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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태종대


~~~ 부산 영도 태종대  ~~~

태종대 신선바위와 망주석, 주전자섬

▲  신선바위와 망주석, 주전자섬

영도등대 (영도항로표지관리소) 영도등대 밑 등대자갈마당

▲  영도등대

▲  영도등대 밑 등대자갈마당

 


여름 제국(帝國)의 뜨거운 한복판인 7월의 끝 무렵, 친한 후배와 오랜만에 부산(釜山)을
찾았다.
1박2일 일정으로 부산 나들이를 시켜달라는 후배의 요청으로 가게 된 것인데, 나는 부산
을 70번 이상 가봐서 별로 감흥이 없으나 그에게는 첫 부산 여행이다. 40대 초반에 이른
그는 돈벌이에 너무 정신을 쏟은 나머지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내 영
향으로 조금씩 돌아다니는 재미를 익히고 있으니 실로 다행이다.

여름의 기운이 느슨한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그를 만나 부산으로 가는 고속전철(KTX)에
몸을 담았다. 2시간 30여 분을 신나게 내달려 경부선의 종점인 부산역에 이르렀는데, 여
기서 부산시내버스 101번(태종대↔감만동)을 타고 영도(影島)로 들어서 태종대로 이동했
다.
태종대는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부산의 대표 명소로 10~20대 시절에 2번 인연이
있었다. 허나 그 이후로 인연을 짓지 못했으며, 수국축제로 널리 알려진 태종사는 아직
발을 들이지 못했다. 하여 부산 첫 나들이인 후배의 구미도 맞춰주고, 소소하게 남은 미
답처(未踏處)도 모두 지울 겸 태종대를 그날의 첫 메뉴로 정했다.


♠  태종대(太宗臺) 입문 - 국가 명승

▲  태종대 정문 남쪽 다누비열차 승차장 주변
(가운데 솟은 산이 태종산)

태종대 종점에 이르니 어느덧 11시에 이르렀다. 태종대의 품으로 들어서면 적어도 3시간은 지
나야 바깥으로 나오게 될 듯 싶어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란 크고 아름다운 진리
에 따라 먼저 점심을 들기로 했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태종대 종점에서 정문 사이로 많은 식당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중 적당한 식당을 골라 돼지불고기정식을 배불리 섭취하고 태종대 나들이에 임했다.

태종대 정문을 들어서면 다누비열차 승차장이 모습을 비춘다. '다누비'란 이름 그대로 태종대
를 다 누비는 태종대의 발로 정문 승차장에서 태종대순환도로(4.3km)를 따라 전망대, 영도등
대, 태종사 등 3곳을 거쳐 정문 승차장으로 돌아온다. 경유지 외에는 승하차가 안되며, 사방
이 모두 뚫린 개방형 차량 3량으로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행한다. 
예전에는 택시와 일반 차량의 접근도 가능했으나 2006년에 이르러 태종대가 무료의 공간으로
해방되면서 차량 통행을 제한했다. (지금은 18~22시까지만 출입 가능, 23시까지 모두 나가야
됨) 대신 교통편의를 위해 다누비열차를 내놓아 쏠쏠하게 수입을 챙긴다. (다누비열차가 아니
면 무조건 걸어가야 됨)
다누비열차 승차권을 사면 편도 방향으로 최대 3~4번까지 이용이 가능한데 정문 승차장에서
전망대나 영도등대까지 이용하고, 거기서 다시 태종사까지, 그리고 태종사에서 정문 승차장까
지 이용하면 된다. 단 승차장으로 돌아왔을 경우 다시 탑승은 안되며, 비나 눈이 오거나 노면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퀴를 접고 운행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무조건 도보로 이동해야 된다.


▲  태종대의 발, 다누비열차

여름 제국의 기운이 천하를 녹여먹을 정도로 무자비하여 벌써부터 땀범벅에 몸까지 은근히 지
친다. 게다가 태종대는 오르막길이 많아 이런 날씨에 전 구간을 걷는 것은 정신 건강에 실로
좋지 않다. 하여 여름의 핍박을 피해 관광객들은 모두 다누비열차로 몰렸고, 우리도 승차권을
구입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일단 오르막 일색인 전망대까지 이용하고, 이후는 두 발에 의지
해 전투적으로 움직일 요량이었다. 아무리 덥더라도 나의 길을 막을 수는 없다.

만석의 기쁨을 톡톡히 누린 열차는 태종대의 속살로 관광객들을 인도한다. 옛날 태종대와 첫
인연을 지었을 때는 친척과 택시로 1바퀴 돌았고, 2번째 인연 때는 친구와 영도등대, 신선바
위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태종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는 주전자섬(생도)

영도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태종대는 해운대(海雲臺)와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해안 명승지
이다.
태종산(太宗山, 252.4m) 자락에 넓게 자리한 태종대는 해송(海松)을 비롯한 120여 종의 나무
가 삼삼하게 숲을 이루고 있으며, 해안에는 대자연이 억겁의 세월을 두고 빚은 벼랑과 기암괴
석이 즐비하다. 또한 확 트인 바다로 날씨가 좋을 때는 수평선 너머로 우리의 옛 땅인 대마도
(對馬島)까지 흔쾌히 시야에 잡힌다.
산과 숲, 바위,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승지로 부산의 해금강(海金剛)으로 칭송을 받았
으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이곳의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은 국내/외 관광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태종대란 이름은 신라 29대 제왕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이 백제(百濟)를
멸하고 먼 변방이나 다름이 없는 이곳을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활을 쏘았다고 해서 유래되었
다고 한다. 또한 백제의 오랜 속방(屬邦)인 왜(倭)를 공격하고자 영도에 수군기지를 설치하여
그 훈련을 참관하거나 왜를 정벌하러 갈 때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무열왕은 영도에서 육성한 수군으로 대마도와 백제의 속방인 왜를 때려잡았는데, 이런 사실은
안정복(安鼎福)이 쓴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나와있으니 내용은 이렇다.
'동래 절영도(絶影島, 영도)에 태종대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무열왕이 대마도를 토
벌할 때 주필<駐蹕, 제왕이 잠시 어가를 멈추고 머물거나 묵는 것>했던 곳이라 전한다. 신라
는 조그만 구석진 땅이나 육지로는 능히 고구려(高句麗)와 백제에 대적하고, 바다로는 왜국을
정벌했으니 그 병력의 웅대함이 삼국을 통일할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후세에 해동(海東
)의 온 땅덩어리가 섬나라 오랑캐(왜국)들에게 곤욕을 당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에 위정자들은 그 방어책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신라는 실제로 왜국(倭國)과 왜열도 담당 일진으로 왜를 무수히 공격하고 때려잡았다. 유례왕
(儒禮王) 같은 경우 수군을 보내 오사까를 공격하여 왜왕의 항복을 받았으며, 진평왕(眞平王)
과 성덕왕(聖德王)은 왜의 서변(西邊)을 마구 공격했다. 또한 백제계 세력을 토벌하고 왜열도
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왜열도 곳곳을 뒤집어놓거나 초토화시켰으며, 왜왕이 침범한 신
라 장수의 화살에 맞아죽기도 했다. 그리고 신라 후기에는 신라해적, 신라구(新羅寇)로 표현
된 신라 수군과 신라의 지방 세력 수군이 구주(九州, 규슈)와 혼슈, 시코쿠는 물론 경도(京都
, 교토)까지 허벌나게 공격하고 약탈했다.

우리 역사에 태종이란 묘호(廟號)를 지닌 제왕이 2명이 있는데, 신라 무열왕 외에 조선 태종(
太宗)이 있다. 하여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덧붙여 전하고 있는데, 1419년 5월 가뭄이 심하게
들자 상왕(上王)으로 물러난 태종이 여기서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허나 태종은 부산
에 온 적이 없으므로 신라 무열왕과 햇갈린 듯 싶다. 또한 태종대에는 절영도신사(神祠)가 있
어 가뭄 때마다 동래부사(東萊府使)가 직접 기우제를 지냈으나 16세기 초 이전에 사라졌다.
한때는 신선바위의 명성이 대단하여 태종대 대신 신선대(神仙臺)라 불리기도 했으며, 왜정(倭
政) 때는 왜군이 이곳에 군사시설을 짓고 사람들의 접근을 금했다.

6.25 시절에는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 넘어온 청년들로 조직된 영도유격부대(1950년
10월~1952년 12월)가 창설되어 태종대 일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이북에 침투하여 특수
전을 전개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상당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태종사입구에 그들의 충혼을 기리는 '6.25참전 영도유격부대 유적지비'가 있으나 그의 존재
를 알지 못해 지나치고 말았음)

1967년에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고 1969년 관광지로 지정하면서 비로소 이곳의 빗장이
부분적으로 열렸다. 1970년 태종대순환도로를 닦기 시작하여 1973년 완성을 보았으며, 1972년
부산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4년 태종대유원지 조성 계획에 따라 개발에 들어갔다.
2005년 11월 국가 명승으로 승격되었으며, 백악기(白堊紀) 말, 호수에서 쌓인 퇴적층이 해수
면 상승으로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닦여진 파식대지(波蝕臺地)와 해안벼랑, 해안동굴, 공룡발
자국을 지녀 2013년 11월 국가지질공원의 지위까지 얻었다. 또한 난대(暖帶)에서 온대(溫帶)
로 이어지는 다양한 식생(植生)을 가진 숲과 보라매 서식지, 반딧불이 서식지까지 지닌 대자
연의 보고이다.

태종대는 1,713,763㎡ 정도만 개방이 되어 태종대유원지란 간판을 내걸고 있는데, 태종대순환
도로 주변과 전망대, 영도등대, 등대자갈마당, 구명사, 태종사, 태원자갈마당, 감지자갈마당
정도만 거닐 수 있으며, 태종산 정상을 비롯한 나머지 구역과 해변, 공룡발자국 화석은 군사
시설과 자연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속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해안은 거의 절벽 수
준이라 태원자갈마당과 등대자갈마당, 감지해변을 제외하면 바닷가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여
태종대의 해안 벼랑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태종대 유람선을 이용해 태종대 앞바다를 1바퀴 돌
면 된다.

* 태종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 29-1 (전망로24, ☎ 051-405-8745~6)
* 태종대유원지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태종대전망대 모자상(母子像)

태종대 정문 남쪽을 출발한 다누비열차는 전망대에서 처음 바퀴를 멈춘다. 태종대의 남쪽 끝
을 잡고 있는 전망대는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1999년 8월, 현대화된 전망대와 휴게시설
로 새로 지었다. 그리고 2017년 3월에 다시 리모델링을 거쳐 편의점과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바다 쪽으로는 망원경을 갖춘 전망대를 두어 넓게 펼쳐진 남해바다를 바라보게 했는데, 여기
까지만 보면 절경과 조망이 휼륭한 전망대로 여길 것이다. 허나 이곳은 자살 성지(聖地)로 영
좋지 않은 이름을 지녔던 자살바위가 있는 곳으로 전망대 밑에 그 바위와 벼랑이 있다.

자살바위는 전망대에 가려 거의 보이진 않으나 옛날부터 자살자들이 많아서 자살바위란 우울
한 이름을 지녔다. 이런 경승지가 속세살이에 지쳐 무리하게 삶을 정리하는 장소가 되었다니
아름다운 절경만큼이나 사연도 참 쓰라리다. 사람들의 속절없는 자살을 막고자 이곳에 천막으
로 절을 지어 자살자를 설득하거나 자살한 영혼들을 달랬으며, 절 이름도 이곳에 어울리게 목
숨을 구한다는 뜻의 구명사(救命寺)라 했다.
구명사는 1969년 태종대에 군작전도로를 만들면서 사고로 죽은 공병단(工兵團) 군인 4명의 영
령을 봉안하고자 군지원으로 1976년 태종대 한복판 쯤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여 절의 빈자리
를 채우고자 바로 그 해에 아이를 품은 어머니상인 모자상을 만들었고, 이후 자살이 크게 줄
었다고 한다. 게다가 전망대까지 씌워놓아 자살바위의 우울한 이미지를 덮고 있다.

요즘은 자살 사고는 거의 없다고 하니 삶의 경각심도 주고 바위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세탁
할 겸 자살의 반대말인 '살자바위'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  확대해서 바라본 주전자섬(생도)의 위엄

전망대 앞바다에는 주전자섬이란 조그만 바위섬이 외롭게 자리해 사람들의 시선을 진하게 끈
다. 그는 태종대에 딸린 유일한 섬으로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영도
등대와 신선바위에서도 바라보이는 이곳의 상큼한 장식물이다.

이 섬은 8,088㎡ 규모로 주전자처럼 생겨서 주전자섬이란 단순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등에는 바닷길을 밝혀주는 등대시설이 닦여져 있는데, 그 모습이 굴뚝처럼 보여 섬 전체가 증
기기관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기관차가 마치 푸른 세상을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귀여운 모
습으로 섬의 식생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칼새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어 도서 지역 생태계 보전
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특정도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어 전망대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그것이 인간과 주전자섬 서로에게
좋다.


▲  푸른색의 정석을 보여주는 전망대 앞바다와 여름 하늘
바다는 진한 푸른색, 그의 허공을 뒤덮은 하늘은 일반 푸른색을 띄고 있다.

▲  태종대순환도로 영도등대 입구

전망대에서 순환도로를 300m 정도 가면 영도등대입구이다. 다누비열차가 전망대 다음으로 정
차하는 곳으로 여기서 영도등대까지는 내리막길이 오지게 펼쳐져 있는데, 영도등대만 있는 것
이 아니라 신선바위와 망부석, 등대자갈마당이 같이 있다.
내리막길의 끝은 등대 해변과 등대자갈마당으로 거기까지는 10분 정도 내려가야 되며, 그들을
둘러보고 다시 영도등대입구로 올라와야 된다. 길이 외길이기 때문이다. 오르락 내리락이 귀
찮다고 영도등대를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니 이는 태종대의 50%를 놓친 것과 같다. 그러니 두
다리가 부담되더라도 영도등대와 신선바위는 꼭 찍어야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
을 것이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려 등대 해변(유람선 선착장)과 등대자갈마당까지 싹 둘러보
면 정말 알찬 여로(旅路)가 될 것이다. (보통은 등대까지만 보고 돌아감)

▲  영도등대 숲길 조형물

▲  해기사(海技士) 명예의전당
'바다의 혼' 조형물


영도등대 직전에는 '해기사 명예의전당'이 닦여져 있다. '바다의혼' 조형물과 하얀 피부의 병
풍석에 새겨진 바다와 배 부조물로 이루어진 이곳은 옛조선(고조선)부터 내려온 우리 겨레의
유구한 해양 역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해기사의 위상을 높이고자 2009년 3월에 세워진 것
으로 그 옆에는 야외공연장이 자리해 있어 종종 공연 등이 열린다.


♠  영도등대 주변

▲  영도등대(影島燈臺, 영도항로표지관리소)

태종대 남쪽 해안 벼랑에 크게 둥지를 튼 영도등대는 태종대의 눈이자 심장 같은 곳이다. 대
한해협과 수평선 너머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대마도를 응시하고 있는 그는 겉보기와 달리 100
년 이상 묵은 오래된 등대로 1906년 12월에 세워졌다.
등대의 첫 이름은 목도(牧島)등대로 목도는 그 시절 영도의 이름이다. 석유 백열등으로 대한
해협을 비추었는데, 이곳에 등대를 세운 것은 해협을 건너는 배의 밤길을 밝혀주고자 함이나
왜군이 병력 및 군수물자 수송 선박의 안전을 위해 오지게 때를 쓰면서 지어진 것이다.
1948년 절영도등대로 이름이 갈렸으며, 절영도가 영도로 이름이 바뀐 1974년 영도등대로 간판
을 바꾸었다.

120V와 1,000W 할로겐램프를 이용해 바닷길을 밝혀주고 있는데, 등대 불빛을 11m 높이 콘크리
트탑 위에서 18초마다 3번씩 깜박인다. 그 불빛은 멀리 대마도 직전인 24마일(44km)까지 닿는
다. 또한 300톤 이상 선박의 운항 상황을 화면에서 추적할 수 있는 항행식별 시스템까지 갖추
고 있다.
부산해양수산청은 2002년부터 영도등대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가 2004년 11월 마무리를 지었는
데, 기존의 등대 시설 외에 자연사전시관과 해양도서관, 해양영상관, 갤러리, 야외공연장, 까
페, 전망대 등을 갖춘 해양문화공간으로 크게 거듭났다. 이후로도 해기사 명예의전당 등을 지
어 등대 주변을 풍성하게 채웠다.

* 영도등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1054 (전망로 181)


▲  영도등대 등대탑

영도등대는 업무공간을 제외하고 등대탑과 까페, 해양도서관, 갤러리, 자연사전시실 등은 관
람이 가능하다. 등대탑 남쪽에는 '푸른바다'란 까페가 자리해 있어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일
다경(一茶頃)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며, 등대 서쪽에는 태종대의 명물인 신선바위와 망부석이
펼쳐져 있고, 동쪽에는 등대자갈마당, 남쪽에는 해산물을 파는 노천식당과 유람선선착장이 있
다.
날씨가 좋으면 장차 부산에 편입되어야 될 대마도가 시야에 들어오나 이번에 갔을 때는 맑은
날씨임에도 눈이 침침한지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  윗쪽에서 바라본 신선바위와 망부석(望夫石)

영도등대 서쪽에는 날카롭고 예사롭지 않은 모습의 해안벼랑이 거친 파도를 즐기고 있다. 그
들 중 머리 부분이 평평한 벼랑식 바위가 2개 있는데 그들이 태종대의 오랜 상징물인 신선바
위이다. 태종대에 왔다면 영도등대와 신선바위는 꼭 살펴봐야 된다.
신선바위는 신선대(神仙臺), 신선암(神仙岩)이라 불렸으며, 하늘에서 선녀와 신선들이 내려와
도끼자루가 아작나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고 전한다. 이곳 절경이 상상의 존재인 그들이 몸살
이 날 정도로 빼어난 경승지임을 강조하고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한 신라 때는 풍월
대(風月臺)라 불렸는데, 태종대의 이름 유래가 된 신라 무열왕이 여기서 쉬었다고 전한다.

신선대(신선바위)의 위엄이 대단하여 한때는 태종대 일대를 모두 신선대라 하였다. 허나 지금
은 반대가 되어 태종대 속의 신선대로 묻혀있다.
그리고 이곳은 여인들이 아이 낳기를 소망하던 곳으로도 바쁘게 살았는데, 이는 선녀들이 여
기서 출산을 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바위에는 아이의 태를 자르는 가위와 실패의 흔적, 그리
고 출산한 선녀의 오른쪽과 왼쪽 무릎이 닿았다고 하는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오른쪽 무릎에
더 힘을 주었기 때문에 오른쪽 흔적이 더 선명하다고 한다. 물론 신선바위 수식용으로 적당하
게 붙인 이야기이다. 어쨌든 그 전설로 아이를 가진 여인이 여기서 기도를 하면 순산을 할 수
있다고 하며, 신라 무열왕과 조선 태종 같은 큰 인물을 낳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결론은 태
종대 찬양)


▲  신선바위와 망부석(가운데에 솟은 바위)

신선대의 평평한 윗도리에는 돌기둥처럼 솟은 망부석이 있다. 이 바위에는 멋진 풍경과 달리
우울한 전설이 서려있는데, 왜구에게 납치된 남편을 애타게 그리던 여인네가 매일 이곳에서
돌처럼 서서 기다리다가 그만 돌덩이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하여 이 돌덩어리를 망부석이라
하였다.
물론 사람이 돌로 굳지는 않는다. 다만 부산 지역이 우리의 대표 흑역사인 조선 때 왜군과 왜
구의 공격으로 자주 고통을 받다 보니 납치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납치된 가족
을 여기서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죽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것을 망부석 전설로 표현한 것
이다.


▲  신선바위 일대와 남해바다, 주전자섬

등대 서쪽 옆구리에는 신선바위로 인도하는 길이 가늘게 이어져 있다. 예전에는 그 길을 통해
신선바위와 망부석까지 자유롭게 발을 들일 수 있었으나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낙석과
붕괴 위험이 생겨났고, 바위 주변이 온통 천길낭떠러지라 안전을 위해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하여 등대에서 휴전선 너머의 땅을 보듯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허나 등대에서 보일 건 다 보이므로 무리를 하면서까지 신선바위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멀리
서 보면 극락이지만 저 속으로 들어가면 지옥이 되어 버린다.


▲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조형물
(왼쪽 밑이 신선바위와 망부석, 오른쪽이 해기사 명예의전당 쪽)

▲  보기만 해도 눈이 고통스러운 등대탑의 빙글빙글 계단
등대가 동그란 모습이라 내부 계단 또한 저런 식으로 지었다. 은근히 사람의
혼을 빼놓는 계단으로 한복판의 여백이 대단하여 위에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염통이 쫄깃해진다.

▲  등대 전망대 (등대탑)

등대탑에 들어서 빙글빙글 계단을 정신없이 오르면 등대 꼭대기인 전망대에 이른다. 여기까지
는 자유롭게 접근이 가능한데, 태종대 앞바다를 비롯해 동쪽으로 오륙도(五六島)와 용호동까
지 시야에 들어오고, 남쪽은 날씨와 시력에 따라 대마도까지 아른거려 왜열도 원숭이들로부터
속히 해방시켜달라며 몸짓을 한다.
전망대 유리창에는 이곳에서 보이는 주전자섬과 오륙도 등의 명소에 대한 안내문이 짧막하게
쓰여있는데, 그중에는 대마도도 있다. 대마도는 19세기까지 엄연한 우리의 옛 땅으로 반드시
회복해야될 곳임에도 그 부분은 거론 조차 하지 않고 왜열도 소속 섬으로 한가롭게 쓰여있어
실로 분노를 치밀게 한다. 그만큼 이 땅에는 반드시 정리하고 단죄해야될 친일 쓰레기 적폐들
이 너무 많다.


▲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앞바다와 유람선

▲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등대 아랫도리와 해변

등대 밑 해변에는 해산물을 손질하여 내놓는 노천 식당과 유람선 선착장이 있고, 오른쪽 밑에
배처럼 보이는 건물에는 까페와 자연사전시관이 들어있다.
우리는 냉방이 빵빵하게 나오는 까페에서 냉커피에 얼음 둥둥 띄우며 폭염의 핍박을 잠시 피
했다. (바깥은 35도 이상, 까페는 20도 이하) 얼마나 시원하던지 정말 극락이 따로 없었으나
이곳은 우리가 오래 있어야 될 곳이 아니기에 30분 정도 머물고 길을 재촉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폭염의 기운이 싹 덮치는데, 마치 불길 속으로 뛰어든 기분이다. (자
연사전시관은 그곳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해 지나치고 말았음)


▲  위에서 바라본 등대자갈마당

등대 동쪽에는 등대자갈마당 해변이 있다. 태종대에는 이곳 외에 태원, 감지 등 3개의 자갈마
당이 있는데, 모두 자유롭게 발을 들일 수 있다. 둥근 자갈이 해변을 상큼하게 이루고 있는데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강제로 쓸려오고, 다듬어지면서 동그랗고 매끄러운 잘빠진 형태를 이루
게 되었다.
등대 해변에서 가장 구석으로 그 너머는 수십m에 해안절애가 첩첩하게 펼쳐져 있어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왔던 길로 다시 나가야 되며, 그런 단점으로 저기까지 들어가는
수요는 별로 없다. 우리가 갔을 때만 해도 딱 2~3명 정도만 저기에 발을 들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등대에서 발을 돌렸다.

오래전에 왔을 때는 저기까지 내려간 기억이 있으나 이번에는 격한 무더위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  등대 밑에서 바라본 등대자갈마당

▲  등대 밑 해변에서 바라본 등대자갈마당
보는 위치에 따라 등대자갈마당 해변은 조금씩 다른 포즈를 보여준다. 마음
같아서는 저기까지 들어가고 싶었으나 무더위와 귀차니즘으로 이번에는
통과했다. 보기와 달리 여기서 3~4분은 더 들어가야 된다.

▲  노천 식당들이 진을 친 등대 밑 해변과 남해바다
자연산 푸른 물감이 풀어진 바다, 그 바다를 보고 있으면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두 안구와 마음이 싹 정화되는 것 같다.

▲  등대 밑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와 주전자섬
주전자섬을 여기서 보니 증기기관차나 조그만 조각배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다.

▲  '희망의 빛 영도등대' 인어상
윗도리는 사람, 아랫도리는 물고기인 잘 빠진 인어누님상이 횃불을 높이 들며
바다와 대마도를 바라본다. 바다 너머 섬인 대마도의 해방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 소망은 이 땅의 민중들도 그렇고 인어도 마찬가지이다.


♠  수국으로 유명한 태종산 태종사(太宗寺)

▲  태종사 입구 (오른쪽 돌덩어리는 태종사 표석)

영도등대 구역을 둘러보고 등대 입구로 나왔다. 등대 해변까지 내려간만큼 다시 올라가야 되
고 날씨까지 미친 수준이니 오르는 길이 은근히 힘들다.

등대 입구에서 태종사까지는 다누비열차를 이용해도 되나 도보 10분 거리라 걸어서 이동했다.
그곳까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나 경사는 완만하며, 바다바람과 산바람이 적당히 불어와 무더
위를 조금씩 단죄해준다.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던 환상의 태종대 순환도로는 태종사입구에서 바다와 멀어지고 첩첩한
산주름 속으로 묻혀간다. 하여 여기서부터 바다와 잠시 떨어지게 된다.


▲  태종사 입구에서 바라본 바다


▲  태종사 대웅전(大雄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전통 기와집이 아닌 여염집 같은
모습이다. 그 앞에는 수국의 성지답게 수국들이 탐스럽게 열려있다.


금지된 산으로 묶인 태종산 남쪽 자락에 태종사가 작게 둥지를 틀고 있다. 1972년(태종대 홈
페이지에는 1976년으로 나옴)에 지어진 조계종(曹溪宗) 소속의 절로 여름 꽃인 수국(水菊)으
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절 주지승인 도성은 꽃가꾸기를 좋아했는데, 특히 수국을 좋아했다. 하여 40여 년 동안 전국
과 외국 명승지와 절에서 수국을 수집하여 재배했고, 지금은 10여 종의 3,000여 그루가 크게
군락을 이루며 경내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2006년부터 수국을 주제로 한 수국축제(수국
꽃문화축제)를 열고 있는데, 보통 6월 말에서 7월 초에 열고 있으며 이제는 태종대의 상큼한
꿀단지이자 영도구의 중심 축제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축제기간에는 다양한 문화공연이 열리며, 토/일요일에는 중생들에게 냉면 등을 제공한다. 보
통 절밥은 비빔밥과 국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는 무려 냉면이다. (제공 음식은 변경
될 수 있으며, 수국은 최대 9월까지 꽃망울을 피움)

경내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보궁 등 5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고색도 여물지 못했고 문화유
산도 아직 없으나 수국과 수국축제란 굵은 존재를 가지고 있다. 또한 1983년 9월 스리랑카 정
부에게 받은 부처의 진신사리 1과와 보리수나무 2그루까지 지니고 있으며, 진신사리의 공간으
로 금동 피부의 사리탑과 보궁을 마련해 조촐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 태종사 소재지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29-4 (전망로119, ☎ 051-405-2626)


▲  대웅전 금동석가여래좌상
금동 피부를 지닌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삶에 지쳐 찾아온 중생들을
맞이한다.

▲  태종사의 자랑이자 상징, 수국들
보랏빛 피부의 수국들이 막바지 향연을 이어가고 있다. 저들의 향연은 고작 6월에서
9월까지 밖에 안되나 그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  두툼하게 살이 오른 수국의 위엄

▲  산신의 거처인 산신각(山神閣)

▲  산신각 산신탱과 산신상 2기

산신각에는 지팡이를 든 백의(白衣)의 산신 할배와 호랑이 등에 앉은 산신 할배 등 2기의 산
신상이 들어있다. 산신상을 하나도 아닌 둘을 지닌 절은 여기서 처음 보는데, 산신의 비중을
크게 두는 모양이다. 그 옆에는 7명이 그려진 조그만 크기의 칠성탱이 있으며, 그보다 더 작
은 11면 관세음보살상이 자리한다. 이곳 산신각만큼은 산신이 부처를 능가하는 큰 존재이다.


▲  석가세존진신사리탑이 깃든 보궁(寶宮)

보궁이란 이름치고는 많이 소탈해보이는 태종사의 보궁, 이 공간은 석굴 스타일의 건물로 스
리랑카에서 받은 부처의 진신사리가 담긴 사리탑이 소중히 깃들여져 있다. 그래서 건물 이름
도 보궁을 칭하고 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 부처의 진신사리이기 때문이다.


▲  윤기가 철철 흐르는 금동 피부의 석가세존진신사리탑

보궁에 깃든 진신사리탑은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피부를 지닌 잘생긴 사리탑이다.
1983년 9월 스리랑카로 유학을 간 오병문의 소개로 스리랑카 정부가 우호의 뜻으로 우리나라
에 기증한 부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데, 사리를 내준 스리랑카의 소비따 대장로와 인연이
있던 태종사에 전달이 되었고, 그 사리를 봉안하고자 화려하게 금동사리탑을 짓고 석굴 형식
의 공간을 닦아 그를 둔 것이다.
부처는 열반에 들었을 때, 무려 84,000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 땅에서 그의 진신사리
가 적지 않게 들어와 많은 절이 보유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부처의 사리를 보유한 절이 별로
없었으나 20세기 후반에 갑자기 늘어나면서 그 희소성이 다소 떨어진 것 같다.


▲  태종대 숲길 (태종사~태종대 정문 구간) ①

수국에 잠시 빼앗긴 나의 정처 없는 마음을 미련 없이 회수하여 속세로 길을 향한다. 태종대
의 미답처인 태종사를 비롯해 전망대와 영도등대 일대도 거진 둘러보아 이제는 기분 좋게 바
깥으로 나가면 된다.
태종사에서 태종대 정문으로 가려면 다누비열차를 타거나 태종대순환도로를 걷거나 숲길을 이
용하면 되는데, 마침 숲길이 눈에 띄어 숲길을 거닐었다. 쭉 내려가는 길이라 힘든 것은 없으
며, 기왕 걷는 거라면 호젓한 숲길이 정신 건강에 좋다.

숲길의 존재감이 적은 탓인지 숲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다들 다누비열차를 이용
하거나 태종대순환도로를 타고 이동을 한 것이다. 이 길은 딱히 이정표도 없어 눈여겨 살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우나 태종사에 왔다면 이 길을 이용해 내려가길 권한다. 거리는 900m 정도
이며 숲길의 품질이 좋아 가는 길이 썩 지루하지 않다.


▲  태종대 숲길 (태종사~태종대 정문 구간) ②

▲  태종대 숲길 (태종사~태종대 정문 구간) ③

숲길을 10여 분 내려가니 낯익은 도로가 나타난다. 바로 태종대 정문 남쪽이다. 그렇게 원점
으로 돌아와 정문을 나서니 시간은 벌써 15시, 11시 40분 정도에 정문을 들어섰으니 3시간 이
상을 태종대에서 보낸 것이다. 전망대부터 영도등대, 그리고 태종사와 숲길까지 태종대의 알
짜배기를 고루고루 살폈으니 그야말로 시간도둑이 따로 없다.

태종대를 나와서 여전히 무자비한 폭염을 피해 태종대 종점 부근 커피집에 들어가 얼음 둥둥
띄운 커피를 섭취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음 행선지로 길을 재촉했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으며, 20여 년 만에 찾은 태종대 여름 나들이는 이
렇게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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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6년 7월 2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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