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촛대바위쉼터~숙정문 구간 산길

한양도성이 있는 북악산(백악산) 주능선 남쪽 밑에 닦여진 산길로 2022년 4월에 개방되었다. 촛대바

위쉼터에서 숙정문까지 나무데크길이 마치 율동을 부리듯 구불구불 닦여져 있는데, 이 산길의 등장

으로 숙정문에서 삼청동 방향 접근이 훨씬 좋아졌다. (예전에는 말바위, 삼청공원을 통해 접근해야

했음)

 

2. 한양도성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문으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도성 4대

문의 일원이다. 하여 북문, 북대문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가파른 산능선에 자리해 있고 규모가 작아서

도성의 대문이라기 보다는 산성의 조촐한 성문 분위기가 진하다.​

 

성문 이름인 숙정(肅靖)은 엄숙히 다스린다는 뜻으로 원래 이름은 가운데 1자만 다른 숙청문(肅淸門)

이었다. 1396년 지금보다 약간 서쪽에 지어졌는데, 1413년 풍수학자인 최양선이 태종에게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아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하여 이들 문을 닫아

걸고 소나무를 잔뜩 심어 통행을 금지시켰다.

게다가 숙정문을 품은 북악산 주능선은 도성 내부가 훤히 바라보이는 예민한 위치라 서울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출입을 거의 통제했고, 설령 이 성문을 나와도 이어지는

곳은 숲이 무성한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과 북한산(삼각산), 성북동이 고작이었다.

또한 평소와 비가 많이 올 때는 숙정문을 닫아 걸고, 가뭄이 심할 때는 남대문을 닫고 이 문을 열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1416년에 제작된 기우절목에 따라서 북쪽은 음(陰). 남쪽은 양(陽)을

상징하는 음양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니 통행문으로서의 존재감보다는 도성 수비와 풍수지리

적인 존재감이 훨씬 컸다.

 

1504년 성곽을 보수하면서 지금 자리로 이전했으며, 숙청문이 언제 숙정문으로 이름이 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523년부터 숙정문 이름이 등장한다. 숙정문 외에도 북정문(北靖門)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이들 명칭이 같이 쓰이다가 언제부턴가 숙정문으로 슬쩍 통합되었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대부분과 숙정문이 금지된 구역이 되었으며, 1976년 북악산 일대 성

곽을 손질하면서 문루를 세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숙정문에 올라서면 북악산 북쪽 능선과 성북동 일대가 바라보이는데, 높은 곳에 자리한 것은 분명하

지만 문 남쪽은 울창한 수목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고, 북쪽도 겨우 성북동과 삼청각, 북악산 북쪽 능

선이 전부라서 조망은 생각보다 별로이다.

 

매년 봄에는 사대부 여인들이 숙정문 남쪽에서 봄꽃놀이를 즐겼다고 하며, 그거 외에는 딱히 숙정문

주변에 대한 옛 사람들의 시(詩)나 문구(文句)는 전하는 것은 없다.

 

3. 성 바깥을 향해 반쯤 열린 숙정문

숙정문은 청운대 갈림길과 더불어 북악산(백악산) 주능선의 주요 요충지이다. 북악산 주능선에 걸쳐

진 한양도성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곡장, 청운대, 북악산 정상(백악마루), 창의문으로 이어지고, 도

성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말바위안내소, 말바위, 성북동, 삼청공원으로, 성문을 나가면 숙정문안내

소와 삼청각, 북악하늘길, 성북동으로. 그리고 내가 온 성문 안쪽 서쪽 길로 가면 촛대바위쉼터, 청운

대전망대, 삼청동으로 빠진다.

 

4. 북쪽을 향해 반쯤 입을 연 숙정문의 위엄 (성문 밖에서 바라본 모습)

 

5. 다시 삼청동으로 (숙정문~촛대바위쉼터 구간 산길)

숙정문을 간만에 복습하고 왔던 길을 통해 촛대바위쉼터, 삼청동 방향으로 빠졌다. 북악산 주능선 한

양도성길과 숙정문에서 삼청각, 성북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눈 감고도 갈 정도로 지겹게 복습한 곳이

라 복습 진도가 적은 숙정문~촛대바위쉼터~삼청동 산길로 다시 내려간 것이다.

 

6. 구불구불 이어지는 촛대바위쉼터 동쪽 산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