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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괘천 작천정계곡 동쪽 부분

울산 및 울주 지역 제일의 경승지이자 피서의 성지로 바쁘게 사는 작천정계곡은 이번이 3번째 인연

이다. 그런데 그 인연 모두 여름에 지었으며, 모두 비를 만났다. 그래서 첫 인연 때는 크게 흥분한 소

나기에 조금 들어서기가 무섭게 바로 철수했고, 2번째 인연 때는 역시 소나기로 작천정에서 길을 돌

렸으며, 이번에는 다행히 보슬비 수준으로 내려서 계곡 상류인 간월사터와 홍류폭포까지 들어갔다.

소나기로 철수했던 앞서 방문 때도 최소 간월사터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작천정입구까지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거기서부터 걸어들어갔는데, 작천정계곡 안쪽인 등억온천단지

까지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있으나 배차간격이 50~60분 이상으로 길다. 게다가 등억온천단지까지 도

보길이 완만하게 잘 닦여져 있고, 걷는 길도 좋으며, 작천정계곡과 작괘천 풍경이 무지 고와서 걸어

가는 것도 괜찮다.

 

2. 주름진 반석과 바위, 맑은 계류가 어우러진 작천정계곡 동쪽 부분

 

3. 작천정 주변에서 만난 바위글씨들

작천정 주변에는 19세기와 20세기 초/중기에 작천정을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바위글씨들이 무지 많

이 깃들여져 있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그들의 이름 3자와 시문을 새긴 것으로 바위에 새긴 글씨나

문양을 '바위글씨', '각자'라고 부르는데, 이 땅의 바위글씨 역사는 옛 조선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선

사시대 암각화가 그 시작점)

 

4. 작천정 주변을 흐르는 작천정계곡, 그리고 여름 후광으로 크게 물이 오른 백일홍(배롱나무)

 

5. 작천정

작천정계곡만큼이나 유명한 존재인 작천정은 작천정계곡 너럭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고려 후기에 언양으로 유배를 왔던 포은 정몽주가 작천정계곡에 퐁당

반해 여기서 글을 읽었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 때는 지역 선비들이 제왕의 덕을 기리고자 작천정이란 정자를 세웠다고 하며, 언양현감인

정긍조가 1894년 언양 고을로 부임해 1895년 봄 현 작천정 자리에서 시회를 열면서 누각을 지을 것

을 조정에 주청했다. 하여 5년 뒤인 1900년 가을 울산군수 최시명이 짓기 시작해 1902년 여름에 완

성을 보았으며, 누각 이름을 작천정이라 했다. 작천정 현판은 서예가 김성근이 썼다.

1944년 작천정보존회가 조직되어 작천정을 중수했으며, 1955년에 중건했고, 1967년 중수하여 계속

관리하다가 2005년 울주군에서 현재 모습으로 손질했다.

 

작천정이 있는 너럭바위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바위글씨들이 무지하게 많은데 시회 우수작

및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는 모은대,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한 이곳은 반석이 즐

비하고 수량이 많으며, 작은 폭포와 소가 연이어 있어서 자연산 수영장이자 피서지로 꽤 바쁘게 산다.

 

6. 작천정 너럭바위를 경쾌하게 지나가는 작천정계곡

 

7. 작천정 너럭바위 주변 작천정계곡 (동쪽 방향)

주름진 바위 밑에 작은 폭포와 소가 있어 자연산 수영장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폭포 부분이 물살이

좀 거친 편이라 미끄럼 등을 주의해야 된다.

 

8. 한폭의 수채화처럼 달달한 풍경를 지닌 작천정 너럭바위 주변 (작천정계곡)

 

9. 작천정 내부에 걸린 온갖 현판들

 

10. 작천정의 역사를 머금은 작천정기

 

11. 작천정 내부

작천정은 '정'을 칭하고 있지만 '루(누각)'가 더 어울리는 집이다. 이곳에 올라서서 경쾌하게 흐르는 계

곡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속세에서 늘 오염되고 상처받는 두 귀가 싹 정화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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