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도시자연공원에서 불국사로 인도하는 숲길은 평탄하고 순하기 그지 없다. 옥수수와 온갖 나물, 과일을 파는 아줌마 행상들이 중간중간 자리하여 나그네의 오감을 잠깐씩 흥분시키며 솔 솔 나부끼는 산바람은 가을임에도 버젓히 남아 괴롭히는 더위의 기운을 싹 털어간다.
산길 중간에는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밭이 펼쳐져 있다. 그저 높은 빌딩과 아파트, 호화 주택이 격하게 연상되는 강남스타일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 여기가 과연 서울 강남이 맞는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린다. 물론 서울이라고 꼭 키다리 건물과 사람, 차량으로 번잡한 거리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서울에 대한 그런 뿌리 깊은 고정관념 때문에 이런 풍경에는 다소 어색해들 한다. 그런 밭 너머로 강남 시내가 이곳을 삼킬 듯 노려보고 있어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개발의 칼질 이 밀려오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들도 이곳이 걱정이 되는지 잠시 길 을 멈추고 강남을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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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나올 것 같지 않던 불국사가 숲속에서 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산사(山寺)들은 식수 해결을 위해 샘터를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불국사도 경내 밑 에 약수터를 내밀고 중생을 맞이하고 있다. (가뭄과 수질 악화로 못마시는 경우가 자주 있음)
물의 낭비를 막고자 수도꼭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졸고 있는 붉은 바가지를 깨워 물을 가 득 담아 들이키니 목구멍이 시원하다며 쾌재를 부른다. 그렇게 약수를 마시고 경내로 인도하는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약사보전과 그곳의 주인 약사불(불국사 석불좌상)과 시선이 딱 마주 친다. 그럼 여기서 잠시 불국사의 가람배치와 내력을 흔쾌히 살펴보도록 하자.
대모산 북쪽 자락에는 이름도 참 아름답고 외우기도 참 좋은 불국사가 조용히 안겨져 있다. 흔 히 불국사하면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유명한 경주(慶州) 불국사를 100% 생각하기 마련이라 불국 사에 간다고 하면 따지지도 않고 다들 경주에 가냐고 묻는다. 허나 부처 형님의 나라를 뜻하는 '불국'이란 이름을 경주 불국사 혼자서만 누리면 어디 쓰겠는가?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불 국사' 간판을 가진 절이 무려 수십 곳이 넘었다. (그나마 오래된 절은 경주와 대모산 불국사가 고작임)
'불국사' 이름의 절 중, 경주 다음으로 2위(1위와 2위의 차이가 넘사벽 수준임)라고 볼 수 있는 대모산 불국사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한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 태고종(太古宗) 소속이다. 예전 2008년에 여러 번 인연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2008년 불국사 답사기 보기) 상당히 많은 세월 이 흘렀음에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법당(法堂)인 약사보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나한전, 가건물 1채를 포함하여 4~5동의 건물이 여전히 경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지형상 북쪽인 강남을 바라보고 있다. 가람(伽藍)배치는 법당 앞에 석탑 1기를 둔1법당 1탑 배치로 절에 흔히 있는 일주문(一柱門) 따위는 없다. 게다가 절이 들어앉은 위치도 사세 확 장에 썩 용이한 지형이 아니라서 새로 건물을 짓기에도 여의치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불국사 는 언제 법등(法燈)을 켰을까?
이 절은 1352년(공민왕 1년)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창건하여 약사사(藥師寺, 약사절)라 했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설화에 따르면 절 아랫마을(일원동)에서 박씨 농부가 경작을 하고 있었 는데 소가 논 한가운데서 나아가지 않아 살펴보니 글쎄 땅 속에 석불(지금의 불국사 석불좌상) 이 있는 것이었다. 하여 바깥으로 꺼내 가까운 봉은사(奉恩寺)에 넘기려고 했으나 석불이 거부 반응을 보이며 꿈쩍도 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사절로 보내려고 하니 갑자기 석불이 지푸라 기보다 가벼워져 그곳으로 옮겼다. 그때 불상이 발견된 논을 부처논이라 불렀고 그 옆을 흐르는 개천을 부처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절 아랫마을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석불을 발견하여 마을 뒷산에 자리를 만들어 봉안했는데, 진정국사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1385년에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워 약사절(약사 사)이라 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설화의 내용처럼 과연 진정국사가 고려 말에 창건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석 불은 고려 후기 것으로 판명이 난 상태라 창건 시기도 그런데로 맞아보인다. 또한 발에서 발견 되었다는 설화를 통해 농사를 기반으로 한 지역 사람들이나 지역 세력가의 발원으로 석불이 조 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국사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옛 절터(일원동 246-12)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불국사의 원래 자리라고 한다. 허나 언제쯤 현 위치로 옮겨졌는지는 귀신도 알 수 없는 실정이나 창건 이후로 500년 동안 마땅한 흔적을 남기지 못하다가 1874년 고종(高宗)의 지원으로 중창을 했다고 전하 며, 그때 현 자리로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모산 남쪽 헌인릉(獻仁陵)에서 물이 나오자 고종은 그곳과 가까운 약사사 주지에게 의견 을 물었다고 한다. 이에 주지승이 대모산 동쪽(현 성지약수터)의 수맥을 끊으면 된다고 답을 올 려 그렇게 하니 과연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고종은 고마움의 뜻으로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 '불국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고종의 꿈에 헌릉(獻陵)에 묻힌 태종(太宗)이 자주 나타나자 그를 달래고자 약사사 를 증축하고 불국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6.25전쟁 때 절이 처참히 파괴되고 오로지 창건 설화에 나온 석불만 살아남았는데, 1963년에 안 양 삼막사(三幕寺)에서 온 권영선 승려가 중창해 법당과 칠성각, 나한전을 세웠다. 이후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1993년부터 3년 동안 불사를 벌여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싹 갈고 탱화를 새로 제작하여 지금에 이른다. 강남에서는 봉은사 다음으로 오래된 절로 신도수가 무려 2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강남구의 거의 유일한 산사로 고색의 향기는 말끔히 씻겨 내려가 과연 오래된 절인지 의문이 날 정도이지만 이곳의 유일한 보물이자 지정문화재인 오래된 석불이 전해오고 있어 나름 오래된 절 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원동 주택가에서 불과 도보 20분 남짓 거리로 접근도 괜찮다. 시 내와 가깝긴 하지만 숲에 푹 묻힌 탓에 고적하고 아늑한 산사의 멋과 여유를 누리기에 그리 부 족함은 없으며, 으리으리한 경주 불국사와 달리 두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조촐하여 은근히 정 감이 간다.
절을 둘러보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강남의 뒷동산인 대모산도 올라가보자. 산세도 대체로 완 만하고 그리 높지 않아 가볍게 산책 삼아 오를 수 있으며, 정상까지 30분 이내면 충분하다. 정 상을 찍고 개포동이나 일원동, 수서역, 자곡동, 염곡동 방면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정상에는 옛 대모산성(大母山城)의 흔적이 아련히 전한다. |
돌이 잔뜩 깔린 약사보전 뜨락 우측(서쪽)에는 'ㄱ'자 모습의 삼성각이 있다. 경내에서 가장 커 다란 건물로 겉으로 보면 1층 같지만 실은 2층이며, 1층에는 공양간과 요사(寮舍), 선방(禪房) 등이 담겨져 있고, 2층은 삼성각과 요사로 쓰인다. 원래 칠성각(七星閣)이던 것을 1993년에 새 로 지은 것으로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 나반존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
5존불 가운데 가장 맏이는 가운데에 자리한 약사불이다. 불국사의 오랜 내력을 증명해주는 상징 이자 창건설화에도 등장하는 존재로 대모산 불국사의 존재를 귀뜀해주고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 인 존재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주불(主佛)답게 좌우에 거느린 보살상보다 대좌의 높이가 높다. 그의 우측에는 육환장 (六環杖)을 든 승려머리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약사불 좌측에는 보관(寶冠)을 눌러쓰고 가슴 에 금색 장식을 단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있으며, 양쪽 끝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앉아있다 . 그리고 그들 뒤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도드라지게 돋음새김으로 조성된 후불탱이 든든히 자리 해 있다.
불국사 석불좌상이라 불리는 이 약사불은 앞서 창건설화에서 이른 데로 경작지에서 나왔다고 전 한다. (지역 농민이나 지역 세력가의 발원으로 조성된 것을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음) 불국사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이곳의 든든한 밥줄로 그를 내세워 약사도량을 칭하고 있다. 절에 서는 약사불(약사여래)이라 하여 그 정성이 참 대단하지만 고려 때 약사불과는 다소 차이가 있 어 처음부터 약사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래는 아미타불(阿彌陀佛)로 여겨진다. 그러던 것을 나중에 약사불로 강제 전환시킨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높이는 79.5cm로 머리의 크기가 신체에 대비하여 너무 크다. 하얀 피부의 몸과 달리 머 리는 검은 색이며 꼽슬인 나발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로 보이는 하얀 혹이 솟아 있으며 홍 예처럼 구부러진 눈썹 사이로 백호가 있다. 지그시 뜬 두 눈으로 중생을 보는 약사불의 표정은 그야말로 인자함이 느껴진다. 오뚝 솟은 코와 붉은 입술, 살이 두툼해 보이는 양쪽 볼은 정말 손으로 비벼보고 싶다. 두 귀는 중생들의 소망을 하나도 빠짐없이 접수하려는 듯, 안테나처럼 크다. 그의 몸에 걸쳐진 법의(法衣)는 석굴암(石窟庵)의 본존불처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런 형태를 어려운 말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 놓여진 두 손은 선정인( 禪定印)을 취하고 있으며, 손 위로 알 모양의 빨간색 물건이 있는데, 이는 약사불이 늘 지니고 다닌다는 약합(藥盒)이다. 약합에는 중생을 치료하기 위한 그만의 치료제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맨돌의 불상이었으나 나중에 호분(胡粉, 조개껍데기를 태워서 만든 것으로 여자들 화 장용으로 많이 사용됨)으로 하얗게 분을 칠하면서 백불이 되었으며, 그때 원래 모습을 많이 잃 었다. 나말여초(羅末麗初) 시절 유행했던 불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머리와 신체의 비례가 맞 지 않으며, 자연스럽지 않은 옷주름 조각 등으로 고려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 대모산 불국사 찾아가기 (2016년 10월 기준) * 지하철 3호선 일원역 5번 출구에서 6분 정도 걸으면 대모산입구교차로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3분 정도 들어가면 불국사로 인도하는 산길이 나온다. (일원역에서 불국사까지 도보 25분) * 서울 시내(광화문, 시청, 서울역, 한남동, 여의도, 신림역, 남부터미널, 고속터미널, 압구정 역, 강남역, 삼성역)에서 333, 401, 402, 461, 3425,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일원동 한솔아 파트 하차, 바로 보이는 대모산입구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도보 20분) * 수서역(3호선, 분당선/1번 출구)과 가락시장역(3,8호선/1번 출구), 잠실역, 성남시 등지에서 333, 401, 402, 461, 3413, 3425,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푸른마을아파트 하차, 바로 옆에 대모산입구교차로가 있다.(도보 20분)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산442 (광평로10길 30-71 ☎ 02-445-4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