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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제3전시실 유물

서울시장 제22대, 제31대를 지냈던 고건이 시장 시절, 자신의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항상 끼워두었

던 도시고속화 도로망도와 지하철 노선망, 그리고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사용했던 업무

일정표이다.

 

2. 오세훈이 예전 시장 시절에 입었던 개량한옥과 그들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컵

오세훈은 온갖 말도 안되는 토목공사질과 온갖 뻘짓, 그리고 학생들 급식 문제로 개난리를 피우다가

떨려날 때까지 이곳 공관을 이용했다. 그때 입었던 개량한옥과 그들 부부의 이름이 쓰인 컵을 이곳에

남겼는데, 어리석은 서울 시민들은 그 작자를 또 시장으로 뽑아주는 희대의 개짓을 보여주었다. 오늘

도 여러모로 고통 받는천하 제일의 대도시 서울...

 

3. 이명박이 남기고 간 것들

오세훈 못지 않은 악명을 지닌 이명박이 하이 서울 장학생에게 보낸 친필 편지 초고와 2003년 10월

2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3차전 시구 때 썼던 글러브와 야구공이다.

 

4.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2층 제4전시실

 

5. 봄그늘이 깃든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뜨락 산책로

 

6.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 뜨락 산책로 (전시 안내센터 입구 방향)

 

7. 1층 바깥에 있는 한양도성 성곽의 흔적들

건물 내부 공간을 일부 밀어버리고 주변에서 수습된 한양도성 성곽 흔적들을 가져왔다.

 

8. 한양도성 성곽의 구성

한양도성은 둘레 18km로 우리 역사상 큰 편에 속하는 성곽이다. (그래봐야 고구려 평양 장안성, 고려

개경성에는 한참이나 떨어짐) 4개의 큰 문(사대문)과 4개의 작은 문(사소문)을 두었으며, 평양성, 개

경성과 달리 외성이나 나성은 없었다. 성곽 상당수는 산지 구간이며, 동대문(흥인지문)에는 특별히 옹

성을 설치했다.

조선 태조 때 토성으로 만들다가 세종 때 석성으로 크게 증축했으며, 숙종 시절에 보수를 거쳤다. 조선

순종 이전까지는 크게 파손된 적은 없으며, 성곽의 노화로 인해 부분부분 중수한 것이 전부이다.

 

9. 옛 한양도성의 성돌

숙종 시절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돌이다. 그때는 도성 수비군이 성곽 보수를 담당했는데, 각자

성석(글씨가 새겨진 성돌)에는 각 구간을 담당했던 군영의 이름과 공사 책임자, 감독자, 공사 시기가

새겨져 있다. 한양도성에는 이런 각자성석이 200개 이상 발견되어 도성에 서린 소소한 역사들을 알

려준다.

 

10.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오른쪽의 주황색 지붕집)와 혜화문(왼쪽의 기와집 성문) 주변 항

공 사진

 

11. 옛 한양도성의 성돌과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 공관) 1층의 목조 구조

 

12. 전시안내센터 1층 천정

이 건물은 1941년에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이다. 이곳을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크게 손질하면서 천

정을 훤히 드러내게 했는데, 1층과 2층은 한양도성과 혜화문, 서울시장 공관 시절, 이곳을 거쳐간 서울

시장 관련 자료가 잠겨져 있다. 1층 바깥에는 카페도 있어 간단히 일다경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며, 안

내센터 뜨락에는 나무와 수풀, 꽃들이 많고 잔디가 입혀져 있어 상큼한 풍경을 자아낸다. 마치 너른 정

원을 지닌 큰 저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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