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벌교천 소화다리(부용교) 벌교읍내 북쪽 벌교천에 걸려있는 소화다리(부용교)는 1931년 8월에 지어진 철근콘크리트 다리이다. 흔히 소화다리라 불리는데, 다리가 완성된 1931년은 왜정 시절로 왜국은 20세기 한복판은 물론 지금 까지도 왜왕의 연호를 날짜에 쓰는 미개함을 보이고 있다. 그때(1931년) 왜왕은 소화(쇼와)로 그가 왕이 된지 6년째 되는 해라 소화 6년을 썼다. 다리가 완성된 이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왜인들의 소행으로 여겨짐) 자연스럽게 소화 시기에 지어진 다리라고 해서 소화다리가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많이 부른다. 1948년 여순(여수, 순천) 사건과 6.25 시절 비극의 상처가 서린 곳으로 남한(우익)과 북한(좌익)이 벌 교읍을 차지할 때마다 이 다리 위에 적들을 세우..
' 서울 도심 속의 두메산골을 거닐다 ' (부암동 능금마을, 백사실계곡, 북악산 북쪽 자락) ▲ 부암동 능금마을(뒷골마을) ▲ 은덕사에서 바라본 부암동 ▲ 평창동 소나무 여름 제국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8월의 첫 무렵, 일행들과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 을 찾았다. 북악산 북쪽 자락(부암동, 평창동 지역)에는 나의 오랜 즐겨찾기 명소인 백석동천(白石洞 天, 백사실계곡)을 비롯해 능금마을(뒷골마을), 평창동(平倉洞) 소나무 등의 명소가 깃들 여져 있는데 여름 제국의 핍박도 피할 겸, 간만에 그들을 복습할 생각으로 북악산의 품을 찾은 것이다. 세검정초교 정류장에서 홍제천(弘濟川)을 건너 백석동천의 북쪽 관문인 현통사(玄通寺)와 백사폭포로 접근했다. 그곳을 지나면 백사골(백사실)의 속살로 들어서게 되는데..
1. 여헌성리설(왼쪽)과 명산실기(오른쪽) 여헌성리설은 17~18세기에 살았던 여헌 장현광이 쓴 저술 중에 성리학에 관한 논지만을 모아 엮은 서적이다. 서문과 발문 등이 없어 누가 편집하고 간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오른쪽에 놓인 명산실기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이다. (하얀 피부의 안내문 내용이 너무 흐릿하게 나와서 누구의 실기인지는 모르겠음) 2. 지봉실기(왼쪽)와 태재집(오른쪽) 지봉실기는 황보인의 실기로 1836년에 후손 황보섭, 황보도, 황보학 등이 편집, 간행했다. 그 옆에 있는 태재집은 조선 초 기 문인인 유방선의 시문집으로 1450년에 이보흠의 도움으로 경상도 영천 북습서당에서 초간되었다. 중간본은 1815년에 14대손인 유천식이 부록과 함께 재편집하여 원주 송곡서원에서 간행했다. 3. ..
1. 저도 스카이워크 (구 저도연륙교) 저도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작은 섬으로 그 모습이 돼지가 누워있는 모습처럼 생겼다고 해서 간단하게 저도(돼지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도섬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면적 2.3㎢, 남북 길이 1.75km, 동서 길이 1.5 km, 섬 둘레 10km,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은 용두산 정상으로 해발 202m이다. 내가 창원에서 가장 구석진 저도에 온 것은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는 저도연륙교를 보기 위함이다. 그 모습이 '콰이강 의 다리'에 나오는 그 다리와 닮았다고 해서 그런 별명을 지니게 되었는데, 현재 정식 명칭은 '저도 스카이워크'이며, 예전 명칭은 '저도 연륙교'이다. 이 다리는 1987년에 지금은 창원시에 흡수된 의창군에서 저도..
' 서울 개나리의 성지, 응봉산 봄나들이 (살곶이다리) ' ▲ 봄티가 물씬 풍기는 응봉산 ▲ 응봉산 꼭대기 응봉산정 ▲ 살곶이다리 겨울 제국이 저물고 봄이 무럭무럭 익어가던 4월의 첫 무렵, 일행들과 성동구 한복판에 자리한 응봉산(鷹峯山)을 찾았다. 서울숲을 먼저 둘러보고 중랑천에 걸린 용비교를 통해 그날의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응 봉산의 품으로 들어섰는데, 응봉산은 응봉역(경의중앙선)이나 금호동 독서당로, 용비교 에서 접근하면 편하다. ▲ 용비교 동측에서 바라본 응봉산의 위엄 (그 밑에 경의중앙선과 중랑천이 있음) ♠ 응봉산 둘러보기 ▲ 용비교에서 바라본 중랑천(中浪川)과 응봉교 용비교 밑을 흐르는 중랑천은 경기도 동두천과 양주, 의정부, 서울 동북부 지역의 물을 모두 모아 한강으로 보내는 긴 하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