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충주 호암토성(충주토성) '가'지구 충주 시내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암지구에는 근래 복원, 재현된 호암토성이 있다. 여기서는 토성 외에도 다양한 시대의 무덤과 가마터가 쏟아져 나왔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모두 사라져 땅속에 묻힌 것을 2013~2014년 호암택지지구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햇살을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 2개, 삼국시대 무덤 48기(석실묘 36기, 석곽묘 12기), 목탄가마 5기, 고려 토성, 고려 무덤 331기, 조선 기와가마 15기, 조선 무덤 1,074기가 나왔는데, 이를 통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호암동 지역에 살았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구석기시대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대 의 유적과 유물이 나와 충주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많이 제공해주었지만 ..

1. 충주 호암토성(충주토성) 구석기시대 유적 안내문 충주 시내의 남쪽 끝자락인 호암지구에 자리한 호암토성은 최근에 발견되어 복원, 재현된 토성 유적 이다. 이곳에서는 토성 외에 다양한 시대의 무덤과 가마터가 쏟아져 나왔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모두 사라져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2013~2014년 호암택지지구를 닦는 과정에서 다시 햇 살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는 구석기시대 문화층 2개, 삼국시대 무덤 48기(석실묘 36기, 석곽묘 12기), 목탄가마 5기, 고 려시대 토성, 고려 무덤 331기, 조선 기와가마 15기, 조선 무덤 1,074기가 나왔는데, 이를 통해 구석 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호암동 지역에 살았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구석기시대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 대의 유적과 유물이 나와 충주 ..

1. 창룡사로 인도하는 고든골길 충주 시내의 동쪽 뫼인 남산(금봉산) 서쪽 자락 280m 고지에 창룡사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다. 이곳 은 석종사 서쪽 산너머로 석종사로 이어지는 직동길에서 남산의 산주름 속으로 인도하는 고든골길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야 된다. 2. 푸른 숲에 감싸인 창룡사 가는 길(고든골길) 3. 석축 위에 높이 자리한 창룡사 경내 남산 서쪽 자락에 깃든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원효는 충주 지 역을 지나다가 객주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꿈에서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그를 쫓아가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수분을 찾고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리따운 처자를 만 났는데, 그녀가 표주박에 물을 떠주면서 '이곳이 참 좋지요' 그랬다..

1. 석종사 대웅전 앞계단 정연하게 펼쳐진 하얀 피부의 돌계단 끝에 석종사의 법당인 대웅전이 남산을 뒤에 두고 남쪽을 바라 보며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외부 기둥 전부를 춘양목으로 만들었다. 대웅전 현 판과 주련은 서예가인 동강 조수호 선생이 쓴 것이며, 내부에는 석가3존상과 후불탱, 신중탱 등이 봉 안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인간문화재 지위를 지닌 장인들이 조성했다. 그만큼 석종사에서 크게 심 혈을 기울여서 만든 이곳의 최대 걸작품이다. 2. 대웅전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 석종사 경내와 발치봉(550m)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남쪽 조망이 이곳의 백미로 꼽힌다. 비록 두 망막에 들어오는 것은 이게 전부이 지만 전통 방식으로 조성된 석종사의 가람 배치와..

1. 석종사 표석 충주 시내의 동쪽 지붕인 남산(금봉산, 635.6m) 남쪽 자락에 석종사란 절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화엄종을 내세운 화엄도량으로 남쪽으로 대향산(향로봉)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곳은 남극성과 북극 성 그리고 삼태육성이 대웅전 앞에서 한눈에 보이는 터이며 오청룡이 감싸고 있는 명당 자리로 명성 이 자자하다. 이곳에는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죽장사란 절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까지 그런데로 법등을 유지했다. 허나 1870년에 충주목사 조경로가 이곳과 창룡사를 부셔버리고 거기서 나온 목재와 석재로 화재로 무너진 충주 관헌(청녕헌, 제금당)과 충주읍성 보수에 사용했다. 창룡사는 일부라도 남았으나 죽장사는 완전히 망해버렸는데, 왜정 때는 절터 일대가 모두 개인 소유 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