조금 높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북쪽
과 
서북쪽으로 중랑구와 봉화산, 노원구, 도봉구,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시야
에 들어오고, 동
남쪽으로 한강, 강동구, 하남시, 검단산 등이 두 망막에 들어와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7. 망우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지역, 그리고 창공을 거니는 새

 

8. 망우전망대에서 보이는 곳들 (서울 동북부 방향)

 

9. 무덤 사이를 지나는 망우산 능선길

 

10. 망우산 정상부에 자리한 망우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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