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성 남양성모성지로 들어서다화성시청이 있는 남양읍내 서쪽 부분에 남양성모성지가 넓게 둥지를 틀고 있다. 남양읍은 화성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로 조선 후기까지 수원 고을을 능가하는 남양부(남양도호부)의 중심지로 바쁘게 살았는데, 세상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이제는 화성시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화성시청을 지니고 있는 읍치고는 규모가 큰 읍으로 화성시 승격 초기에는 '동'을 썼지만(화성시 남양동)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화성시 남양읍 ~~리'로 바뀌었다. 남양은 19세기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이 처단되었다. 보통 그때 잡힌 신자 중 양반들은 서울이나 공주로 넘겨 거기서 처리했지만 평민층은 주로 남양으로 보내 남양부사의 재량에 맡겼다. 남양부사는 모진 매질..

1. 김대건 신부 생가 (생가 안채)김대건은 이 땅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1821년 8월 21일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없는 것을 1906년 김대건 순교 60주년을 맞아 당시 합덕성당의 주임신부인 크램프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생가터를 고증했다.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동상과 순교기념비를 세웠으며, 소나무 군락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천주교 성지가 조성되었으니 그것이 현재 솔뫼성지이다. 솔뫼는 이곳 지명으로 소나무가 뫼를 이룰 정도로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8년 문화재위원들의 고증과 기와조각 발굴을 통해 그의 생가터임을 확신하여 충남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 생가 안채를 복원 재현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

1. 당진 솔뫼성지 (김대건신부 생가)합덕읍내에 있는 합덕터미널에서 동북쪽으로 1.5km 떨어진 송산리에 김대건 신부 생가를 품은 솔뫼성지가 있다. (합덕터미널에서 도보 20분 거리)김대건은 이 땅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1821년 8월 21일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지역 이름인 솔뫼는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김대건(세례명 안드레아)의 증조부인 김진후(세례명 비오), 작은 할아버지인 김종한(세례명 안드레아), 부친인 김재준(세례명 이냐시오), 그리고 김대건 등 4대가 여기서 살았으며, 그들 4대는 모두 열성 천주교 신자로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 처단되었다.(증조부인 김진후는 1814년 서산 해미에서, 작은 할아버지인 김종한은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아버지 김재준은 1839년 서울 서소문에서..
' 서산 해미읍성 나들이 ' ▲ 해미읍성 호야나무(회화나무) ▲ 해미읍성 ▲ 해미순교성지 차디찬 겨울 제국(帝國)의 한복판에 우리나라 읍성의 성지로 추앙받는 서산 해미읍성을 찾았다. 해미읍성은 이미 여러 번이나 인연을 지은 곳이나 눈을 감고 답사를 했는지 미답(未踏) 의 공간이 적지 않다. 하여 그 공간을 싹 지우고자 날씨가 조금 풀린 틈을 이용해 다시 인연을 지었다. ▲ 해미읍성 서쪽 망루 ♠ 조선 초기에 축성된 읍성, 천주교 박해의 아픔이 서린 해미읍성(海美邑城) - 사적 116호 ▲ 해미읍성 서남쪽 망루(望樓) 서산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0여 리 떨어진 곳에 이름도 이쁜 '해미'란 고을이 있다. 해미(현재 해미면)는 서산시(瑞山市)의 일원으로 서산 제일의 명소인 해미읍성 을 품고 있다. 천하가 해미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