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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축산 망해사로 인도하는 숲길(망해2길)

울주군청 북쪽에 솟아있는 영축산(404m) 동쪽 자락에 신라 후기 부도탑을 지닌 망해사가 있다. 그곳

을 찾으려면 율리공영차고지와 문수사입구 교차로 사이에 있는 망해2길로 진입하여 1km 정도 올라

가야 된다.

 

2. 솔내음이 그윽한 망해사 가는 길(망해2길)

 

3. 영축산 망해사 표석

 

4. 망해사 대웅전

영축산 동쪽 자락에 둥지를 튼 망해사는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시절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시절 신라는 남한과 북한 땅을 비롯하여 요동, 남만주, 그리고 중원대륙의 많은 지역을 다스렸던 큰

나라였다. (신라는 최소 한반도와 요동, 남만주를 장악하고 있었음)

헌강왕이 어느 날 왕족과 신하들을 대동하여 세죽해변으로 나들이를 나왔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

가 오지게 끼면서 길을 잃었다. 그래서 일관에서 이유를 물으니 일관이 동해바다 용이 일으킨 변괴로

그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만 안개가 풀릴 것이라 고했다.

하여 왕은 용을 위해 부근에 절을 짓도록 칙명을 내리자 순식간에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다고 하며, 그

연유로 세상에서는 세죽해변을 개운포로, 그때 헌강왕이 세운 절을 망해사라 했다고 한다.

헌강왕의 배려에 크게 감동을 먹은 동해바다 용은 아들 7명을 거느리고 그 앞에 나와 춤과 주악으로

왕의 덕을 격하게 찬양했는데, 이때 한 아들을 그에게 보내 나랏일을 보좌하게 하니 그가 그 유명한

처용이다.

 

망해사가 신라 헌강왕 시절에 창건되었으나 처용 관련 이야기와 경내에 전하는 신라 후기 부도탑 외

에는 딱히 별다른 사적은 없다. 고려 초/중기에 천재지변 등으로 절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절의 일기장

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후 오랫동안 터만 전해오다가 조선 어느 때에 재건되었는데, 1832년에 간행된 울산부읍지와 1861

년에 간행된 대동여지도에 절이 나온다. 허나 1899년에 제작된 울산군읍지에는 나오지를 않아서 그

사이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은 1957년 승려 영암이 세운 것으로 경작지로 살아가던 절터를 발굴하고 건물을 세웠다. 경내

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요사 등 6~7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경내 북쪽에 옛 망해사의

유물인 부도탑(승탑) 2기가 전하고 있다.

 

5. 2015년에 세운 망해사 사적비

 

6. 망해사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산신과 독성(나반존자), 칠성의 공간이다.

 

7. 털모자와 옷을 갖춰 입은 조그만 문수동자상

 

8. 2014년에 장만한 지장보살상

 

9. 범종 등 사물이 담겨진 범종각

 

10. 2006년에 장만한 석조석가여래상

 

11. 석가여래상 조성불사 기념비

 

12. 경내 중심부와 부도탑 사이의 뜨락 공간

 

13. 망해사지 승탑(망해사지 부도탑)

망해사지 승탑은 크고 잘생긴 늙은 탑으로 2기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탑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에 무거운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것을 1960년 11월에 복원했는데, 서로 크기와 양식은 같으며, 각 부분

은 8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을 받치는 기단은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구성되었고, 그 위로

연꽃무늬를 조각한 돌을 올렸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높은 8각의 단 위에 다시 낮은 3단이 층을 이루

며 받치고 있다. 윗받침돌은 옆면에 16잎의 연꽃잎을 2중으로 조각했는데 그 모양이 꽤 화사하다.

 

탑신은 각 면마다 창의 형태를 새겼고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4면에는 문짝 모양

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처마와 추녀가 수평으로 넓으며, 각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

들이 있다. 탑 꼭대기의 머리장식 부분은 두 탑 모두 없어지고 그 일부만 살아 남았으며, 그들은 탑

에 붙이지 않고 별도 공간에 보관하고 있다.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망해사의 헌강왕 시절 창건설을 그런데로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전체적

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조금 떨어지나 각 부의 비례가 보기 좋은 부도탑으로 추앙을 받는다.

 

내가 망해사를 찾은 것은 이들 부도탑을 보기 위함인데, 공교롭게도 이 날 담은 사진의 상당수(망해

사지 승탑과 문수산 문수사 부분)를 분실하고 말았다. 디카에 담은 사진을 컴에 옮기지 않고 있다가

버튼을 실수로 잘못 누르는 바람에 그런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날(망해사지 승탑과 문수사에 갔던 날) 살아남은 사진은 본글에 올린 망해사와 망해사지

승탑 1장 뿐이다. 아무래도 다시 찾아오라는 문수산과 망해사의 지극한 뜻인 모양이나 천하에는 아

직도 내 손길과 발길이 미치지 못한 미답처들이 무지하게 많은 터라 이곳을 다시 찾을 겨를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울산에 살고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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