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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덕산 정상 직전 숲길

검덕산은 해발 87.3m의 뫼로 우장산의 북쪽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새마을지도자탑이 자리해 조촐하

게 눈요깃감이 되어주는데, 비록 정상이긴 해도 주변이 수목으로 가득하여 조망은 별로이다.

 

2. 검덕산 정상에 자리한 새마을지도자탑

새마을지도자탑은 1986년 8월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서 새마을 운동의 영속적인 발전과 새마을지도

자의 봉사정신을 표창하고자 세웠다. 이곳에 탑을 세운 것은 그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이곳 밑

에 있어서(지금은 다른 곳에 있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국 23만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성금을

받아 8개월 만에 완성을 보았다. 그때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마르지 않는 29만원으로 악명이 높은 전

두환 전 대통령의 아우인 전경환(1942~2021)이다.

 

검덕산 정상 400평 부지에 직경 40m의 원형 바닥을 닦고 그 위에 높이 15m, 13단으로 이루어진 화

강암 재질의 지도자탑을 세웠는데, 탑신은 전국 9도와 1개 특별시(서울), 3개 직할시(부산, 대구, 인

천)를 뜻한다고 한다.

8각형 바닥에 깔린 231개의 돌은 전국 231개 시,군,구에서 가져온 것으로 각 지역에서 국가, 지역 발

전을 위해 헌신하는 새마을지도자들의 화합과 단결을 뜻한다. 그리고 탑신 중 2개가 수직으로 결합된

형태는 도시 새마을운동과 농촌 새마을운동의 협동정신을 상징한다고 하며, 사각형의 탑신은 근면,

자조, 협동, 자립의 새마을정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3. 새마을지도자탑의 앞 모습

탑의 건립 의도와 의미는 좋지만 그 당시 새마을지도자중앙회장인 전경환이란 작자의 주도로 지어진

것이라 탑을 조성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꿀꺽했을 것이다. 그는 그의 형 못지 않게 많은 비리와 착복

을 저질렀으며, 인생 말년에는 막대한 빚을 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꽤 피곤하게 만들었으니 역시나 그

형에 그 동생이다.

 

4. 숲그늘에 묻힌 검덕산 서쪽 자락 숲길 (우장산둘레길)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검덕산 정상과 새마을지도자탑, 오른쪽은 우장산약수터와 우장산으로 이어진

다.

 

5. 잘 닦여진 검덕산 서쪽 자락 숲길 (우장산둘레길)

 

6. 검덕산의 재래식(?) 산길

산에 왔다면 조금은 울퉁불퉁해도 이런 흙길을 거니는 것이 좋다.

 

7. 검덕산과 우장산 중심부를 이어주는 생태다리 (우장산로 윗쪽)

 

8. 우장산(원당산) 북쪽 자락 숲길

강서구 한복판에 자리한 우장산은 해발 96.1m의 뫼로 내발산동과 화곡동에 걸쳐 있다. 개화산과 봉

제산, 증미산(염창산), 궁산, 수명산, 꿩고개산(치현산) 등과 더불어 강서구의 주요 지붕으로 옛날에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 양천고을(서울 강서구, 양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김포 고촌읍, 부천시 일부

지역) 현감이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은 사라졌음)

기우제는 3번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3번째 기우제를 올리는 날에 보통 비가 오기 때문에 미리 비옷을

준비해서 올라갔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우장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장산은 2개의 봉우리를 지니고 있는데, 남쪽 봉우리는 원당산(또는 우장산), 새마을지도자탑이 있
는 
북쪽 봉우리를 검덕산(검두산, 검지산)이라 부르며, 이들을 우장산이라 통합해서 부른다.

우장산에는 딱히 오래된 명소는 없으며, 검덕산 정상에 1986년에 세워진 새마을지도자탑이 우뚝 솟

있어 조촐하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산 주위로 3.5km 길이의 우장산둘레길이 닦여져 있으며, 산
일대
(359.435.2평방미터)는 우장산근린공원(우장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9. 우장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우장산둘레길 (우장산 서쪽 자락)

 

10. 우장산에서 바라본 화곡동 지역

왼쪽에 보이는 녹색 산줄기는 강서구의 동쪽 지붕인 봉제산이며, 그 너머로 관악산과 삼성산, 호암산

산줄기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11. 우장산둘레길 우장산 동쪽 자락 구간

 

12. 우장산 쪽동백나무 군락지 안내문

우장산에는 10,000평방미터 규모의 쪽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쪽동백나무가 언제부터 이곳에 뿌리

를 내린지는 우장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19세기 이후에 어찌어찌하여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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