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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산 산주름 속에 묻혀있는 원범왕마을

칠불사는 지리산 주능선 남쪽 자락 670~680m 고지에 깃든 오래된 산사이다. 속세에서 이곳을 찾

으려면 일단 하동읍과 화개(화개장터)를 찾아서 하동터미널(하동역 앞에 있음)과 하동읍내, 화개터

미널에서 범왕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야 되는데, 하동에서 하루 5회 운행하고 있으며, 화개와 쌍계

사를 경유하여 원범왕(칠불사)에서 차를 돌린다. (일부 차량은 의신을 먼저 경유하여 원범왕으로 가

기도 함, 이럴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림)

 

원범왕에서 칠불사까지는 1.8km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조금은 각박한 오르막길의 연속으로 차량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리게끔 2차선 길이 닦여져 있으나 정작 도보길은 없어서 차량의 눈치를 격하게

보며 가야 된다. (칠불사까지 군내버스가 연장을 하거나 도로 옆에 도보길을 닦으면 좋을 것인데, 그

럴 생각은 없는 모양임) 차량은 칠불사 경내까지 접근이 가능하며,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칠불사 밑에 자리한 원범왕마을(범왕리)은 지라산에 묻힌 산골 마을로 가락국 수로왕이 칠불사에 들

어가 수도를 하고 있는 7명의 왕자를 만나고자 절 밑에 임시 행궁을 짓고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범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또한 이곳과 가까운 정금리에는 대비동(대비

마을)이란 마을이 있는데, 수로왕의 왕후인 허황후가 7명의 왕자를 만나고자 여기서 머물렀다고 전

한다.

 

2. 원범왕에서 칠불사로 인도하는 2차선 길(범왕길)

원범왕에서 이런 길을 따라 칠불사까지 올라가야 된다. 칠불사가 제법 명성이 높은 절이라 지나가는

차량이 많은 편이다.

 

3. 칠불사로 인도하는 범왕길에서 바라본 원범왕마을

 

4. 범왕길을 따라 칠불사로

차량의 눈치를 덜 보고자 파워 워킹급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허나 그날이 일요일이라 지나가는 차량

은 거의 2~3분에 1~2대꼴이었다.

 

5. 초의선사다신탑비

다성으로 명성이 자자한 초의선사는 칠불사와 인연이 있었다. 그는 여기서 차도 중흥을 위해 '다신전

'을 작성했는데, 신라 흥덕왕 시절인 828년 김대렴이 중원대륙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서(당나라에서

차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신라의 중원대륙 영토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겠음) 왕명으로 화개동

에 심었다고 전한다. 그 화개동이 바로 칠불사 일대라고 한다.

 

그로부터 1,000년 후인 1828년 초의선사가 칠불암을 찾아와 참선했는데, 만보전서에서 다신전을 초

록하여 동다송의 기초를 정립했다. 다신전은 차를 심고 재배하고 채집하고 차를 만드는 것까지 총 22

항목으로 정리 서술한 서적으로 그는 동다송에서 우리의 차를 찬미했다.

 

제월통광선사가 1978년부터 20여 년 동안 파괴된 칠불사를 중창했는데, 초의선사의 발자취가 깃든

칠불사에 그를 기리는 다신탑비를 세웠다.

 

 

6. 칠불사 문수동자탑

기단석과 탑신, 머리장식을 지닌 조그만 부도탑으로 조선 중기 것으로 전해진다. 석종형 탑신은 고색

의 기운이 가득하나 머리장식과 기단석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사라진 것을 근래 새로 보충

했는데, 그러다 보니 늙은 돌과 어린 돌이 다소 어색한 조화를 보인다. 이 탑은 문수동자탑이라 하는

데,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조선 중기에 하동 고을을 다스리는 하동부사가 새로 부임했다. 그는 하동 관할에 있는 쌍계사를 둘러

보고 칠불암(칠불사)까지 들어왔는데, 하동 고을 수령이 왔음에도 맞이하러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열불이 난 하동부사는 아자방 앞에 신발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동자승이 나타나 문을 열지 못하게 하면서

'승려들이 참선 공부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주십시요' 이러는 것이다.

그 말에 하동부사는 마음이 급 숙연해져 그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냐고 하니, 동자승이 손

으로 하동부사의 입을 막으며,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그때 마침 점심 공양을 마친 직후였는데, 승려

들이 식곤증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거나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혹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들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부사가 어이가 없어서 저게 무슨 공부냐고 동자승에게 따지니 동자승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으로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천상 세계

를 관찰하는 것이니 복락에 빠져있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려

땅을 보고 있는 것은 지하유명관(地下幽冥觀)으로서, 사람이 나쁜 행위를 하면 사후에 깜깜한 지옥

으로 떨어지는데, 그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공부입니다. 그리고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은 춘

양류관(春風楊柳觀)으로서, 봄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이쪽에도 닿지 않고 저쪽에도 닿지 않

것처럼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 실상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는 것이다. 그때 마침 방귀 소리가 들렸는데, 부사는 저 방귀 소리는 무슨 공부냐고 따지니 동자

승이

'저것은 타파칠통관(打破漆桶觀)으로서 칠통 같은 무명업식이 깨어지는 소리입니다' 그러는 것이다.

그 말에 부사는 이것들이 말장난을 하나 싶었으나 무슨 의미도 있는듯 보여서 그냥 하동 고을로 돌

갔다.

 

하동고을 동헌으로 돌아온 부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승려들이 조는 것이 분명한데 그 동자승은 그것

이 모두 공부라고 말하니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리고자 문제를 제시했

다. 즉 칠불암 승려들에게 아무 날 아무 시까지 목마를 만들어 이곳으로 가져와 동헌 뜨락에서 그것

을 타고 달려보라는 것이었다.

부사로부터 명령을 받은 칠불암 승려들은 아침공양 후 대중 공사를 부쳐 누가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

을 돌 것인지를 상의했으나 묘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시일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이삼일 전에 방부

를 들인 사미승이 대중 앞에 나와

'싸리나무로 목마를 하나 만들어 동헌 마당에 갖다 놓으시면 타고 달리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했다.

하여 승려들이 목마를 만들어 동헌 마당에 가져다 놓으니 그 사미승이 목마를 타고 고사리 같은 손으

로 목마의 엉덩이를 철썩 치면서

'이랴! 이 망아지야 달려라' 하니 목마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동헌 마당을 빙빙 도는 것이다. 그러자 부

사는 마음 속으로 겁이 덜컥 났다.

'저 어린 동자승도 신통이 저렇게 대단한데, 저 큰 승려들은 신통이 오죽하겠는가' 생각을 하고 그들

에게 공경심을 보였다.

 

승려들이 칠불암으로 돌아오는데 목마를 탔던 동자승이 그들을 향해서

'당신들 정진을 잘 하셔야 합니다!!' 크게 외치고는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절 승려들은 그제서야 그

사미승이 문수보살의 화현임을 깨닫고 크게 발심하여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전하며, 동자가 사라진

자리에 탑을 세우니 그것이 문수동자탑이라는 것이다.

 

한편 하동부사는 목마 사건으로 칠불암 승려들에게 감동을 먹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무

엇이 좋을지 고심하다가 예전 칠불암 방문 때 장판이 닳아 다 떨어진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창호지

를 여러 겹 겹쳐 만든 각장판을 깔아주었으며, 아자방 좌선처의 모서리 장석을 백동으로 만들어 시주

했다고 전한다.

 

7. 가까이서 바라본 문수동자탑

이 부도탑은 승려의 묘탑이 아닌 앞서 이야기처럼 게으름에 빠져있던 칠불사 승려에게 큰 자각을 주

었던 문수보살을 기리고자 세운 탑이다. 그 문수보살은 여기서 홀연히 사라졌다고 전한다.

 

8. 지리산국립공원 특별보호구 안내도

예전에는 칠불사에서 지리산 주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나 특별보호구역에 묶이면서 2026년까지

문이 완전히 닫혔다. 하여 칠불사에 왔다면 절만 보고 다시 돌아나가야 된다.

 

9. 칠불사 일주문

맞배지붕을 지닌 일주문이 '지리산 칠불사' 현판을 내밀며 마중을 나왔다. (일주문 앞에 주차장이 닦여

져 있음)

 

10. 일주문에서 칠불사 경내로 인도하는 숲길

 

11. 영지와 영지 관련 이야기를 머금은 기와들

칠불사 경내 전에 영지란 동그란 못이 있다. 영지는 그림자 연못을 뜻하는데,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

거나 전설이 한토막 서려있다.

가야국의 중심 국가인 가락국(금관가야)의 대왕이었던 수로왕(김수로왕)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

다. 그중 7명이 수행 정진을 위해 칠불사로 출가를 했는데, 수로왕 부부(수로왕과 허황후)는 그런 아

들을 보고자 이곳을 찾았다. 허나 왕자들의 수행을 담당했던 장유화상(허황후의 오라버니라고 함)이

이를 만류하며

'왕자 전하들은 이미 출가한 몸이라 만나서는 안됩니다. 그래도 꼭 보고 싶다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

어 물 속을 보십시오. 아마도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랬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급히 절 밑에 연못을 팠는데, 과연 연못 수면에 왕자들의 그림자가 비쳤다고 한

다. 그 그림자를 보고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고 하며, 그로 인해 그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설화이니 모두 믿으면 곤란하다.

 

12. 칠불사 경내 밑을 흐르는 작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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