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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진 금서당
영랑생가 북쪽 산자락에는 금서당이라 불리는 잘생긴 한옥이 있다. (영랑생가에서 금서당으로 인
도하는 골목길이 있음) 이곳은 북산 남쪽 자락으로 숲에 푹 감싸여 있는데, 이 금서당은 현재 강진
중앙초교의 전신으로 강진 지역 신교육의 발상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금서당은 1906년 금릉학교로 이름을 갈았는데, 강진군수 조중관과 강진 유지들의 후원으로 설립
되었다. (금서당 안내문에는 1905년에 사립금릉학교로 이름을 갈았다고 나오고, 금릉학교터 안내
문에는 1906년에 설립되었다고 나옴)
설립 이후, 학생 수가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발전하여 강진 지역 민족교육을 주도했으며, 여기서
취급한 과목은 윤리학, 국한문, 역사, 지리 등이었다.
금릉학교 학생들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 '국채보상금릉협성회'를 조직하여 국채보상금을 모아
황성신문사에 기탁했으며, 여기서 민족교육을 받은 학생(영랑 김윤식 포함)들은 1919년 강진 4.4
만세운동 때 크게 활동했다.
1909년 8월 강진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으며, 1914년 해남세무서 강진지서에 있던 객사로 학교
를 이전 확장했다. 그리고 1926년 강진읍 평동으로 이전해 강진중앙초교가 되었다.
금서당 건물은 6.25시절 반파되어 거의 방치되었는데, 강진 출신 서양화가인 완향 김영렬(1923~
2003)이 이곳을 매입해 보수하여 자신의 보금자리로 삼았다. 그는 여기서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2003년 11월 27일 바로 여기서 80세에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집은
개방되어 있지만 엄연한 개인 집이라 너무 깊숙히 기웃거리지 않고 금서당 남쪽 뜨락만 조금 거닐
었다.


2. 금서당에서 바라본 강진 읍내 (남쪽 방향)

3. 옆에서 바라본 금서당과 야자수가 마중하는 뜨락


4. 금서당 대문에서 바라본 금서당과 뜨락 (오른쪽에 금서당과 금릉학교터 안내문이 있음)

6. 멍한 표정의 목장승
금서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존재는 이 목장승이 아닐까 싶다. 조금은 멍한 표정에 오똑한 코를 지닌
재미있는 표정의 장승으로 그의 몸통에는 하얀 피부의 '금서당 고옥' 5자가 깃들여져 있다. 목장승과
금서당 주변에는 나무들이 무성한데 이때가 2월 말이었음에도 마치 봄이나 여름의 녹음 같은 풍경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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