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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산 백련사 극락전

고려산 북쪽 자락에 안긴 백련사는 416년에 인도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는 고려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청련
사와 비슷한데, 천축조사로 표시된 인도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고려산에 이르러 5가지 색깔의 연꽃이 있는 연못을 발
견했다. 그 연꽃잎을 따서 공중으로 날려 잎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니 청련이 떨어진 곳에 청련사를, 백련이 떨어진 곳에
바로 백련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건 이후 19세기까지 이렇다할 사적과 유물이 전하지 않아 5세기 창건설에 심히 의구심을 품게 한다. 경내에서 제
일 오래된 존재가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며, 그 다음이 470년 정도 묵
은 느티나무 정도라 5세기까지 갈 것도 없이 적어도 고려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806년에 의해당탑과 비석이 세워졌으며, 1881년에 벽담이 화주가 되어 현왕도를 조성했고, 1888년에 지장보살도, 신중도
, 칠성도, 독성도 등을 조성해 법당에 봉안했다. 1905년 인암과 박보월이 퇴락한 절을 중창했고, 1908년에 불상을 개금하고
탱화를 봉안했다.

경내에는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칠성각, 대방, 요사 등 6~7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철조아미타여래좌상과 강화군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있고, 19세기에 조성된 의해당탑과 비 등 부도 3기와 비
석 1기가 전한다.

 

2. 백련사 극락전

극락전은 백련사의 법당으로 저 안에 이곳의 1급 보물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 들어있다. 건물은 거의 'ㅁ'구조로 법당과

종무소, 선방, 요사 등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이야 건물이 여럿 있지만 예전에는 저 건물이 절의 거의 전부였다.

 

3. 윗쪽에서 바라본 극락전

 

4. 백련사 은행나무

극락전 주변에 솟은 나무로 추정 나이는 약 100년 정도이다. 1947년에 백련사 주지인 성탄이 다른 곳에서 가져와 심은 것

으로 은행나무임에도 이상하게도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하여 1990년대에 접을 붙었으나 여전히 소용이 없다고 한다. 또

한 그 시절에 나무가 갑자기 크게 자라 마치 300년 이상 된 나무처럼 되었는데 그 이유 또한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백련사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오늘도 경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5. 백련사 삼성각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독성(나반존자), 칠성의 공간이다.

 

6. 백련사 승탑들 (비석과 승탑들)

경내 뒤쪽에 조선 후기에 조성된 승탑(부도) 3기와 비석 1기가 전하고 있다. 그중 의해당처활대사탑과 비석은 1801년에 세
워진 것으로 그는 60세에 입적했는데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천봉의 제자이다. 다른 1기는 '여화당'이란 이름이 쓰여있어
의화당의 승탑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청신녀신령지탑'이라 쓰인 승탑은 여자 신도의 탑으로 여겨진다.

 

 

7. 나란히 촬영에 임하는 백련사 승탑과 비석들

 

 

8. 특이하게 생긴 승탑 ('청신녀신령지탑'으로 여겨짐)

 

 

9. 백련사 극락전 철조아미타여래좌상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

극락전에 봉안된 이 불상은 백련사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자 이곳의 1급 보물이다. 철로 만들어 개금을 입힌 것으로 고려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갸름한 얼굴과 단정한 눈,코,입, 좁아진 어깨, 손발의 곡선 처리 등은 절제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옷은 두껍고 주름은 단순하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 윗부분에는 독특한 모양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왼발은 옷 속에 감싸여 있고, 오른발이 보이도록 앉은 길상좌를 하고 있으며, 그런 길상좌 자세와 단아한 모습과 세련된 기

법을 통해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좌우로는 근래 조성된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자리해 아미타3존상을 이루고 있으며, 그들 뒤로 아미타후불탱

이 든든하게 자리해 있다.

 

 

 

 

10. 조금 멀리서 바라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아미타3존상)과 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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