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승달산 정상, 깃대봉(333m)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무안 삼향읍 지역과 대봉산(252m), 태봉산(169m), 목포 지역, 서남해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 다. 가는 날이 먼지 많은 날이라고 중공 개잡것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낸 미세먼지로 하늘이 다소 뿌옇다. 2. 승달산 정상(깃대봉)에서 바라본 서남쪽 방향 무안 삼향읍과 청계면, 목포시, 신안군 압해도와 서해바다 등이 흐릿하게 두 망막에 들어온다. 3. 승달산 분기점 (승달산 정상 서쪽 능선) 승달산 정상(깃대봉)에서 흐릿한 천하를 바라보며 잠시 망중한을 누리다가 목포대학교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햇님의 퇴근시간이 채 3시간도 남지 않아서 길을 서둘렀는데, 하루재로 이어지는 승 달산 서쪽 능선을 타고 승달산 분기점3(승달산안내도에는 승달산분기점이..

1. 멀어져가는 목우암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법천사의 부속 암자인 목우암을 둘러보고 다시 하루재로 올라왔다. (목우암~하루재, 0.4km) 목우 암을 거느린 법천사도 둘러보려고 했으나 그를 거의 코앞에 둔 목우암분기점에서 귀차니즘으로 발길을 돌렸다. (법천사 밑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늙은 석장승이 있음) 2. 목우암에서 목우암분기점, 하루재로 올라가는 고적한 산길 3. 겨울 감성을 크게 돋구는 하루재~목우암 산길 4. 승달산 능선길 (하루재~승달산분기점 구간) 하루재에서 승달산 정상(333m)까지는 남쪽 능선길을 따라 1.1km 정도 가야 된다. 능선길은 거의 완만하며, 산길 좌우로 일품 조망이 펼쳐져 두 눈을 아주 즐겁게 해준다. 허나 가는 날이 문 닫는 날이라고 중공 잡것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낸..

1. 목우암 법당(극락보전) 목우암은 남쪽 고개 너머에 있는 승달산 법천사의 부속암자이다. 법당과 축성전, 요사채 등 4~5동 을 지닌 작은 암자로 725년에 서역 금지국에서 온 승려 정명이 세웠다고 전하는데, 고려 의종 시 절에 남송 임천사에서 온 원명이 중건했다고 전한다. 또한 의종 시절에 원나라(몽골) 승려로 표현 된 원명이 법천사와 목우암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어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승달산 산신도 모르 는 실정이다. (몽골 원나라는 의종 시절에 없었음)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에 따르면 원명은 인근 총지사에서 소 1마리가 나와서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오는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 이상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계곡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어서 그 발자국을 따라가서 그 자국이 끝나는 곳에 풀을 엮어서 ..

1. 승달산 목우암 부도군 하루재에서 동쪽으로 0.2km 내려가면 목우암 갈림길(분기점)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0.2km를 더 내려가면 목우암으로 경내 직전에 부도탑 5기를 지닌 부도군이 제일 먼저 마중을 한다. 이들 부도탑은 조선 후기 것으로 4기는 지붕돌을 지닌 석종형탑이고, 1기는 탑신만 덩그러니 있는 데, 이들을 지나면 목우암 경내가 모습을 비춘다. 2. 목우암 부도군 경사면을 이용해 석축을 2단으로 쌓고 그 위에 부도탑을 얹혔다. 앞열에는 부도탑 3기, 뒷열에는 2 기가 있으며, 그들은 햇님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3. 부도군에서 바라본 목우암의 외경 승달산 북쪽 자락이자 하루재 동쪽 밑에 자리한 목우암은 법천사의 부속암자이다. (목우암 갈림길 에서 남쪽으로 0,2km 내려가면 법천사임)..

1. 승달산을 찾아서 (승달산길) 무안 지역의 대표 명산으로 추앙을 받는 승달산은 해발 333m의 뫼로 무안 청계면과 몽탄면 사이 에 넓게 누워있다. 비록 키는 작으나 주변에 그를 능가하는 뫼들이 없고, 서남해가 훤히 바라보여 가히 국보급 조망을 자랑한다.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또는 의종(재위 1146~1170) 시절에 중원대륙에서 건너온 승려 원명 이 이곳에 터를 잡고 크게 교세를 떨쳤는데,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제자 500여 명이 모두 깨달 음을 얻었다고 해서 승달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 부동산 학문인 풍수지리에 따르면 승달산은 3,000년에 이르도록 문무백관이 태어난다는 호 남의 4패 명혈 중 제1의 혈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무덤 수요가 상당하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