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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구의 지붕을 거닐다 '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서달산~현충원길)

▲  고구동산길 잣나무숲길

▲  서달산 정상

▲  현충원길


 

더운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조금씩 세력을 다지던 초가을의 어느 평화로운 날, 일행들과
동작충효길을 찾았다.
동작충효길은 서울 동작구(銅雀區)가 야심차게 내놓은 도보길이다. 도보길 유행에 따라 제
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 북한산둘레길, 서울둘레길, 해파랑길 등 온갖 둘레길이 생겨났는
데, 동작구도 그 시류를 타고 산과 공원, 한강을 잇는 도보길을 닦아 동작충효길이란 간판
을 내건 것이다. 여기서 충효(忠孝)는 동작구 관내에 있는 국립현충원과 노량진 사육신묘(
死六臣墓)에서 따온 명칭이다.

동작충효길은 총 7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별로 넓지 않은 동작구에 이렇게 많은 코스가
가능한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하긴 하지만 충분히 쥐어짜면 못할 것도 없다.
제1코스는 본글의 주인공인 고구동산길(3.4km)로 노들역에서 서달산을 거쳐 현충원 상도출
입문까지, 제2코스는 현충원길(3.4km)로 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 동작역까지 이어진다.
제3코스는 한강나들길(4.6km)로 동작역에서 한강을 따라 노량진역까지, 제4코스는 노량진
길(3.4km)로 노량진역에서 용마산을 거쳐 신대방3거리역까지. 제5코스는 보라매길(2.9km)
로 신대방3거리역에서 보라매공원을 거쳐 보라매역까지 이어진다.
제6코스는 동작마루길(4.8km)로 신대방3거리역에서 국사봉을 거쳐 현충원 상도출입문까지,
제7코스는 까치산길(4.4km)로 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 까치산을 거쳐 사당역까지 이어진다.


 

♠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고구동산)

▲  고구동산길 노들역 시작점

동작충효길1코스 고구동산길 나들이는 노들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면 아주 편리하다. 지하철
9호선이 노들역을 지나가고 있고, 부근에 1호선(노량진역)이 빗자루 배차로 운행하고 있으며,
수많은 시내버스 노선이 노들역 주변을 물 흐르듯 빈번히 운행해 접근성이 아주 좋기 때문이
다.

노들역에서 상도터널 쪽으로 가면 서쪽에 나무가 우거진 산이 보이고, 그곳으로 인도하는 계
단길이 살짝 손을 내민다. 그 길이 바로 고구동산길 북쪽 시작점이다. 그 계단을 오르면 '고
구동산'이란 조그만 뫼의 품에 들어서게 되면서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구동산길(3.4km)은 노들역에서 국립현충원 상도출입문까지 이어지는 길로 고구동산과 서달
산 등 뫼 2개를 지난다. 이들은 모두 숲을 지니고 있어 길 대부분이 숲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택가와 아파트 사이에 완충지대처럼 자리한 숲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중앙대 후문에서 서
달산 생태다리 구간은 상도동과 흑석동(黑石洞)의 경계를 가르는 산줄기를 지나가며, 잣나무
숲과 소나무숲이 짙게 닦여져 있어 예사로운 숲길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또한 서달산 정상까
지 이어지는 동작구의 북쪽 지붕길이기도 하다.


▲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짙게 우거진 고구동산길
(본동 신동아아파트 옆)

▲  본동 신동아아파트 옆을 흐르는 고구동산길 ①

▲  본동 신동아아파트 옆을 흐르는 고구동산길 ②

▲  노량진근린공원 고구동산길

▲  노량진근린공원 조망대

고구동산은 노량진과 상도동(上道洞) 사이에 자리한 조그만 뫼로 산 중앙(상도터널 윗쪽, 본
동) 정상부에 노량진근린공원이 자리해 있다.
노량진근린공원에는 게이트볼장과 배드민턴장, 축구장, 농구장, 간단한 운동기구 등의 운동시
설과 조망대, 산책로, 정자쉼터 등이 있으며, 조망대는 한강과 여의도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
에 위치해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특히 천하 제일의 불꽃축제로 추앙을 받는 여의도불꽃축제
를 바로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는 명당으로 불꽃의 향연을 코 앞에서 누릴 수 있다.

* 고구동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흑석동 (노량진근린공원 : 동작구 본동 486-2)


▲  노량진근린공원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여의도와 63빌딩, 한강, 마포 지역이 바라보인다.

▲  노량진근린공원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1호선 전철과 온갖 철도가 매일 수백 차례씩 오가는 한강철교를 비롯해
원효로, 마포 지역과 멀리 북한산(삼각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노량진근린공원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숲 너머로 한강과 노들섬, 용산, 남산(南山) 등이 바라보인다.

▲  노량진근린공원에서 중앙대 후문으로 넘어가는 고구동산길
공원을 지나 남쪽으로 가면 다시 싱그러운 숲이 펼쳐진다. 고구동산길은
그 숲속을 가르며 중앙대후문까지 거침없이 흘러간다.

▲  푸른 철책이 둘러진 고구동산길 (강남초교 동쪽)

▲  강남초교 동쪽을 흐르는 고구동산길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  고구동산길의 백미, 잣나무숲길

▲  서달산으로 인도하는 고구동산길

고구동산에서 남쪽으로 나오면 차량들이 오가는 흑석로가 나온다. 여기서 잠시 숲길이 끊기면
서 처음 온 사람들을 적지 않게 동요하게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 고구동
산길은 여기서 상도동 패리스아파트까지 잠시 시멘트 도로의 신세를 지는 것일 뿐, 끊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흙으로 된 산길(숲길)이다.

흑석로로 진입하여 오른쪽(서쪽)으로 가면 중앙대후문이다. 후문 입구 커브를 지나면 바로 3
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남쪽) 길(상도로53길)로 조금 가면 고구동산길의 부활을 알리
는 나무계단길이 나온다. 그 계단을 오르면 고구동산길의 나머지 부분과 서달산이 흔쾌히 펼
쳐진다.


▲  중앙대와 상도동 사이를 지나는 고구동산길

중앙대후문~서달산 생태다리 구간은 상도동과 흑석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다. 이 산줄기는 개발의 칼질이 미치지 않은 자연 공간으로 그 능선에 동작충효길을 살짝 얹
혔는데, 산줄기는 길지만 산길 좌우로 주택과 아파트가 진하게 보일 정도로 그 폭은 좁다.


▲  고구동산길의 자랑, 잣나무숲길

고구동산길 중간인 중앙대후문~숲속도서관 사이에 잣나무숲이 짙게 자리를 닦았다. 이곳은 고
구동산길의 자랑이자 백미로 동작구가 동작충효길을 만들면서 잣나무를 더욱 확충했다.
잣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많이 베푸는 나무로 그들이 우거진 숲은 산림욕 장소로 아
주 좋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한복판에 이런 잣나무숲이 있다니 그저 놀
라울 따름인데, 동작충효길은 나에게 여러 번 신선한 충격과 공포를 주니 범상치 않은 둘레길
이 분명하다.


▲  잣나무숲길 ①

▲  잣나무숲길 ②
이곳에서 만큼은 서울을 잊어도 좋다. 도시와 머나먼 산골이라 우겨도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  잣나무숲길 ③④

▲  잣나무숲길 ⑤

▲  잣나무숲길 ⑥

잣나무숲 남쪽에는 숲에 완전히 묻힌 동작충효
길 숲속도서관이 있다. 숲이 얼마나 삼삼한지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지경인데, 숲내음이 가
득한 숲속 한복판에 어린이와 동네 주민을 위
해 초소 건물을 손질하여 도서관을 닦았다.
이런 숲속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술술
머리 속에 잘 들어올 것만 같은데, 9시부터 18
시까지 운영하며, 평일에는 가끔 빗장을 닫아
거는 경우가 있다. 도서관 북쪽에는 청강정이
란 네모난 정자가 있으며 주변에 의자와 탁자
를 지닌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  4각형 정자인 청강정(淸康亭)


▲  장봉옥 영모비와 송덕비 <백운암 창건주 장대보화(張大寶華) 송덕비>

숲속도서관에서 초화원 쪽으로 조금 가면 장봉옥 송덕비와 영모비를 만날 수 있다. 단 고구동
산길에서 남쪽으로 조금 비껴있기 때문에 지나치기가 쉽다.

비석에 쓰인 장대보화 장봉옥(1904~1981)은 누구일까? 내 돌머리에는 전혀 정보가 없는 존재
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정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했던 여
인이었다. 그리고 이름 대신 쓰인 대보화(大寶華)는 그의 법명(法名)이다.

장봉옥은 1904년 8월 평양에서 태어났다. 동덕여학교를 졸업하여 돈이 많은 친일파 관료의 소
실(첩)로 들어갔는데, 남편 몰래 조경한(趙擎韓) 등의 독립운동가를 도우며 독립운동 자금도
넉넉히 지원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신문에서는 그를 '광복군의 어머니'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1930년대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을 다녔는데, 안국동에 있
는 선학원(禪學院)에 들어가 열심히 수행을 하며 깊은 불심을 다졌고, 그 인연으로 불교계에
주요 승려, 인사들과 두루두루 알고 지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마야부인회를 조직하여 불교
지도자의 면목까지 보여주었다.

6.25 이후 어머니가 별세하자 그의 명복을 빌고자 그동안 모은 돈을 싹 털어 현재 비석이 있
는 자리를 중심으로 20,000평의 부지를 매입해 1961년에 백운암(白雲庵)을 지었다. 백운암은
현재 상도선원(上道禪院)의 모태가 된다.
또한 남편이 죽자 그의 막대한 재산까지 물려받았는데, 그 돈으로 크게 사업을 벌여 큰 돈을
벌었으며, 도심 한복판인 무교동(武橋洞) 일대 땅을 거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재력을
자랑했다. 그 재력을 기반으로 온갖 불사(佛事)에 나서 불교계에서 '불사를 많이 일으킨 화주
보살'로 격하게 칭송을 받았다.

그는 백운암 주변에 160여 채의 연립주택을 지어 '나라사랑반'이란 이름 짓고 전몰군경의 유
가족과 집이 없는 어려운 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노인대학을 지어 노인들을 배
려했고, 1964년 성조장학회를 세워 학생과 청년, 어려운 이웃을 넉넉히 도왔다. 그 장학회는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어쨌든 그 공로로 1966년 서울시경으로부터 '청소년 선도 유공
자 표창장'을, 1979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한평생 모은 재산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풀면서 불법(佛法)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
았고, 노승과 불교 수행자들에게도 극진히 대접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보살'이라 추앙했고,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도 그를 크게 찬양하며 종종 백운암
에 들려 법문을 전했다.

딱히 자녀가 없던 그는 수양딸을 1명 맞이했는데, 그가 1982년 어음사기 사건으로 천하를 크
게 경악하게 했던 '장영자' 그 사람이었다. 장영자도 불교 신자로 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
던 장봉옥은 그를 수양딸로 삼아 많은 것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는 장영자 사건 1년 전(1981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더 살았더라면 못된 수양딸로 인
해 자칫 명예가 크게 훼손되었을 지도 모른다.

지붕돌을 지닌 장봉옥 송덕비는 1974년 서옹이 직접 비문을 쓰고 지어준 것이다. 그 옆에 자
리한 영모비는 독립운동가로 그의 신세를 졌던 백강 조경한(1900~1993)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나라사랑반' 주민과 상도동 주민들을 대표해 1982년 4월에 세운 것이다. 그는 비문(碑
文)에
'나라사랑반 주민들이 장여사의 시은(施恩)을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우니 이 땅에 보은의 씨
앗이 살아있음을 기뻐하며 기꺼이 비문을 쓴다'
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 비석과 장봉옥의 무덤은 백운암 뒷쪽에 있었으나 이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절은
아랫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비석과 묘소까지 제자리를 잃고 김포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2010
년 비석만 지금의 자리로 돌아와 옛 백운암 자리를 쓸쓸히 지키고 있다.
사회와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의 흔적이건만 이 땅의 천박한 개발의 칼질과 부동
산 수익에 눈이 어두운 졸부와 위정자들은 그런 이들의 흔적마저 온전히 놔두지를 않는다. 이
게 이 나라의 몹쓸 현실이다.


 

♠  서달산 서쪽 자락 (초화원, 생태다리, 서달산자락길)

▲  온갖 화초가 향연을 벌이는 초화원(草花園)

장봉옥 송덕비를 지나면 온갖 화초가 자라고 있는 초화원(서달산 야생초화원)이 모습을 드러
낸다.
이곳은 서달산의 서쪽 자락으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미꽃과 구절초, 붓꽃, 톱풀 등
야생화 30여 종을 음지와 양지에 맞게 배치했다. 이곳 역시 동작충효길을 닦으면서 조촐한 규
모로 조성된 것으로 화초가 한참 기지개를 켜는 봄이나 무성함을 이루는 여름, 처절한 아름다
움을 선보이는 가을에 와야 제대로 된 초화원을 누릴 수 있다.


▲  녹음(綠陰)이 짙은 초화원

▲  초화원 수풀들

▲  상록잔디패랭이


▲  초화원과 이웃한 암석원(Rock Garden)
둥근 바위와 꼬리풀 등 30여 종의 꽃과 풀이 돌과 함께 배치한 공간으로
초화원과 거의 비슷하다.

▲  옥잠화

▲  이름도 참 특이한 큰꿩의비름만추

▲  이름도 초롱초롱한 초롱꽃

▲  여름이 깃든 암석원 내부


▲  숲이 무성한 초화원 남쪽

초화원과 암석원 주변에는 자연학습원과 수목학습원, 2015년 11월에 닦여진 유아숲체험장 등
이 있다. 이들은 나무와 여러 화초를 심은 공간으로 그리 넓지 않은 산자락을 활용하여 자연
과 관련된 많은 것을 닦아 놓아 집약적 공간 활용도는 정말 높다.


▲  수목학습원 부근 숲길

▲  서달산 생태육교

서달산 생태육교는 상도동과 흑석동을 잇는 도로(서달로)로 인해 강제로 끊긴 서달산 자락을
연결하고 양쪽 산의 동물 이동을 위해 닦여진 것이다. 육교 밑에는 터널을 뚫어 차량의 통행
을 배려했으며, 생태육교 윗도리에는 산책로를 닦고 나무와 온갖 풀을 심어 산의 자연스런 일
부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감쪽 같이 만들었다.
육교 동북쪽에는 달마사(達磨寺)란 80여 년 묵은 절이 있는데, 그 절 이름을 따서 육교 동쪽
산자락을 달마공원이라 부르기도 하며, 고구동산길과 별도로 '서달산자락길'이 따로 가지를
뻗어 숭실대 후문 쪽으로 이어진다.


▲  서달산 생태육교에서 바라본 흑석동과 한강, 남산

▲  조그만 새집을 주렁주렁 머금은 나무조각과 의자
새집이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어느 새도 들어오기 어렵다. 하여 새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 같은 장식물이다.

▲  소나무숲을 따라 이어진 서달산자락길

생태육교 동쪽 서달산 자락에는 소나무숲이 짙게 우거져 있다. 그래서 이곳을 피톤치드체험장
으로 삼았는데, 앞서 잣나무숲 만큼이나 삼삼해 다시금 이곳이 서울임을 잊게 만든다.
소나무숲 밑부분에는 나무로 도보길을 닦아 서달산자락길을 내었는데 숭실대 후문까지 이어지
며, 고구동산길과 서달산 정상으로 가려면 무조건 산을 오르면 된다.


▲  하늘을 훔친 서달산 소나무숲
피톤치드가 진하게 꿈틀거리는 싱그러운 자연의 현장이다.

▲  국립현충원 서남쪽 철책길 (서달산 정상 북쪽)
현충원과 속세의 경계에 푸른색 철책을 삼엄하게 둘러놓아 국가의 성역을 지킨다.
그 철책을 따라 산길이 나있는데, 고구동산길도 그 철책길을 잠시 거쳐간다.


 

♠  서달산(西達山) 정상과 현충원길

▲  서달산 정상

서달산(179m)은 동작구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뫼로 동작구의 대표 지붕이다. 국립현충원을
품은 특별한 뫼로 화장산(華藏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현충원 뒷쪽에 자리한 화장사(華藏寺,
현재 호국지장사)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산세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하여 공작
봉(孔雀峰)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서달산의 범위는 현충원 주변과 달마공원, 서달로 서쪽 잣나무숲까지로 숲이 무성하여 동작구
의 허파 역할을 한다. 현충원이 조성되면서 서달산 정상을 비롯한 현충원 외곽이 현충원 영역
에 꽁꽁 묶였는데, 동작구가 그 외곽을 시민 공간으로 삼고자 서울시, 국방부와 협상해 2009
년 8월 현충원 영역(묘지공원)에서 근린공원으로 풀렸다. 즉 현충원 철책 바깥은 자유의 공간
으로 해방된 것이다.
이를 기리고자 2010년 봄, 정상에 동작대란 조망대를 세웠고, 주변 산길과 숲을 정비해 아주
휼륭한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났다.

서달산 정상에는 정상 표석과 토지지신(土地之神) 표석, 동작대, 쉼터, 운동장 등이 있으며, 산세도 완만하다. 이곳에 편히 오려면 국립현충원과 호국지장사를 거치거나 달마사, 중앙대
후문에서 접근하면 되며, 노들역이나 동작역에서 동작충효길을 따라 들어가도 된다.


▲  서달산 정상에 세워진 동작대(銅雀臺)

동작대는 서달산의 새로운 명물이자 상징물로 2010년 봄에 지어진 3층짜리 8각형 정자(亭子)
이다. 동작대하면 3세기 초반, 조조가 업(業) 부근에 세운 동작대가 떠오를 것인데, 이 동작
대는 그 동작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한자만 같음) 그 이름도 동작구에서 따온 것이다.
정자 옆에는 윗층으로 인도하는 나무 계단을 별도로 내어 새로운 정자 형태를 그려내고 있는
데, 정자가 아무리 높아도 숲에 몽땅 감싸여 있어 조망은 별로 시원치 못하다. 

동작구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동작대 3층에 올라 나무들의 눈치를 피해가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 상도동과 사당동, 관악구 지역, 관악산, 여의도 등이 시야에 잡히며, 북쪽은 겨우 서
달산 정상만 시야에 들어온다.

▲  동작대 현판의 위엄

▲  동작대에서 바라본 상도동 지역

▲  동작대에서 바라본 관악산(冠岳山)의
위엄

▲  서달산 정상에서 상도출입문으로
이어지는 고구동산길


▲  동작충효길의 허브, 국립현충원 상도출입문 앞 갈림길

▲  현충원과 속세를 이어주는 국립현충원 상도출입문

서달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7~8분 가면 현충원 상도출입문이 나온다. 노들역에서 시작된 고구
동산길은 여기서 흔쾌히 그 끝을 맺는데, 고구동산길 뿐만 아니라 현충원길(2코스)과 동작마
루길(6코스), 까치산길(7코스) 등 무려 4코스의 시작점이자 종점이기도 하다.

상도출입문은 현충원의 남쪽 후문으로 6시부터 18시까지(주말과 현충일은 19시까지) 문을 열
어둔다. 그 문을 들어서면 바로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와 국립현충원으로 이어지며 문 안쪽
에는 초소가 있어 혹시나 방향을 잃고 들어올지 모를 속세의 나쁜 기운을 경계한다.

우리는 여기서 현충원길로 갈아타 동북쪽으로 이동했다. 현충원길(3.4km)은 상도출입문에서
동작역까지 이어지는 숲길로 현충원 철책을 따라 이어져 마치 국경선을 거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철책 안쪽은 영원한 성역인 현충원이요, 우리가 걷는 바깥은 속세이다. 이 구간 역시 서달산
동쪽 자락으로 숲이 짙으며 길 북쪽 종점(동작역, 이수폭포)을 제외하면 각박한 구간은 없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사당2,3동과 정금마을로 내려가는 산길이 여럿 있다.


▲  현충원길에서 바라본 한강
숲 너머로 한강에 발을 담군 동작대교와 반포대교, 한남대교 등이 바라보인다.

▲  끝없이 펼쳐진 현충원길과 현충원 철책의 위엄

▲  푸른 철책과 함께 이어지는 현충원길 ①

▲  푸른 철책과 함께 이어지는 현충원길 ②

▲  길 중간중간에 설치된 메모리얼 게이트(Memorial Gate)

현충원길에는 메모리얼 게이트란 문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 문은 현충원에 봉안된 순국선열
을 추모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태극기를 형상화하여 문의 지붕은 태극모양처럼 넝실거리게
했고, 기둥은 건, 곤, 감, 리로 표현했다고 한다. 허나 그런 심오한 의미와 다르게 문의 이름
은 어렵게 영어로 되어있어 고개를 심히 갸우뚱하게 한다.
문 이름은 보나마나 서울시나 동작구청 공무원들이 없는 지식 쥐어짜서 만든 이름으로 보이는
데, 굳이 영어로 이름을 삼아야 폼이 나는 것일까? 그냥 순국선열의 문이나 애국의 문으로 하
면 정녕 안되는 것일까? 이 땅의 정말 과하기 그지 없는 영어 사대주의는 실로 역겹기가 그지
없다.


▲  굳게 닫힌 사당출입문
현충원의 동쪽 후문으로 개방 시간은 앞서 상도출입문과 같다.

▲  푸른 철책과 함께 이어지는 현충원길 ③

현충원길은 예전에 완주를 했기 때문에 1/3 정도만 거닐다가 사당3동으로 쿨하게 빠졌다. 일
몰도 적지 않게 눈치를 주고 있고, 나와 일행도 모두 지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동작충효길(고구동산길, 현충원길), 서달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나
중에 억지로라도 인연을 지어 동작충효길의 나머지 구간도 모두 맛보고 싶다.

* 서달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상도동,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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