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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낙동폭포

낙동폭포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 닦여진 주름진 인공폭포이다. 인공폭포라는 한계상 하루종
일 폭포수를 흘리지 않고, 보통 12시부터 19시까지만 흘리는데, 4~6월과 9~10월은 휴일과 공휴일
에만 폭포를 움직이며, 7~8월은 평일까지 폭포를 굴린다. 다만 11~3월과 비가 오는 날에는 폭포를
굴리지 않는다. (4~8월은 50분 굴리고 10분 쉬며, 9~10월은 30분 굴리고 30분 쉼)

2.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안내도

낙동강을 끼고 있는 칠곡군 왜관은 6.25시절 치열한 격전지의 하나로 꼽힌다. 1950년 6월 25일 북
한 잡것들의 무단 침략으로 시작된 6.25전쟁(한국전쟁)은 거의 일방적으로 털리면서 순식간에 포
항 북쪽, 낙동강 중류, 창녕까지 밀렸다. 즉 포항과 영천, 칠곡 등 경북 남부 지역과 대구, 부산, 울
산, 경남에 낙동강 동부 지역, 창원, 함안 지역, 제주도, 울릉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땅을 북한에게
빼앗긴 것이다.

왜관은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방으로 강을 넘으려는 북한과 강을 지키려는 국군, 미군이 무려 55일
동안 격전을 치루던 현장으로 그 시절 이야기 보따리를 품은 곳이 바로 칠곡호국평화기념관과 왜
관지구 전적기념관이다.

처음에는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을 보려고 왔으나 그는 안보이고 크게 단장된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이 있는 것이다. 하여 기존의 전적기념관을 크게 손질한 것으로 여기고 입장료 3,000원을 치루고
둘러보았는데, 글쎄 기념관 서쪽에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기념관은 관
람시간이 지나서 둘러보지 못했다.

3.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뒷쪽에 크게 자리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 관련 기념관이다. 경상북도
에서 2009년 8월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 2010년 3월에 청와대에 보고를 했
으며, 2010년 4월 정부정책사업으로 추진이 결정되었다.

2010년 5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2013년 6월 평화기념관을 겯드린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조성 공사에 들어갔는데, 2014년 11월에 호국평화기념관 전시체험물 공사
에 들어갔으며, 2015년 10월 15일에 개관했다.

2016년 4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관리번호 30-2-52)로 등록되었으며, 2017년 2월 경상북도 제2종
박물관(경북 공립 21-2017-01호)으로 지정되었다.

 

호국평화기념관은 기존에 있던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의 업그레이드 판이라 보면 되는데,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지하1층에 중앙홀, 컨벤션홀, 4D입체영상관, 전투체험관(전차탑승체험 가능), 유
아평화체험관이 있고, 지상 1층에 기념관에 중심인 호국전시관과 북까페, 체험실이, 3층은 식당, 그
리고 4층에는 전망대가 있다.
호국전시관에는 6.25관련 유물과 사진 외에도 회당 장석영(1851~1926) 선생 등 구한말과 왜정 시
절 활동했던 칠곡 출신 애국지사들의 유품과 문서들도 전시되어 있다.

평화기념관 주변으로 호국광장과 호국평화탑, 55m 규모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 참전용사비가 있으

며, 전투체험관과 어린이체험실, 입체영상관 등 어린이들의 눈높이와 취향을 저격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들이 많아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나 초등학교 소풍, 견학 명소로 아주 좋다.

 

① 관람시간 : 9~18시 (11~2월 17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② 관람비 : 어른 3,000원 / 중고생 군인 2,000원 / 초등학생 1,000원

4.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로비 중앙홀(지하1층)에 있는 커다란 철모

'구멍난 철모'란 이름을 지닌 이 크고 견고한 철모의 표면에는 20개의 단어가 깃들여져 있는데, 이
는 칠곡군에서 벌어졌던 주요 전투이다. 철모로 향하는 55개의 탄피는 치열했던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상징한다.

5. 회당 장석영 선생의 서적들

장석영(1851~1926)은 칠곡 출신의 유학자이자 애국지사로 호는 회당, 석교이다. 1905년 을사늑
약 사건이 터지자 크게 분개하여 을사늑약 파기와 을사5적 처단을 요구하는 '청참오적소'를 이승
희, 곽종석과 함께 조정에 올렸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 천하에 퍼지자 칠곡 지역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
어 활동했으며,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 김창숙과 협의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고향 칠곡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기정, 성대식, 송수근 등 유림과 접촉해
만세일정을 계획했다.

이때 유진성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측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이들과
만나 같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하여 4월 2일 성주 장날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왜
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5년 제2차 유림단운동이 있을 때 영남대표로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회당집, 요좌기행문 등이
전한다.

6. 회당집 판교본과 1910년 장석영 간찰 문서

회당집은 회당 장석영이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인 장우원와 문인 손후익이 장석영이 남긴 문서 중
일부를 골라서 22책으로 정리 편찬한 문집이다. (회당집 판교본은 회당집 책판에서 인출한 판본을
교정한 서적임)

그 밑에 있는 장석영 간찰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장석영이 병으로 합천에서 돌아와 거주지 수령
에게 간찰 형식으로 작성하여 올린 상서이다. 간찰 내용에는 왜경이 장석영에게 은사금을 주고자
편지를 보냈으나 이를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7. 회당집 책판과 요좌기행, 흑산일록

회당집 책판은 회당집을 간행하고자 판각한 책판으로 현재 770판이 있다. 그 밑에 있는 요좌기행
은 장석영이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지를 찾고자 1912년 만주와 간도 지역을 크게 둘러보고 남긴 기
행문이며, 흑산일록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대구 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 일기 형
식으로 작성한 것으로 성주 지역 만세운동과 파리장서 초안 작성, 감옥 생활 등이 소상히 담겨져
있다.

8. 박몽득 일가 사진과 고등경찰요사

오른쪽 위에 팔짱을 낀 인물이 박몽득이다. 그는 왜관청년동지회, 성진회를 조직해 농민계몽운동
과 소비조합운동을 펼쳤는데, 이를 안좋게 본 왜정에게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오른쪽에 있는 고등경찰요사는 1934년 경북 경찰부에서 작성한 왜경의 극비지침서를 1945년 이
후에 영인본으로 발행한 것으로 그 시절 독립운동가와 당시 치안 관련 정보를 머금고 있다. 그중
에서 40~41쪽에는 1919년 칠곡 지역의 만세운동 관련 내용도 있다.

9. 애국지사 장진홍 관련 유물들

장진홍(1895~1930)은 칠곡 출신 독립운동가로 1929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체포되
었다. 하여 1년 5개월 동안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1930년 6월 5일 사형을 당했는데, 형
무소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동생 장진환과 장남 장형욱, 사위 신현조 등 가족과 지인들에게 40여 통
의 옥중서신을 보냈다. 그 서신의 일부가 이곳에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다.

그는 순국 전에 조선총독에서 서한을 보냈으니 그 내용은 이렇다.

'너희들 왜국(일본)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왜(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10. 호국전시관 내부

11. 호국전시관에 있는 북한 삐라

북한 애들이 6.25시절 우리 국군과 백성들을 꼬시고자 이 땅에 퍼트린 일종의 삐라이다.

12. 6.25시절 북한이 작성한 전쟁계속 계획도

13. 판자집과 주먹밥

6.25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임시로 판자집 등을 지어 머물렀는데, 그들이 주로 먹었
던 것은 보리, 옥수수, 소금 등으로 만든 주먹밥과 보리개떡이었다.

14. 결단의 순간 (왜관 인도교 폭파)

1950년 8월 3일 20시 30분, 북한군의 도하를 막고자 최후의 방법으로 총길이 469m, 폭 4.5m의 다
리 가운데, 왜관 쪽 2번째 경간 63m를 폭파하여 끊었다. 낙동강을 건너려는 피난민들은 다리가 파
괴되자 수심이 얕은 곳으로 몰려갔고, 들고 온 짐을 마구 버리면서까지 미군의 제지를 피해 강을
건넜다.

15. 1950년 8월, 6.25전쟁 상황도

포항에서 영천, 칠곡, 낙동강 동부, 함안, 마산까지 밀려난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서 낙동강을 등에 업은
왜관을 비롯한 칠곡 지역의 중요성은 실로 컸다. 칠곡이 뚫리면 바로 대구
가 날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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