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의두암 바위글씨 의두암은 3층 구조를 지닌 높이 4m에 큰 바위로 그 피부에 예서체 스타일의 '의두암' 바위글씨가 진 하게 깃들여져 있다. 그 글씨를 남긴 사람은 운양 김윤식(1835~1922)으로 1887년 명성황후의 친러 정책에 반대하며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을 모의하다가 면천 고을로 유배되어 5년 6개월을 머물렀다. 처음에는 순성면 양유리 앵두샘마을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영탑사 아래 절골로 자리를 옮겼으며, 영탑사 노전에서도 유배 생활을 했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 올라 임금님이 있는 북쪽 서울을 바라 보며 죄를 짓고 유배온 자신을 한탄했는데, 그렇다고 한탄만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역 선비와 유 지들과 여기서 시문도 짓고, 활도 쏘고, 곡차 1잔의 여유도 누렸다. 바위 꼭대기에 올라 앉..

1. 영탑사 유리보전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고려 때 조성된 약사여래상의 공간이다. 약사여래 상은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로 그 바위에 집을 씌웠는데, 유리보전은 약사여래의 거처인 약사전의 별 칭이다. 2. 영탑사 약사여래상 (마애약사여래상) 유리보전에 소중히 들어있는 약사여래상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높이 3.5m 정도로 고려 후기 에 무학대사가 영탑사를 둘러보다가 경내 주변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그 바위 에 불상을 새겨 나라의 평안을 빌었다고 전한다. 불상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을 표현했으며, 얼굴은 윗부분이 넓고, 밑부분이 갸름하여 신체 에 비해 큰 편이다. 눈과 코, 입은 길고 큼직하며 다소 서투르게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둔한 모습인데, ..

1.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영탑사 종무소 가운데 칸에는 이곳의 1급 보물인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이 소중히 봉안되어 있다. 조그만 크기의 금동불상으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8각형 대좌에 비로자나불이 앉아있고, 그 좌우로 협 시보살이 자리하여 비로자나3존상을 이루고 있다. 중심 불상(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져 있으며, 그 위로 육게(무견정상)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거의 네모난 얼굴은 원만한 느낌을 주며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은 도식화된 모습이다. 윗도리는 길고 두툼하지만 아랫도리는 너무 작게 표현되어 신체 비례가 다소 떨어지는데, 무릎 높이도 윗도리에 비 해 낮으며, 가슴 역시 평면적이고 아랫도리는 둔중하게 처리했다. 이런 수법은 고려 중기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손은..

1. 영탑사로 인도하는 성하로 당진 면천면의 중심지인 성상리에서 성하로를 따라 30분 정도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 영탑사가 있다. 영탑사 아래까지 당진시내버스 410, 411번이 운행하고는 있으나 운행횟수가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라(1일 2~3회 운행) 면천면 중심지에서 가볍게 30분 정도 걷는 것이 낫다. 오르막이 꾸준히 이 어지나 완만한 수준이며, 1.5~2차선 크기의 농로라 도보길이 따로 없어 차량을 조심하면서 움직여야 된다.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음) 2. 애타게 봄의 손길을 기다리는 성하로 가로수들 3. 성하리 느티나무 (당진시 보호수) 영탑사 길목에 자리한 시동저수지 동쪽에 당진시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추정 나이 는 440년(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