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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주 비봉루

진주 시내의 북쪽 지붕인 비봉산 남쪽 자락에 비봉루란 누각이 있다. 진주 시내를 굽어보고 선 이 누

각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존재로 1939년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세웠다. 고려 후기에 포은 정몽

주가 경상도안렴사로 진주 고을(고려 때 진주와 경상도는 현재 진주와 경상도 지역이 아님)에 와서

이곳에 있었다는 비봉루에 올라 시를 지으며 휴식을 취했다고 전하는데, 정상진이 그 막연한 사실 하

나로 선조를 기린답시고 세운 것이다.

 

비봉루는 팔작지붕과 겹처마 오량가로 구성된 정면 3칸, 측면2칸의 중층(2층) 누각으로 누각을 받치

는 장초석을 8각으로 비스듬히 다듬었으며, 충량은 대들보 위에 얹혀 있다. 머리에는 용두장식을 달

았으며, 누각 내부에는 온갖 그림과 단청을 화려하게 입혀놓았다.

 

누각 동쪽에는 관리사 건물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한옥과 왜식의 절충형

으로 지어졌다. 건물 사방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외부에 유리창을 달았으며, 대청 방 2칸을 지니고 있

다. 추사체의 맥을 이은 진주 지역 서예가인 정명수가 서실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 그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서실과 차실, 그리고 후손들의 생활공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2. 비봉루와 관리사 앞 길

오른쪽에 보이는 한옥이 비봉루에 딸린 관리사이다. 관리사와 비봉루는 '진주 비봉루'란 이름으로 경

남 문화유산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3. 비봉루의 옆 모습

비봉루는 이곳을 관리 소유하고 있는 후손들의 흔쾌한 배려로 내부(누각 내부) 접근이 가능하다.

 

4. 비봉루에 걸린 비봉루중건기

1941년(신사년) 7월 비봉루를 중건한 기념으로 오천 정의열이 작성한 현판이다.

 

5. 비봉루 상량문

1939년 5월 비봉루를 세우고 작성한 상량문이다. 상량문의 제작 시기는 그 흔한 단기나 서기, 육십갑

자가 아닌 그 시절 왜왕의 연호인 소화 14년으로 표시했다.

 

6. 비봉루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

비봉루는 다른 누각과 다르게 천정에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그림 외에 단청까지 수려하게 입혀

져 있어 누각 내부를 화사하게 돋구고 있는데, 왼쪽은 산과 꽃, 강, 개울, 초가 등이 그려져 있고, 오른

쪽은 소나무와 산, 선비, 강물 등이 그려져 있다.

 

7. 비봉루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

왼쪽은 폭포가 그려진 여름 풍경, 오른쪽은 설경이 돋보이는 겨울 풍경이다.

 

8. 비봉루 평방에 그려진 십장생과 귀여운 모습의 용머리

 

9. 비봉루 평방에 그려진 선죽교와 용머리

선죽교는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패거리에서 불의의 죽음을 당한 곳이다. 그래서 비봉루를 지

은 정상진이 선조의 충의로움을 기리고자 누각 한쪽에 선죽교를 그려놓았다.

 

10. 비봉루 정문

비봉루와 관리사 사이에 자리한 맞배지붕 문이다. 주로 관리사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비봉루는

이 문이 아닌 비봉루 서쪽 문으로 들어서야 된다.

 

11.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비봉루 관리사

1940년대에 지어진 팔작지붕 집으로 한옥과 왜식이 섞여있다.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서실과 차

실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12. 동쪽에서 바라본 비봉루 관리사

관리사 건물은 '아란야' 현판을 내건 동쪽 기와문으로 들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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