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몰이주기념관 뜨락에 있는 단양군수 황준량 선정비황준량은 1557년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단양향교를 이건했으며, 단양의 척박한 사정을 조정에 상소하여 단양 백성들에게 10년 동안 조세 감면의 큰 선물을 주었다. 하여 지역 백성들은 그의 선정비를 세워 그의 선정을 두고두고 기렸다. (1560년 황준량은 경상도 성주목사로 자리를 옮겼음)수몰이주기념관에 모인 비석 중 가장 늙은 존재로 비석 한쪽 귀퉁이가 깨졌으며, 글씨도 마멸되어 확인이 거의 어렵다. 2. 단양군수 정의동 영세불망비정의동은 1902년 단양군수로 들어와 1904년까지 이곳을 다스렸다. 그는 흉년으로 고통받는 단양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조정에 상소했으며, 1904년 중추원 의관이 되었다. 3. 열녀 김연옥 정려비김연옥은 정병..

1. 단양 우화교 기사비단양 고을의 옛 중심지인 단성면 중심지 뒤쪽 언덕에 수몰이주기념관이 있다. 그 뜨락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해 이곳으로 피신한 여러 문화유산들(복도별업 암각자, 우화교 기사비, 탁오대 암각자, 석탑재, 비석들)들이 자리해 서로 동병상련의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데, 그들 중 복도별업 암각자와 우화교 기사비, 탁오대 암각자는 충북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우화교 기사비는 1753년 단양읍내 앞 단양천에 우화교란 돌다리를 만들면서 그것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단양군수 이기중이 지역 백성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다리는 이후 큰 홍수로 허무하게 사라지고 비석만 겨우 남았다.비석의 크기는 높이 114cm, 폭 58cm, 두께 16cm로 비문은 남유용이 썼으며..

1. 옛 단양읍내(현재 단성면 중심지)의 빛바랜 흑백 사진 (단성생활체육공원)충북 단양군은 본인의 외가 시골로 서울 다음으로 오래 산 동네이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몇년씩 살고 그런것은 절대로 아님, 방학과 명절, 일부 날에 여러 날씩 머문 것이 전부)현재 단양군의 중심지는 단양읍(신단양)이나 예전 중심지는 단성면으로 단성면이 단양읍이란 이름으로 단양군내를 다스렸다. 읍내도 제법 컸고, 외가 동네(북하리)하고도 가까워 종종 갔었는데, 너무 어렸을 적(1980년대)이라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다.1985년 충주댐 건설로 남한강에 접한 충주와 제천, 단양 지역이 적지 않게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단양군은 그 중심지인 단양읍내까지 수몰지가 되면서 중심지까지 강제로 강 상류로 옮겨야 했다. 하여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