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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겨울 나들이 (어물동마애여래좌상, 강동사랑길, 당사항)



' 울산 겨울 나들이 '
(강동사랑길,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당사항)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당사해양낚시공원과 동해바다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  당사해양낚시공원과 동해바다

▲  어물동, 주전 앞바다



 

늦가을을 내치고 천하를 접수한 겨울 제국이 한참 세력을 일구던 12월의 한복판, 남동임
해지역(부산, 울산)을 찾았다.
천하 제일에 항구도시이자 이 땅의 두 번째 대도시인 부산에 볼일(친척 문상)이 있어 오
후 늦게 급히 내려가 이튿날 발인과 후속 과정까지 지켜보고 친척들과 작별을 고했다.
비록 경조사로 오긴 했지만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못지나친다고 기왕 부산까지 왔으니 그
냥 올라가는 것도 좀 허전하다. 하여 부산과 기장(機張) 지역에서 정처를 물색해 보았으
나 부산을 50번 넘게 들락거린 터라 부산 사람들도 거의 안가는 숨겨진 명소까지도 많이
가본 상태이다. 그래서 딱히 끌리는 곳이 없어 울산까지 시야를 올렸다가 적당한 미답처
(未踏處)가 걸려들어 그곳으로 흔쾌히 길을 향했다.

울산(蔚山) 시내에 들어서 울산시내버스 411번(태화강역↔신명)을 타고 학성공원과 염포
동, 남목, 주전을 지나 금천마을에서 두 발을 내린다.
정류장 동쪽에는 이름만 들어도 무척이나 반가운 동해바다가 살짝 넝실거리고 있고 육지
와 바다의 경계에는 자갈돌이 깔린 해변이 조용히 누워있다. 그리고 전혀 생각치도 못했
던 존재의 안내문이 나의 눈을 붙들어맨다.


▲  금천마을 정류장 동쪽에 펼쳐진 동해바다



 

♠  강동사랑길 7-B코스(소망의 사랑길)와 길상바위 여근곡

▲  강동사랑길 7-B코스 (누운소나무 부근)

그 생각치도 못했던 존재는 바로 강동사랑길이다. 울산 북구에서 어물동과 당사동, 정자동 지
역(이들은 행정동명 '강동동'의 관할 동네임)의 산과 바다, 들녘, 개천, 시골길을 엮어서 야
심차게 닦은 도보길로 강동동의 이름을 따서 강동사랑길이라 했다.
코스는 크게 7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징은 이름에 모두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1
코스는 '믿음의 사랑길', 2코스는 '연인의 사랑길', 3코스는 '윤회의 사랑길', 4코스는 '부부
의 사랑길', 5코스는 '배움의 사랑길', 6코스는 '사색의 사랑길', 그리고 7코스는 '소망의 사
랑길'로 이름이 하나 같이 사랑스럽고 정감을 느끼게 한다.

강동사랑길 안내도를 보니 내 목적지인 어물동 마애불까지 7-B코스가 닦여져 있다. 그러니 자
연스럽게 그 코스의 신세를 지면 된다. 강동사랑길 7코스인 소망의 사랑길은 A와 B, 2개의 코
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A코스(3,4km)는 금천마을에서 복골, 까치골을 거쳐 다시 금천마을로,
B코스(2.7km)는 금천교에서 누운소나무, 무룡산, 어물동 마애불. 어물천을 거쳐 금천마을로
돌아온다. 이 코스는 산과 들, 개천,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길이다.


▲  누운소나무

강동7-B코스로 들어서니 하천에 바짝 누운 소나무가 마중한다. 하천을 향해 몸을 푹 숙인 그
를 보니 목이 어지간히도 탔던 모양이다. 그렇게 물을 향해 몸부림을 하다가 하늘로 곧게 크
지 못하고 누워 버린 소나무가 되버린 것이다. 허나 그 모습도 나름 운치가 있으며 그덕에 강
동사랑길의 소중한 명물로 이름을 남겼다. 만약 곧게 자랐다면 강동사랑길 안내도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나이는 100년 내외로 여겨지며, 철없는 사람들의 발에 다치지 않도록 밑둥 위에 다리를
놓아 그를 배려했다.


▲  어물동 마애불로 넘어가는 무룡산 동쪽 자락

누운소나무를 지나면 강동7코스는 2갈래로 갈린다. 직진하면 A코스(복골 방면)이고, 왼쪽 개
천을 건너면 B코스(어물동 마애불 방면)인데, 그 개천을 건너 마치 장대한 성벽처럼 버티고
있는 무룡산 동쪽 산줄기를 넘어야 된다. 높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초반부터 각박한 경사가
시작되니 은근히 기운이 빠진다. 게다가 일몰시간까지 눈치를 주고 있어 (그때가 16시였음)
길을 서둘러야 된다.
다행히 저 경사만 오르면 약간의 오르락과 내리락이 있을 뿐, 길은 느긋해지며, 평일이라 인
적이 너무 없어 한적하기 그지 없다.


▲  강동사랑길 7-B코스 무룡산(舞龍山) 코스 시작점

▲  솔내음이 너불너불하는 무룡산 산길 (강동7-B코스)

▲  무룡산 산길에 닦여진 108번뇌계단
오래된 마애불로 인도하는 산길이라 적당히 계단처럼 다듬어 108계단으로 삼았다.

▲  어물동의 명물, 길상바위 (가운데 틈이 여근곡)

108번뇌계단을 올라 산굽이를 하나 넘으면 마애불로 인도하는 내리막길이 급하게 펼쳐진다.
그 길을 내려가면 마애불을 품은 방바위와 거대하게 생긴 길상바위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마중
을 한다.

울퉁불퉁한 피부를 지닌 길상바위의 가운데 틈이 여근곡으로 그 모습이 여인네의 은밀한 부분
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나는 순수한(?) 사람이라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좀 비
슷하게는 보인다. 대자연이 심술궂게(?) 빚어놓은 현장으로 이런 곳은 반드시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민간신앙의 터로 쓰이기 마련이다. 하여 오랫동안 아들을 기원하던 기자
신앙(祈子信仰)과 성기신앙(性器信仰), 용왕신앙(龍王信仰)의 현장으로 쓰였고, 신라 후기에
어물동 마애불이 들어선 이후에는 불교까지 가세하여 여러 신앙이 두루 어우러진 이색 현장이
되었다. 마치 서울 인왕산(仁王山)의 선바위처럼 말이다.
(☞ 인왕산 선바위글 보러가기 )

또한 길상바위는 용왕당(龍王堂)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이는 바다와 가깝기 때문이다. 현
재는 방바위 밑 바위에 용왕당을 두고 있으며, 이런 바위에는 옛 사람들이 붙여놓은 재미난
전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보따리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주전 앞바다 섬에는 하느님(하늘님)의 명을 받고 아그락할머니가 내려와 살고 있었다
. 비바람이 불어 높은 파도가 치거나 해적이 쳐들어오면 할머니가 친히 막아주어 바닷가 마을
(금천, 당사, 구암, 주전) 사람들은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했다.
아그락할머니가 지켜주는 당사마을에는 뱀이, 구암마을에는 거북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할
머니를 도우며 서로 용이 되려고 경쟁했다. 그들을 오랫동안 살펴본 할머니는 뱀이 더 바람직
해보여 그를 용으로 상승시켜 달라고 하늘에 청했다. 그 청을 받은 하느님은 뱀과 거북이를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해 모두 용으로 승진시켜 주었다.
뱀과 거북은 각자의 영역에서 승천하여 각각 청룡과 황룡이 되었는데, 용의 필수품인 여의주
(如意珠)를 꼭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가에서 실격이 되는 모양이다. 하여 여의주가
숨겨진 무룡산을 샅샅이 살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어느덧 마애불이 깃든 방바위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마애불의 위엄에 단단히 이끌려 여의주를 포기하고 마애불의 수호신을 자처하
여 이곳에 아예 눌러앉았다고 한다.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찾느라 법석을 떨며 춤을 추었던 산은 용이 춤을 추었다 하여 무룡산
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용왕당 청룡과 황룡, 마애불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
루어진다고 한다. 특히 자손을 얻지 못한 이들이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기자신앙의
현장으로 애지중지 되었다.


▲  피부가 매우 거친 길상바위와 여근곡 윗쪽

▲  어물동 마애불을 품은 방바위의 뒷통수
바위와 마애불이 남쪽만 죽어라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뒤로 잠입한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  어물동의 명물, 아그락 돌할매

방바위 옆에는 '아그락 돌할매'라 불리는 큰 돌이 있다. 돌 위의 움푹 패인 공간에는 주먹만
한 돌이 놓여져 있는데, 피부가 아주 맨들맨들하여 주먹돌로 오랜 세월 밀었음을 보여준다.

이 돌은 이 지역의 오랜 수호신인 아그락 할매의 화신(化身)으로 여기고 있어 큰 돌 자체를
아그락돌할매라 부른다. 자신의 소망을 들이밀고 돌을 밀었다가 당길 때 돌이 무겁거나 달라
붙어 움직이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여 이곳을 찾은 중생들은 주먹돌로 열심
히 돌을 문질러 돌할매에게 소원 접수 여부를 알아본 것이다.
언제부터 이 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물동 마애불과 함께 해왔다면 무려 1,000년이 넘는
다. 주먹돌은 하도 문질러서 맨들맨들하지만 할매돌은 제법 연식이 있어 보인다.

이곳과 비슷한 경우로는 인천 영종도(永宗島) 용궁사(龍宮寺)가 있는데, 그곳은 돌을 민 다음
들어올릴 때 무거움을 느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나도 소원거리가 많은 사람이라 돌을 밀고 당겨보았다. 그런데 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바위
에 달라붙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제발 붙어라' 심리상 그런 것인지 실제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붙었다. 그렇다면 내 소원은 접수된 것일까? 과연? 허나 인천 용궁사에서
도 돌이 무거움을 느꼈으나 그 소원은 지금까지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이곳이라고 다르
겠는가. 그냥 이렇게 기복(祈福)행위를 하는 것만으로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누리라는 뜻이
돌할매의 뜻일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괜히 이곳의 명물, 돌할매에게 해코지는
하지 말자.


 

♠  방바위에 깃든 신라 후기 마애불, 어물동(於勿洞) 마애여래좌상
-
울산 지방유형문화재 6호

하늘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방바위(방바우) 남쪽 면에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한 마애삼존상이
두텁게 깃들여져 있다. 가운데 자리한 큰 존재는 약사여래불이며, 좌우에 조그만 존재들은 일
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로 보관(寶冠)에 해와 달이 새겨져 있어 그들의 정체
를 살짝 귀뜀해준다.

약사불은 높이 5.2m, 어깨 폭 2.9m로 고된 세월에 많이도 울었는지 얼굴은 거의 지워졌다. 허
나 귀와 머리, 입, 코 등은 윤곽이 남아있어 확인은 가능하다. 두터워 보이는 목에는 삼도(三
道)가 그어져 있으며, 몸통은 꽤 단단한 모습으로 옷주름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다.
좌우에 자리한 일광/월광보살 역시 얼굴이 지워져 있으나 얼굴과 눈, 코, 귀, 보관 윤곽은 그
런데로 남아있으며, 바위 모서리에 직각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는데, 이는 집을 만들고자 서까
래를 걸쳤던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노천에 자리한 지금과 달리 따뜻한 집에 봉안된 마애불이
었음을 알려준다.

신라 후기에 조성된 마애불로 바로 옆에 자리한 아그락 돌할매와 뒷쪽에 병풍처럼 들어선 장
대한 길상바위, 여근곡과 어우러진 복합 신앙의 현장으로 방바위 자체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
라 마애불이 깃들기 전에는 길상바위, 돌할매와 더불어 민간신앙의 현장으로 쓰였을 것이다.
특히 마애불과 길상바위 주변에는 부처의 발자국 모양을 닮은 붉은 불족적(佛足跡)이 여럿 발
견되었는데,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자연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로 숨은그림찾기
를 벌였으나 눈이 나쁜 것인지, 마음이 나쁜 것인지, 불족적이 나쁜 것인지 결국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와서 도전하라는 마애불의 뜻은 아닐까? 허나 여기까지 언제
또 오겠는가? 아직도 천하에 미답처가 은하계의 별처럼 수두룩하여 나의 목을 죄거늘.

▲  약사불 오른쪽의 일광보살

▲  약사불 왼쪽의 월광보살


▲  약간 옆에서 바라본 어물동 마애불과 방바위
마애불에 씌웠던 집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기와를 얹힌 팔작지붕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집은 장대한 세월 앞에 훌쩍 녹아 없어지고 단단한
바위와 마애불만 남아 자리를 지킨다.

▲  선사시대 사람들의 오리무중 낙서판, 마애사 암각화

이곳에 왔을 때는 오로지 어물동 마애불만 알고 있었고, 그 마애불만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전혀 머리 속에 없던 존재들을 덤으로 보게 되었다. 강동사랑길도 그렇고, 길상바위와 여근곡
, 아그락돌할매, 그리고 암각화까지, 그야말로 마애불이 내게 건네준 두둑한 선물꾸러미였다.
이런 뜻밖에 추가 옵션을 받을 때는 참 기분이 좋다.

마애불 밑 바위에 자리한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낙서가 깃들여져 있다. 주술적인
흔적인 성혈(聖穴)과 수로(水路), 별자리 모양 등이 있다고 하며, 부귀와 장수를 발원한 거북
형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저 굵직한 주름선만 가득 보인다. 어쨌든 수수께
끼의 오래된 돌판으로 그를 통해 이곳 일대가 옛 조선(朝鮮)이 천하를 호령하던 청동기시대부
터 신앙의 현장으로 쓰였음을 알려준다.

이 암각화는 마애사 승려가 발견했는데, 현재 주위로 금줄을 쳐놓아 암각화를 보존하고 있으
며,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  마애사 주차장에서 어물동 마애불로 인도하는 'S'라인의 오르막길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S라인이 아니던가..


▲  마애불 밑 바위에 자리한 석굴 기도처, 용왕당
넉넉하게 벌어진 바위 틈에 용왕의 거처를 닦아 용왕당으로 삼았다.

▲  밑에서 바라본 어물동 마애불 주변
밑에 보이는 바위가 용왕당, 석축이 깔린 중간 바위가 방바위와 마애불,
가장 윗쪽에 길상바위가 자리한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애불 주변, 마애불로 인도하는 문과 계단

▲  어물동 마애불을 지키는 조그만 현대 사찰 마애사(磨崖寺) <2015년>

마애불 밑에는 그를 든든한 밥줄로 삼은 마애사가 있다. 오로지 그를 바라보는 절집이라 이름
또한 마애사라 했는데, 2008년에 창건되었으며, 불법으로 절을 등록하고 우물을 파는 등 말썽
이 적지 않아 2010년에 울산 북구청에서 행정대집행으로 강제 철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타결이 잘되어 철거는 면했고, 승려 휴암이 신도와 불교계의 도움을 받아 주변 4,000
여 평의 땅을 매입, 정식으로 절 등록을 하여 2011년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 금개구리
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4~5동 정도의 집과 바위 석굴을 다듬은 용왕당 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연꽃을 심은 연못을 갖추어 여름에는 연꽃의 향연을 선사하며, 마애불과 주변 바
위에 나타났다는 불족적을 내세워 약사기도도량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 산121 (마애사 ☎ 052-209-0255)


▲  강동사랑길 7-B코스 (어물동 시골길)

어물동 마애불을 둘러보고 강동7-B코스의 나머지 구간(어물천, 어물동 시골길)을 따라 금천마
을로 나왔다. 이 구간은 도로와 비포장 시골길, 어물천 둑방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물천에
는 갈대가 바닷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고 가을 수확이 끝난 어물동 들녘은 겨울잠을 자며 살
며시 봄을 잉태하고 있다.


▲  강동사랑길 7-B코스 (어물천 구간)

▲  오래된 팽나무(울산 보호수 16호)와 금천마을 서낭당

강동7-B코스 어물천 구간을 걷다보면 잠시 어물천 남쪽으로 길이 넘어갈 때가 있다. 그때 논
두렁 한복판에 오래된 팽나무 하나가 '잠시 나좀 보고 가소!' 눈짓을 보낸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서니 팽나무와 함께 금천마을 서낭당이 나를 맞는다.

팽나무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귀신이 좋아하는 나무라 하여 마을 신목(神木)으로 많이 삼는다.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2000년 10월) 추정 나이가 260년이라고 하니 지금은 280년 정도 되며,
높이는 약 20m 정도, 둘레는 3.7m이다. 오랜 세월 금천마을을 지키던 나무로 그의 그늘에는
현대식으로 지어진 기와집 서낭당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으며, 그들 주위로 담장이 둘러져 혹
여 모를 나쁜 기분을 경계한다.

* 팽나무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 152


▲  굳게 닫힌 금천마을 서낭당
시대가 변하면 서낭당도 마지 못해 변하는 법, 마치 현대 가옥과 같은 모습으로
마을 수호신을 봉안하고 있다.


 

♠  동해바다 거닐기 (용바위, 당사항)

▲  해질녘 금천마을 몽돌해변

어물동 마애불을 둘러보고 다시 금천마을 정류장으로 되돌아왔다. 지금까지는 산과 들녘을 돌
아다녔으니 이제는 바닷가에 온 기분도 낼 겸 바닷가를 거닐기로 했다. 원래는 정자동으로 넘
어가 주상절리해안을 보려고 했으나 햇님이 바로 꼴까닥 직전이라 여기서 당사항까지만 둘러
보고 오늘 나들이를 흔쾌히 끝내기로 했다.

금천마을 해변에는 몽돌이 가득 입혀져 있다. 동대해(東大海)는 파도로 몽돌을 살며시 어루만
지고, 그들의 손길을 받은 몽돌은 더욱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윤기를 낸다. 한여름에 왔다면
바다와의 스킨쉽도 가능하겠지만 혹독한 겨울 제국 시절이라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무
리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고 해도 거의 0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해변을 따라 당사항 쪽으로 걷다보면 용바위가 나오고, 바로 당사해양낚시공원이 모습을 드러
낸다.


▲  바다와 몽돌과의 끊임없는 속삭임 - 금천마을 몽돌해변

▲  금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바라본 금천~주전 해변

▲  바다를 향해 팔을 뻗은 당사해양낚시공원 구름다리

용바위를 지나면 동대해를 향해 팔을 뻗은 다리가 나온다. 넘섬이라는 조그만 바위섬까지 이
어진 220m의 다리로 이 다리가 당사해양낚시공원이다. 즉 바다 구경과 낚시를 위한 해상공원
이다. 그 역시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보너스 같은 존재인데, 울산 북구청에서 35억을 들여 만
든 것으로 2013년 7월 26일에 문을 열었다.
당사마을의 수익 증대와 동대해를 옆에 낀 강동 지역의 관광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처
음부터 유료의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달랑 보이는 것이 전부인 저 구름다리가 말이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1달에 1천 명 내외로 왔으나 입장료의 한계와 주변에 널린 낚시터(당사항 방파제)
로 인해 입장객 수가 나날이 줄어 세금을 축내어 지은 현장이라며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당사어촌계에서 위탁관리를 하고 있으며, 구름다리(낚시잔교, 156m)와 진입도교(64m), 해상전
망대 2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매년 1월 1일 공원을 중심으로 해돋이행사가 절찬리에 열린
다.

낚시공원 시작이야 어쨌든 당사항의 명물이니 한번 들어가볼까 했으나 여전히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매표소가 다리 직전에 버티고 서 있어 바다로 가지 않는 이상은 들어가기도
힘들다. 어차피 여기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데, 바다와 더 가까워지는 것 외에는 매력이 없어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  용바위 조망대에서 바라본 당사해양낚시공원 구름다리

▲  당사항에서 바라본 당사해양낚시공원 구름다리

▲  용바위조망대에 세워진 용의 형상

당사해양낚시공원 매표소 맞은편에 낚시도구를 파는 가게가 있고, 그 옆에 용의 형상으로 인
도하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오르면 용바위 조망대인데, 조망대 한복판에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고, 그 꼬랑지 바로 뒷쪽에 용바위가 있다.

용바위는 바닷가에 있는 큰 바위로 그 꼭대기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이미 개인 소유가
되버려 무덤이 자리해 있다. 명당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바닷가 바위까지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것. 그래서 용바위 꼭대기는 아쉽게도 발을 들일 수가 없다.


▲  서쪽에서 바라본 용바위

용바위는 당사마을의 오랜 명물로 그에 걸맞게 그럴싸한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내용이 앞서
언급했던 어물동 마애불의 아그락할머니 전설과 좀 비슷한데, 아무래도 아그락할머니 전설을
다소 따라한 듯 싶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 큰 뱀과 거북이가 살았다. 그들은 워낙 사이가 좋지 않아 볼 때마
다 으르렁거리고 싸웠는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옥황상제가 열받은 나머지 지상으로 내쫓았다.
누가 더 나쁜지 확인할 수가 없어 모두 벌을 내렸는데, 거북은 뱀을 궁지에 몰고자 일부러 고
개를 안으로 당겨놓고 말없이 지냈다. 그러니 옥황상제는 거북이를 더 믿고 뱀을 더 의심하게
되었다.
거북이의 간계에 열이 받은 뱀은 계속 인내한 결과 끝내 승천하게 되었고, 벼락이 꽈당 내리
치니 용바위가 둘로 갈라지면서 용은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바위 때문에 막혔던 물길이
뚫리니 사람들은 용바위라 불렀다. 즉 전설의 결론은 착한 쪽은 뱀, 나쁜 쪽은 거북이다.

▲  용바위 조망대에서 바라본 용바위

▲  바로 앞에서 바라본 용 형상


▲  용바위 조망대에서 바라본 동대해와 주전, 금천 앞바다

▲  동대해에 몸을 기댄 당사항

▲  당사항 남쪽 부분

동대해를 든든한 후광으로 삼은 당사항은 울산 당사동(堂舍洞)에 자리한 조그만 항구이다. 지
방 어항(漁港)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항구에는 수산물 직판장이 있어 싱싱한 물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방파제와 해양낚시공원이 주요 포인트이다.
강동사랑길 6코스가 당사항을 지나가며, 주변에 5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고, 근래 마을 골목
과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조그만 벽화마을을 이룬다.

내가 당사항에 이른 시간은 17시가 넘은 시간, 일몰 바로 직전이다. 제아무리 천하 제일의 맷
집을 자랑하는 햇님이라 한들 겨울 제국의 눈치는 보는 모양이다. 그 눈치에 못이겨 그 커다
란 몸뚱이를 바다 속에 있을 것 같은 그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달이 그 자리를 대
신해 땅꺼미를 내린다. 어둠이 밀려오자 방파제와 항구의 조명시설이 일제히 몸을 불사르며
조금이나마 어둠을 몰아낸다. 우리는 그것을 야경(夜景)이라고 부른다. 이곳 야경이 그리 대
단하지는 않지만 나름 조촐히 불빛을 뿜어내며 당사항의 밤풍경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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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에 몸을 기대 고된 몸을 쉬는 어선들과 그들을 지켜주는 방파제

▲  어둠이 밀려온 당사항

▲  당사항의 든든한 갑옷, 방파제와 하얀 등대

▲  다양한 색채로 어둠을 긴장시키는 방파제 등
방파제 등에는 울산의 상징인 고래 형상이 귀엽게 표현되어 있다.

▲  방파제에서 바라본 당사항과 수산물직판장

당사항을 둘러보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햇님의 기운은 싹 사그라들고 완전 어둠의 세상이 되
었다. 햇님도 그의 집으로 돌아갔으니 나도 내 제자리로 돌아가야겠지. 게다가 다음날부터 날
씨가 더 추워진다고 하니 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럴 때는 그저 우리집 이불 속이
최고다.

당사항을 끝으로 울산 겨울 나들이는 미련없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당사항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당사동 378-3 (용바위1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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