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경희궁 태령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영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원래는 딱히 용도가 없는 잉여 건물이었으나 영조

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 이 건물을 중수해 이곳에 어진을 봉안했다.
왜정 시절에 파괴된 것을 2000년에 서궐도안을 참조해 복원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해 제작했다.

건물 안에는 근래 모사된 영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어 건물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하다.

 

 

2. 태령전에 봉안된 영조의 어진

 

 

3. 굳게 닫힌 태령문 (태령전 정문)
태령전은 왕년의 시절에도 궁역 서쪽 구석이었고, 아주 작게 복원된 지금도 서쪽 구석이다. 태령전의 정문인 태령문은 늘

닫혀있기 때문에 여기서 숭정문으로 다시 돌아나가야 된다.

 

4. 자정전 뒤쪽 바위 (서암 동쪽 바위)
자정전 뒤쪽에는 인왕산과 연결된 언덕이 있어 후원 역할을 했다. 서암 등 잘생긴 바위들이 포진해 있고, 그 주위로 수목들

이 가득 들어섰는데, 언덕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경희궁으로 내려와 청계천(개천)으로 흘렀다.

 

 

5. 돌로 다져진 수로
후원 언덕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을 통해 청계천으로 흘러갔다.

 

6. 서암
태령전 뒤쪽에 자리한 서암은 태령전과 함께 경희궁 궁역 서쪽 구석을 지키고 있다. 검게 익은 큰바위 밑에 조그만 굴이 있
고, 그곳에 샘터가 있는데 샘터에서 나온 물은 계곡에 작게 파여진 수로를 통해 경희궁으로 흘러갔다. 샘터 앞에는 너른 반

석이 펼쳐져 있어 서암을 수식하고 있는데, 경희궁의 후원 역할을 했던 곳으로 바위 뒤쪽에는 인왕산 숲이 우거져 있다.

 

서암의 옛 이름은 왕암(왕의 바위)으로 이 바위로 인해 경희궁 자리에 왕의 서기가 있다는 말이 생겨서 광해군이 무리를 해

서 이곳에 경덕궁(경희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708년 상서로운 바위란 뜻에 서암으로 이름을 갈고 숙종이 친히 '서암' 2자를 크게 써서 새겨두었는데, 그 글씨는 어느 세

 

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졌고, 서암과 샘터만 남아있다.

 

7. 서암과 바위 피부에 얕게 닦여진 수로

 

 

 

8. 서암 안쪽에 깃든 조그만 샘터
왕년에는 제왕들이나 마시던 비싼 샘물이었나 이제는 수질이 오염되어 무늬만 샘터가 되었다.

 

9. 서암과 서로 이어진 동쪽 바위

 

 

 

10. 서암에서 바라본 경희궁 자정전, 숭정전의 뒷모습

 

11. 숭정전 행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