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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성 오충사 충의당

보성읍내에 자리한 오충사는 퇴휴당 선윤지, 평양공 선형, 친친재 선거이, 매곡 선세강, 강의재 선약

해 등 보성선씨 5인이 봉안된 사당이다.

 

퇴휴당 선윤지는 1382년 전라도관찰사겸 안렴사로 조양, 복흘에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고 남해 관

음포에서 왜구의 잔당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크게 통곡하며 보성으로 내려

와 안착했으며, 지역 사람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다. 그에게 감명을 받은 지역 사람들은 그가 살아있음

에도 생사당을 세우고 그의 진영까지 봉안해 한식일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평양공 선형은 해서백으로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선거이는 임진왜란

시절에 독성, 행주, 금영, 운봉, 화산, 곤양 등에서 왜군을 토벌했다. 그는 권율장군 휘하에서 많은 공

을 세웠는데, 서울 호암산에 있는 호암산성에서 군사들을 주둔시키며 행주대첩을 치루는 그를 지원

했다. 이후 경주에서 왜군을 한참 썰다가 조총을 맞고 전사하고 만다.

선세강은 병자호란 시절 안동영장으로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을 도우러 가다가 광주 쌍령에서 청

나라군에게 패해 전사했다.

 

1739년 성균관 유생과 전라도 유림들이 선윤지의 생사당터에 옥산사를 세워 선윤지를 비롯한 보성

선씨 집안의 5인을 배향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으며, 1831년 오충사로 사액을 받았다. 즉 국가

공인 사당이 된 것이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정리 사업으로 사라졌다가 1909년 선정자가(보성역 자리)에 유허비를

세우고 그 옆에 화수헌과 오충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으며, 1960년 현 자리에 이건되었다.

 

오충사는 강당과 재실의 역할을 하는 충의당을 비롯해 사당, 경모문, 홍살문, 유허비, 묘정비 등을

지니고 있는데, 충의당은 1937년에 세워졌다. 원래부터 사당 강당은 아니었고 오충사 담장 옆에서

최씨 문중이 거주용으로 쓰던 사랑채였다. 그러다가 1961년 보성선씨에서 오충사를 이곳으로 옮기

면서 그 사랑채를 매입해 강당으로 삼았으며, 그 윗쪽에 사당을 지었다.

 

2. 오충사 묘정비와 유허비(오른쪽 비석)

지붕돌을 지닌 유허비는 1909년에 세운 것으로 송사 기우만이 비문을 지었다. 오충사에 배향된 인물

의 행적과 오충사의 역사를 간단히 엮어서 지은 것으로 그 시절은 순종 융희 2년(또는 3년)이다. 허

나 순종의 연호인 '융희'를 쓰지 않고 '성상3년 기유년 5월 26일~~'로 대신했다.

그 옆에 귀부와 이수를 갖춘 작은 비석은 묘정비로 1977년에 장만했는데, 오충사 창설 과정과 연혁

을 머금고 있다.

 

3. 오충사의 정문인 경모문

사당에 흔한 삼문 형테이나 삼문 좌우로 건물을 덧붙여 문간채로 삼았다.

 

4. 경모문에서 바라본 홍살문

사당 바깥은 보성읍내이다.

 

5. 홍살문에서 바라본 경모문과 그 앞에 펼쳐진 소나무들

 

6. 오충사 안내문 표석

 

7. 충의당 뒷쪽에 자리한 오충사 사당 (사당 본전)

삼문 안쪽에 맞배지붕을 지닌 오충사 사당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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