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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불사 선원

지리산 반야봉 남쪽 자락 660~670m 고지에 둥지를 튼 칠불사는 지리산 하동군 지역에서 쌍계사

다음 급의 유명한 절이다. 이곳은 칠불의 스승인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야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자 7명이 여기서 수행하여 성불한 것을 기리고자 수로왕이 창건했다

고 전한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무려 2,000년 가까이 묵은 절이 되지만 아쉽게도 이를 입증할 유물

과 기록은 부실하다.

 

신라 후기에는 동국제일선원으로 크게 명성을 날렸으며,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함께 천하에 대표적

인 참선도량으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문턱이 닳도록 이곳을 거쳐갔다.

고려 때는 정명, 조선 때는 벽송, 조능, 서산, 부휴, 백암선사 등이 이곳을 거쳤으며, 1800년대에는

대은과 금담 두 율사가 여기서 용맹기도를 벌여 서상수계를 받아 지리산 계맥인 해동계맥을 수립하

기도 했다. 또한 초의선사가 이곳 아자방에서 정진하면서 다신전을 초록하고 동다송의 기초를 정립

했다.

 

임진왜란 때 이 첩첩한 산골까지 기들어온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서산, 부휴가 중수했으며, 1800

년대에 보광전과 약사전 등이 전소된 것을 금담, 대은이 다시 세웠다. 이후 별탈 없이 법등이 유지되

다가 1948년 여기서 가까운 여수, 순천 지역에서 여순사건이 터졌는데, 좌익 공비들이 지리산에서

개난리를 부리자 국군이 작전상 칠불사를 모두 태워버렸다. 하여 아자방을 비롯한 칠불사의 건물들

은 싹 사라지고 터만 황량하게 남게 된다.

이후 제월통광선사가 이곳에 들어와 수도를 했고, 1978년부터 20년 이상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모습

을 지니게 되었다.

 

지리산 그늘에 묻힌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문수전, 설선당. 운상선원, 아자방, 보설루 등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아자방은 국가민속문화유산의 큰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자방 또한 1948

년에 파괴되어 터만 남은 것을 다시 세웠는데, 2017년 이후 기존 건물을 부시고 발굴조사를 벌여 재건

했다. 그 외에 조선 중기에 세워진 문수동자탑과 부휴선수(1543~1615)의 부도탑이 있는데, 이 부도탑

이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이다. (아자방은 터만 남은 것을 그 위에 건물을 다시 세웠으므로 제외)

 

2. 칠불사 원음루(범종각)

범종를 지닌 팔작지붕 누각으로 그 흔한 범종루나 범종각 대신 원음루를 칭하고 있다. 여기서 '원음'은

석가여래의 음성을 뜻한다. (종소리는 석가여래의 중생구제를 향햔 메세지를 뜻함)

 

3. 칠불사에서 만난 주름진 수석

 

4. 길게 늘어선 수석들

칠불사의 수석 역사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거쳐간 초의선사도 여기서 수석

을 수집해 보관했다. 왕년에는 명품급 수석들이 많았으나 안좋은 손에 의해 도난도 많이 당했으며,

1948년 이후 절이 소실되면서 남아있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20세기 후기에 칠불사가 재건되면서 주지 도응의 주도 아래 한수연우회, 고운초우회 등과 협력해 수

석들을 많이 수집하여 경내 곳곳에 뿌려두었다.

 

5. 작지만 야무지고 잘생긴 수석들

 

6. 칠불사 경내 아랫 부분 (찻집과 주차장 등)

 

7. 칠불사 샘터

지리산이 베푼 물이 졸졸졸 나와 절을 찾은 나그네의 목마름을 해소해준다.

 

8. 칠불사 연못

연못을 네모나게 만들고 그 한복판에 동그란 섬을 띄워놓았다. 아마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는 천원지방 사상에 따라 저렇게 만든듯 싶다.

 

9. 동쪽에서 바라본 칠불사 경내

 

10. 기와에 쓰인 허무맹랑한 문구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에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11. 경내 남쪽 밑 산책로

 

12. 남쪽에서 바라본 칠불사 경내

 

13. 주차장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모습의 칠불사

칠불사에서 지리산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통제되어 있다. 또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산길도

모두 막혔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완전 막다른 곳이 되어 왔던 길(범왕길)로 무조건 다시 나가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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