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우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고금도에 머물 때 식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늙은 우물이다. 1681년 이곳에 고금도진이 설치되면서 고금도진 군사들이 식수로 썼으며, 고금도진이 사라진 이후 에는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현재는 무늬만 남은 죽은 우물로 우물 속살에는 뿌옇게 뜬 액 체만 가득하다. 2. 충무사 주변 숲길 3. 평화로운 모습의 덕동리 충무마을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서쪽) 4. 누렇게 뜬 덕동리 갈대밭 이충무공유적과 충무사를 머금은 묘당도는 고금도의 부속 섬으로 간척으로 인해 고금도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다. 바다에서 땅으로 변한 곳은 대부분 경작지가 되었으며, 일부는 이렇게 갈대밭으로 두었는데, 갈대도 예전에는 백성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5. 덕동리 앞..

1. 충무사 내삼문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태극마크가 그려진 내삼문 안쪽에 충무사의 중심 건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봉안된 정전 과 이영남 장군이 봉안된 동무, 서무가 들어있다. 충무사 정전은 예전 관왕묘의 중심 건물 자리이다. 2. 충무사 중삼문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있는 삼문) 3.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앞바다 (덕동리 앞바다)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는 곳은 약산면을 이루고 있는 조약도이다. 4.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앞바다 (덕동항 방향) 5. 바다 너머로 보이는 월송대 (소나무가 무성한 언덕)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잠시 머물던 곳이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여수 충민사에 봉안되었다가 이곳 월송대를 거쳐 아산으로 운구되었는데, 그의 관이 머물던 자리에 표시 를 해..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충무사 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가운데 1칸은 마루, 1칸은 방, 오른쪽 1칸은 누마루로 이루어 져 있다. 건너편에 있는 동재와 함께 충무사(옛 관왕묘)를 관리하는 사람의 숙소 및 업무 공간, 제사 준비 공간으로 쓰였으며, 여기서 내삼문을 오르면 충무사 중심부이다. 2. 고금도 관왕묘비 서재 뒷쪽에 관왕묘비를 머금은 비각이 있다. 관왕묘비는 높이 253cm, 폭 93cm, 두께 20cm 크기 로 1713년에 세워진 것인데, 이이명이 비문을 짓고, 이우항이 글씨를 썼다. 충무사의 전신인 관왕묘 의 건립 시기(1598년)와 역사, 이순신 장군과 진린의 행적,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에 크게 통곡 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1. 묘당도 이충무공유적 안내문 고금도의 일원이 된 묘당도에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과 그의 사당이 깃들여져 있다. 이순신 장군은 원균이 크게 말아먹은 수군을 재건하여 울돌목에서 그 유명한 명량해전을 일구었는데, 그때 이순 신의 조선 수군은 겨우 13척에 2,000명 내외, 왜군은 330척에 5만이 넘었다. 그나마 조선 수군 13 척 중 이순신이 이끄는 대장선 혼자서 한참의 시간 동안 왜의 수군을 때려잡았으며, 승기가 완전히 잡히자 뒤에서 눈치만 보던 나머지들이 대장선을 도와 신나게 왜군을 때려잡았다. 이 해전에서 왜선 31척을 격파하고 92척을 반병신으로 만들었으며, 물고기 밥으로 만든 왜군의 개 체수는 무려 18,000두가 넘었다. 그에 반해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사상자 서너 명이 전부였다. 이 것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