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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이 상큼하게 깃든 대한의원(구 대한의원 본관) 뒷뜨락

 

2. 대한의원 뒷쪽에 있는 대한의원 병동터

대한의원은 1906년에 짓기 시작하여 1908년에 완성을 보았다. 탁지부 건축소가 설계한 것으로 그 시

절 조선은행 본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과 더불어 서울의 3대 명물로 꼽혔는데, 대한의원 본관은

벽돌조의 2층 건물로 495평 규모이며, 병동은 단층 벽돌조건물로 7개 동 150병상을 지녔다.

 

대한의원 본관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병동은 병원 확장 과정에서 철거되고 말았는데, 철

거된 병동 중 대한의원 본관과 서울대병원 본관 사이에 있던 건물(1병동)터만 남겨 옛 서울대병원의

역사 유물로 삼았다.

 

3. 대한의원의 명물, 건물 꼭대기에 달린 시계탑

돔양식의 둥근 지붕을 얹힌 네오바로크풍의 시계탑으로 시계는 지금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그 밑

에 태극마크가 작게 달려 있으며, 시계탑 부분은 통제구역이라 이렇게 밑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

해야 된다.

 

4. 밑도리만 남은 대한의원 병동터

 

5. 가까이서 바라본 대한의원 병동터 (1병동터)

병동터 주위로 유리막 난간을 둘러놓아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6. 대한의원 병동터 안내문과 그의 구조, 왕년의 흑백사진들

대한의원 병동은 감염문제를 고려해 파빌리온 형태로 조성된 건물이다. 본관 배후에서 환자 수용 역

할을 했는데, 병동 구역에는 2등 병실로 이루어진 병동 4개동과 3등 병실로 이루어진 병동 2개 동이

있었으며, 이들은 2개의 회랑으로 본관과 이어졌다. 2등 병실은 6~8인실, 3등 병실은 16인실로 계획

되었다.

각 병동은 벽돌로 쌓은 단층 건물로 지면과 건물 바닥 사이에 공간을 두어 통풍과 방습, 방충 기능을

고려했다. 건물 축조에 쓰인 벽돌은 대한제국 탁지부 건축소 산하의 연와제조소에서 만든 것으로 벽

체 하부에는 깬돌과 콘크리트를 소재로 줄기초를 마련해 기초를 닦았다.

 

1935년 병실 노후화를 해결하고자 기존의 서쪽 병동 일부와 동쪽 병동, 그리고 전염병동을 부시고 동

간격을 넓게 하여 새로 지었다. 이곳(대한의원 본관과 서울대병원 본관 사이)에 보존된 서1병동 구역

은 1935년 신축공사에서 제외된 채, 유지되어 오다가 1956년 증축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1935년에

증축된 동1병동의 서쪽 부분과 연결되어 '1병동'으로 통합되었다.

 

병동 건물은 비록 사라졌으나 1908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내부 공간의 변화를 알려주는 건물 기

초부가 남아있어 근대 병원 건축 양식과 기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 되어준다.

 

7. 대한의원 (대한의원 본관)

창경궁로와 대학로 사이에 낮게 솟은 언덕 정상부에 붉은 피부를 지닌 고즈넉한 모습의 대한의원 건

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창경궁의 동쪽 후원인 함춘원이 있던 곳으로 함춘원

은 창경궁로 동쪽 언덕 일대(서울대병원, 서울대연건캠퍼스 일대)와 대학로까지 덩치를 걸치고 있던

너른 공간이다.

 

1906년 순종은 함춘원의 일부를 떼어내 의정부 직할의 대한의원을 세웠다. 그 대한의원은 국립 의료

기관인 광제원과 국립의학교육기관으로 안국동에 있던 의학교와 그 부속병원, 그리고 대한적십자병

원을 통합한 것으로 1906년에 짓기 시작해 1908년 10월 완성을 보았다. 지금은 본관만 있지만 예전

에는 2층 본관 건물 외에 벽돌조 단층 병실 7개동과 부속건물을 지닌 큰 규모였다.

1910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원 본관이 되었으며,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의 본관으

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본관으로 쓰였으며, 1978년에 바로 뒤쪽에 새로운

본관이 마련되면서 본관과 병원의 역할을 그곳으로 넘기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지금은 의학박

물관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건물 내부는 속복도형으로 복도 양쪽에 방이 있으며, 중앙과 측면의 목조 계단은 원형이 남아있다. 건

물 중앙에 돔양식의 둥근 지붕을 얹힌 네오바로크풍의 시계탑과 르네상스 양식의 벽면, 자동차가 들어

갈 수 있는 현관 포치 등 다양한 서양 건축 양식이 들어있으며, 왜정 말기에 왜정이 동판으로 제작된

건물 지붕을 모두 뜯어가는 만행을 저지르자 부득이 함석으로 지붕을 떼웠다. 그러다가 2001년 주식

회사 풍산에서 동판 지붕을 시공, 기증하여 예전에 모습을 되찾았다.

 

8. 남쪽 정면에서 바라본 대한의원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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