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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양 신라 적성비를 품고 있는 팔작지붕 비각

단성면 중심지의 오랜 뒷동산인 성재산 정상부에 단양적성(적성산성)이라 불리는 늙은 산성이 있

다. 그 산성 내에는 단양 적성비(단양 신라 적성비)란 이름을 지닌 매우 늙은 비석이 있어 고색의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다.

이곳 적성비는 완전한 모습이 아닌 일부만 남아있는 것으로 1978년에 발견되었다. 이때 땅속에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비문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비석에는 288자의 글씨가 있는데,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었다. 예서체

에서 해서체로 넘어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깨지고 사라진 비문을 포함해 전체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여겨진다.

 

이 비석은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 땅인 이곳을 점령한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시기는

545~550년 정도로 여겨지는데, 신라는 중원대륙 양자강 주변에서 크게 일어나 바다를 건너 한반

도 남부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거기서도 계속 북진하여 고구려 땅인 이곳까지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역시 만주와 하북, 산서, 연해주, 내몽고, 그리고 한반도 북부와 중부까지 너른 땅

을 지니고 있었다.

그 시절 진흥왕은 고구려의 적지 않은 땅을 점령했는데, 이사부 등 고관 10명에게 왕명을 내려 북

쪽으로 계속 치고 올라가게 했고, 목숨을 바쳐 충성한 적성 사람 야이차에게 상을 내렸다. 또한 이

렇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후하게 상을 내리겠다는 정책도 폈다.

하지만 진흥왕이 이곳을 다녀간 기록은 없으며, 비문 첫머리에 '교시'라는 부분이 있어 제왕의 명을

받아 세운 비석으로 보인다. 또한 그 시절 이곳 지명이 적성임을 보여주고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

다. (과연 이곳이 적성이 맞을까??)

 

2. 적성비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저 밑으로 단양적성의 접근성을 크게 높여준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가 넓게 자리해 있고, 그

너머로 단성면 북하리와 북상리, 죽령, 소백산 산줄기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3. 크게 깨진 채로 있는 늙은 적성비

적성비는 1,500년 묵은 비석으로 현존하는 우리의 비석 중 가장 늙은 측에 속한다. 제일 늙은 비석은

광개토태왕비로 보고 있으며, 그 다음이 진흥왕 시절에 세워진 비석들이다. 물론 우리의 옛 땅인 중

원대륙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옛조선과 관련된 비석들이 꽤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이

나 중공 개잡것들이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4. 적성비의 뒷모습

글씨들이 새겨진 앞면과 달리 뒷면은 백지 상태이다.

 

5. 적성비의 옆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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