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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뒤쪽에 작게 재현된 비운의 궁궐, 경희궁 (경희궁 흥화문, 숭정문, 숭정전)
도봉산고양이 2020. 7. 19. 21:11
1. 경희궁 흥화문
경희궁은 덕수궁(경운궁)과 함께 서궐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에 이궁으로 바쁘게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
뒤쪽에 복원된 일부만 남아 꽤 초췌한 모습이나 왕년에는 이 주변을 모두 아우르며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녔던
궁궐이다. 그 규모는 현재 덕수궁 이상이었다.
경희궁 자리는 인조의 아비인 원종(덕흥대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광해군은 창덕궁을 중건하고 인왕산 자락 필운동
에 인경궁과 원종 사저 자리에 경덕궁(경희궁)을 세워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했다. 경덕궁은 1617년에 짓기 시작해
1623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1760년 경희궁으로 이름이 갈렸다.
도성 서쪽에 있어서 간단하게 서궐이라 불렸으며,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제왕들이 이궁으로 사용했고,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여기서 보냈다.
경희궁은 정전(법전)인 숭정전,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을 지녔으며, 흥정당과 장락전 등 100여 동의 건물
을 지녔다. 궁궐의 정문은 흥화문으로 원래는 서울역사박물관 동쪽에 복원된 금천교 동쪽에 있었는데, 그 흥화문을 지나
면 금천교가 나오며, 그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경희궁 궁역이 펼쳐지는 형태였다.
흥화문 외에 북쪽에 무덕문, 동쪽에 흥원문, 서쪽에 숭의문, 남쪽에 개양문이 있었으며, 1897년 이후 덕수궁이 중심 궁궐
이 되면서 덕수궁과 경희궁을 잇는 운교가 닦여지기도 했다.
허나 1910년 이후, 경희궁은 왜정 소유가 되면서 궁 자체가 사라지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왜정은 1910년 왜인 학교인 경
성중학교를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궁역이 절반 정도 날라가고 적지 않은 건물이 강제 철거되었다. 이후로도 건물을 부시
고 헐값으로 매각했는데, 숭정전은 조계사로 넘어갔다가 동국대에 안착했으며, 흥화문은 1932년에 세워진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의 사당 박문사의 정문으로 쓴다며 가져갔다가 1988년 돌아왔다. 회상전은 숭정전과 함께 조계사로, 흥정당은
광운사로 갔으며, 황학정은 국궁 단체에서 매입해 사직단 뒤쪽으로 가져와 애지중지하고 있다. 그 외에 건물은 언제 없어
졌는지도 아리송하다.
이후 터만 아련히 남은 상태에서 서울중고(경성중학교) 등 많은 건물이 궁터를 깔고 앉았으며, 1988년 경희궁 복원 공사를
추진해 흥화문을 이전 복원했다. 그리고 일부 터에 숭정전과 태령전, 자정전 등을 조금 축소하여 재현하고 흥화문 옆에 있
던 금천교를 복원했다.
허나 그것이 복원된 경희궁의 전부로 왕년과 비교하면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궁역 상당수는 서울역사박물관 등 많은 건
물이 들어선 상태라 당장 복원이 불가능하며, 그나마 궁역 서쪽 부분이 공터로 남아있어, 그곳에 있던 숭정전과 태령전, 자
경전만 겨우 재현되었다.
2. 흥화문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1616년에 지어졌다. 원래는 금천교 동쪽에 있었는데, 그 문을 지나면 금천교가 나오고, 그 다
리를 건너 쭉 직진하다가 막다른 곳에서 90도 오른쪽으로 가면 숭정문, 숭정전, 자경전으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경복궁과
창경궁을 궁 정문(경복궁 정문은 광화문, 창경궁 정문은 홍화문)을 지나 직진하면 정전이 알아서 나오는데, 경희궁과 창덕
궁을 1번 이상 길을 꺾어야 했다. (창덕궁은 2번임)
1910년 이후, 경희궁 궁역이 마구 썰려나가고 숱한 건물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잘 살아남았으나, 1932년 왜정이 장충단 자
리에 이토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를 세우면서 엉뚱하게도 흥화문을 그곳으로 가져가 정문으로 삼았다. 즉 망국 궁궐의
정문을 제대로 욕을 먹인 것이다.
1945년 이후 박문사는 가루가 되어 없어졌으나 흥화문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고, 박문사 자리
에 신라호텔, 영빈관 등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살아가다가 1988년 숭정문 남쪽인 지금 자리로 이전 복원했다. 원래대
로라면 금천교 동쪽에 세워야 되나 세울 자리가 없어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며, 신라호텔 북쪽에 기존 흥화문 건물은 그대
로 남아 호텔의 정문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흥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양식 우진각 지붕 문으로 단층 건물이긴 하나 높이가 제법 커서 꽤 위엄있게 다가온다.
3. 흥화문에서 숭정문으로 이어지는 숲길 (왼쪽에 보이는 표석은 서울고등학교 자리 표석)
4. 숭정문과 숭정전 행각
저들은 1988년 이후에 복원된 것들이라 고색의 기운은 아직 익지도 못했다. 지금은 그 좌우로 허전하기 그지 없으나 옛날
에는 숭정전 행각 동쪽에도 행각과 건물이 무수히 있었으며, 서쪽에도 건물들이 여럿 있었으며 숭정문 앞에서 흥화문까지
박석이 입혀진 길이 닦여져 있었다. 허나 그들을 모두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공간이 있는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만 일
단 재현해놓은 것이다.
5. 경희궁 숭정문~흥화문 숲길
이곳에는 숭정문에서 흥화문을 잇는 행각과 박석이 입혀진 길이 있었다. 허나 그들은 강제로 사라지고 이렇게 나무가 우거
진 공원이 되어 도시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6. 숭정문에서 바라본 흥화문 방향
7.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
숭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으로 좌우로 행각이 둘러져 있다. 현재 복원된 경희궁의 정문으로 저 문으로 들
어서 저 문으로 나와야 된다. (입장료 없음, 관람시간 9~18시)
8. 숭정문 돌계단에 닦여진 봉황무늬
9. 숭정전 행각
10. 경희궁 숭정전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법전, 중심 건물)으로 1618년에 세워졌다. 경종과 정조, 헌종이 여기서 즉위식을 가졌는데, 다른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의 정전과 달리 단층 건물로 그들보다 규모는 작다.
1926년 왜정이 조계사에 팔아먹어 그곳으로 갔다가 동국대로 넘어가 동국대 정각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1990년에 이곳에
복원/재현 되었으나 원본은 동국대에 있으며, 그 건물이 서울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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