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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천 팔마비
순천 도심인 순천행동우체국 앞에는 순천 지역의 오랜 명물이자 자랑거리인 팔마비가 있다. 팔마
비는 순천 시내에 들어올 때마다 거의 꼭 봤던 존재로 버스 차창에서 보기도 하고, 거리를 걸으면
서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사진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마비에 사연은 대략 이렇다. 고려 중기인 13세기 초에 승평부사로 '최석'이 부임했다. 승평은 현
재 순천 고을의 예전 이름이라고 하는데, 승평부는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고을 수령에
게 말 8필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말 8필이면 지금 시세로 따지면 1~2억은 능
히 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지역 백성들의 고충이 컸다.
최석이 승평부사 임기를 마치고 비서랑에 임명되어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관례대로 고을 백성과
지역 세력들은 그에게 말 8필을 선물했다. 최석은 말을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갔는데, 개경으로 가는
중에 암컷 말이 망아지 1마리를 생산하여 9필이 되었다.
개경에 이르자 최석은 망아지까지 포함한 9필을 순천으로 쿨하게 되돌려 보냈다. 이에 고을 백성들
은 무지하게 감동을 먹었고, 이후부터 말 8필 관례는 사라졌다. 이후 1281년 지역 백성들은 최석의
공덕을 길이길이 기리고자 비석을 세우니 그것이 팔마비가 되겠다.
1365년 승평부사 최원우가 쓰러진 팔마비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훼손된 것
을 1617년에 순천부사 이수광이 다시 세웠다. 비석에 크게 깃든 팔마비 3자는 진사 원진해가 쓴 것
이며, 비석 뒷면에는 이수광이 적은 팔마비의 사연이 소상히 적혀있다.
오랫동안 연자루(현재 죽도봉공원에 있음) 앞 옥천 변에 있다가 1930년 현재 위치에 안착했으며,
1977년 비각을 세워 지금에 이른다. 무려 700년 이상 묵은 비석(1617년에 비석을 다시 세웠다고 하
므로 400년 묵은 것으로 보기도 함)으로 순천의 오랜 명물이며, 송덕비의 시작을 이 비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팔마비의 '팔마'는 순천 지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순천의 어지간한 축제나 행사 등은
'팔마' 이름을 칭한다.
1648년 윤근수는 순천부사로 발령받은 지인을 전송하며 이런 시를 지었다.
연자루 앞에는 팔마비가 있으니
이끼 끼고 부스러져 깊은 상념 부치리라
당시에 청렴한 관리가 자취를 남겼으니
천년토록 맑은 풍모 다 사라지지 않았다네
2. 팔마비 3자가 크게 깃든 팔마비의 위엄
오늘날 하급 공무원은 물론이고 고위직까지 팔마비의 정신을 지닌 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국개
라 불리는 국회의원 잡것들이나 대표적인 세금 벌레들인 시/도/군/구의원 잡것들, 고위 공직자 잡것들
은 진짜 욕이 나올 정도이다.
3. 팔마비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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