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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 호압사, 호암산 정상



~~~ 볼거리가 풍부한 서울의 숨겨진 명산, 호암산 ~~~
(호압사, 정상 주변)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호압사 석불좌상

호암산 남쪽 봉우리

▲  호압사 석불좌상

▲  호암산 남쪽 봉우리

 



 

천하를 접수한 가을이 늦가을로 숙성되어 가던 10월의 첫 무렵, 친한 후배와 나의 즐겨찾
기 뫼의 하나인 호암산을 찾았다.

1년에 여러 번씩 발걸음을 하고 있는 호암산(虎巖山, 393m)은 삼성산(三聖山, 480m)의 일
원으로 삼성산 서북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울 금천구와 관악구,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있
는 그는 산세(또는 산에 있는 바위의 모습)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호암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옛 금천<衿川, 시흥(始興)> 고을의 주산(主山)으로 금지산(衿芝山), 금
주산(衿州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호랑이를 닮은 잘 생긴 뫼이나 풍수지리적으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의 관악산과 함께 오랫
동안 서울을 위협하는 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그들로부터 서울을 지키고자
비보풍수(裨補風水)에 따라 호암산 밑에 절(호압사)을 세우고, 관악산(冠岳山) 정상 밑에
절을 짓고 연못을 팠으며,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의 현판
을 세로로 세우는 등,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처럼 호암산에는 산의 매서운 기운을 누르고자 세웠다는 호압사를 비롯하여 한우물, 석
구상, 호암산성터, 제2한우물터, 약수사, 불영암, 삼성산성지 등의 늙은 문화유산과 절이
깃들여져 있으며, 조망 또한 일품이라 서울 대부분과 안양, 광명, 부천, 인천, 북한산(삼
각산)까지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호랑이를 닮은 뫼답게 잘생긴 바위들이 잔뜩 포진해 있고, 산 정상부와 능선부로 오
르는 길이 잠시 각박할 뿐, 그 잠깐의 고생만 감내하면 부드러운 주능선과 국보급 조망이
두 망막과 마음, 다리를 즐겁게 해준다. 그밖에 시흥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호암
산폭포 등의 명소가 있고, 서울둘레길5코스(사당역~석수역, 13.5km)가 호암산을 남북으로
흘러가며. 잣나무 산림욕장을 중심으로 호암늘솔길이 싱그럽게 닦여져 있어 산은 비록 작
지만 매우 알찬 팔방미인 뫼이다. 이러니 내가 호암산에게 단단히 퐁당퐁당 빠진 것이다.



 

  호압사(虎壓寺) 입문

▲  '호암산문(虎巖山門)'이라 쓰인 호압사 일주문(一柱門)

호압사입구(벽산아파트1단지) 정류장 동쪽에는 호압사 일주문이 팔작지붕을 펄럭이며 중생을
맞이한다.
이 문은 절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2000년에 금천구(衿川區)에서 지어준 것으로 그 당시 금천
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민원행정실적평가에서 우수 구로 선정되어 시상금을 받았는데, 그
돈으로 '활기찬 금천구 만들기 기념'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관내에서 호압사의 입구이자 호암
산의 대표 관문인 이곳에 세운 것이다.

문 현판에 쓰인 호암산문은 호암산에 안긴 절, 즉 호압사를 뜻하며, 문이라고는 하지만 여닫
는 문짝이 없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맞이한다. 문 앞에는 호암산 안내문과 조그만 공원이 자
리해 있다.


▲  호압사로 올라가는 산길

일주문을 지나면 속세살이처럼 각박한 오르막길이 펼쳐져 시작부터 숨을 헐떡이게 한다. 절까
지 차량들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리게끔 포장길이 닦여져 있으나 경사의 패기가 대단하여 아
무리 4발 차량이라 한들 바퀴를 조심스럽게 굴려야 된다.
처음에는 경사가 조금 완만하나 서서히 기울기가 커지면서 주차장을 지날 쯤에는 상당히 급해
지며, 하늘과 한 발자국 가까워질수록 호압사의 모습이 솟아나듯 보이기 시작한다.


▲  콘크리트 석축 위에 모습을 드러낸 호압사

호압사는 돌로 다진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경내 밑부분은 콘크리트로 높게 기단을 만들고
주차장과 해우소 등을 두었는데, 돌이 아닌 콘크리트라 다소 눈에 거슬린다. 차라리 돌과 흙
으로 2단이나 3단의 계단식 기단(基壇)을 다졌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저 콘크리트 공간을 지나 2개의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호압사 심장부에 이른다. 그럼 여기서
잠시 호압사의 내력을 짚어보도록 하자.

호암산 서쪽 자락 230m 고지에 둥지를 튼 호압사는 호랑이를 누르는 절이란 뜻으로 자비를 강
조하는 불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이 절이 호랑이와 무슨 원수를 졌길래 호랑이
에게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을까?

호압사는 1394년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과연 그가
지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약사전에 조선 초기 석불좌상이 깃들여져 있어 그런데로 시기
는 맞아떨어지며, 조선 조정에서 관악산과 호암산의 매서운 기운을 잡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
로 세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봉은사(奉恩寺)에서 작성한 '봉은사말사지(末寺誌)'에는 1407년에 창건되었다고 나오며, 태종
(太宗)이 호압(虎壓)이란 현액(現額)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후 400년 동안 적당한 사적(事績)
을 남기지 못했다가 1841년 승려 의민(義旻)이 상궁(尙宮) 남씨와 유씨의 시주로 법당을 중창
했으며,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 6칸을 중건하고 1995년에 삼성각을 지었다. 그리고 2008
년에 9층석탑을 세워 지금에 이른다.

서울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로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가 한 토막 전해오고 있다. 이 설화
는 이 절이 호암산의 기운을 때려잡고 서울을 수호하는 절임을 강조하고자 후대에 그럴싸하게
지어진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태조 이성계가 백성들을 동원해 서울에 궁궐(경복궁)을 짓던 1394년, 궁궐 건
물이 완성되면 이상하게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계속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나자 태조는 뚜껑
이 폭발하여 공사책임자를 불러 추궁했다. 이제 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전하, 소인들이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면 호랑이를 닮은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소인들을
위협하고 건물을 모두 때려부시고 사라집니다. 소인들이 막으려고 해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 다들 궁궐 공사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펴주십시요!!'
그 말을 듣던 태조는 어이가 없어서
'너희들이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책임자는 더욱 오금을 저리며
'어찌 전하께 거짓을 아뢰나이까. 정 믿기 어려우시면 오늘 밤 몸소 확인하심이 좋을 듯 합니
다'

하여 태조는 직접 확인할 겸 그날 밤 군사를 이끌고 공사현장에서 괴물을 기다렸다. 과연 어
둠이 내려앉자 반은 호랑이고 반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눈에 불을 강하게 뿜으며 현장
에 나타났다. 괴물이 건물을 부시려고 폼을 잡자 태조는 군사들에게 화살을 쏘게 했다. 허나
괴물은 화살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껏 만든 건물을 보기 좋게 부시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괴물의 기세에 염통이 쫄깃해진 태조는 침소로 돌아와 한숨을 쉬며
'한양은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구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가야되나?'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
'한양은 정말 도읍지로 제격이다!!'
태조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리는 밖으로 나가보니 아름다운 수염의 노인이 서 있었다.
'공은 뉘시오?'
'허허~ 그런 것은 아실 필요는 없구요.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습니다'
태조가 표정을 바로 하고 그 대책을 문의하자 노인은 저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
리를 가리켰다. 태조는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킨 곳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오매~ 호랑이 머리를 한 봉우리가 한양을 바라보고 있구나!!'
태조는 노인에게 산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물었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호랑이는 꼬랑지를 밟히면 꼼짝 못하니 산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
다'
알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태조는 바로 무학대사를 호출하여 호랑이의 꼬리 부분인 지금 자리에 절을 짓게 하고 호랑이
를 누른다는 뜻에서 호압사라 이름 지었다. 그랬더니 궁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
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금천 고을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범바위(虎巖)라 부른다. 술사(術士)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했다'라는 내용이 있어 이것이 호압사의
유래로 크게 여겨진다. 여기서 호갑은 '호압사'로 호압사의 다른 이름으로 많이 등장한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약사전을 비롯해 삼성각, 심검당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
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좌상과 500년 묵은 느티나무 2그루가 있어 절의 오랜
내력을 살짝 속삭여준다.
호압사는 서울 장안에서 1년에 여러 번씩 발걸음을 하는 절의 하나인데, 그 이유는 호압사를
안고 있는 호암산 때문이다. 북한산(삼각산)과 북악산(백악산), 인왕산, 도봉산(道峯山)과 더
불어 나의 마음을 앗아간 뫼이다보니 호압사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늘어난 것이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234 (호암로 278 ☎ 02-803-4779)
* 호압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호압사에서 바라본 호암산 서남쪽 봉우리
바로 저곳에 호암산의 명물인 석구상과 한우물, 불영암, 호암산성터가
깃들여져 있다.



 

♠  호압사 둘러보기

▲  호압사 서쪽 느티나무 - 서울시 보호수 18-5호 (늦가을 사진)

경내에 들어서면 계단 양쪽으로 500년 묵은 느티나무 2그루가 마중한다. 이들은 약사전에 있
는 석불좌상과 더불어 호압사의 오랜 내력을 밝혀주는 존재들로 서쪽 느티나무는 500년 정도
되었으며, 높이 7m, 허리둘레 4.2m이다. 그리고 계단 동쪽 나무는 키 11m, 허리둘레 3.6m이다.


▲  호압사 동쪽 느티나무 - 서울시 보호수 18-6호 (늦가을 사진)

▲  호압사 심검당(尋劍堂)
건물 앞에 서 있는 크고 굵직한 나무가 서울시 보호수 18-5호인 느티나무이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호압사 경내로 들어서면 서쪽에 2층 규모의 심검당이 있
고, 북쪽에는 법당인 약사전, 그 옆구리 높은 곳에 삼성각, 그리고 그 아래쪽에 근래에 심은
9층석탑이 조촐히 경내를 이룬다.
심검당은 호압사의 요사(寮舍)이자 종무소(宗務所), 공양간으로 쓰이는 다용도 건물로 심검(
尋劍)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선원(禪院)에서 많이 쓰는 이름이다.


▲  호압사 삼성각(三聖閣)과 9층석탑

삼성각 아랫쪽에 자리한 9층석탑은 2009년에 조성되었다.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 있는 8각9
층석탑을 유난히도 많이 닮았는데, 호압사의 유일한 탑으로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이곳에는
그 흔한 탑이 하나도 없었다. 그 허전함이 계속 걸렸는지 통 크게 9층석탑을 세우고, 기증 받
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그리고 그 사리를 직접 친견할 수 있도록 1층 탑신에 동그란
창을 냈다.
가람배치의 정석대로라면 법당 정면에 탑을 세워야 하겠으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좌측 구석에
세웠으며,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맨들맨들한 하얀 피부를 지녀 가을 햇살에 한층 빛나 보인
다.

그리고 석탑 북쪽 높은 곳에는 칠성(七星)과 산신(山神), 독성(獨聖, 나반존자)의 보금자리인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
붕 건물인데 1995년에 완성을 보았으나 건물을 받치는 석축과 계단은 1999년에 완성되어 2000
년에 비로소 낙성식을 가졌다.
내부에 봉안된 칠성탱과 독성탱, 산신탱은 1978년에 제작된 것이며 우측 벽에는 호압사를 세
웠다는 무학대사의 영정이 걸려있어 절의 창시자를 기린다.


▲  호압사 9층석탑
탑 너머로 호압사의 눈치를 살살 보고 있는 호암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  삼성각에 봉안된 무학대사의 진영(眞影)

▲  칠성 식구들이 그려진 칠성탱

▲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신탱

▲  독성 식구들이 담긴 독성탱

▲  삼성각 뒤쪽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2012년 작)


▲  호압사 약사전(藥師殿)

경내 중심에 자리하여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약사전은 이곳의 법당(法堂)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창건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 건물은 1935년에 새로 지
었다.


▲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 - 서울 지방문화재자료 8호

호압사는 석가여래 대신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중심으로 내세운 약사도량(藥師道場)이다. 하
여 법당 불단(佛壇)에는 약사여래를 봉안했으며, 법당 이름도 약사전이다. 바로 그 약사전에
이곳의 오랜 보물이자 든든한 밥줄인 석조약사여래좌상<예전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석약사불
좌상', 지금은 '석불좌상(약사불)'임>이 협시보살을 넉넉히 대동하며 자리해 있다.
예전에는 약사여래상이 홀로 불단을 지켰으나 2009년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
菩薩)을 좌우에 붙여 약사3존불을 이루게 되었으며, 2011년에 그 양쪽에 천진불(天眞佛)이라
불리는 귀여운 아기부처 2기를 갖다 붙였다.

인상이 온후하기 그지없는 약사여래상은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사뿐히 앉아 조용히 명상에
임하고 있다. 아무리 서울에 위협을 주는 호암산 호랑이라 할지라도 그의 덕스러운 표정 앞에
선 절로 꼬랑지를 내리며 온순한 호랑이가 될지도 모른다.


▲  호압사 석불좌상(가운데)과 일광/월광보살상

15세기(늦어도 16세기)에 조성된 이 불상은 돌로 만들어 금색 피부를 입힌 것으로 불두(佛頭)
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히 표현했으며 얼굴은 둥근 넓적한 모습으로 약간의 양
감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듯, 다리 위에 모은 그의 두 손에는 약합
(藥盒)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약사여래 좌우에는 일광, 월광보살이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각기 꽃을 1송이씩 들며 좌우
를 지킨다. 그들 뒤에는 후불탱화가 있으며, 불단 위쪽에 걸쳐진 닫집은 단청(丹靑)과 조각이
화려하여 중생의 눈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불단 좌우에는 헤아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
로 조그만 금동 원불(願佛)이 빼곡히 벽을 채워 약사전 내부를 화사하게 만든다.

▲  약사전 좌측 벽에 걸린 신중탱(神衆幀)

▲  약사전 뒤쪽 굴뚝과 지장보살상


▲  넓직한 원두막 쉼터와 풍경소리 도서관 (왼쪽 하얀 책장이 도서관)

범종과 목어, 법고, 운판을 머금은 사물(四物)의 공간인 범종각 좌측에는 2칸짜리 쉼터와 풍
경소리 도서관이라 불리는 하얀 피부의 책장이 있다. 이들은 호압사에서 절과 호암산을 찾은
동네 사람들과 산꾼, 답사꾼을 위해 2012년에 만든 것으로 누구든 찾아와 시간과 종교, 장르
에 구애받지 않고 독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개방형 책쉼터이다.

절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지닌 풍경소리 도서관 책장에는 절과 신도, 동네 사람들이 기증한
책들이 담겨져 있는데, 소장 권수는 적으나 기증이 늘고 있다고 하니 책장도 조만간 미어터질
것이다.
책장과 쉼터는 매일 개방하며, 누구든 책장에서 책을 꺼내 쉼터에 앉아 독서의 여유를 누리면
된다. 책을 며칠 빌리고자 한다면 종무소에 문의하면 되며, 쉼터에서는 독서 외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쉬거나 속세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어도 된다. (음주나 누워서 자는 것은 안됨)

호압사는 산중 사찰이나 제대로 된 샘터가 몇
년 동안 없었다. 물론 예전에 샘터가 있긴 했
지만 사라진 지 오래, 그래서 종무소 옆에 큰
물통을 두어 거기서 물을 마셔야 했다.
그러다가 2011년 이후 풍경소리 도서관 주변에
자리를 마련해 새롭게 샘터를 갖추었다.
긴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온 물은 호암산이 베
푼 물로 동그란 조그만 석조로 떨어진다. 가을
오후 햇살에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서 갈증
에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진화하니 몸 속의 때가 싹가신 듯 시원하기 그지 없다.

▲  호압사 샘터


▲  호암산 정상을 목전에 둔 호압사 분기점

호압사 뒤쪽(동쪽)에는 호암산 등산로가 여럿 지나간다. 이곳을 편의상 '호압사분기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남쪽 오르막 길을 오르면 호암산 정상과 삼성산으로 이어지고, 채소밭을 끼고
동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서울둘레길5코스)은 삼성산성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북쪽으로 난 평
평한 길은 독산동(禿山洞)과 목골산으로, 서쪽은 호압사와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으로 이어지
니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호암산 정상(385m)

▲  호압사에서 호암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
처음에는 방심하기 좋을 정도로 얌전한 수준이나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산길은 잔뜩 흥분하여 속인들의 혼을 다 빼놓는다.

 

호암산 정상을 보다 빨리 오르고 싶다면 호압사에서 오르는 것이 좋다. 호압사 바로 뒤에 병
풍처럼 둘러진 뫼가 바로 정상이고 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해발 140m(호압사입구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상까지는 해발 250m만 오르면 된다.
허나 그만큼 산길의 경사는 각박하여 만만히 보고 덤벼든 속인(俗人)들의 혼을 제대로 빼놓는
다. 호압사입구에서 호압사로 오르는 길도 그렇고, 호압사 분기점에서 정상 입구로 오르는 길
도 제법 야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중간인 호압사에서 잠시 경내를 둘러보며 쉬다가 정상
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호압사분기점에서 10~15분 정도 오르면 정상 입구인데, 여기서 왼쪽(동쪽)으로 4~5분 가면 호
암산 꼭대기이다.
호암산은 대체로 호압사입구에서 호압사까지, 호압사에서 정상 입구까지, 잣나무 산림욕장에
서 서남쪽 능선까지, 벽산5단지에서 불영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좀 야박한 편이지, 그곳만 오
르면 구름 위를 거닐듯 편안한 능선길이 펼쳐진다.


▲  호암산 정상 입구에서 바라본 천하 ①
시흥동을 비롯한 금천구, 광명시를 비롯하여 멀리 서해바다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호암산 정상 입구에서 바라본 천하 ②
금천구와 구로구, 양천구, 광명시 지역

▲  호암산 정상 입구에서 바라본 천하 ③
신림동과 난곡을 비롯한 관악구 지역과 동작구, 영등포구,
서울 서남/서북부 지역

▲  호암산 정상 입구에서 바라본 호암산 남쪽 봉우리
저 봉우리에 석구상과 한우물, 불영암, 호암산성터가 깃들여져 있다.

▲  호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정상 입구에 이르면 흥분된 산길은 급히 진정을 되찾으며, 여기서부터
조금은 느긋한 산길(바위길 위주)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  돌로 이루어진 호암산 정상(385m)

호암산은 돌의 성분이 많은 산이라 정상도 견고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는 2개의 커
다란 바위가 비스듬히 매달려 서울을 굽어보고 있는데, 그중 오른쪽 바위가 정상으로 호암산
의 머리에 해당된다.
이곳은 서울에 이름난 조망터이자 야경(夜景) 명소로 마치 서울을 향해 미사일이나 로켓포를
쏘는 듯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자연은 이미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훨씬 이
전부터 인간이 20세기에 발명한 미사일과 로켓포, 그것을 취급하는 기계의 모습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이러니 조선의 위정자들이 이 산을 경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굳
이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날려보낼 것 같은 기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위 꼭대기나 그 부근까지 오르면 서울의 서남부를 중심으로 도심부와 서북부, 동북
부, 강남과 강동 일부, 도심 주변의 여러 산들(북한산, 남산, 인왕산, 북악산 등), 그리고 광
명과 안양, 멀리 인천과 부천 등 수도권의 주요 도시들이 두 발 밑에 펼쳐지니 굳이 풍수지리
나 산의 생김새가 아니더라도 전략적으로도 꽤 중요한 곳이다. 이곳이 만약 적에게 넘어가면
서울 도심을 물론 서울의 왠만한 곳이 거의 다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 선녀 누님의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하늘과 가까워졌으니 구름을 타고 오가는 신선
이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눈과 발 밑으로 점점이 펼쳐진 천하를 굽어보니 저
모든 것을 다스리고 소유한 군주가 된 듯 즐거운 기분이 솟아 오른다.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①
금천구와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 등 서울의 서남부 지역과
광명, 부천 지역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②
금천구와 구로구, 영등포구, 강서구 등 서울 서남부 지역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③
관악구와 동작구, 영등포구, 강남구, 서울 도심과 남산, 서북부, 동북부
지역이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정면에 아득하게 보이는 큰 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삼각산)이다.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④
관악구와 서울대,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강동구, 성동구, 광진구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긴 산줄기들은 수락산과
불암산, 용마산~아차산이다.

▲  호암산 정상과 깃대봉 사이에 자리한 헬기 착륙장

▲  태극기가 펄럭이는 깃대봉(민주동산)

호암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4~5분 정도 가면 태극기가 있는 깃대봉(민주동산)이 나온다. 두꺼
운 바위에 우리의 영원한 국기인 태극기가 심어져 있어 잠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국기(國
旗)가 걸린 깃대가 있다고 해서 깃대봉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깃대봉 조망대(민주동산 조망대)가 바로 나오며, 남쪽으로 가면 장군봉
과 삼성산 삼막사(三幕寺) 쪽으로, 동쪽은 신우초교와 약수사, 서울대 쪽으로 이어진다.


▲  늦가을이 알록달록 타오른 삼성산 돌산 능선
대자연이 지른 늦가을 불에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 받은 두 망막과
마음이 싹 정화되는 것 같다.

▲  서울을 굽어보는 깃대봉 조망대(민주동산 조망대)

깃대봉 북쪽 벼랑에 터를 다진 깃대봉 조망대는 호암산 정상 만큼이나 호화로운 조망을 자랑
한다. 서울 대부분의 지역은 물론, 북한산(삼각산)과 수락산 등 서울을 둘러싼 온갖 산들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온다. (보이는 범위는 정상과 비슷함)


▲  깃대봉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서울 서남부(관악구,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와 강서구 지역

▲  깃대봉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신림동과 난곡을 비롯한 관악구 지역과 동작구, 영등포구, 서울 서북부 지역

▲  깃대봉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신림동과 봉천동, 관악구, 동작구, 강남구, 용산구, 남산, 도심부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

▲  깃대봉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④
신림동과 서울대,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서울 동남부, 동북부 지역


깃대봉 조망대에서 하늘 아래 세상을 마음껏 굽어보고 호암산 남쪽 능선으로 움직였다. 호암
산은 시작이 좀 빡세서 그렇지 잠깐의 고생으로 능선까지 오르면 평지만큼이나 느긋하고 부드
러운 곡선의 산길을 즐길 수 있다. 내가 호암산을 즐겨찾기하여 종종 찾아오는 것도 바로 그
매력 때문이다. 또한 호압사와 한우물, 석구상, 호암산성터 등 오래 숙성된 맛좋은 양념도 가
득하니 정말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착한 산이다.

깃대봉에서 남쪽으로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동남쪽으로 가면 장군봉(412m)과 삼성
산으로 이어지고, 서남쪽으로 가면 호암산 남쪽 능선과 남쪽 봉우리로 이어진다. 장군봉이나
남쪽 능선이나 길은 매우 부드럽다.

본글은 내용상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에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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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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