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사담 금사담은 화양계곡(화양9곡)의 제4곡으로 화양9곡 식구 중 가장 빼어난 곳으로 찬양을 받고 있다. 금사담이란 이름은 수정 처럼 맑고 깨끗한 물 속에 잠긴 모래가 마치 금가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계곡에는 암반과 바위들이 즐비하며 물놀이 에 좋게 모래밭까지 갖추고 있어 천연 풀장을 이룬다. 계곡 건너 벼랑에는 암서재란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송시열이 화양동에 은거할 때 지은 별장이다. 2. 금사담과 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암서재 암서재는 노송이 울창한 층암벼랑 위에 닦여진 팔작지붕 정자이다. 송시열이 별장으로 지어 팔자좋게 머물던 곳으로 그는 여기서 '시냇가에 바위 벽이 열리어 / 그 사이에 집 1간을 지었네 / 고요히 앉아 성인의 교훈 받들어 / 한치라도 더위잡고 올라 보 려네' 시..
1. 만동묘 성공문에서 바라본 화양서원 경내 가파른 계단 밑으로 보이는 맞배지붕 문은 만동묘의 외삼문인 추양문이다. (왼쪽은 존사청과 풍천재, 오른쪽은 증반청) 2. 만동묘 내부 만동묘는 화양서원의 일원으로 서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1704년에 세운 명나 나 신종, 의종의 사당으로 황색 단 위에 그것들의 위패를 봉안했다. 보통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그 서원에서 중심적으 로 띄워주는 존재의 사당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엉뚱하게도 명 신종, 의종의 사당을 두어 망해버린 명에 대한 꼴사나운 꼴통 사대주의를 징그럽게 보였다. 3. 만동묘 앞 석주 지역 유생과 조선 조정이 얼마나 만동묘를 애지중지했는지 키가 큰 석주까지 닦아놓아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돋 ..
1. 화양계곡 만동묘 화양계곡(화양구곡) 제4곡인 금사담 주변에 만동묘와 화양서원 묘정비가 있다. 17세기 문인이자 성리학의 대표급 인물로 쓸데없이 큰 이름을 지닌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화양계곡 경치에 퐁당퐁당 반해 이곳에 별서를 짓고 팔자좋게 머문 인연이 있는데, 그는 조정에 출사를 했다가 그만두고 이곳에 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고 전한다. 그는 왕세자 책봉 문제로 숙종에게 상소를 했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심문을 받고자 상경하는 중에 정읍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먹고 82세의 나이로 강제 사망했다. 그는 골로 가기 전, 자신의 열성제자였던 수암 권상하에게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사당을 지을 것을 요구했다. 하여 권상하와 그 떨거지들은 아름다운 화양계곡에 명에 대한 꼴통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