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석탑을 지나 경내를 계속 파고들면 관음전과 삼보당이 나온다. 삼보당은 구인사를 세운 천 태종 1대 종정(宗正)인 상월원각조사의 금동존상과 진영, 그리고 2대 남대충 대종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상월을 금동으로 장엄한 것은 구인사에서 현세에 부처로 극진히 떠받들고 있 기 때문이다. 건물 이름인 3보도 바로 상월과 남대충, 그리고 현재 천태종 종정인 김도용 대 종사를 일컬으며 만약 현 종정이 입적하고 새로운 이가 그 자리를 이어받으면 사보당(四寶堂) 으로 간판을 갈게 될 것이다.
이곳은 신도와 신참 승려들이 고참 승려에게 인사를 하는 곳이기도 하여 종단 승려들이 고참 승려를 상석에 앉혀 회의나 승려 안거(安居)를 주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삼보당 동쪽에는 조 실(祖室)이 있는데 그곳은 구인사와 천태종의 지배자가 머무는 곳이다. 지금은 3대 종정인 김 도용이 살고 있으며, 하루에 1번씩 삼보당으로 나와 신참 승려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한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대종사에게 예하(猊下)라는 존칭어를 사용한다. 제왕에게 폐하(陛下)라 부 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럼 여기서 잠시 구인사의 내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 우리나라 천태종의 중심지, 산속에 숨겨진 조그만 도시 같은 구인사(救仁寺) 소백산(小白山) 북쪽 자락에 꽉차게 들어앉은 구인사는 우리나라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지이 자 20세기 현대불교의 성지(聖地)이다. 이곳의 역사는 이제 70년여 년으로 1945년 초에 상월 원각조사(上月圓覺祖師)가 창건했다.
상월원각조사는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시 상마읍리 봉촌마을의 밀양박씨 집안에 서 태어났다. 이름은 박준동(朴準東), 법명은 상월(上月)이며, 15세에 나름 큰 뜻을 품고 출 가하여 여러 선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워낙 총명하여 금방 배웠다고 한다. 1940년에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했다고 전하는 굴에서 도를 닦 으며 솔잎과 쑥으로 2년을 버티다가 1942년 가을, 깨달음을 얻어 현재 구인사 5층 대법당 자 리에 있던 연화지(蓮花池)를 찾았다. 거기서 만개한 백련(白蓮) 사이로 살짝 모습을 비친 관 음보살 누님을 친견했다고 전한다. 하여 그해 겨울 관음성지를 순례하고자 중원대륙으로 건너가 주산열도에 있는 천태산 수선사 (修禪寺)와 대륙 천태종의 중심지인 국청사(國淸寺)를 찾았고 그때 천태종을 접하게 되었다.
천태종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는 조국에서 반드시 크게 일으켜 다시 천태산(天台山)을 찾겠 노라 다짐하고 예전 관음보살을 친견했던 소백산 연화지로 돌아와 나무와 풀로 초암(草庵)을 지으니 그것이 바로 구인사의 시초이다. 절의 이름은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라 지었으나 이름이 길어서 보통 구인사라고 부른다.
6.25 전쟁 때 이곳까지 들어온 북한군에 의해 절이 파괴되어 1952년 다시 지었으며 상월은 여 기서 속세와 왕래를 끊고 오로지 수행에 전념해 1962년 '한 마음 움직이지 않으면 만법(萬法) 이 일여(一如)하다'는 경지와 '모든 법이 본래 무상(無常), 무생(無生)하다'는 무상대도(無上 大道)를 깨닫고 다음의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山色古今外 산색은 고금 밖이요, 水聲有無中 물소리는 있고 없고 중간이로다. 一見破萬劫 한번 보는 것이 만겁을 깨뜨리니, 性空是佛母 성품 공한 것이 부처의 어머니로다.
천태종과 구인사가 크게 흥하게 된 계기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다. 박정희가 월남 전을 두고 고심하고 있을 때, 한 측근이 상월이 신통력이 있다며 만나보라고 권하자 즉시 그 를 청와대로 소환했다. 박정희의 고충을 들은 상월은 참전하면 국부(國富)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참전을 적극 권했 다. 대통령 자신도 월남(베트남) 정벌을 원하고 있었으나 반대 여론이 많아 전전긍긍하던 참 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10년 묵은 체증이 싹 가라앉은 듯, 너무나 기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월에게 뭐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머무는 소백산 골짜기에 불사(佛事)를 하 고 싶다고 답을 했고, 박정희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구인사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듯, 크 게 흥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군사정권의 도움이 구인사에 큰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 기세를 타고 상월은 천태종 초대 종정이 되어 '참된 자아의 개현','참된 생활의 구현','참 된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대중불교의 구현, 생활불교의 실천, 애국불교의 건립이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으며, 1971년 5월 1일에는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法語)를 발표했 다. 그리고 그해 10월 천태종이 나아갈 방향과 종지(宗旨), 종통에 관한 교시문을 발표한다.
1974년 상월원각조사(시호는 상월원각대조사)가 입적하자 그의 후계자인 남대충(南大忠)이 구 인사 주지 및 천태종 2대 종정이 되었다. 남대충은 1925년 음력 12월 5일 구인사 부근 여의생마을의 영양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 은 남익순(南益淳)으로 21살에 구인사에 들어와 상월의 가르침을 받았고, 1960년에 큰 깨달음 을 얻자 상월에게서 후계자의 인증을 받았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장 잘 받들고 공경했으며, 박정희 정권과 중생들의 시주를 발판 삼아 절을 더욱 크게 일으켰다. 또한 절 주변 야산에 잣나무 등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일 구었고 수해 등으로 망가진 단양 관내의 도로 복구 공사에도 참여하는 등 아주 바쁘게 움직였 다. 하여 1980년 4월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고 1987년에는 새마을훈장 자 조장을 받기도 했다.
1993년 9월 3일, 남대충이 69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그의 수제자인 김도용(金道勇)이 그 뒤를 이어 구인사와 천태종의 3대 종정이 되었다. 김도용은 1943년 10월 경북 울진군 평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김영춘(金永春)이다. 1977년 출가하여 남대충의 가르침을 받았고 출가 이후, 단 1번도 드러누운 적이 없다고 한다. 피곤하 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거늘 그는 그 본능을 일찌기 탈피한 것이 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저 신기할 따름. 그래서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신도와 승려가 많다. |
첩첩한 산주름 속에 묻힌 구인사는 그 형세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즉 황금닭이 알을 품 고 있는 형세의 아주 대단한 명당(明堂) 자리라고 한다. (또는 독수리가 알을 품은 지세라고 도 함) 과연 그래서일까? 구인사의 사세는 끝을 모르고 나날이 번창하여 4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비좁은 산 사이로 길게 들어서 조그만 도시를 이루고 있으며, 승려 수 300여 명, 최대 수용 인원 1만여 명, 거느린 말사(末寺)만 300여 개, 신도 수는 무려 170만을 헤아리는 천하 굴지의 대 사찰(寺刹)이 되었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아주 굵직한 절로 성장한 예는 그리 흔 치가 않으니 예사롭지 않은 명당은 분명하다.
구인사는 영춘면 일대에 상당한 논과 밭,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거기서 자체적으로 경작하 여 쌀과 채소 상당수를 충당한다. 신도가 많다보니 수입도 상상을 초월하여 포크레인으로 돈 을 쓸어 담아도 넘쳐날 지경인데 수입과 절을 찾는 신도 수는 전국 절집 가운데 1위가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단양군의 1년 수입보다 많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제 아무리 팔 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해인사(海印寺)도, 소원은 다 들어준다며 과대 광고까지 일삼는 팔공산( 八公山)의 갓바위도,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지인 서울 조계사(曹溪寺)도 구인사 앞에서는 감히 불전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그 천문학 이상의 재정을 바탕으로 구인사와 천태종은 끝없이 팽창을 한 것이며, 단양에서 구 인사로 이어지는 도로 공사 비용까지 구인사가 전액 부담했다고 한다.
허나 구인사가 들어앉은 지형상 절이 커질수록 자연히 소백산의 피부를 깎아야 되는 문제점이 있다. 구인사의 화려한 발전 뒤에는 소백산의 말없는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대조사전 을 끝으로 더 이상 큰 건물은 지어올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명당이라도 단점은 있게 마련으로 금계포란형 같은 지형에는 무거운 것을 세우면 안된다고 한다. 허나 구인사는 죄다 무거운 것 투성이라 너무 과욕을 부리다가 알이 와장창 깨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흥하기 는 힘들지만 망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다. 또한 구인사를 세우고 천태종을 크게 일으킨 상월원각조사를 기리고 찬양하는 것까지는 좋으 나 그게 너무 지나쳐 부처 이상의 존재로 떠받들고 있고, 경내 남쪽 산자락에는 승려에 걸맞 지 않게 상류층 수준의 그의 무덤(무려 석물까지 갖추고 있음)까지 있어 조금 이질감을 주기 도 한다. 그 무덤을 여기서는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삼아 경내 성지로 애지중지하고 있고, 경내의 가장 높은 곳에는 호화로운 대조사전을 지어 금으로 만든 그의 존상까지 봉안하고 있 어 불교 사찰인지 상월을 중심으로 한 다른 종교의 절인지 햇갈리게 만든다. (삼보당에도 그 의 금동존상이 있음) 게다가 절을 이루는 건물이나 모든 형상이 하나 같이 커서 썩 정감이 가지 않는다. 허나 절이 좁은 산골에 자리해 있고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그들을 수용하고 다양한 공간을 담을 건 물이 여럿 필요하다. 그래서 구인사 스타일의 다층 콘크리트 기와집이 빌딩처럼 들어선 것이 다.
법등(法燈)의 역사가 아직 짧다보니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나 불상은 없지만 꽤 많은 불 교문화유산을 수집하여 가지고 있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국보 257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74(국보 279호), 묘법연화경(보물 960호), 대방광원각약소주경 권상 의2(보물 1016호), 불설아미타경<언해, 보물 1050호> 등 국가 지정문화재 20여 점과 금동9층 소탑(충북 지방유형문화재 209호), 청자발우(충북 지방유형문화재 211호), 사경영험(四經靈驗,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310호) 등 지방문화재 30여 점을 간직하고 있으며, 몽골과 중원대륙, 티 벳, 네팔, 인도,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문화유산도 꽤 된다. 이들은 모두 구인사입구에 지어진 불교천태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 불교천태중앙박물관 관람 정보 :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추석과 설날 연휴는 휴관 / 관람비 없음 / 관람시간 9~17시 (평일은 10시부터) /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은 일부 만 전시 공개됨, 전화 043-423-9103>
그 외에 '삼회향(三廻向)놀이'라고 영산재(靈山齋)의 뒷풀이로 행해지는 축제가 있는데 땅설 법이라고 부른다. 이 축제는 충북 지방무형문화재 25호로 불교의식에 우리 민속이 더해진 불 교 행사이다.
깊은 산골에 묻혀있지만 거의 소도시 같은 곳이라 조촐한 산사의 내음과 고즈넉함을 기대하고 왔다면 적지 않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절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둘러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또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찰이자 단양에서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주요 관광지로 이곳에 대한 역사와 미술사학적 평가는 후세가 알아서 해줄 것 이다.
※ 구인사 찾아가기 (2018년 3월 기준) ① 대중교통 * 동서울터미널에서 구인사행 직행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 제천시외터미널에서 구인사행 직행버스가 1일 5회, 제천역에서 구인사행 제천시내버스 260 번이 1일 4회 떠난다. * 단양시외터미널에서 구인사행 직행버스가 50~60분 간격, 터미널 밖 정류장에서 구인사행 군 내버스가 1일 8회 다닌다. (군내버스가 시외직행버스보다 버스비가 60% 이상 저렴함) * 영월읍내(세경대학, 영월터미널, 영월역 서쪽 덕포 정류장)에서 구인사행 군내버스가 1일 5 회 다닌다. * 구인사터미널에서 3분 정도 걸으면 관성당을 시작으로 구인사 경내가 펼쳐진다. ② 승용차 *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영월 방면 38번 국도 → 창원3거리에서 우회전 → 군 간교3거리에서 좌회전 → 영춘교를 건너 우회전 → 구인사입구 주차장 * 구인사입구 주차장에서 구인사 총무원까지 무료셔틀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총무원까지 걸어갈 경우 20분 정도 걸림) * 구인사는 일반인도 며칠 동안 수행/기도가 가능하다. 4박5일을 기본으로 하며, 접수는 구인 사 총무원 1층에서 한다. (소정의 참가비 있음) 4박5일 기도를 끝낸 사람에 한해 기도실 담 당 승려의 허락으로 1회(4박 5일) 연장할 수 있다. 또한 교무부 담당 승려의 승인하에 최대 2~3회 연장이 가능하다. * 수행/기도 참여자는 간단히 덮을 것과 깔고 앉을 것, 세면도구를 가져와야 되며, 공양시간 과 기도시간, 휴식시간을 최대한 지켜야 된다. * 구인사는 휴식형과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1박에 무려 5만원이며 홍보체험관 에서 단주와 연꽃, 지화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문의 ☎ 043-420-7397) *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32-1 (구인사길 73 ☎ 043-423-7100) * 천태종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