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6.25시절 군부대 노무자들이 짊어졌던 탄약 상자 6,25 시절 국군은 전투가 벌어진 인근 마을에서 노무자를 모집했다. 보통 1개 대대에 50~60명의 노무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군보급품 수송을 주로 담당했다. 적들의 맹렬한 포화 속에서 국군이 지키고 있는 전방 기지와 고지로 탄약과 여러 보급품을 운반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2. 애국 청춘이여 영원하라 6.25 시절 총을 들고 참전한 어린 학생들도 많았는데, 그들을 학도의용군(학도병)이라 불렀다. 강 제 징집된 경우도 많았지만 자발적인 참여도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계급과 군번도 없이 각 부대에 편입되어 전투 및 지원 업무를 맡았고, 여학생들도 소수나마 참전했다. 학도병들은 기본적인 소총 사격술과 수류탄 투척 요..

1. 6.25시절에 쓰인 빛바랜 소총들 2. 6.25전쟁 칠곡의 55일 전쟁사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역에서 일제히 총반격을 개시했다. 9월 23 일 북한 괴수인 김일성이 북한군에게 총퇴각 명령을 내리면서 전세는 역전되었고, 인천에 상륙하 여 서울 탈환 작전을 벌이고 있는 아군과 신속히 연결하고자 9월 24일 낙동강을 건너 맹렬히 북진 했다. 3. 금무봉 전투와 미군의 희생 (1950,8,9~8,10일) 8월9일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 제3사단은 칠곡의 금무봉을 점령했다. 그것들이 미국 제1기병사단 의 퇴로를 차단하고 남진할 경우 임시수도였던 대구가 함락 위기에 놓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 이었다. 하여 금무봉을 탈환하고자 미국 제7기병연대가 공격을 가했으나 실패했다. 8월1..

1. 호국전시관에 있는 총쏘기 체험 코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체험 코너로 총을 들고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총쏘기 게임이 시작된 다. (비비탄 같은 것을 쓰는 총은 아님) 나도 총을 들고 게임에 임했는데 망막이 침침하고 운동신 경도 거의 꽝 수준이라 성적이 영 좋지 못했다. 2. 1968년 왜관교 건설 당시 사진(왼쪽)과 6.25시절 파괴되어 주저앉은 왜관교(오른쪽) 3. 6.25시절 수운교 경덕문 앞에서 단체 촬영에 임하고 있는 어린이들 대전 유성구 자운동에 있는 수운교본부 경덕문 앞에서 담은 사진이다. (사진에 담긴 어린이들은 현 재 70~80대 노인들 ㅠ) 4. 6.25시절 대구역 주변 풍경 5. 미군 전투기에서 사진 촬영에 임하는 노인들 갓을 쓴 하얀 도포 복장의 노인들과 하얀 전투기의 환상..

1.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낙동폭포 낙동폭포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 닦여진 주름진 인공폭포이다. 인공폭포라는 한계상 하루종 일 폭포수를 흘리지 않고, 보통 12시부터 19시까지만 흘리는데, 4~6월과 9~10월은 휴일과 공휴일 에만 폭포를 움직이며, 7~8월은 평일까지 폭포를 굴린다. 다만 11~3월과 비가 오는 날에는 폭포를 굴리지 않는다. (4~8월은 50분 굴리고 10분 쉬며, 9~10월은 30분 굴리고 30분 쉼) 2.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안내도 낙동강을 끼고 있는 칠곡군 왜관은 6.25시절 치열한 격전지의 하나로 꼽힌다. 1950년 6월 25일 북 한 잡것들의 무단 침략으로 시작된 6.25전쟁(한국전쟁)은 거의 일방적으로 털리면서 순식간에 포 항 북쪽, 낙동강 중류, 창녕까지 밀렸다. 즉 포항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