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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도박물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 우리나라 수돗물의 고향, 수도박물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

수도박물관 본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송수실)

▲  수도박물관 본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송수실)

성수동 느티나무 수도박물관 정수지와 정수지 환기장치

▲  성수동 느티나무

▲  정수지와 정수지 환기장치

 



 

♠  우리나라 수돗물의 탄생지, 수도박물관 입문

▲  수도박물관 입구 (저 고개를 넘으면 수도박물관임)

봄이 힘겹게 겨울 제국을 몰아내고 하늘 아래 세상을 곱게 수놓던 4월의 한복판에 서울숲 옆
구리에 자리한 수도박물관을 찾았다.
서울숲역(수인분당선)에서 남쪽으로 5분 정도 가면 뚝도아리수정수센터 교차로로 여기서 한강
사업본부 쪽으로 가면 하늘색 피부의 수도꼭지 모형이 마중을 하는데 그를 지나 야트막한 고
개를 넘으면 바로 수도박물관이다. <고개에서 오른쪽(서쪽)으로 가면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와
한강 산책로로 이어짐>


▲  20세기 초, 뚝도수원지 상수도 보호구역을 표시하고자 세운 '경성
수도상수 보호구역표(京城水道上水 保護區域標)' 돌기둥과 독기(왼쪽)

▲  수도박물관 본관으로 인도하는 산책로
(왼쪽 건물이 '물과 환경전시관', 오른쪽은 '완속여과지')

▲  완속여과지(緩速濾過池)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72호

수도박물관 본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의 오른쪽(서쪽) 너른 잔디밭에 하얀 피부의 네모난 것
들과 문짝이 달린 하얀 건물이 주렁주렁 보인다. 그들은 '완속여과지'로 잔디밭에 바짝 누운
하얀 것들은 환기구이고, 문이 있는 건물은 완속여과지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이다.

완속여과지는 고운 입자의 모래층에 물을 천천히 통과시켜 불순물을 잡아내는 정수 방식으로
여기서 '완속'은 느린 속도를 뜻한다.
1908년 5개의 여과지(濾過池)를 설치하여 작동에 들어갔고 1938년 1지를 더 증설했는데 면적
은 4,344㎡로 겉으로 보면 딱히 고색이 와닿지 않지만 송수실과 더불어 이 땅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중 가장 늙은 것으로 꼽힌다.

여과지의 정화 순서는 대략 이렇다. 한강에서 물을 가져와 제일 먼저 침전지(沈澱池)에서 모
래 등의 무거운 물질을 걸러낸다. 그런 다음 모래와 자갈층으로 구성된 완속여과지로 보내는
데 여과지 모래층에서 증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물속 부유물질을 걸러내고 분해하는 방식으
로 정수가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물의 탁도(濁度)가 낮아지며, 세균을 비롯해 암모니아, 철,
망간 등도 거의 걸러진다.
모래층의 두께는 80cm를 기준으로 했으며 여과 속도는 하루에 4m로 매우 느리다.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상부를 철근콘크리트로 다지고 천정 위를 60cm 두께로 흙을 덮었으나 안전 문제
로 인해 상부의 흙은 모두 걷어내었다.

완속여과 방식은 수질이 괜찮은 경우 정수약품을 쓰지 않고 수도물을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장치도 간단하고 운전과 유지 관리도 쉽다. 하지만 넓은 부지가 필요하고 생산 효율이 떨어져
요즘 시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곳 여과지도 80년 이상 바쁘게 살아오다가 1990년 현역
에서 물러나 송수실과 함께 서울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함부로 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되었다.
(이 땅의 수원지, 정수장 중 처음으로 지정문화재의 지위를 얻은 존재임)


▲  5열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완속여과지 환기구들
지금은 여과지를 굴리지 않기 때문에 환기구 뚜껑이 늘 닫혀있다.

▲  출입구 윗쪽, 환기구 줄

▲  굳게 닫힌 완속여과지 북쪽 출입구

▲  완속여과지의 중간 출입구들

▲  유일하게 입을 벌린 완속여과지 출입구

1990년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여과지는 마음에도 없는 한가한 신세가 되었고 출입구와 환기
구 역시 굳게 닫히고 만다. 그러다가 2008년 수도박물관이 닦이면서 칠흑처럼 어두운 여과지
내부가 속세에 공개되었는데, 출입구는 본관과 가까운 문 1개만 열어두어 호기심 어린 관람객
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과지 출입구들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네모난 문을 지닌 하얀 건물과 윗부분이 살짝 구부
러진 문을 지닌 건물, 그리고 건물 없이 문만 있는 것 등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출
입구 앞 잔디밭에는 1908년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정수장에 쓰였던 밸브와 관, 기계들이 놓여
져 조촐하게 야외전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  완속여과지 출입구 앞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20세기 초/중/후반
펌프와 수도밸브, 수도관, 온갖 기계들 (야외전시장)

▲  옛 밸브와 관들 (왜정~20세기 중반)

▲  완속여과지 내부 ①
조명시설을 설치하여 시야에 흐릿함을
다소 덜어준다.


▲  완속여과지 내부 ②
생김새가 마치 하천을 생매장하여 만든 복개도로의 밑도리 같다.


여과지가 한참 몸을 풀던 시절, 매주 1회 정도 모래 위의 부유물질을 치우는 작업을 했고, 매
년 1회 이상 모래를 보충하는 작업을 했다. 이들 작업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는데 새
로 투입된 모래는 밑바닥에 깔고 오래된 모래는 깨끗하게 씻긴 다음 맨 위에 수평으로 깔았다.
거둬낸 흙은 처음에는 한강에 그냥 내버렸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는 도로 공사나 매립지에 투
입시켜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깔끔하게 활용되었다.


▲  완속여과지 내부 ③
물 대신 모래만 가득한 여과지의 속살, 얄미운 세월에 적응하며 비록
예전만은 못해도 전시용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래가 깔린 부분은 접근 금지)

▲  완속여과지 내부 ④

▲  완속여과지 왕년의 모습
여과지는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나 옛날로 돌아갈래~~~!'
허나 현실은 '응 안돼~~!'

▲  완속여과지 운영 당시 물 높이는 약 1.3m였다.



 

♠  수도박물관 본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송수실)

▲  수도박물관 본관 (제1정수장 송수실,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72호)

수도박물관이 둥지를 튼 곳은 이 땅 최초의 정수장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자리이다. 즉 우
리나라 수도물의 탄생지이자 고향이 된다.

1903년 12월 9일, 미국 기업가인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윅(H.R.Bostwick)은 고종(高
宗) 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경영에 대한 특허권을 하사받는다. 그들은 1899년에 조선황실과
합작하여 한성전기주식회사를 만들기도 했으며, 전차의 필요성을 황제에게 건의해 1899년 12
월 서대문~청량리 전차 노선까지 닦으며 돈을 긁어 모았다.
그들은 1905년 8월, 영국 사람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Korean Water Works Co.)에 특허권을
양도했으나 그들에게 공사 도급을 받으면서 1906년 8월 1일 공사를 시작하여 1908년 8월 제1
정수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달인 9월 1일, 완속여과 방식으로 생산된 12,500㎥의
수돗물이 서울 4대문 안과 용산 일대 주민 125,000명에게 공급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상수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 닦여진 상수도 시설은 아시아권에서는 굉장히 빠른 것으로 수도물 보급으로 서울
시민들의 수인성(水因性) 질병 발생이 크게 떨어졌으며, 서울시내에 공용수도 220전(栓)이 설
치되어 물장수들의 연합체인 수상조합원들이 물을 각 집에 배달했다.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은 처음에 '경성수도양수공장'이라 불렸다. 이후 서울 확장에 따라 계속
몸집을 불려나갔으나 보다 월등한 정수 시설이 생겨나면서 완속여과지 방식으로는 도저히 타
산과 수요를 맞추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여 1990년 바로 서쪽에 자리한 뚝도아리수정수센터에
정수장 기능을 모두 넘겨주고 은퇴하게 된다.
옛 뚝도수원지를 계승한 뚝도아리수정수센터는 35만㎥의 시설용량을 갖추고 있으며, 종로구와
중구, 용산구, 마포구, 성동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 7개 구 102만 명에게 하루 평균 25만㎥
의 수도물을 공급하고 있다.

은퇴한 송수실은 계속 놀려두기가 아까워 내부를 손질하여 뚝도수원지의 역사와 옛 유물, 서
울 수도물의 역사와 문화, 수도물 생산과정 등을 머금은 수도박물관으로 2008년에 문을 열었
다. (완속여과지도 개방됨) 이 땅 최초의 정수장이 이 땅 최초의 수도물 전문 박물관으로 새
롭게 태어난 것이다. (천하에서 드물게 최초라는 타이틀을 2개나 가지고 있음)

수도박물관은 송수실을 다듬은 본관을 비롯해 별관, 물과환경전시관 등 3개의 전시실로 이루
어져 있으며, 본관은 '① 물장수를 만나다'→'② 뚝도에 세우다'→'③ 한강물이 들어오다'→
'④ 여과지를 지나다'→'⑤ 수돗물을 내보내다' 등 5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뚝도수원지의 역사
와 서울 수도물의 역사를 흔쾌히 담고 있다.
그 외에 완속여과지와 정수지 등의 옛 정수장 시설과 야외전시장, 야외체험장, 생태연못, 이
곳의 오랜 터줏대감인 오래된 느티나무가 수도박물관 야외를 아낌없이 꾸며준다.
(송수실과 완속여과지는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이란 이름으로 서울 지방문화재로 지정됨)

▲  동쪽에서 바라본 수도박물관 본관

▲  수도박물관 본관의 뒷모습

수도박물관 본관은 옛 제1정수장 송수실(送水室)로 1907년에 지어졌다. 사용된 기재와 시설은
모두 영국과 미국에서 가져왔으며, 붉은 벽돌조에 박공지붕을 씌운 공장형 건물로 화강석으로
된 아치형 포치를 정문에 설치하고 출입문과 좌우측 창틀도 아치로 둘렀다. 완속여과지와 더
불어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여과지보다 1년 먼저 지어졌으니 송수실이
그 1등이 된다.
건물 모습이 공장형이라고 하지만 십자가 같은 것이 없을 뿐이지 정말 오래된 성당과 교회로
봐도 어색하지가 않다. 정문 좌우에는 이곳 이름과 지어진 시기가 적힌 현판이 있고 그 위쪽
에는 꼬부랑 영어 현판까지 있다.

침전지와 여과지, 정수지를 거쳐 이루어진 수도물은 송수실의 모터펌프(영국 워싱턴사 제품)
를 통해 여기서 3.3km 떨어진 금호동 대현산배수지(해발 79m)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475mm와
500mm, 550mm 등 3종의 배수관을 통해 자연유하(流下) 방식으로 광희동(光熙洞)을 거쳐 을지
로5가 부근(옛 청녕교)까지 내려갔으며, 거기서 다시 4개 구간으로 분리되어 도심(4대문 안)
과 용산 지역으로 공급되었다.

1번 구간 : 을지로 보도 양쪽을 따라 동쪽으로 성벽(서울운동장 뒤쪽)까지 연결
2번 구간 : 퇴계로를 지나 한국은행 앞까지 연결
3번 구간 : 종로5가 부근에서 2개 방향으로 나눠짐, 동쪽 선은 동대문까지, 서쪽 선은 종로,
           광화문, 서대문을 거쳐 공덕동까지 연결
4번 구간 : 을지로, 남대문로, 서울역을 지나 용산까지 연결
<
뚝도에서 대현산을 거쳐 도심까지 이어지는 상수도 구간은 아래 지도를 참조>


▲  왜정 때 그려진 경성수도 일반평면도(京城水道 一般平面圖)
뚝도수원지에서 대현산배수지를 거쳐 도심으로 퍼져나가는 상수도 코스를
불빛으로 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녹색은 4번 구간으로 용산까지, 황색은
3번 구간으로 공덕동까지 이어진다. (축척 1/30,000)

▲  본관 정문 옆에 있는 '경성수도양수공장(京城水道揚水工場)' 현판

'경성수도양수공장'은 이곳의 첫 이름이다. 여기서 경성은 서울의 옛 이름 중 하나로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황성(皇城)'이라 불리다가 왜정 때 경성으로 격하되어 불렸고 1945년 이후에
는 서울이 정식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  송수실의 탄생시기를 귀띔해주는 '광무11년건축(光武十一年建築)' 현판
여기서 광무는 고종의 2번째 연호로 그 11년은 1907년이다.
(시작된 해를 1년으로 매겨서 계산함)

▲  아치형 포치 위쪽 'SEOUL WATERWORKS 1907' 현판
영국 양이가 세운 대한수도회사에서 지은 것이라 저렇게 멋대가리 없이
영문 현판까지 붙여놓았다.

▲  박물관 전시실로 거듭난 수도박물관 본관 내부 ①

▲  박물관 전시실로 거듭난 수도박물관 본관 내부 ②

▲  본관 시작부터 마중을 나오는 물장수 형상

▲  대리석으로 지어진 뚝도수원지 한글과 영문 현판 (1956년)

▲  준공도면 - 1932년 경성수도 확장공사 당시 준공도면

▲  대현산 제1배수지 준공 표지석 (1907년)

여기서 가까운 금호동(金湖洞)에 대현산(大峴山, 123m)이란 뫼가 있다. 신당동의 뒷산이기도
한 그곳에 1907년 대현산 제1배수지(配水池)가 조성되었는데 바로 그 배수지의 준공표지석으
로 지금은 퇴직하여 이곳에 편안히 누워있다.
대현산 배수지의 시설용량은 제1배수지 6,407톤, 제2배수지 2,795톤 등 총 9,202톤으로 뚝도
수원지 송수실에서 보낸 물을 받아 도심으로 보냈다. (현재 대현산배수지는 공원으로 개방됨)


▲  대현산 제2배수지 준공 표지석 (1910년대)

▲  삼상유도 전동기 (펌프)
1926년 6월에 제작된 것으로 한강물을 잡아오는 역할을 했다.
(뚝도수원지 제1취수장에서 활동했음)

▲  완속여과지(오른쪽) 내부 모형도

▲  여과수 집수블록 (자구식 휠러블럭)
1956년에 제작된 것으로 넓이 600mmX600mm, 높이 200mm이다. 여과된 물을 통과시키고자
여과지 바닥에 설치한 것으로 옛 제3공장 여과지에 있었다.

▲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의 과거 모습
현재는 송수실과 완속여과지(사진 가운데 부분), 정수지만 남아있다.
(송수실 옆 건물과 한옥은 진작에 사라지고 없음)

▲  1926년에 만들어진 제어기 (전압 220V, 마력 20HP)
저압전동기를 돌릴 때 전압을 서서히 상승시켜 회전력을 높이는 장치로
뚝도수원지 제1취수장에서 활동했다.

▲  검은 피부의 곡관(曲管)
1937년 3월에 제작된 것으로 곡선 구간에 투입된 수도관이다.

▲  경성수도 확장공사 뚝도수원지 평면도 (1928년)
(평면도의 축척은 약 1/600)

▲  수도박물관 별관

본관 옆구리에는 별관이 있다. '① 추억의 상수도 문화'→'② 상수도의 변화와 성장'→'③ 미
래의 수돗물' 등 3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획전시도 가끔씩 열리며 그 뒤쪽에는 추억
의 상수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체험장과 조그만 생태연못이 있다.


▲  별관에서 만난 추억의 수도계량기들
양수기, 수도미터라 불리기도 한다. 사용한 수도량을 체크하여 수도세를 징수하는
용도로 쓰인 것으로 계량기가 망가졌을 경우 교환을 요청하면 거의 무료로
해준다. (수도세를 징수하는 원천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서비스로 해줌)



 

♠  수도박물관 마무리 (정수지, 느티나무)

▲  정수지(淨水池)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민 환기장치

본관 서쪽에는 푸른 잡초와 꽃으로 덥수룩한 공간이 있다. 이곳은 물을 잠시 머금어 깨끗하게
다듬던 정수지로 1908년에 지어졌는데, 면적 672㎡, 저수용량 920㎥로 처음에는 1지(池)만 있
었으나 1960년 1지를 추가로 지었으며 1990년에 송수실, 완속여과지와 나란히 은퇴했다.

수도물의 생산량과 공급량 간의 불균형을 조절하고, 여과 단계 이후 주입된 염소를 혼합시켜
물을 저장하는 정수 과정의 마지막 단계 시설로 완속여과지에서 검문을 거친 물은 여과지 각
면 출구에 설치된 양수기를 통해 400mm 관을 타고 정수지로 넘어왔다. 그리고 정수지를 나온
물은 350mm 관을 통해 바로 옆 송수펌프실(송수실)로 들어가 도심을 향한 대장정을 준비한다.

정수지의 속살은 지하에 묻혀 있으며 완속여과지와 달리 공개는 하지 않는다. 6개의 환기장치
(통풍구)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이들은 정수지 내부를 환기시키는 용도로 2012년 4
월 산화로 손상을 입어 수리를 하였다.


▲  가까이서 대한 정수지 환기장치들 (바로 옆에 완속여과지가 있음)
풀밭에 모여 앉아 봄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모습들이 귀여워 보인다.

▲  수도박물관의 상큼한 자연물, 느티나무 - 서울시 보호수 4-5호

별관 북쪽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솟아있는데 그 동산에 이곳의 오랜 터줏대감이자 상큼한 존재
인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340년 정도 묵은 것으로<보호수로 지정된 1982년 당시 추정 나이가 약 300년> 높이
20m, 나무둘레는 4.8m이다. 이곳 동쪽에 성덕정(聖德亭)이란 큰 정자가 있었는데 제왕이 군사
훈련을 사열하던 곳으로 양반과 선비들의 풍류 명소이기도 했다. 하여 그곳과 관련하여 심어
진 것이 아닐까 여겨지는데, 그들이 성덕정 주변에 흐르던 맑은 물을 마시니 그 물을 성스러
운 물로 높여 이곳 동네를 성수동(聖水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한강물을 식수로 사용했는데 깨끗하고 고마운 물이란 뜻에서 성수동이라 했다
는 설, 성덕정에서 '성', 뚝도수원지에서 '수'를 따서 성수동이라 했다는 설이 덧붙여 전해옴
, 어쨌든 물과 관련되어 유래된 것은 확실함>

나무 앞에는 상석(床石)이 누워있는데, 옛날에 동네 사람들이 당제(堂祭)를 지낼 때, 제물을
올리던 상이다. 허나 그 당제는 흩어진 과거가 되었으며, 뚝도수원지가 그의 그늘에 안긴 이
후, 수도물을 빚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은 이곳을 찾은 관람객을 위해 매일마다
품질이 좋은 그늘을 베푼다.

▲  느티나무의 옆 모습

▲  물과 환경전시관

수도박물관에서 마지막으로 살핀 존재는 '물과 환경전시관'이다. 정문 바로 앞에 자리한 공간
으로 '① 종이배를 띄우다'→'② 숲으로 간 물'→'③ 생활 속에 머물다','④ 물은 생명이다'
등 4개의 테마로 하여 물의 기능과 물과 환경, 물과 인체, 물과 생활 등 물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머금고 있다. 특히 '수분측정기'라는 흥미로운 것이 있어 몸 속의 수분 양을 직접 측
정할 수 있다.


▲  여기서 쿨하게 공개하는 내 몸의 수분량 (수분측정기)
적정 수분량보다 0.5% 정도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내가 좀 싱겁다보니 물을 좀 많이 마시는 편임)

▲  수도박물관을 뒤로 하며~~~ (정문 방향)
이렇게 하여 약 90분에 걸친 수도박물관 더듬기는 흔쾌히 마무리가 되었다. 벌처럼
날라와서 벌처럼 보고 가려고 했지만 내 발길을 붙잡는 것이 하염없이 많아서
개미처럼 천천히 보고 나갔다.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정석임)


* 수도박물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642-1 (왕십리로27, ☎ 02-3146-5921)
* 수도박물관과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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