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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인면 중심지(중앙리)에서 바라본 매곡산

회인면 중심지(중앙리) 동쪽에는 매곡산이란 낮은 뫼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이곳에는 신라 후기

산성 유적으로 여겨지는 늙은 산성터가 있는데,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회인, 회남 일대를 관

리했다는 매곡성 자리로 보고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며, 이곳 산성의 자세한 정보는 전

하는 것이 없다.

 

참고로 후삼국 시절 매곡성 성주는 '공직'이란 사람으로 그는 후백제 견훤(진훤) 정권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고려로 넘어갔다. 그가 고려로 넘어가자 견훤이 너무 열받은 나머지 그의 자식들을 잡아와 그

들의 다리 힘줄을 끊어놓았다고 한다.

 

2. 회인초등학교와 회인동헌내아 사이 골목길

오른쪽(동쪽)에 있는 기와 담장 너머로 살짝 추녀를 보인 집이 회인동헌내아이다.

 

3. 회인동헌내아의 뒷모습

동헌 내아는 회인현감이 생활하던 공간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건물로 보이

며, 1918년에 크게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은 'ㄱ' 구조의 팔작지붕 집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북쪽에 안방과 부엌을 배치하고 남쪽에 건

넌방을 두었다. 앞쪽은 대청과 연결된 누마루를 대청보다 1자 정도 높이 닦았으며, 그 밑에 아궁이를

설치했다. 1918년 이후 여러 번의 수리를 거치면서 다소 변형되었으나 내부 구조와 지붕 등에 쓰인

원부재가 남아있으며, 건물의 예전 평면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부재의 굵기와 치목 기법 등

조선 후기 고식 기법이 남아있어조선시대 관아 건축으로서 그런데로 가치가 있다.

 

현재는 '삼인당'이란 이름의 민가로 살아가고 있다.

 

4. 바깥에서 바라본 회인동헌내아

엄연한 개인 소유의 집이라 내부로 감히 들어가지는 않고 대문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건물 내부만 살피지 못했을 뿐이지 건물 외관을 살피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다.

 

5. 현재 회인동헌 내아의 이름, 삼인당 표석

 

6. 회인동헌내아(삼인당)의 기와 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