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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쌍충사적비

성주 읍내에서 성밖숲, 경산교로 이어지는 심산로 길가에 쌍충사적비가 있다. 사적비를 품은 기와

비각과 그런 비각을 빙 둘러싼 기와담장, 그리고 기와문을 지닌 단출한 모습으로 비석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충의공 제말과 그의 조카인 고봉 제홍록이다.

 

제말(1543~1592)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웅천, 김해, 의령 지역에서 왜군을 토벌했으며, 그 공으로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왜군 토벌에서 전사했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의'란

시호를 받았다.

제홍록(1559~1597)은 제말의 조카로 숙부인 제말을 따라 웅천, 김해, 의령 등지에서 왜군을 토벌

했다. 1597년 왜군에 포위된 진주를 구하고자 출전하다가 매복한 왜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적장을

죽이는 등 크게 분전했으나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그는 전쟁에 임할 때 모친을 안전한 곳에 모셔두

고 싸웠다고 하며, 무예가 뛰어나고 힘이 장사라 왜군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도망치기 바뻤다. 사

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92년 정조의 명으로 사적비가 세워졌으며, 비석의 전체 높이는 329cm, 비신의 높이 223cm, 폭

79cm, 두께 37cm이다. 비문은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유린이 짓고, 영의정을 지낸 이병모가 썼으며,

비신과 비좌, 화려한 조각에 이수을 지니고 있는데, 비신에 새긴 글씨에 붉은색을 입혔다.

 

비석은 원래 성주초교 앞에 있었으나 고약한 왜정 시절에 왜인 관리들이 크게 해코지를 벌이면서 비

각이 파괴되고 비석도 무거운 상처를 입었다. 그런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1940년경 도로 확장공사로

현재 자리로 이전되었으며, 이후 중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사적비를 품은 비각은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담장 밖에서 까치발로 바라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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