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도 약산항일운동기념공원 (약산항일운동기념탑) 섬이 많은 전남 완도군에는 조약도라는 큰 섬이 있다. 약산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그는 한때 약산 도라 불리기도 했는데, 고금도와 약산연도교로 이어져 있어 완도읍과 육지(강진군)에서도 편히 접 근이 가능하다. 약산면의 중심지인 장용리에는 약산항일운동기념탑이 자리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잠시 숙연 하게 한다. 이곳은 장용리(약산면사무소, 약산중고교가 있는 곳)에서 당목항으로 넘어가는 길목 고 개로 약산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완도 지역은 고약했던 왜정 시절,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고장이다. 1913년 사립중화학원 설 립, 1914년에 수의위친계 조직, 1920년 배달청년회, 1923년 사립소안학교 설립 개교, 1924년 ..
1. 완도 주도 (주도 상록수림) 완도읍 제1부두와 완도항 사이 앞바다에 주도란 작은 섬이 상큼하게 떠있다. 무성한 숲을 지닌 동그 란 섬으로 완도읍내 해안에서 겨우 150m 남짓 떨어져 있어 손에 닿을듯 가깝다. 하지만 엄연한 섬인 지라 배 외에는 접근이 어려우며, 섬 전체가 '주도 상록수림'이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이란 크나 큰 지위를 가지고 있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섬이다. 주도는 참식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붉가시나무, 모밀잣밤나무, 광나무, 다정큼나무, 가마귀쪽나 무, 감탕나무, 빗죽이나무, 생달나무, 검양옻나무, 소사나무, 느티나무, 청가시덩굴, 인동덩굴, 덜꿩나 무, 고란초 등 다양한 상록수 식구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땅에서 난대림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 하..
1. 신흥사 밑에 있는 비석과 부도탑 왼쪽에 있는 하얀 피부의 부도탑(승탑)은 지운당 청파대선사의 승탑이고, 가운데에 이수와 검은 피 부의 비신, 하얀 귀부를 지닌 잘생긴 비석은 '지운당청파대선사행적비', 오른쪽 지붕돌 비석은 '창건 주 송암당 성열대화상 공덕비'이다. 2. 석축 위에 자리한 신흥사 완도읍내의 남쪽 뒷동산인 남망봉(151.8m) 북쪽 자락에 신흥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20세기 초에 송암당 성열대화상이 세운 현대 사찰로 법당인 대웅보전을 비롯해 약사전, 삼성각, 선불당, 요 사, 선방, 범종각 등 10동 정도의 건물을 지녀 완도 지역에서 가장 큰 절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약사여래좌상을 보고자 함으로 그는 약사전에 소중 히 봉안되어 있다. 신흥사는 수행..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우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고금도에 머물 때 식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늙은 우물이다. 1681년 이곳에 고금도진이 설치되면서 고금도진 군사들이 식수로 썼으며, 고금도진이 사라진 이후 에는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현재는 무늬만 남은 죽은 우물로 우물 속살에는 뿌옇게 뜬 액 체만 가득하다. 2. 충무사 주변 숲길 3. 평화로운 모습의 덕동리 충무마을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서쪽) 4. 누렇게 뜬 덕동리 갈대밭 이충무공유적과 충무사를 머금은 묘당도는 고금도의 부속 섬으로 간척으로 인해 고금도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다. 바다에서 땅으로 변한 곳은 대부분 경작지가 되었으며, 일부는 이렇게 갈대밭으로 두었는데, 갈대도 예전에는 백성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5. 덕동리 앞..
1. 충무사 내삼문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태극마크가 그려진 내삼문 안쪽에 충무사의 중심 건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봉안된 정전 과 이영남 장군이 봉안된 동무, 서무가 들어있다. 충무사 정전은 예전 관왕묘의 중심 건물 자리이다. 2. 충무사 중삼문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있는 삼문) 3.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앞바다 (덕동리 앞바다)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는 곳은 약산면을 이루고 있는 조약도이다. 4.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앞바다 (덕동항 방향) 5. 바다 너머로 보이는 월송대 (소나무가 무성한 언덕)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잠시 머물던 곳이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여수 충민사에 봉안되었다가 이곳 월송대를 거쳐 아산으로 운구되었는데, 그의 관이 머물던 자리에 표시 를 해..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충무사 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가운데 1칸은 마루, 1칸은 방, 오른쪽 1칸은 누마루로 이루어 져 있다. 건너편에 있는 동재와 함께 충무사(옛 관왕묘)를 관리하는 사람의 숙소 및 업무 공간, 제사 준비 공간으로 쓰였으며, 여기서 내삼문을 오르면 충무사 중심부이다. 2. 고금도 관왕묘비 서재 뒷쪽에 관왕묘비를 머금은 비각이 있다. 관왕묘비는 높이 253cm, 폭 93cm, 두께 20cm 크기 로 1713년에 세워진 것인데, 이이명이 비문을 짓고, 이우항이 글씨를 썼다. 충무사의 전신인 관왕묘 의 건립 시기(1598년)와 역사, 이순신 장군과 진린의 행적,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에 크게 통곡 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안내문 고금도의 일원이 된 묘당도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과 그의 사당이 깃들여져 있다. 이순신 장군은 원균이 크게 말아먹은 수군을 재건하여 울돌목에서 그 유명한 명량해전을 일구었는데, 그때 이순 신의 조선 수군은 겨우 13척에 2,000명 내외, 왜군은 330척에 5만이 넘었다. 그나마 조선 수군 13 척 중 이순신이 이끄는 대장선 혼자서 한참의 시간 동안 왜의 수군을 때려잡았으며, 승기가 완전히 잡히자 뒤에서 눈치만 보던 나머지들이 대장선을 도와 신나게 왜군을 때려잡았다. 이 해전에서 왜선 31척을 격파하고 92척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으며, 물고기 밥으로 만든 왜군의 개 체수는 무려 18,000두가 넘었다. 그에 반해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사상자 서너 명이 전부였다. 이 것이 그..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으로 인도하는 세동길 묘당도는 고금도에 연륙된 작은 섬으로 충무공 이순신이 명량대첩 이후 수군 본부를 설치해 머문 유 서깊은 곳이다. 묘당도를 가려면 무조건 고금도를 거처야 되는데, 강진에서 고금대교를 건너 고금도로 가거나 완도 에서 신지대교와 장보고대교를 차례로 건너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완도읍내에서 약산면(조약 도, 당목항) 방향 완도군내버스가 1일 20여 회 운행하며, 강진읍 강진터미널에서 약산면(조약도, 당 목항) 방면 강진군내버스가 1일 4회 다닌다. 그들을 타고 세동리에서 내려 1.7km 정도 걸어가면 묘당도 이충무공유적이다. 물론 고금도 중심지 (고금버스정류장)에서 묘당도(충무리)까지 들어가는 완도군내버스가 1일 4회 있지만 운행횟수가 우 울한 수준이라 차라리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