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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댐 수몰을 피해 단양 수몰이주기념관 뜨락으로 둥지를 옮긴 문화유산들 <우화교기사비, 탁오대 암각자, 복도별업 암각자, 석탑재, 비석들>
도봉산고양이 2025. 2. 15. 10:00
1. 단양 우화교 기사비
단양 고을의 옛 중심지인 단성면 중심지 뒤쪽 언덕에 수몰이주기념관이 있다. 그 뜨락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해 이곳으로 피신한 여러 문화유산들(복도별업 암각자, 우화교 기사비, 탁오
대 암각자, 석탑재, 비석들)들이 자리해 서로 동병상련의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데, 그들 중 복도별
업 암각자와 우화교 기사비, 탁오대 암각자는 충북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우화교 기사비는 1753년 단양읍내 앞 단양천에 우화교란 돌다리를 만들면서 그것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단양군수 이기중이 지역 백성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다리는 이후 큰 홍수
로 허무하게 사라지고 비석만 겨우 남았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14cm, 폭 58cm, 두께 16cm로 비문은 남유용이 썼으며, 글씨는 예서체이다.
비석 앞면에는 다리가 있는 주변 풍경을 묘사했으며, 단양군수가 다리를 닦기로 결정하자 백성들이
많이 호응해 젊은이들은 공사에 힘을 보태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곡식을 내는 등 백성들의 흔쾌한
협조로 다리를 놓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교역도감'에는 다리를 만들 때 참여한 사람들
과 목공, 토공, 석공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비석이 있는 곳이 수몰지에 들어가자 현재 위치로 피신을 시켰다. 비석의 원
래 자리는 수분에 잠겨 있으며, 비석은 그의 제자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2. 네모난 석탑재
석탑의 일부분으로 자세한 사연은 전하지 않는다. 그 역시 수몰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가져온 것으
로 상층 기단면석 중앙에는 탑신 받침이 새겨져 있으며, 그 측면에는 끝이 말린 고사리 형태의 문양이
있다. 기단면석의 측면에도 연화문양이 전면에 둘러져 있는데, 탑신석의 크기나 탑신 받침석에 새겨
진 문양의 표현 등으로 보아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른 고려 석탑으로 여겨진다.
3. 탁오대 바위글씨(탁오대 암각자)
탁오대 바위글씨는 1548년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쓴 것이다. 탁오대는 우화천 주변에 있던 명
소로 그는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우화교와 남한강을 바라보며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낀 뒤,
매일처럼 탁오대를 찾아 손발을 씻었다. 그는 여기서 마음까지 흔쾌히 깨끗해짐을 느껴 그곳 이름을
탁오대라 했으며, 전서체로 탁오대 3자를 새겼다.
탁오대의 어원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전하는 초나라 시인 굴원(-340~-278)의 어부사로 그 내용
은 대략 이렇다.
흘러가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흘러가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
탁오대 바위글씨는 우화교 아래 계곡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가 되면서 바위글씨가 새겨진
부분만 떼어내 이곳으로 가져왔다. 바위 전체를 가져오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4. 복도별업 바위글씨
복도별업 바위글씨는 단양천 상류에 있는 복도소 부근 바위에 있었다. 1548년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은 복도소를 즐겨 찾았는데, 그가 쓴 복도별업 4자를 해서체 스타일로 새겼다.
복도별업은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의 산수를 찾아 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복도는 복도소를
말하는데, 복도소는 논밭에 물을 대고자 만든 작은 저수지로 물이 맑고 깨끗했으며, 주변 풍경 또한
일품이었다. 그리고 별업은 경치가 좋은 곳에 짓는 일종의 별장, 별서 같은 집이다.
충주댐 건설로 남한강에 물을 대는 단양천까지 적지 않은 부분이 수몰지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 바위
글씨도 그 피해를 받게 되었다. 하여 앞서 탁오대처럼 바위글씨가 새겨진 부분만 떼어내어 이곳으로
가져왔다.
5. 옹기종기 모인 8기의 비석들
옛 단양읍내(현 단성면 중심지)에 있던 비석들로 1기를 제외하고 모두 단양군수의 선정비이다.
6. 초승달 장식물 (수몰이주기념관)
단성면 중심지와 옛 단양읍내의 중심부를 잡아먹은 푸른 남한강과 단양천이 바라보이는 곳에 전망데
크를 만들고 그 복판에 초승달 모양의 장식물을 두었다. (딱히 의미는 없는 것 같으며, 그냥 장식물로
둔 것 같음)
7. 수몰이주기념관에서 바라본 단성면 중심지(옛 단양읍내)와 두악산(723m)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오랜 세월 단양 고을의 중심지로 바쁘게 살았으나 충주댐으로 인해 단양의 일개
면 중심지로 확 떨어지고 말았다. 이곳이 담당했던 단양 고을의 중심지는 한때 신단양이라 불렸던 새
단양읍내(상진리, 도전리, 별곡리)가 담당하고 있다.
8. 수몰이주기념관에서 바라본 단성면 중심지와 이곳의 왕년의 기억을 앗아가버린 무심한 남한강
단성면 중심지 너머로 보이는 강변과 강물이 예전 단양 읍내의 중심지였다. 허나 충주댐으로 단양읍
내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근래 단양보까지 만들면서 저렇게 늘 물에 잠기는 신세가 되었다.
9. 수몰유적비
단양은 충주호 건설로 인해 남한강과 단양천에 접한 많은 지역이 수몰되거나 그와 비슷한 처지가 되
었다. 그것이 40여 년 전인데, 근래 정부에서 선암계곡이 깃든 단양천 상류에 또 댐을 만들 궁리를 하
고 있어 무지하게 말썽이 되고 있다. 안그래도 단양은 댐 때문에 피해를 무지 본 곳인데, 그 지역에 또
댐을 안겨준다니 이런 것을 보고 설상가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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