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파 서동일 묘소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서동일 묘소) 춘파 서동일(1893~1965)은 경북 경산 출신이다. 1923년 북경으로 넘어가 국민당에 입당하여 재정 부장을 담당했는데, 여기서 국민당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아닌 남형우, 배천택 등이 나라의 국권회복 을 위해 군대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만든 조직이다. 1924년 1월 군자금 모금의 밀명을 받고 본토로 들어와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 1,300여 원을 조달해 다음달 2월 북경에 있는 국민당 본부에 전달했으며, 1925년 1월 남형우의 명을 받고 다시 본토로 들 어가 군자금을 조달했다. 1925년 4월 북경 마사묘에서 항일 비밀결사 다물단의 단원이 되었는데, 여기서 다물은 옛 땅과 영광 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고구려가 옛 조선의 영광..
1. 망우리 사잇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잇길) 망우리 사잇길은 사색의길 서쪽 구간 북쪽 시작점에서 망우산 능선길과 망우산 정상으로 빠르게 인 도하는 산길이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며, 10여 분 정도 오르면 사색의길 동쪽 구간에서 올라온 능선길과 만난다. 2. 무성한 숲을 지나는 망우리 사잇길 사색의길 서쪽 구간과 동쪽 구간 사이를 지나서 '망우리 사잇길'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 구간에 는 능선길 전까지 무덤은 거의 없으며,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로 숲이 삼삼하다. 3. 조금 급한 경사를 보이는 망우리 사잇길 (망우산 능선길 직전) 4. 망우산 능선길과 만나다. (망우리 사잇길과 망우산 능선길이 만나는 곳) 5. 망우산 능선길에서 사색의길 동쪽 구간으로 내려가는 길 망우산..
1. 망우산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망우산 북쪽 능선에 자리한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는 이름 그대로 한강과 구리 지역 조망에 최적화 된 전망대이다. 여기서는 동쪽과 동남쪽, 남쪽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오는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비 롯하여 용마산, 아차산, 강동구, 송파구, 구리시, 남양주시(도농, 와부, 운길산 등), 하남시, 검단산, 남 한산, 성남시 등이 바라보여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2.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시 남부 지역과 한강, 강동구, 하남시, 남양주시 와부읍, 운길산~예봉산, 검단산 등 3.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구리 아천동 지역과 아차산, 강동구, 하남시, 검단산, 남한산(남한산성) 등 4. 나무데크로 닦여진 구리전망대(한강전망대) 5. 구리전망..
1. 망우산에 들어서다 (용마랜드에서 올라가는 산길) 충익공 신경진 묘역을 둘러보고 용마랜드 북쪽을 통해 망우산(282m)의 품으로 들어섰다. 망우산은 아차산 식구의 일원으로 아차산 산줄기의 북쪽을 이루고 있는데, 산자락에 그 유명한 망우리묘지(망 우리공동묘지)가 넓게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최대 공동묘지로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 으로 이름을 세탁했는데, 그렇다고 공동묘지의 기능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비록 무덤이 많이 이장되긴 했어도 여전히 7천 기가 넘는 무덤들이 안겨져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애국지사, 정치인, 문학가, 예술가의 무덤이 적지 않 게 깃들여져 있어 근현대사 무덤 답사지로 크게 명성을 얻고 있다. 망우산 주능선에는 고구려가 심은 것으로..
1. 충주 호암토성(충주토성) '가'지구 충주 시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암지구에는 근래 복원, 재현된 호암토성이 있다. 여기서는 토성 외에도 다양한 시대의 무덤과 가마터가 쏟아져 나왔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모두 사라져 땅속에 묻힌 것을 2013~2014년 호암택지지구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햇살을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 2개, 삼국시대 무덤 48기(석실묘 36기, 석곽묘 12기), 목탄가마 5기, 고려 토성, 고려 무덤 331기, 조선 기와가마 15기, 조선 무덤 1,074기가 나왔는데, 이를 통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호암동 지역에 살았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구석기시대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대 의 유적과 유물이 나와 충주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제공해주었지만 ..
1. 충주 호암토성(충주토성) 구석기시대 유적 안내문 충주 시내의 남쪽 끝자락인 호암지구에 자리한 호암토성은 최근에 발견되어 복원, 재현된 토성 유적 이다. 이곳에서는 토성 외에 다양한 시대의 무덤과 가마터가 쏟아져 나왔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모두 사라져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2013~2014년 호암택지지구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햇 살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 2개, 삼국시대 무덤 48기(석실묘 36기, 석곽묘 12기), 목탄가마 5기, 고 려시대 토성, 고려 무덤 331기, 조선 기와가마 15기, 조선 무덤 1,074기가 나왔는데, 이를 통해 구석 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호암동 지역에 살았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구석기시대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 대의 유적과 유물이 나와 충주 ..
1. 방배동 매봉재산(방배근린공원) 방배역(2호선) 서남쪽에는 매봉재산이라 불리는 작은 뫼가 누워있다. 그는 해발 125m의 뫼로 우면산 의 북쪽 자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과 우면산 사이로 남부순환로가 지나가 서로가 남남처럼 보여서 그렇지 이곳 또한 우면산의 엄연한 일원이다. 매봉재산은 백석예술대학교 남쪽에서 남부순환로까지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데, 산 일대는 방배근 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에 안긴 명소는 딱히 없으나 숲이 짙고 숲길이 고와서 가볍게 거닐만 하 며, 동네 뒷동산에 최적화된 방배동 지역의 상큼한 공간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2. 매봉재산 북쪽 산길 (효령로26길) 방배역(2호선)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3분 정도 가면 삼호빌딩과 한풍제약 사이로 오르막으로 이루어 진 효령로26길이 나..
1. 우면동 태봉근린공원 (월산대군 이정 태실) 우면동 한복판에는 태봉이란 조그만 언덕이 봉긋 솟아있다. 우면지구를 개발하면서 언덕 주변을 손질 해 태봉근린공원(태봉공원)으로 삼았는데, 그 언덕 정상에 태봉의 오랜 주인인 월산대군 태실이 조용 히 둥지를 틀고 있다. 2. 월산대군 태실로 이어지는 태봉 숲길 태봉 정상에 깃든 월산대군 태실로 인도하는 숲길은 수풀이 우거져서 그렇지 경사는 거의 느긋하다. 숲으로 들어서니 깊은 산골에 들어선 듯 공기부터가 다른데, 그 길을 2~3분 오르면 그 산길의 끝에 월산대군 태실이 모습을 비춘다. 3. 태봉의 무성한 숲속으로 (월산대군 태실 방향) 4. 서초구청에서 세운 태봉 표석 (월산대군 태실 숲길) 5. 월산대군 이정 태실 태봉 정상 양지바른 곳에 월산대군 이정 태..
1. 우면동 망루근린공원 (우면동 유적) 우면산터널 톨게이트 동쪽 언덕에 우면동 유적을 품은 망루근린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서초 구의 대표 지붕인 우면산의 남쪽 끝자락으로 서초네이쳐힐2단지와 1단지 옆에 위치해 있는데, 여기 서는 멀리 구석기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여러 시대 유적들이 잠들어 있다. 이들 유적은 망루근린공 원을 중심으로 태봉(월산대군태실) 주변과 아파트 밭이 되버린 서초네이쳐힐단지까지 분포해 있었다. 이들은 우면동에서 발견되어 지역 이름을 따 우면동 유적이라 부르고 있는데, 2008년 이후 우면지구 와 우면산터널 도로를 닦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10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수백 점의 유물 이 쏟아져 나왔으며, 발굴이 끝나자 유적이 집중적으로 나온 현재 망루근린공원 자리에 공원..
1. 염창산(증미산)에서 만난 작은 무덤 염창산 정상부 서쪽에 자리한 작은 무덤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무덤 뒷쪽(북쪽)으로 한강이 있 고, 앞쪽으로 비록 수목에 가려지긴 했으나 강서구 지역이 펼쳐져 있어 자리 하나는 정말 좋아 보인 다. 무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으나 20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봉분 외에는 별 다 른 시설은 없지만 봉분 수풀이 그리 수북하지는 않아서 후손들이(또는 강서구청에서 염창공원 관리 차원에서) 계속 벌초를 하는듯 싶다. 2. 염창산 정상부 주변에 박혀있는 삼각점 3. 염창산 북쪽 자락 숲길 염창산은 해발 55.2m의 한강변 언덕이다. 예전 이름은 증산, 증미산으로 지금은 염창산과 증미산 두 이름이 같이 쓰인다. 조선 때 세곡선과 상선 등이 한강을 타고 양화..
1. 염창동 염창산(증미산) 서쪽 산길 염창동 한강변에 조그맣게 솟은 염창산은 해발 55.2m의 낮은 뫼이다. 예전 이름은 증산, 증미산으로 지금은 염창산과 증미산 두 이름이 같이 쓰인다. 조선 때 세곡선 등이 한강을 타고 양화나루와 마포나루, 노량진으로 들어왔는데, 염창산 구간에서 배 가 좌초되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때 파손된 배에서 흘러나온 쌀을 줍고자 산 주변에 사 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거기서 쌀을 줍는다는 뜻의 증미산이란 이름이 생겨났고 그것이 나중에 2글자 로 줄어서 증산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증(拯)'은 건지다는 뜻으로 나중에 거듭된다는 뜻의 증(曾) 으로 갈렸다. 그러다가 산 밑에 소금창고(염창)가 생기면서 염창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며, 귀신바위와 이순 신 장군을 ..
1. 검덕산 정상 직전 숲길 검덕산은 해발 87.3m의 뫼로 우장산의 북쪽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새마을지도자탑이 자리해 조촐하 게 눈요깃감이 되어주는데, 비록 정상이긴 해도 주변이 수목으로 가득하여 조망은 별로이다. 2. 검덕산 정상에 자리한 새마을지도자탑 새마을지도자탑은 1986년 8월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서 새마을 운동의 영속적인 발전과 새마을지도 자의 봉사정신을 표창하고자 세웠다. 이곳에 탑을 세운 것은 그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이곳 밑 에 있어서(지금은 다른 곳에 있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국 23만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성금을 받아 8개월 만에 완성을 보았다. 그때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마르지 않는 29만원으로 악명이 높은 전 두환 전 대통령의 아우인 전경환(1942~2021)이다. 검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