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주 송광사(松廣寺)의 오랜 내력 종남산의 남쪽이자 오도천 서쪽 평지에 둥지를 튼 송광사는 신라 후기인 867년 보조국사 체징 (普照國師 體澄)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종남산 남쪽에 영험이 있는 샘물이 솟아나 그 옆에 절 을 짓고 송광사라 했다는데 이를 입증할 사료도, 그 시절 유물도 전혀 없어 창건시기에 대해 심히 회의감을 들게 한다. 백제 후기에 창건되어 백련사(白蓮寺)라 했다는 설도 있으나 그 역 시 마찬가지이다. 고려 중기에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이 이곳을 천태종(天台宗) 소속으로 바꾸었다고 하 며 임진왜란 때 절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보조국사의 창건설 말고도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의 점지설이 있다. 그가 이곳을 지 나다가 영천이란 우물을 발견했는데 (절터 주춧돌이 가시덤불 속에 묻혀있었고, 절터 한쪽에 영천이란 우물이 있었다고 함) 그 물을 마셔보니 그 맛이 매우 특이해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하여 이 우물로 인해 이곳에 절을 세우면 크게 될 것이라 여겼으나 당장 절을 세울 여 력이 없어 샘 주변 네 귀퉁이에 돌을 쌓아 자신이 찍어둔 자리임을 밝히고 그곳을 총총히 떠 났다. 이후 순천에서 그 유명한 송광사(松廣寺)를 세우고 머물 때, 제자들에게 '전주 인근 종남산에 괜찮은 절터가 있다. 크게 불법(佛法)이 번창할 곳이니. 그곳에 절을 세워라!' 부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뜻은 실현되지 못했다. 지눌은 고려 중기 고승(高僧)으로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킨 인물이다. 당시 고려 불교계의 1 인자였던 그가 마음에 들어했던 자리에 절을 세우지 못하고 지나친 것도 이상하거니와 스승의 부탁을 받은 제자들도 그 뜻을 받들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스러울 뿐이다.
지눌이 지나갔다는 시절에서 400여 년을 더한 1622년에 이르자 응호(應浩)와 승명(勝明), 운 정(雲淨), 덕림(德林), 득순(得淳), 홍신(弘信) 등이 모여 현재 자리에 절을 세웠다. 재정이 여의치 못해 무려 14년 동안 공사를 벌여 1636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당시 무주 적상산(赤裳 山) 안국사(安國寺, ☞ 관련글 보러가기)에 주지로 있던 벽암대사(碧岩大師)를 개창조(開創祖 )로 삼았다고 하니 이때가 실질적인 창건 시기로 여겨진다. 당시 절터 자리는 승명의 증조부( 曾祖父)인 이극룡(李克龍)이 기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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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절이 완성되자 벽암대사를 불러 50일 동안이나 화엄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전국에서 수 천 명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완성을 기념하고자 사적비를 세우고 약사전을 지었 으며, 옛날 지눌의 뜻을 받들었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송광사라 했다고 한다. (순천 송광사 가 워낙 대단한 절이라 그곳의 이름을 따고 지눌의 일화를 그럴싸하게 붙여놓은 것으로 여겨 짐) 참고로 종남산이란 이름은 보조국사가 절터를 구하고자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우물이 풍부 하게 솟은 지금의 자리를 발견하고 더 이상 남으로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여 유래된 것이라 한 다. 즉 남쪽으로 가는 것을 마쳤다는 뜻이 된다.
1640년 명부전에 소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을 만들어 봉안했으며, 1641년 왕실의 지원을 받 아 청나라에 볼모로 간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의 귀국을 기원하고자 대웅 전에 거대한 소조석가여래3불좌상을 봉안했다. 1649년 사천왕상을 조성했고, 1656년에 나한전을 지었으며, 1716년에는 범종을 조성했다. 그 리고 1786년에는 왕실의 지원에 호응하고자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비는 목조3전패를 만들고 절을 중수했다. 1813년에는 정준이 약사전을 중수하고, 절의 영역이 크게 줄어듬에 따 라 3km 밖 나드리에 있던 일주문을 조계교 인근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2층이던 대웅전이 기울 자 1층으로 개축했으며, 1814년 명부전 지장후불탱화를 조성했다.
1944년 일주문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고, 1989년에는 삼성각에 탱화를 조성했으며 1993년 대 웅전 소조석가여래3불좌상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복장(腹臟)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2002년에 는 대웅전을 해체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고, 2003년에는 2층이던 관음전과 요사채의 위치 를 바꿨다. 그리고 2004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을 손질했고 2013년 약사전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
겉보기와 달리 제법 터가 넓은 송광사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천왕문, 금강문, 종루, 지 장전, 극락전, 첨성각, 나한전, 삼성각, 관음전, 약사전, 요사 등 대략 16~17동에 건물을 지 니고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대웅전과 종루, 소조사천왕상, 소조석가여래3불좌상과 복장 유물 등 국가 보물 4점과 일주문과 사적비(전북 지방유형문화재 5호), 동종, 목조3전패, 나한 전, 금강문, 벽암당부도(전북 지방문화재자료 144호) 등 9점의 지방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산속 평지에 자리한 절로 마을 바로 옆에 자리해있어 산사의 내음은 조금 떨어진다. 그냥 시 골에 있는 한적한 사찰 정도라고나 할까? 요사와 종무소, 세심정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오래 된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각 건물마다 문화유산이 풍부하여 그들이 풍기는 고색의 내음에 현 기증이 일어날 정도이다. 게다가 경내 서쪽에는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여름과 초가을에는 연꽃의 향연도 구경할 수 있다.
※ 송광사 찾아가기 (2018년 4월 기준) ① 전주까지 * 용산역, 영등포역, 광명역, 수원역, 천안역, 서대전역에서 전라선 열차(고속전철, 새마을호 , 무궁화호, 누리로)를 타고 전주역 하차 * 여수엑스포역, 순천역, 남원역에서 전라선 열차(고속전철, 새마을호, 무궁화호, 누리로) 이 용 *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전주행 고속버스가 1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전주행 직행버스가 20~30분 간격, 동서울터미널에서 전주행 고속버스 가 3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인천공항, 의정부, 고양(화정), 성남, 부천, 안산, 수원, 강릉, 원주, 천안, 대전(복 합, 유성), 군산, 정읍, 남원, 광주, 목포, 순천, 대구(서부, 동대구), 경주, 포항, 부산( 사상, 노포동), 창원(마산), 진주에서 전주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② 현지교통 * 전주역에서 806번 시내버스(1일 5회)를 타고 송광사 하차. 시간이 맞지 않으면 6번 시내버 스를 타고 고려병원에서 하차하여 길 건너편 정류장에서 814번 시내버스(1일 11회 운행)로 환승 * 전주고속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금암광장에서 3-1번을 타고 모래내시장 정류장에서 814번으로 환승, 또는 금암광장이나 전주시외터미널, 고속터미널에서 전동, 전주한옥마을 방면 아무 시내버스나 타고 중앙시장이나 전동성당, 남부시장 정류장에서 내려서 건너편 정 류장에서 806, 814번 이용 ③ 승용차 (주차장 있음) * 익산포항고속도로 → 소양나들목을 나와서 진안 방면 26번 국도 → 해월1교차로에서 좌회전 소양 방면 → 마수교를 건너 우회전 → 송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