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마산1보루 봉우리와 서울 시내 2. 긴고랑공원 3. 용마산 남쪽 능선길 4. 용마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아차산의 부드러운 산줄기 5. 용마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광진구와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북한산(삼각산) 등 6. 용마산1보루 7. 용마산1보루에서 바라본 광진구, 송파구, 강동구, 강남 지역, 남한산, 대모산 등 8. 용마산1보루~2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천하 (용마산1보루, 광진구, 성동구, 송파구, 강남구, 우면산, 관악산 등) 9. 용마산2보루 남쪽 오르막길 10. 용마산2보루 11. 용마산2보루에서 바라본 천하 (아차산, 긴고랑, 광진구, 송파구 지역 등) 12. 용마산2보루 북쪽에서 바라본 천하 (용마산 서쪽 능선,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 북한산..
1.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추사유배지) 대정읍성(대정성지) 동문 안쪽에는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유적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억울 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강제 유배되어 1848년까지 머물렀는데,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서 여러 해 신세를 지다가 추사의 열성 제자로 대정고을의 지주였던 강도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강도순의 집이 바로 이곳이다. 추사는 이곳에서 지역 유생들과 백성들에게 학문과 서예, 유학을 가르쳐 제주도 지역 학문 발전에 크 게 이바지했으며, 차를 매우 좋아하여 다도로 유명한 초의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눴다. (초의선사가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찾아왔음) 하여 제주도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로 추앙을 받는다. 또한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시켰으며, 그의..
1. 서귀포 대정읍성(대정성지) 동문 주변 옛 대정고을의 중심지였던 인성리, 안성리, 보성리에는 대정고을 중심부를 포근히 품었던 대정읍성 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기 제주도를 3개의 고을로 나눠 통치했는데, 제주시내 중심지에 제주목, 서귀포 서부에 대정 현, 서귀포 동부에 정의현을 두어 각각 목사와 현감, 현령을 파견했다. 대정읍성은 바로 대정현의 중 심부였다. 대정읍성은 1418년 대정현감 유신이 지역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 등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쌓은 현무 암 성곽으로 성곽 둘레는 1.614m, 높이는 약 5.1m이다.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의 성문을 지니고 있었으며, 문에는 문루를 달았고, 문 앞에는 제주도 스타일의 벅수(돌하르방)를 달아 영 좋지 못한 기 운을 경계했다. 고을 관아와 창고, 군..
1. 봉제산 남쪽 자락 숲길 (봉제산약수터 주변) 봉제산(117.3m)은 강서구에서 2번째로 높은 뫼로 등촌동과 화곡동 사이에 넓게 누워있다.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봉황새(또는 학)가 알을 품고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봉제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도시 속에 있음에도 산세가 꽤 깊고 넓다. 산 정상에는 백제 것이라 전하는 늙은 봉화대가 있었으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지금은 없으며, 그를 추억하고자 그가 있던 터에 '봉제산 봉화대' 표석을 세웠다. 봉제산 능선과 산자락으로 봉제산 둘레길(7km)이 둘러져 있으며, 산 동남쪽에는 매봉산(99.1m)이 솟아 있다. 매봉산은 봉제산 별칭 의 일원이나 지금은 봉제산 동남쪽 봉우리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2. 봉제산 남쪽 자락 전망대에서 바라본 매봉산 늦가을..
1. 봉제산 남쪽 능선길 (봉제산둘레길2코스) 봉제산 정상에서 매봉산으로 인도하는 능선길로 경사가 거의 완만하여 걷는 길이 부드럽다. 2. 늦가을에 퐁당 잠긴 봉제산 남쪽 능선길 3. 알록달록 단풍 그늘을 지나는 봉제산 남쪽 능선길 4. 매봉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계단길 5. 태극기가 펄럭이는 매봉산 정상부 매봉산은 해발 99.1m의 뫼로 봉제산의 남쪽(동남쪽)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봉제산의 별칭 중 하나가 매봉산이었으나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봉제산의 부속 뫼로 성격이 바뀌었는데, 정상부에는 천하 제일의 국기로 찬양을 받는 태극기와 간단히 몸을 푸는 운동시설, 의자 등이 있다. 산 정상이긴 하지만 수목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너무 삼삼하여 조망은 꽝이다. 6. 매봉산 서쪽 계단길 (봉제산약수터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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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수 충민사, 석천사 모형도 (충민사 유물전시관) 2. 충민사 숭모문 3. 충민사 외곽 공원 4. 연등동 벅수 모조품 5. 충민사 홍살문 6. 충민사 약수터 7. 충민사 정화사적비 8. 충민사 외삼문 9. 충민사 내삼문 10. 충민사 본전 11. 충민사에 봉안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12. 충민사에 봉안된 의민공 이억기 영정 13. 충민사에 봉안된 충현공 안홍국 영정 14. 충민사 사적비 15. 옛 충민사의 주춧돌들 16. 충민사 옆 석천사 17. 석천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18. 석천사 대웅전 19. 석천사 석조 20. 석천사 동백나무 21. 충민사 유물전시관 22. 충민사 유물전시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존재들 23. 왼쪽부터 계사일기(1593년), 갑오일기(1594년), 병신일기(15..
1. 봉제산 북쪽 능선 봉제산은 해발 117.3m의 뫼로 강서구의 2번째 지붕이다. 등촌동과 화곡동 사이에 넓게 누워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봉황새(또는 학)가 알을 품고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봉제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봉제산 정상에는 봉화대터가 있는데, 백제(또는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봉화대라고 전한다. 또한 산 일대는 백제 시절 군사 주둔지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봉제산은 능동산, 매봉산, 수당산, 화곡산 등의 별칭도 있는데, 176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능동 산이라 나오며, 매봉산은 주봉우리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매봉산은 봉제산의 동남쪽 끝봉 우리 이름으로 남아있음) 수당산은 서낭당이 있어서 유래되었으며, 1967년 이후에는 지역 이름을 따 서 화곡산이라 ..
1. 봉제산에 오르다 (등촌동 등촌로51길 기점) 봉제산은 해발 117.3m의 뫼로 등촌동과 화곡동 사이에 넓게 누워있다. 강서구의 2번째 지붕이자 남쪽 지붕으로 산세가 강서구에서 가장 넓어 그의 품에 들어서면 마치 깊은 산골에 들어선 즐거운 기분을 주는데, 봉제산이란 이름은 위에서 산을 내려다보면 봉황새(또는 학)가 알을 품고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하늘을 나는 기계도 딱히 없었고, 봉제산 주변으로 그를 능가하는 뫼도 없거늘 어 떻게 위에서 내려다보았는지 궁금하다. 봉제산 정상에는 봉화대터가 있는데, 이곳 봉화대는 백제(또는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라 전한 다. 또한 산 일대는 백제 시절 군사들 주둔지였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없다. 백제가 오랫동안 서울 지역을 장악했..
1. 당산동 부군당 600년 묵은 당산동 은행나무의 서쪽 길 건너로 부군당이란 마을 제당이 있다. 이 제당은 1925년에 지어진 것인데, 원래는 조선 초기부터 당산동 은행나무에 터주가리를 만들고 당제를 지내왔다. 그러다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이 크게 흥분하여 당산동, 양평동 지역이 수해의 고통을 당 했는데, 지역 사람들이 은행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구했다. 그때 수해를 피한 마을 28호의 안녕을 위해 은행나무 서쪽에 이 당집을 세우면서 여기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현재 건물은 1950년 4월에 지어진 것으로 근래에 대문을 새로 만들고, 당집 밑에 방, 창고 등의 공 간을 만들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당집 안에는 아홉신(대동할아버지, 대감님, 장군님, 부군할아버지, 산신..
1. 당산동 은행나무 당산역(2/9호선) 동쪽 한강변 언덕에 맵시가 좋은 늙은 은행나무가 있다. (당산역에서 동쪽으로 400 m 떨어져 있음)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그는 추정 나이 약 630년(1968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580년), 높이 21m, 나무둘레 5.45m의 큰 나무로 언덕 정상에 높이 솟아 있는데, 조선 초기에 이곳을 지나던 제왕이 여기서 쉬어간 것을 기념하고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동네 사람들이 그를 마을 수호신으로 삼아 매년 동제를 지냈으며, 그 악명 높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당산동, 양평동 일대가 침수되자 마을 사람들이 나무 밑으로 피신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 연유로 서쪽에 당집(부군당)을 지어 제를 지냈다. 영등포구에서 가장 늙은 존재이자 서울에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