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단양 신라 적성비를 품고 있는 팔작지붕 비각단성면 중심지의 오랜 뒷동산인 성재산 정상부에 단양적성(적성산성)이라 불리는 늙은 산성이 있다. 그 산성 내에는 단양 적성비(단양 신라 적성비)란 이름을 지닌 매우 늙은 비석이 있어 고색의 향기를 마음껏 내뿜는다.이곳 적성비는 완전한 모습이 아닌 일부만 남아있는 것으로 1978년에 발견되었다. 이때 땅속에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비문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비석에는 288자의 글씨가 있는데,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었다. 예서체에서 해서체로 넘어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깨지고 사라진 비문을 포함해 전체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여겨진다. 이 비석..

1. 순천 팔마비순천 도심인 순천행동우체국 앞에는 순천 지역의 오랜 명물이자 자랑거리인 팔마비가 있다. 팔마비는 순천 시내에 들어올 때마다 거의 꼭 봤던 존재로 버스 차창에서 보기도 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사진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마비에 사연은 대략 이렇다. 고려 중기인 13세기 초에 승평부사로 '최석'이 부임했다. 승평은 현재 순천 고을의 예전 이름이라고 하는데, 승평부는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고을 수령에게 말 8필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말 8필이면 지금 시세로 따지면 1~2억은 능히 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지역 백성들의 고충이 컸다. 최석이 승평부사 임기를 마치고 비서랑에 임명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관례대로 고을 백..

1. 화산군 이연 신도비 집들이 빽빽히 들어선 북가좌동 주택가 속에 화산군 신도비란 늙은 비석이 숨겨져 있다. 비석의 주인 공인 화산군 이연(1647~1702)은 조선 왕족으로 선조의 7남인 인성군의 손자이다. 그는 1661년 화산군에 봉해졌고,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냈는데, 1726년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 되었으며, 1746년 '효간'이란 시호를 받았다. 1747년 화산군의 아들인 낙창군이 부친의 행적을 기록하고자 신도비를 세운 것으로 좌의정 송인명이 비문을 짓고, 화산군의 조카인 서평군 이요가 글씨를 썼으며, 낙창군이 전액을 썼다. 거북 머리 귀부와 비신, 옥개석(지붕돌)을 지닌 아주 잘생긴 비석으로 지붕돌은 팔작지붕 형태인데 용 마루에 이무기 2마리가 양 끝을 바라보고 있고, 팔작지붕 처마 끝에..
* 개화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풍산심씨 문정공파묘역 중종반정의 주요 인물인 문정공 심정과 그의 후손의 묘역으로 총 60여 기의 묘가 산자락 숲속에 흩어져있다. 그 가운데 심정과 그의 아들인 심사손, 심사순, 손자인 심수경 묘역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심사손 묘역 - 심사손(1493~1528)은 심정의 아들로 1517년 별시문과 3등으로 조정에 진출했다. 승문원과 예문관에서 일했고, 1523년 비변사낭관으로 서북면 여진족을 정벌했다. 1528년 여진족이 소란을 피우자 만포진첨절제사가 되어 그들을 토벌하다가 전사했다. * 심사손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