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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의 지붕을 거닐다. 대모산~구룡산 가을 나들이 '

▲ 구룡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하늘이 열리고 천하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유서깊은 개천절(開天節, 10월 3일)을 맞이하여
아는 후배와 함께 강남의 듬직한 뒷산, 대모산을 찾았다. 대모산과 개천절은 서로 연관이
있는 존재는 아니나 그날따라 그곳이 격하게 땡겨 그 본능에 따라 대모산(大母山)으로 흔
쾌히 길을 잡았다.

3호선 일원역에서 길을 시작하여 대모산입구교차로에서 남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대모산도
시자연공원이 모습을 비춘다. 여기서부터 대모산의 포근한 품으로 파고들면 되며, 우리는
대모산의 유일한 고찰(古刹)인 불국사로 우선 길을 잡았다.


 

♠ 대모산 북쪽 자락에 둥지를 튼 오래된 절집
~ 대모산 불국사(大母山 佛國寺)

▲ 대모산 북쪽 자락에 펼쳐진 밭과 비닐하우스, 그 너머로
강남시내가 빼꼼 고개를 들어보인다.


대모산도시자연공원에서 불국사로 인도하는 숲길은 평탄하고 순하기 그지 없다. 옥수수와 온갖
나물, 과일을 파는 아줌마 행상들이 중간중간 자리하여 나그네의 오감을 잠깐씩 흥분시키며 솔
솔 나부끼는 산바람은 가을임에도 버젓히 남아 괴롭히는 더위의 기운을 싹 털어간다.

산길 중간에는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밭이 펼쳐져 있다. 그저 높은 빌딩과 아파트, 호화 주택이
격하게 연상되는 강남스타일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 여기가 과연 서울 강남이 맞는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린다. 물론 서울이라고 꼭 키다리 건물과 사람, 차량으로 번잡한 거리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서울에 대한 그런 뿌리 깊은 고정관념 때문에 이런 풍경에는 다소
어색해들 한다.
그런 밭 너머로 강남 시내가 이곳을 삼킬 듯 노려보고 있어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개발의 칼질
이 밀려오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들도 이곳이 걱정이 되는지 잠시 길
을 멈추고 강남을 굽어본다.


▲ 불국사 약수터

숲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나올 것 같지 않던 불국사가 숲속에서 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산사(山寺)들은 식수 해결을 위해 샘터를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불국사도 경내 밑
에 약수터를 내밀고 중생을 맞이하고 있다. (가뭄과 수질 악화로 못마시는 경우가 자주 있음)

물의 낭비를 막고자 수도꼭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졸고 있는 붉은 바가지를 깨워 물을 가
득 담아 들이키니 목구멍이 시원하다며 쾌재를 부른다. 그렇게 약수를 마시고 경내로 인도하는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약사보전과 그곳의 주인 약사불(불국사 석불좌상)과 시선이 딱 마주
친다. 그럼 여기서 잠시 불국사의 가람배치와 내력을 흔쾌히 살펴보도록 하자.

대모산 북쪽 자락에는 이름도 참 아름답고 외우기도 참 좋은 불국사가 조용히 안겨져 있다. 흔
히 불국사하면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유명한 경주(慶州) 불국사를 100% 생각하기 마련이라 불국
사에 간다고 하면 따지지도 않고 다들 경주에 가냐고 묻는다. 허나 부처 형님의 나라를 뜻하는
'불국'이란 이름을 경주 불국사 혼자서만 누리면 어디 쓰겠는가?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불
국사' 간판을 가진 절이 무려 수십 곳이 넘었다. (그나마 오래된 절은 경주와 대모산 불국사가
고작임)

'불국사' 이름의 절 중, 경주 다음으로 2위(1위와 2위의 차이가 넘사벽 수준임)라고 볼 수 있는
대모산 불국사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한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 태고종(太古宗) 소속이다. 예전
2008년에 여러 번 인연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2008년 불국사 답사기 보기) 상당히 많은 세월
이 흘렀음에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법당(法堂)인 약사보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나한전, 가건물 1채를 포함하여 4~5동의 건물이 여전히 경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지형상 북쪽인 강남을 바라보고 있다. 가람(伽藍)배치는 법당 앞에 석탑 1기를 둔1법당
1탑 배치로 절에 흔히 있는 일주문(一柱門) 따위는 없다. 게다가 절이 들어앉은 위치도 사세 확
장에 썩 용이한 지형이 아니라서 새로 건물을 짓기에도 여의치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불국사
는 언제 법등(法燈)을 켰을까?

이 절은 1352년(공민왕 1년)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창건하여 약사사(藥師寺, 약사절)라 했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설화에 따르면 절 아랫마을(일원동)에서 박씨 농부가 경작을 하고 있었
는데 소가 논 한가운데서 나아가지 않아 살펴보니 글쎄 땅 속에 석불(지금의 불국사 석불좌상)
이 있는 것이었다. 하여 바깥으로 꺼내 가까운 봉은사(奉恩寺)에 넘기려고 했으나 석불이 거부
반응을 보이며 꿈쩍도 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사절로 보내려고 하니 갑자기 석불이 지푸라
기보다 가벼워져 그곳으로 옮겼다. 그때 불상이 발견된 논을 부처논이라 불렀고 그 옆을 흐르는
개천을 부처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절 아랫마을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석불을 발견하여 마을 뒷산에 자리를 만들어
봉안했는데, 진정국사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1385년에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워 약사절(약사
사)이라 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설화의 내용처럼 과연 진정국사가 고려 말에 창건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석
불은 고려 후기 것으로 판명이 난 상태라 창건 시기도 그런데로 맞아보인다. 또한 발에서 발견
되었다는 설화를 통해 농사를 기반으로 한 지역 사람들이나 지역 세력가의 발원으로 석불이 조
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국사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옛 절터(일원동 246-12)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불국사의 원래
자리라고 한다. 허나 언제쯤 현 위치로 옮겨졌는지는 귀신도 알 수 없는 실정이나 창건 이후로
500년 동안 마땅한 흔적을 남기지 못하다가 1874년 고종(高宗)의 지원으로 중창을 했다고 전하
며, 그때 현 자리로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모산 남쪽 헌인릉(獻仁陵)에서 물이 나오자 고종은 그곳과 가까운 약사사 주지에게 의견
을 물었다고 한다. 이에 주지승이 대모산 동쪽(현 성지약수터)의 수맥을 끊으면 된다고 답을 올
려 그렇게 하니 과연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고종은 고마움의 뜻으로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 '불국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고종의 꿈에 헌릉(獻陵)에 묻힌 태종(太宗)이 자주 나타나자 그를 달래고자 약사사
를 증축하고 불국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6.25전쟁 때 절이 처참히 파괴되고 오로지 창건 설화에 나온 석불만 살아남았는데, 1963년에 안
양 삼막사(三幕寺)에서 온 권영선 승려가 중창해 법당과 칠성각, 나한전을 세웠다. 이후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1993년부터 3년 동안 불사를 벌여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싹 갈고 탱화를
새로 제작하여 지금에 이른다. 강남에서는 봉은사 다음으로 오래된 절로 신도수가 무려 2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강남구의 거의 유일한 산사로 고색의 향기는 말끔히 씻겨 내려가 과연 오래된 절인지 의문이 날
정도이지만 이곳의 유일한 보물이자 지정문화재인 오래된 석불이 전해오고 있어 나름 오래된 절
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원동 주택가에서 불과 도보 20분 남짓 거리로 접근도 괜찮다. 시
내와 가깝긴 하지만 숲에 푹 묻힌 탓에 고적하고 아늑한 산사의 멋과 여유를 누리기에 그리 부
족함은 없으며, 으리으리한 경주 불국사와 달리 두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조촐하여 은근히 정
감이 간다.

절을 둘러보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강남의 뒷동산인 대모산도 올라가보자. 산세도 대체로 완
만하고 그리 높지 않아 가볍게 산책 삼아 오를 수 있으며, 정상까지 30분 이내면 충분하다. 정
상을 찍고 개포동이나 일원동, 수서역, 자곡동, 염곡동 방면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정상에는
옛 대모산성(大母山城)의 흔적이 아련히 전한다.


▲ 불국사 삼성각(三聖閣)

돌이 잔뜩 깔린 약사보전 뜨락 우측(서쪽)에는 'ㄱ'자 모습의 삼성각이 있다. 경내에서 가장 커
다란 건물로 겉으로 보면 1층 같지만 실은 2층이며, 1층에는 공양간과 요사(寮舍), 선방(禪房)
등이 담겨져 있고, 2층은 삼성각과 요사로 쓰인다. 원래 칠성각(七星閣)이던 것을 1993년에 새
로 지은 것으로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 나반존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나한전(羅漢殿)

약사보전 뒷쪽 높은 곳에는 1964년에 지어진 나한전이 아주 조촐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다. 정면
과 측면이 달랑 1칸에 불과한 맞배지붕 건물로 고색의 향기가 메말라간 불국사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된 불전인데 약사보전과 나란히 마르지 않는 샘인 강남(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불단에는 석가불과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로 이루어진 3존불을 비롯해 부처의
열성 제자인 16나한(羅漢)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포진하여 건물 내부가 꽉 차보인다.


▲ 나한전 석가3존불 - 온후한 표정으로 삶에 지쳐 찾아온 중생을 맞이한다.

▲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선 16나한의 위엄

▲ 불국사 약사보전(藥師寶殿)

약사보전(약사전)은 불국사의 중심 건물(법당)이다. 절은 정말 손바닥만한데 반해 법당과 삼성
각은 다소 덩치가 있어서 경내가 다소 협소해 보인다.
약사전 앞에는 근래에 지어진 5층석탑이 하얀 피부를 자랑하며 서 있고, 건물로 오르는 돌계단
좌우에는 수호의 의무를 지닌 돌사자 2기가 자리해 있어 가까이서 보면 사자의 탈을 쓴 고양이
처럼 정말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절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화마(火魔)도 그들을 보고는
찾아온 본분도 싹 잊고 그냥 돌아갈 것이다.


▲ 단란한 모습의 그들, 3존불도 아닌 무려 약사5존불

약사전 불단에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3존불도 아닌 무려 5존불을 봉안해 눈길을 끈다. 왜 특이하
게 5존불로 불단을 장식했을까? 실제 다른 절에서는 3존불 주변에 별도의 불/보살상을 두는 사
례도 많고 불국사 같은 경우는 경내 확장이 여의치 못해 다른 여래상이나 보살상을 중심으로 한
불전을 더 두기가 곤란하므로 그 역할을 약사전이 싸그리 도맡고 있는 것이다.
즉 약사전이라고 해서 약사불만 집중적으로 취급해야 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불단 가운데에
약사불을 높게 배치하고 그 좌우로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 4개의 협시보살상을 배치하여 5존불
로 구성했다.

이들 5존불은 한결같이 하얀 피부를 지닌 백불(白佛)로 돌로 만든 석불이다. 자신을 찾은 중생
을 환한 표정으로 맞이하는 그들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다. 그들의 미소
에 아무리 악귀라 한들 반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5존불은 모두 연꽃이 입혀진 연화대(蓮花臺)에 앉아들 있으며 연꽃은 하늘을 우러러 꽃잎을 벌
린 앙련(仰蓮)이다.


▲ 불국사 석불좌상(약사불, 가운데 석불) - 서울 지방문화재자료 36호

5존불 가운데 가장 맏이는 가운데에 자리한 약사불이다. 불국사의 오랜 내력을 증명해주는 상징
이자 창건설화에도 등장하는 존재로 대모산 불국사의 존재를 귀뜀해주고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
인 존재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주불(主佛)답게 좌우에 거느린 보살상보다 대좌의 높이가 높다. 그의 우측에는 육환장
(六環杖)을 든 승려머리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약사불 좌측에는 보관(寶冠)을 눌러쓰고 가슴
에 금색 장식을 단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있으며, 양쪽 끝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앉아있다
. 그리고 그들 뒤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도드라지게 돋음새김으로 조성된 후불탱이 든든히 자리
해 있다.

불국사 석불좌상이라 불리는 이 약사불은 앞서 창건설화에서 이른 데로 경작지에서 나왔다고 전
한다. (지역 농민이나 지역 세력가의 발원으로 조성된 것을 그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음)
불국사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이곳의 든든한 밥줄로 그를 내세워 약사도량을 칭하고 있다. 절에
서는 약사불(약사여래)이라 하여 그 정성이 참 대단하지만 고려 때 약사불과는 다소 차이가 있
어 처음부터 약사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래는 아미타불(阿彌陀佛)로 여겨진다. 그러던
것을 나중에 약사불로 강제 전환시킨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높이는 79.5cm로 머리의 크기가 신체에 대비하여 너무 크다. 하얀 피부의 몸과 달리 머
리는 검은 색이며 꼽슬인 나발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로 보이는 하얀 혹이 솟아 있으며 홍
예처럼 구부러진 눈썹 사이로 백호가 있다. 지그시 뜬 두 눈으로 중생을 보는 약사불의 표정은
그야말로 인자함이 느껴진다. 오뚝 솟은 코와 붉은 입술, 살이 두툼해 보이는 양쪽 볼은 정말
손으로 비벼보고 싶다. 두 귀는 중생들의 소망을 하나도 빠짐없이 접수하려는 듯, 안테나처럼
크다.
그의 몸에 걸쳐진 법의(法衣)는 석굴암(石窟庵)의 본존불처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런 형태를 어려운 말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 놓여진 두 손은 선정인(
禪定印)을 취하고 있으며, 손 위로 알 모양의 빨간색 물건이 있는데, 이는 약사불이 늘 지니고
다닌다는 약합(藥盒)이다. 약합에는 중생을 치료하기 위한 그만의 치료제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맨돌의 불상이었으나 나중에 호분(胡粉, 조개껍데기를 태워서 만든 것으로 여자들 화
장용으로 많이 사용됨)
으로 하얗게 분을 칠하면서 백불이 되었으며, 그때 원래 모습을 많이 잃
었다. 나말여초(羅末麗初) 시절 유행했던 불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머리와 신체의 비례가 맞
지 않으며, 자연스럽지 않은 옷주름 조각 등으로 고려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 대모산 불국사 찾아가기 (2016년 10월 기준)
* 지하철 3호선 일원역 5번 출구에서 6분 정도 걸으면 대모산입구교차로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3분 정도 들어가면 불국사로 인도하는 산길이 나온다. (일원역에서 불국사까지 도보 25분)
* 서울 시내(광화문, 시청, 서울역, 한남동, 여의도, 신림역, 남부터미널, 고속터미널, 압구정
역, 강남역, 삼성역)에서 333, 401
, 402, 461, 3425,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일원동 한솔아
파트 하차, 바로 보이는 대모산입구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도보 20분)
* 수서역(3호선, 분당선/1번 출구)과 가락시장역(3,8호선/1번 출구), 잠실역, 성남시 등지에서
333, 401, 402, 461, 3413, 3425,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푸른마을아파트 하차, 바로 옆에
대모산입구교차로가 있다.(도보 20분)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산442
(광평로10길 30-71 ☎ 02-445-4543)


 

♠ 대모산(大母山, 293m) 오르기

▲ 나무가 무성한 대모산 정상(293m)

약사불에게 약소하지만 조그만 소망 하나를 들이밀고 법당을 나왔다. 두 눈에 쏙 들어올 정도
로 아담한 불국사, 3분이면 다 둘러보고도 남음이 있으나, 강남을 앞뜰로 삼으며 산자락에 아
늑히 녹아있는 산사로 석불좌상의 미소 덕분인지 20분 정도를 머물다가 다음 인연을 고대하며
대모산 정상으로 길을 향했다.
불국사에서 정상까지는 넉넉잡아 25분 정도 걸리는데 산길은 정상 서쪽을 제외하고는 그리 각
박하지는 않다. 게다가 산길도 잘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 길눈이 되어주
면서 헤맬 염려는 별로 없다.

보통 하늘을 이고 있는 뫼의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거나 잡초로 이루어진 대머리같은 지형
인데 반해 대모산 정상은 나무가 무성해 하늘이 절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무심기 사
업으로 정상까지 싹 나무로 덮은 모양이다. 정상에 오르면 조망을 바라보는 맛이 참 쏠쏠한데,
그 맛을 더하고자 정상 북쪽 가파른 곳에 조망대를 만들어 천하를 굽어볼 수 있게 했다.
대모산 조망대에 오르면 앞에 한강을 두고 뒤에 대모산과 구룡산, 우면산(牛眠山)을 둔 전형적
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강남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송파구, 서쪽으로 서초구 등이
보이고, 한강 너머로 성동구와 광진구, 중구, 동대문구, 멀리는 도봉산(道峯山)과 북한산(삼각
산), 수락산(水落山), 불암산(佛巖山)까지 두 눈에 들어와 조망이 제법 일품이다. 강남에서 가
장 하늘과 맞닿은 곳이고 서쪽에 있는 구룡산 외에는 주변이 상당수 평지라 조망의 깊이도 클
수 밖에 없다.

강남의 듬직한 뒷산이자 포근한 쉼터로 단단히 자리를 잡은 대모산은 1977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본격적으로 공원으로 꾸며진 것은 1989년 이후다. 개포동과 일원동, 수서동, 자
곡동, 내곡동(內谷洞), 세곡동(細谷洞)에 넓게 걸쳐있는 산으로 1980년대 개포동 개발 이전에
는 산세가 양재천(良才川)까지 이르렀다. (1980년대 중반 어렸을 때 대모산을 타고 도곡동까지
내려간 기억이 남)
산의 모습이 늙은 할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할미산, 대고산(大故山)이라 불렸으나 조선 세종
때 태종의 능인 헌릉이 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바뀌었다고 한
다. 믿거나 말거나 설에 따르면 산세가 비구니가 앉은 모습 또는 여자의 앞가슴처럼 생겼다하
여 그리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는 한남정맥(漢南整脈)에 속하는 산이라 했으
며, 여지도서(輿地圖書) 광주목(廣州牧) 기사에는 '관아 남쪽 30리에 있으며 봉수대가 설치되
어 있다'고 나와있다.

대모산에 안긴 오랜 명소로는 불국사와 대모산성터 등이 있으며, 넓은 산세에 비해 계곡은 매
우 빈약하다. 개포동과 일원동 개발로 계곡들이 상당수 날라갔기 때문이다. 또한 속세로 흘러
가는 다른 계곡도 시멘트를 바르고 요상하게 공구리를 쳐서 볼품이 매우 없다. (개포시영아파
트 방면 계곡) 반면 산에 필수로 있는 약수터는 주변 산 못지 않게 많아서 구룡산을 포함하여
무려 18개소의 샘터가 있다.
또한 도보 산책길의 전국적인 유행으로 강남구청에서는 수서역에서 대모산 북쪽 자락과 구룡산
북쪽 자락을 거쳐 염곡동을 잇는 대모산 둘레길인 강남 그린웨이를 닦았으며, 천하 둘레길의
성지(聖地)로 격하게 찬양받는 서울둘레길4코스(대모, 우면산코스)가 대모/구룡산 북쪽 자락
으로 흘러간다. (불국사를 경유함)


▲ 대모산에서 바라본 천하 (1) 개포동과 도곡동, 양재동을 중심으로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가 바라보인다. (남산 서울N타워도 희미하게 보임)

▲ 대모산에서 바라본 천하 (2)
일원동과 수서동을 비롯하여 송파구와 강동구, 광진구, 구리시,
아차산(阿且山)과 불암산, 수락산까지 시야에 잡힌다.

▲ 대모산에서 바라본 천하 (3)
송파구를 중심으로 강동구, 아차산과 멀리 남양주(南楊州)의 산들이 바라보인다.

▲ 흐릿하게 남은 대모산성(大母山城)의 흔적

대모산 정상 서쪽에는 대모산의 갑옷이었던 대모산성의 흔적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산성(山城)
이긴 하지만 장대한 세월의 거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히 헝클어져 산길 주변에 돌이 약
간 뭉쳐있는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모산성을 알리는 어떠한 안내문도 없는 실정이
라 사연을 모르는 이들은 무심히 밟고 지나치고 있으며 보호 조치도 딱히 받지 못하고 있다.

산꾼들의 외면을 받으며 굴욕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대모산성은 6~7세기 정도(또는 신라 후기)
에 신라(新羅)가 한강 유역과 서울 지역 수비를 위해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1999년 국립문화
재연구소와 한양대 박물관팀이 발굴조사를 벌인 적이 있는데 이때 짧은 굽다리 접시를 비롯해
다양한 신라 유물이 발견되었다. 정상을 둘러싸며 조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600m, 내
부 면적은
약 8,276㎡, 성돌은 50~70cm 정도의 자연석과 활석을 이용했다.
봉은사에서 편찬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는 백제 때 고성(古城)으로 나와있으며, 북
쪽 성벽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일부 확인되기도 했으나 나중에 성곽을 구축하면서 과반수
이상 날라간 상태였다, 또한 정상 중간 지점에 제단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바위가 널려있는
데 이들 바위에는 달걀 모양의 조각이 50여 개 이상 새겨져 있다. 이들 흔적을 어려운 말로 성
혈(聖穴)이라 하며, 그 흔적을 문신처럼 지닌 바위는 알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모
산은 옛 조선시대(고조선)부터 지역에서 꽤나 애지중지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의미가 깊은 곳이지만 오랫동안 속세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가 2012년 서울시에서 뒤
늦게 대모산성을 지방기념물로 지정하고자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했다. 허나 여러 가지 이유(사
유지, 강남구의 의지 부족 등)로 지정문화재의 지위를 얻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보호 조치도
계속 보류되어 산꾼들의 발 아래 짓밟히고 있다. 또한 정상 주변에 철탑시설물과 국정원 철책
등이 산성터를 그냥 두지 않아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더 망가지기 전에 서둘러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흐릿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라도 수습했으면 좋
겠는데, 모든 것이 참 힘들기만 한 이 땅의 현실에서는 참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대모산성은 참고로 서울에 거의 흔치 않은 산성 유적이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산성 유적으
로는 아차산성(阿且山城)과 북한산성(北漢山城), 호암산성(虎巖山城), 불암산성(佛巖山城) 등
이 있다.


 

♠ 구룡산(九龍山, 306m) 오르기

▲ 구룡산에서 바라본 천하
(개포동과 도곡동, 강남구 일대와 멀리 남산과 북한산 산줄기까지 바라보인다.


대모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40분 정도 가면 구룡산 정상에 이른다. 구룡산은 대모산보다 13m 정
도 높은데, 산 이름만 다를 뿐이지 두 산은 완전 한 덩어리이다. 엄밀히 말하면 구룡산까지 모
두 대모산의 영역으로 보면 된다.대모산에서 넘어가는 것은 조금 내려갔다 올라가는 거라 정
상 직전의 오르막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난하나 개포시영아파트와 염곡동에서 오르는 길은 경
사가 좀 각박하다.
예전에는 내곡동이나 헌인릉 쪽에서 이들 산을 오를 수 있었으나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이 내
곡동에 새로 둥지를 튼 이후에는 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구룡산은 개포동과 염곡동, 내곡동에 걸쳐있는데, 예전에는 국수봉(國守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옛날에 부근에 살던 임신부가 용 10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거기
서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는 통에 용 1마리가 획 놀라 떨어지고 9마리만 승천했다. 그 연유
로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그때 떨어진 비리비리한 용은 물이 되어 양재천이 되었
다고 한다.

정상에서 서쪽 봉우리를 국수봉이라 부르는데, 조선시대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이곳에는
바위굴이 있는데, 봉수대를 지키는 군인들이 숙소로 삼았다고 한다. 대모산과 달리
오래된 명
소는 없으며, 대모산과 서로 이어진 탓에 두 산을 같이 누리는 것도 괜찮다. 이들은 아무리 코
스를 길게 잡아도 3시간 이내면 산행이 끝나기 때문이다.

구룡산 정상은 대모산처럼 나무가 좀 우거져있는데, 정상 북쪽에 마련된 조망대는 대모산 못지
않은 일품 조망을 선보인다. 이곳에 오르면 개포동과 도곡동, 포이동을 비롯해 강남구와 서초
구, 용산구, 성동구, 남산 등이 바라보이고, 멀리 북한산과 수락산, 불암산도 시야에 앞다투어
들어온다.


▲ 구룡산에서 바라본 천하
강남구와 송파구, 멀리 북한산과 수락산 산줄기까지 보인다.

▲ 구룡산 정상 직전 (정상 서쪽 50m 전)

▲ 구룡산 북쪽 자락에 있는 개암약수터

구룡산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개포시영아파트 방면으로 내려왔다. 정상이란 자리가 좋긴 하
지만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다. 적당히 있다 내려오는 것이 다음 사람을 위해
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허나 사람은 신(神)과 동물 사이에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존재라 그 진리를 모르고 정상이란 자리를 오래 독차지하려고 한다. 너무 욕심을 부리
면 반드시 탈이 생기기 마련이건만 그걸 탈이 생긴 이후에나 깨닫는 것이다.

정상에서 개포시영아파트 방면 산길은 경사가 좀 있다. 내려가는 길이라 망정이지 만약 이 코
스로 올라갔다면 땀 꽤나 흘릴 뻔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내려가니 대모산과 구룡산에 널린 약
수터의 하나인 개암약수터가 나온다. 불국사 약수터 이후로 2번째로 만나는 약수터로 수질은
아직 이상이 없다고 하여 물을 바가지에 가득 담아 흔쾌히 마셔본다. 안그래도 날씨도 덥고 가
져간 음료수가 다 떨어져 갈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갈증을 싹 풀어주니 몸과 마음이
싹 시원해진다. 약수터 부근에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다.

개암약수터부터는 흥분한 산길도 진정을 되찾는다. 그 길을 5분 정도 내려가니 넓직한 오솔길
이 나오고 그 길을 조금 가면 차량들의 굉음이 들리면서 구룡터널교차로가 나온다. 일원역에서
시작된 대모산, 구룡산 나들이는 여기서 이렇게 마무리가 된 것이다. 총 소요시간은 불국사 관
람시간을 포함해 3시간 정도이다.
이렇게 하여 개천절 맞이 강남 대모산, 구룡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대모산, 구룡산으로 오르는 산길 기점 (불국사, 일원동은 앞서에 언급했으므로 제외)
① 염곡동(청계산입구3거리) - 지하철 7호선 논현역 중앙차로 정류장과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
중앙차로 정류장, 3호선/신분당선 양재역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140, 407, 440, 462, 470,
471, 9404, 9408번 시내버스를 타고 내곡동주민센터나 하나로마트(코트라) 하차
(9404, 9408번은 내곡동주민센터 하차)
② 구룡터널교차로 - 141, 406, 2413, 4425, 6411번 시내버스를 타고 개포우성아파트나 개포주
공1단지 하차
* 지하철 3호선 매봉역(4번 출구)에서 406, 4435번 시내버스 이용
③ 개포동 구룡마을 - 406, 420, 472, 4412. 4435번 시내버스를 타고 구룡마을 종점 하차
* 지하철 3호선 도곡역(4번 출구를 나와서 왼쪽으로 100m 가면 그랑프리백화점 정류장이 있음)
에서 472, 4432번 시내버스 이용
* 지하철 분당선 개포동역(7번 출구)에서 420번 시내버스 이용
④ 수서역 - 지하철 3호선/분당선 수서역 6번 출구를 나오면 대모산 산길로 이어진다.
⑤ 세곡지구(LH강남힐스테이트아파트) - 논현역, 강남역, 양재역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440번,
3호선과 분당선 수서역(6번 출구)에서 2412, 3425, 강남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세곡중학교(
세명초교) 하차


▲ 구룡산 오솔길 (개포시영아파트에서 구룡산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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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6년 10월 24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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