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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 속리산 폭포 나들이 '


▲  속리산 장각폭포

▲  오송폭포

▲  옥양폭포



 

봄이 겨울 제국을 응징하며 얼어붙은 천하에 한참 희망을 내리던 3월 끝 무렵에 친한 후
배와 1박 2일 일정으로 짧게 좁은 천하를 주유했다.
첫날은 강원도 내륙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충북 단양(丹陽)으로 내려가 단양 친척집에
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오랜만에 찾은 단양 시골이지만 다음 날도 갈 길이 멀기에 나머
지 회포는 불투명한 미래로 쿨하게 넘기고 아침을 두둑히 섭취한 다음, 길을 떠났다.

둘째 날은 소백산맥 너머 경북으로 시야를 돌려 예천(醴泉) 지역을 둘러보고 이 땅의 마
지막 전통 주막으로 꿀재미를 보고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을 찾았다. 거기서 소고기국
밥과 파전, 도토리묵, 두부로 두둑히 점심을 먹었는데 나올 때는 인절미도 1개 구입하여
후식까지 챙겼다.

삼강주막을 나오면서 후식거리로 어디로 갈지 궁리하다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속리산
(俗離山)을 찾기로 했다. 속리산하면 흔히 충북 보은(報恩)과 괴산(槐山) 지역만 생각하
기 쉽지만 경북 상주(尙州)에도 적지 않게 덩치를 걸치고 있다. 바로 그 상주 권역에 이
름난 폭포들이 여럿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이들을 시간이 되는데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중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장각폭포이다.


 

♠  장각동계곡 하류에 그림처럼 자리한 조그만 폭포
장각폭포(長角瀑布)

속리산의 최고 봉우리는 과연 어디일까? 흔히 문장대(文藏臺, 1,054m)를 생각하기 쉽지만 정
답은 바로 그 남쪽에 자리한 천왕봉(天王峰, 1,057m)이다. 그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계곡이 장각동계곡(長角洞溪谷)으로 그 계곡이 굽이굽이 큰 세상을 향해 흐르다가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하류에 걸쭉한 폭포를 빚어놓으니 그 폭포가 장각폭포이다.

동쪽을 향해 힘차게 물을 내뱉는 장각폭포는 높이가 겨우 6m 정도인 조그만 폭포이나 수량만
큼은 풍부하여 우렁찬 폭포수 소리에 귀신의 염통까지 쫄깃하게 한다. 폭포 밑에는 용소(龍沼
)라 불리는 깊은 못이 푸르고 청초한 빛을 띄며 상류에서 온 계곡물을 담아두고, 폭포 윗쪽에
는 근래에 지어진 금란정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폭포의 운치를 한층 돕는다.
폭포 좌우에는 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벼랑이 6~7m 높이로 형성되어 있고 폭포 정면에
는 폭포의 모습을 사진에 잘 담을 수 있도록 포토존(photo zone)이 설치되어있다. 용소 주변
에는 조그만 돌이 많아 조촐하게 백사장을 이루고 있어 피서의 성지(聖地)로도 아주 그만이다.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워 속리산의 주요 명소이자 피서지로 인기가 높으며, 고려 중기 무인정
권기를 다룬 '무인시대(KBS)'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정리한 '불멸의 이순신(KBS)'
등의 사극이 여기를 거쳐가기도 했다. 무인시대(武人時代)는 무인정권 3번째 권력자인 이의민
(李義旼)이 이의방(李義方)의 명을 받고 거제도로 귀양간 의종(毅宗)을 만나 그의 허리를 분
질러 죽이는 장면을 담았으며, '불멸의 이순신'은 그의 어린 시절, 친한 선배(유성룡과 원균
이 그의 선배로 나왔음)들과 폭포에서 뛰어내리며 담력을 기르는 장면을 담았다. 그외에 '태
양인 이제마(MBC)', 영화 '낭만자객'이 이곳의 신세를 졌다.


▲  겨울 제국(帝國)의 먼지를 털어내며 슬슬 기지개를 켜는
장각동계곡 (장각폭포 직전)

▲  장각폭포 윗쪽, 금란정과 소나무

▲  장각폭포를 수식하는 구수한 양념, 금란정(金蘭亭)

장각폭포 윗쪽에는 금란정이 동쪽을 굽어보며 자리해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조그만 팔
작지붕 정자로 20세기 한복판에 지어졌는데 그의 곁에는 소나무들이 운치를 이루며 조촐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늘 장각폭포와 한 덩어리를 이루며 세상에 그 존재를 진하게 알리고 있으며
정자에 올라서면 폭포와 용소를 비롯해 상오리(上五里) 일부가 좁게나마 시야에 들어온다.

정자의 이름인 '금란(金蘭)'은 주위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이로움은 쇠붙이도 끊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은 그 냄새가 난보다 향기롭다는 복잡한 뜻이다. 정자를 보다
전통식으로 지었다면 지금보다 운치가 더 진했을 터인데, 기둥과 지붕은 어설픈 전통식, 마루
와 난간은 현대식으로 만들어 일종의 절충양식이 되어버렸다. 정자 동쪽에는 금란정 현판이
걸려있다.

▲  최근에 지어진 금란정 기념비

▲  금란정에서 바라본 용소와 그 너머
풍경 (상오리 지역)


▲  장각폭포의 위엄

폭포 밑 용소에는 속리산이 베푼 옥계수들이 푸른 빛을 띄며 모여 있다. 용소의 수심이 꽤 깊
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바닥은 어렴풋이 보인다. 허나 수심은 2m가 넘으니 물놀이를 할 때 반
드시 주의해야 된다. 폭포가 조촐하게 생겼고 폭포 앞에 이렇게 대자연이 빚은 잘생긴 자연산
수영장이 있으니 자연히 피서의 성지로 격하게 추앙을 받으면서 여름에는 무더위에 대항하며
벼랑 중간과 벼랑 위에서 뛰어내리는 용자들이 많다. 허나 그로 인해 물놀이 사고도 적지 않
은 터라 2014년 여름에는 동네 주민들이 벼랑 앞에 그물망을 치기도 했다.

마침 우리가 폭포에 이르렀을 때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반바지만 입고 벼랑 중간에 주름진
틈으로 기어올라가 폭포를 향해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봄이 한참 선전을 해주어 날이 좀 포
근하긴 했으나 그래도 쌀쌀한 기운은 좀 남아있어 물놀이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그들은
젊은 혈기만을 믿고 폭포로 뛰어들며 이른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춥기는 한지 큰
수건으로 몸을 가리며 물을 닦느라 부산하다.
그들이 요란하게 거쳐간 후, 폭포 주변은 다시 적막감이 감돈다. 이때다 싶어 잠시나마 폭포
를 나의 전유물로 삼으며 열심히 그를 사진에 담는다. 종종 관광객들이 폭포 밑으로 내려와
사진에 담기는 하지만 콩을 볶듯 금세 가버리고, 폭포 주변은 산바람 소리와 폭포 소리만이
적막감을 살포시 어루만질 따름이다.


▲  장각폭포를 거쳐 큰 세상으로 흘러가는 장각동계곡
이 계곡은 상오리 마을에서 용유천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내려간다.


폭포를 열심히 사진에 담으며 폭포 주변에서 30분 정도 머물다가 시어동계곡(오송골)에 자리
한 오송폭포로 이동했다. 장각폭포에서 그곳까지는 약 6km 거리로 가깝지만 옥양폭포까지 모
두 보려는 욕심에 길을 서둘렀다.

※ 장각폭포 찾아가기 (2018년 6월 기준)
① 상주까지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상주행 고속버스가 50~70분 간격, 동서울터미널에서 30~50분 간격
  으로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에서 송면 경유 화북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화북 하차 (동서울에서 1일 1
  회, 13시 출발)
* 인천, 부천, 성남, 안산, 청주, 충주, 대전(복합), 김천, 구미, 안동, 대구(북부), 울산에
  서 상주행 직행버스 이용
* 경북선 무궁화호 열차(부산~밀양~경산~동대구~구미~김천~영주)를 타고 상주역 하차 (1일 3
  회, 금/토는 1일 4회 운행)
② 현지교통
* 상주시외터미널에서 화북 방면 시내버스(1일 7회 운행)를 타고 상오리 하차, 장각폭포까지
  도보 7~8분 (상주역에서 갈 경우에는 1.1km 정도 떨어진 상주초교 정류장까지 나와서 버스
  를 타야 됨)
* 화북에서 상주시내 방면 시내버스(1일 7회)를 타고 상오리 하차
③ 승용차 (폭포 주변에 주차장 있음)
* 당진영덕고속도로 → 화서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 → 수청거리3거리에서 좌회전 → 상오리
  에서 장각동, 장각폭포 방면 좌회전 → 장각폭포

*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 054-533-3389)



♠  시어동계곡의 아름다운 보석, 오송폭포(五松瀑布)

상오리에서 북쪽(괴산 방면)으로 가다가 장암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입석천을 따라 구비구비
산길을 오르면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견훤(甄萱, 진훤)이 쌓았다고 전하는 견훤산성(甄萱山
城) 입구가 손을 내민다. 견훤은 상주 출신으로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하며 경주(慶州
)로 가는 진상품과 세금을 빼앗아 세력의 발판을 닦던 곳이라 전한다. 기분 같아서는 그곳도
흔쾌히 들리면 좋겠지만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되고, 나의 마음은 이미 오송폭포에 가
있던 터라 견훤산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견훤산성입구를 지나면 속리산 화북탐방지원센터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한굽이 오르면 화북분
소와 문장대주차장이 모습을 비춘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소정의 주차비를 치른 다음 잘 닦여
진 길을 10분 정도 가면 오송폭포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계곡을 2~3분 정도 들어가면 그 길
의 끝 막다른 곳에 오송폭포가 있다.

오송폭포는 속리산 신선대(神仙臺)에서 발원한 시어동계곡(오송골)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작품으로 폭포수가 마치 하늘에서 은가루를 쏟아내는 듯한 아름답고 경쾌한 폭포이다. 높이는
15m로 5단(혹은 7단)으로 주름진 벼랑을 타고 폭포수가 내려앉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
르지 않으며, 비가 온 이후에는 더욱 장쾌하게 쏟아진다. 폭포 밑에는 담(潭)이 형성되어 있
으나 수심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아주 얕아서 아이들 물놀이 장소 및 물맞이 장소로
아주 제격이다.

지금은 비록 흔적도 없지만 예전에는 폭포 옆에 오송정(五松亭)이란 정자가 있어 거기서 오송
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며, 폭포 윗쪽에는 20세기 중반에 창건된 성불사가 자리해
폭포를 거쳐가는 옥계수를 제일 먼저 만진다.


▲  오송지구 문장대 주차장
속리산을 대표하는 문장대를 비롯하여 문수봉과 청법대(聽法臺), 신선대 등
속리산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온다.

▲  오송폭포와 문장대로 인도하는 길 (화북분소 부근)

▲  오송폭포 입구 주변 시어동계곡

오송폭포를 끼며 흐르는 계곡을 시어동(侍御洞)계곡이라 부른다. (또는 오송골) 그 이름은 조
선 7대 군주인 세조(世祖)가 속리산을 찾았을 때 땅에 널려있던 칡넝쿨이 모두 나무 위로 올
라가 왕의 행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셨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물론 칡넝쿨
이 스스로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나 제왕일 뿐이지 식물에게는 그저 두 발 달
린 생명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허나 왕이 온다고 하니 지역 수령(守令)들이 왕에게 잘보이고자 백성과 군사들을 들들볶아 칡
넝쿨과 행차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미리 치웠을 것이고, 이를 칡넝쿨이 스스로 올라갔다는 식
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  오송폭포 직전 계곡 - 멋드러진 돌과 반석(盤石)이 제법 널려 있다.

▲  시원하게 물보라를 뿜어내는 오송폭포

▲  옆에서 바라본 오송폭포의 위엄
하얀 실타래를 밑으로 풀어놓은 듯 하다.

▲  폭포 밑 못 - 깊이도 매우 얕고 돌도 그리 거칠지 않아 물놀이나
물맞이 장소로 아주 휼륭하다.

▲  오송폭포 윗쪽

오송폭포를 둘러보고 폭포 윗쪽에 있는 성불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포 입구에서 가파른 언
덕길을 오르면 오송폭포로 흘러가는 시어동계곡이 다시 옆에 나타난다. 그 계곡과 함께 속리
산의 품으로 조금 들어가면 속리산을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은 성불사(成佛寺)가 모습을
드러낸다.
첩첩한 속리산의 산주름 속에 묻혀있는 성불사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창건된 현대 사찰이다.
1980년대 제작된 관광책에 속리산 성불사의 앳된(?)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조그만 삼성각과
양옥처럼 지어진 건물이 전부인 그야말로 숲에 묻힌 조촐한 산사였다. 허나 지금은 속리산이
부담을 가질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2층짜리 건물하며 온갖 석탑과 석불을 잔뜩
지어올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는 것이다.
허나 성불사가 커질수록 속리산의 희생은 그만큼 커지는 법, 더 이상 경내 확장은 하지 않았
으면 좋겠다. 지금 성불사도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  산속에 숨겨진 조그만 궁궐 같은 성불사

경내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등 약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다. 건물들은 하나 같이 덩치가 커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꽤 장대하며, 3개의 옥불(玉佛)을 봉안한 대옥불전(大玉佛殿)은 무려
금칠까지 해놓아 화려함을 더욱 돋구었다.
법등(法燈)의 역사가 짧다보니 오래된 문화유산은 없으며 죄다 199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들
이라 고색의 기운은 여물지도 않았다. 다만 대웅전(大雄殿) 뒷쪽 삼성각(三聖閣)이 이곳에서
그나마 오래된 건물이며, 나의 관심을 돋굴만한 오래된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둘러
보고 절을 나왔다.


▲  피안불로장생문(彼岸不老長生門)과 바위에 새겨진 하얀 선각의 마애불

▲  3개의 옥불(석가불, 미륵불, 아미타불)이
봉안된 대옥불전

▲  대웅전 금동석가3존불과 붉은 닫집

※ 오송폭포 찾아가기 (2018년 6월 기준)
① 상주까지 교통편은 앞의 장각폭포 참조
② 현지교통
* 상주시외터미널에서 화북, 입석, 용화 방면 시내버스(1일 7회 운행)를 타고 장암리(문장대
  입구) 하차, 오송폭포까지 도보 50분, 성불사는 1시간 / 주말과 휴일에는 입석, 용화 방면
  시내버스 중 3회(상주발 7:40, 11:10, 16:40)가 화북분소 문장대주차장까지 들어간다. (평
  일에는 안들어감)
* 화북에서 입석, 용화 방면 시내버스(1일 7회) 이용 또는 택시 이용 (주말과 휴일에는 입석
  , 용화 방면 시내버스 중 3회가 화북분소 문장대주차장까지 들어감)

③ 승용차 (주차비는 유료)
* 당진영덕고속도로 → 화서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 → 수청거리3거리에서 좌회전 → 상오리
  → 장암교차로에서 좌회전 → 화북분소 문장대 주차장

* 오송폭포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 054-533-
  3389)
* 성불사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33 (문장대2길 293, ☎ 054-532-5555)


 

♠  자연산 돌다리를 위에 두룬 옥양폭포(玉樑瀑布)

오송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밑으로 내려가 북쪽으로 길을 향했다. 7km를 달려 충북 괴산 땅을
바로 코 앞에 둔 입석리에 이르니 길 왼쪽에 '백악산 옥양폭포'와 '석문사'를 알리는 이정표
가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그의 안내를 따라 인적도 없는 각박한 고갯길을 올라가다가 석문사
(石門寺) 직전 적당한 공터에 차량을 세우고 백악산의 품으로 들어서니 이내 석문사가 모습을
비춘다.

석문사는 백악산(白岳山, 858m) 동쪽 자락 옥양골에 묻힌 조그만 현대 사찰이다. 옥양폭포 북
쪽 절벽에 있는 굴 주위에 보굴암(寶窟庵)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의 뒤를 잇고자
지어진 듯 싶으며 법등의 역사는 앞서 성불사보다 짧은 듯 싶다. 대웅전과 요사(寮舍), 벼랑
밑에 세운 석불 등이 전부로 요사 옆에는 장독대들이 가득 놓여져 음식들이 한참 숙성의 과정
을 밟고 있다.
그 곁에는 나무 장작으로 밥과 국을 짓는 작은 부뚜막이 있는데 무슨 국을 끓이고 있는지 김
이 모락모락 푸른 하늘에 회색 점을 찍는다.

백악산이 베푼 옥양골 계곡은 경내를 가로질러 흘러가며 계곡 옆구리에 석축을 높이 쌓아 길
과 경내를 닦은 점이 적지 않게 옥의 티로 남는다.


▲  옥양폭포, 석문사로 올라가는 길

▲  석문사 곁을 흐르는 옥양골 - 계곡 옆구리에 적지않게 인공이
가해진 점이 상당히 아쉽다.

▲  석문사를 지키는 백구(白狗)의 위엄
간밤에 무리를 했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절을 지키는 그가 있기에 오늘도 석문사는 평화롭다.

▲  눈썹 모양의 장대한 바위 밑에 자리한 석불좌상

바위 그늘에 석불이 들어앉아 동쪽을 바라보며 한참 선정(禪定)에 잠겨있다. 바위 윗쪽이 눈
썹처럼 두텁게 나와있어 눈과 비를 피할 수 있고 주변에 소나무도 무성해 바람 또한 그를 마
음껏 희롱하지 못한다. 다만 바위 윗쪽이 무너지면 그냥 게임 끝~~!
바위의 풍채가 대단하여 예로부터 산악신앙(山岳信仰)의 현장이 아니었을까 싶으며 석문사에
서 그나마 두 눈을 호강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  옥양폭포 윗쪽

석문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며 폭포를 찾았으나 경내 계곡에는 폭포 비슷한 것도 보이질 않는다.
하여 절 밑에 있을 듯 싶어 (절 윗쪽은 출입금지임~) 계곡을 살피며 차를 세운 곳까지 내려왔
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옆에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다. 그래서 벼랑 밑을
살펴보니 무언가 두터운 존재감이 느껴진다. 바로 그날의 마지막 답사지인 옥양폭포였다.

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경사가 급하다. 그 길을 조심스레 임하면 폭포의 윗도리가 나오는
데 특이하게 폭포 윗도리와 아랫도리 사이에 돌다리처럼 생긴 길쭉한 막대형 돌이 걸려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공이 아닐까 싶었으나 자세히 보니 대자연 형님이 빚은 돌다리였다. 그
모습이 마치 돌다리, 또는 대들보처럼 생겼는데 폭포의 이름인 양(량, 梁)이 바로 대들보를
뜻한다. 옥(玉)은 폭포의 풍경과 폭포수를 옥으로 비유한 것이니 자연히 폭포의 대들보를 의
미하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옥양(옥량)폭포는 높이가 약 20m에 이르며, 은빛 물보라를 일으
키며 흘러가는 폭포 윗쪽에 길이 20m, 두께 1.5m 정도 되는 자연산 돌다리가 걸쳐져 있다.


▲  윗쪽에서 바라본 폭포와 자연산 돌다리 ▼

옥양폭포의 백미(白眉)는 폭포 위에 있는 자연산 돌다리이다. 큼직한 바위와 돌들이 밑에 깔
려있고, 그 중간에 폭포수를 위한 통로가 뚫려 있어 마치 사람의 손이 간 것 같기도 하다. 그
위에 장대한 크기의 하얀 돌이 길쭉하게 다리처럼 놓여져 있는데 사람이 만든 돌다리보다 더
튼실한 모습이다. 대자연의 거룩한 작품 앞에 사람들은 그저 감동과 감탄사를 연발하고 문자
꽤나 쓴다는 사람들은 한낱 언어와 문자로 폭포의 아름다움을 감히 표현한다.
앞서 본 장각폭포와 오송폭포도 아름다운 폭포임은 분명하나 천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포
의 형태로 개성은 조금 부족하다. 허나 옥양폭포는 그들보다 덩치도 크고 자연산 돌다리라는
희귀한 아이템까지 가지고 있어 이날 본 폭포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앞서 폭포는 조연, 옥
양폭포는 주연) 게다가 그리 알려진 곳도 아니라서 인적도 거의 없다.


▲  폭포 윗쪽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 (옥양폭포 바위글씨가 새겨짐)

▲  옛 사람들이 새긴 옥양폭포 바위글씨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옛 사람들은 경치가 좋은 곳 바위에 꼭 바위글씨를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옥양폭포 역시 그
예외는 아니라서 조선 후기 언젠가 이곳을 거쳐간 선비들이 걸쭉하게 낙서와 이름을 남겼으니
그 글씨가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다.


▲  밑에서 바라본 옥양폭포
자연산 돌다리 중간에 뚫린 수구(水口)를 통해 폭포수가 힘차게 쏟아진다. 돌다리
모서리 부분은 경사가 급해 자칫 미끄러져 폭포 밑으로 추락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기 바란다.

▲  폭포 돌다리와 옥양폭포

▲  옥양폭포 밑부분
옥양폭포에서 급하게 흥분기를 보인 옥양골 계곡은 폭포를 내려오면서 비로소
진정을 되찾는다. 이곳도 피서지로는 아주 좋은 곳..

◀  수구를 거쳐 장쾌하게 쏟아지는
옥양폭포 폭포수의 위엄

옥양폭포 북쪽 절벽 위에는 조그만 굴이 있다. 굴의 존재를 알지 못해 지나치고 말았지만 그
굴 속에는 옛날에 미륵불이 있었고, 굴 밖에는 보굴암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조
선 초기에 나중에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움직임
을 보이자 이름이 전하지 않는 수양의 딸이 이를 만류하다가(또는 신하들에게 아버지가 하는
일이 옳지 못함을 말하고 다녔다고 함~)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서울에서 추방되었다. 그래서
이 굴에서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그 딸의 존재도 불투명함)

※ 옥양폭포 찾아가기 (2018년 6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송면 경유 화북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옥양동 하차 (동서울에서 1일
  1회, 13시 출발)
* 상주시외터미널에서 입석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삼송(옥양동) 하차 (1일 4회 운행 / 7:40,
  11:10,16:40, 18:15)
* 동서울터미널에서 괴산행 직행버스가 30~60분 간격으로 운행 → 괴산시외터미널 부근 아성
  교통 군내버스터미널(시외터미널에서 동쪽으로 도보 3분)에서 옥양동(입석리)행 군내버스(
  1일 4회 운행)를 타고 삼송(옥양동) 하차
* 삼송(옥양동) 정류장에서 석문사 방향으로 도보 10분
*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대자연의 기묘한 작품, 옥양폭포를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6시가 되었다. 봄이 서서히 천하
를 평정하면서 낮도 많이 길어졌지만 일요일 오후에 지방에서 서울(수도권)까지 올라가는 길
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날씨가 따스해지자 행락객들이 대거 지방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하여
옥양폭포를 끝으로 1박2일에 걸친 천하 유람을 쿨하게 마무리 짓고 나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 까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딱 9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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