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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축 위에 자리한 청곡사 나한전 (업경전에서 바라본 모습)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16나한의 공간이다. 조

선 중기 승려로 많은 이적을 남긴 진묵이 이곳 석가여래상을 조성했으며, 이곳에 불을 밝히고 기도를

하면 한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기도 수요가 많다.

 

2. 업경전에서 바라본 칠성각 (오른쪽 건물이 나한전)

칠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조그만 맞배지붕 집으로 가운데는 칠성의 공간인 칠성각, 동쪽은 독

성(나반존자)의 공간인 독성각, 그리고 서쪽은 도선국사와 진감 혜소국사, 상총국사, 일타선사 진영

이 들어있는 진영각으로 쓰인다. 즉 한 지붕 세 가족 형태의 건물이다.

 

3. 업경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업경전은 명부전, 지장전의 역할을 하는 건물로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저승) 식구들의 공간이다.

나무로 만들어 개금한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자리해 지장3존상을 이

루고 있으며, 그 좌우로 시왕, 귀왕, 판관, 인왕상 등 21구가 자리해 있다. 지장보살상 뱃속에서 나온

발원문에 따르면 이들 상은 모두 1657년에 조성되었다.

 

지장보살상은 좌우에 자리한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과 비슷한 크기로 이는 중심 보살상을 크게

만들고 주변 인물을 작게 만드는 다른 절과는 다른 것이다.

모든 존상의 상호는 둥근 얼굴형에 두 눈은 눈꼬리가 길게 빠졌으며, 코는 높고 콧등은 반듯하다. 그

리고 입술은 작아서 어린이 같은 인상을 준다. 각 존상의 비례를 보면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두부

를 크게 제작하였다. 특히 무독귀왕과 시왕, 권속 등은 관모가 높아 3등신의 신체비례를 하고 있다.

신체는 어깨가 둥글고 좁지만 상체와 하체를 양감 있게 처리했다.

 

지장보살상은 무릎이 높고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으며, 시왕과 범천, 제석천상 등도 의

자에 허리를 기대고 무릎을 내려 뜨린 자세가 다양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지장보살상은 이중으로 대

의를 걸쳤으며, 드러낸 가슴 밑으로 승각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상체의 대의 자락은 간략하게 직선으로 양감 있게 처리한 반면 하체의 옷주름은 곡선을 살려 장식적

이면서도 볼륨감을 살려 두텁게 표현했으며, 장식적인 곡선의 옷주름 표현은 도명존자의 가사나 시

왕의 무릎 옷주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상호와 신체비례와 달리 두 손은 여성스

럽게 가늘고 길게 조각했다.

이 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인영, 탄준, 지변, 학염, 서명, 법율, 종탄, 선우 등으로 청곡사 업경전의 상

들을 제외하고는 이들이 조성한 다른 불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청곡사 불상은 17세기에 활동한 여러

조각승의 불상과 계통이 연결되는 요소가 없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상의 전체적인 조

형미가 뛰어나고 조각 수법 또한 우수하다.

 

4. 귀엽게 표현된 업경전 식구들 (금강역사상, 시왕, 인왕상 등)

앞에 자리한 인왕상은 지장보살과 시왕의 경호원이다. 업경전에는 인왕상 2기가 현란한 조각 솜씨로

자리해 있는데, 대형 통나무에 이음새 없이 조각하여 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나고 신체의 생동감

이 느껴진다. 이들 인왕상은 조선 고종 때 조성된 것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이며, 드물게 나무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다.

 

이 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인영(印迎), 탄준(誕隼), 지변(智邊), 학염(學廉), 서명(瑞明), 법율(法律),

종탄(宗誕), 선우(善祐) 등으로 이들의 작품은 이곳 외에는 딱히 전하지 않는다.

 

 

5. 업경전 식구들 (시왕, 판관, 인왕상 등)

 

6. 우람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인왕상의 위엄

업경전 내부로 들어서는 문 안쪽에 인왕상 2기가 자리해 중생들을 검문한다.

 

7. 청곡사 업경전

업경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과 시왕상, 판관, 인왕상 등 명부(저승) 식

구들의 공간이다. 원래는 대웅전 옆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시절에 다시 세웠

으며, 조선 후기에 포우대사가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8. 청곡사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광해군

시절에 실상, 보우 등이 중건했는데, 경남 지역에서 가장 늙은 목조 건물로 꼽힌다.

건물 내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대범천왕상, 제석천왕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내부 행사 관계로

그들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업경전과 더불어 청곡사의 보물창고 같은 존재로 청곡사에 왔다면 대

웅전과 업경전 내부는 꼭 살펴봐야 나중에 명부(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는다.

 

월아산 남쪽 자락에 둥지를 튼 청곡사는 87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창

건설화에 따르면 도선이 진주 땅을 지나다가 남강변에서 청학이 날아와 서기가 충만함을 보았는데,

남강에서 가까운 이곳을 살펴보니 기가 막힌 명당이라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은 두 줄기의 물길이 한곳에서 만나며, 물이 고인 못 위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라 학

이 알을 부화한 뒤 날아가지 않도록 학의 목을 고리로 채워놓는다는 뜻에서 탑에 원형 고리와 원주

를 새워놓았다고 한다.

허나 지금은 다 깨어지고 나머지 형태만 갖추고 있으며, 탑 정면은 앞산 노적 봉우리에 맞추어 먹이

가 떨어지지 않도록 탑을 세운 것이 특징이라 풍수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또한 학이 찾

아와서 먹이를 먹는 계곡에 징검다리가 있으니 이곳에서 학을 날려 보냈다고 해서 방학교란 다리가

있고 학이 목욕을 했다는 학영지가 있다.

 

고려 우왕 시절에 실상사 장로인 상총대사가 중건했으며, 조선 태조는 청곡사를 신덕왕후 강씨의 원
찰로 삼아 향로 등 많은 보물을 하사했다. (그 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음)

임진왜란 때 절이 파괴되었으며, 광해군 시절에 절을 다시 일으켜 세우니 이때 대웅전, 업경전 등이
세워졌다.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업경전, 나한전, 할매산신각, 선불장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으며, 진

주 지역의 대표적인 고찰로 영산회괘불탱 등의 국보와 제석천왕, 대범천왕,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의 국가 보물, 그리고 다수의 지방문화재를 지니고 있어 고

색의 향기도 풍년을 이룬다. 또한 성보박물관을 세워 청곡사의 오랜 보물을 보관하고 있으나 그들

의 건강 문제로 상당수는 모조품과 사진으로 때우고 있다.

 

9. 청곡사 환학루(왼쪽 2층 누각)과 천왕문(오른쪽 건물)

 

10. 청곡사와 월아산을 뒤로 하며 (청곡사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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