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창룡사로 인도하는 고든골길

충주 시내의 동쪽 뫼인 남산(금봉산) 서쪽 자락 280m 고지에 창룡사가 포근히 깃들여져 있다. 이곳

은 석종사 서쪽 산너머로 석종사로 이어지는 직동길에서 남산의 산주름 속으로 인도하는 고든골길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야 된다.

 

2. 푸른 숲에 감싸인 창룡사 가는 길(고든골길)

 

3. 석축 위에 높이 자리한 창룡사 경내

남산 서쪽 자락에 깃든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원효는 충주 지

역을 지나다가 객주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꿈에서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그를 쫓아가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수분을 찾고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리따운 처자를 만

났는데, 그녀가 표주박에 물을 떠주면서

'이곳이 참 좋지요' 그랬다. 원효는 그 물을 받아마시니 정말 꿀맛 같았고,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원효는 꿈에 나온 여인이 관세음보살 누님이라 여기고 주변에 적당한 절 자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

다. 그래서 주변을 열심히 뒤적거리다가 현재 창룡사 자리에서 꿈에서 본 자리를 보고는 크게 기뻐

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창룡사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절 이름인 창룡은 푸른 용을 뜻한다.

허나 원효의 창건을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전혀 없는 실정이며, 다만 절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신라

기나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 나옹화상이 중건했다고 하며, 조선 중기에 서산대사가 중수해 대찰의 면모를 갖

었다. 1730년에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했으며, 그 시절까지만 해도 충주에서 꽤 크고 잘나갔던 절이

으나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가 화재로 소실된 충주 관아를 복구하고자 창룡사와 현재 석종사 자

리에 있던 죽장사를 부셔버리고 거기서 나온 목재와 석재로 관아와 충주읍성을 재건, 중수했다.

석종사는 그때 완전히 망했으나 창룡사는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선에서 끝났는데, 창룡사에서 가져

목재로 수비청을 세웠다. 그 수비청을 왜정 때 창룡사 주지였던 김추월이 매입해 충주 시내에 대

원사란 절을 세웠다.

 

1905년 여신도 박씨가 법당을 새로 지었고, 1913년 후불탱을 봉안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 1951년

지 동인이 중건하고 1975년 주지 도관이 중창했다. 그리고 1993년 주지 정도가 대웅전을 해체하

여 극락보전을 짓고, 칠성각을 철거하여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해 산신각(독성각, 칠성각), 요사 등 5~6동의 건물이 있으

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다층청석탑이 있다. 그 외에 1730년에 조성된 관세

음보살상과 19세기~20세기 초에 조성된 탱화 여러 점이 전하는데, 이중 월악산 신륵사에서 넘어

온 것이 꽤 된다.

 

4. 창룡사 경내를 받쳐든 석축 밑에 살짝 자리를 잡은 관세음보살상

 

5. 창룡사 경내로 인도하는 돌계단

 

6. 창룡사 다층청석탑

극락보전 뜨락에 자리한 다층청석탑은 이곳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이자 경내에서 가장 늙은 존재이다.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훨씬 작은 탑으로 35cm에 화강암 기단석 위에 탑을 올렸는데, 탑은 검은

피부로 점판암으로 만들었다.

탑은 탑신은 사라지고 지붕돌만 남아있는데, 1층 지붕돌 석재 밑면에는 연꽃잎이 위로 향한 앙련이

새겨져 있으며, 2층 이상의 지붕돌에는 4단의 지붕돌 받침이 있다. 그리고 지붕돌 가운데에서 찰주

공이 확인되었다. 탑이 심하게 망가져 각부의 부재가 온전치는 않으나 지붕돌 받침과 연화문 조각

등을 통해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 창룡사가 최소 고려 때 지어진 절임을 알려준다.

 

이 탑은 청석탑이라 불리는데, 탑이 짙은 청색 피부를 띠고 있어서 그렇다. 이런 청석탑은 천하에서

꽤 희귀한 것으로 해인사 원당암, 김제 금산사, 대구 동화사 염불암, 원주 보문사 등에 전하고 있으

며, 그런 희소성이 있음에도 계속 비지정문화재로 버려져 있다가 2006년에 뒤늦게나마 충북 지방문

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7. 작고 귀여운 모습의 다층청석탑

기단부를 합쳐도 1m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탑이다. 만약 탑신이 살아남았다면 최대 2m 정도 되었을

것이지만 지붕돌이 작다 보니 탑신도 그만큼 작았다.

 

8. 지붕돌과 기단석만 살아남은 다층청석탑

탑 머리에 있는 머리장식은 근래 달아놓은 것이라 세월을 예민하게 탄 탑신, 기단과 피부색이 크게 다

르다.

 

9. 근래 지어진 날씬한 모습의 7층석탑

 

10. 창룡사 극락보전

창룡사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1993년 대웅전을 부시고 그 자리에 극락

보전을 세운 것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11. 극락보전 밑에 자리한 5층석탑과 창룡사의 내력을 머금은 표석, 그리고 똥배 포대화상

 

12.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가운데 칸은 칠성각, 그 옆은 산신각과 독성각으로 각각 별도

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하여 1지붕 3가족 형태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으면 삼성각이

된다. 산신각에는 산신, 독성각에는 독성(나반존자), 칠성각에는 칠성(치성광여래)이 봉안되어 있으

며, 칠성각 현판만 특이하게 한글로 쓰여 있다. (독성각과 산신각 현판은 한문으로 되어 있음)

 

13. 푸른 잔디가 곱게 입혀진 극락보전 뜨락

뜨락 우측에 청석다층탑과 7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14. 팔작지붕을 휘날리는 창룡사 요사채 (선방, 종무소의 역할도 겸하고 있음)

 

15.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3존상

금동 피부의 아미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해 아미타3존상을 이룬다. 그들 뒤로 아미

타후불탱이 든든히 자리해 있으며, 그 위로 수려한 모습의 닫집이 걸려있다.

 

16. 극락보전 내부에 있는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과 아미타여래상, 그리고 색채감이 돋보이는 무독

귀왕과 도명존자상

 

17. 창룡사를 둘러보고 다시 속세로 나오다 (고든골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