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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천제연폭포



' 서귀포 천제연폭포 겨울 나들이 '

천제연폭포 제1폭포

▲  천제연폭포 제1폭포 (천제연)

천제연폭포 제2폭포 천제연폭포 제3폭포

▲  천제연폭포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제3폭포



 

겨울 제국의 차디찬 한복판인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제주도(濟州
島)를 찾았다.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을 내달려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제주도에 나를 던져놓았으나 정처(定處)는 싹 정해둔 상태라
그곳만 얌전히 찾아가면 되는데, 첫날은 계획대로 외도동 월대(月臺)를 시작으로 서일
주선을 따라 모슬포(摹瑟浦)까지 여러 주옥 같은 명소와 올레길을 둘러보고 20시 넘어
서 산방산(山房山) 부근에 자리한 '산방산 탄산온천 게스트하우스(게하)'에 여장을 풀
었다.
첫날 여로(旅路)가 너무 배불렀는지 눕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직통하여 9시간 가까이를
푹 잤다. 여관(모텔)이나 호텔, 펜션, 민박 등은 많이 이용해보았으나 게하는 첫 이용
인데, 그렇게 게하란 존재를 체험하고 아침 일찍 탄산온천에서 몸을 푹 끓이고 말리고
다진 다음 길을 나섰다. (탄산온천 숙박객에게 온천 이용권을 줌)

둘째 날은 첫날 못지 않게 아주 빵빵한 수준의 답사 코스를 준비했다. 천제연폭포를 시
작으로 서귀포(西歸浦) 시내까지 움직이는 일정으로 외도 월대부터 이곳까지 신세를 쭉
진 제주도 간선 202번을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 천제연폭포 정류장에 두 발을 내렸다.



 

♠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 제1폭포와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정문

천제연폭포 정문에 이르니 매표소가 나그네의 호주머니를 부담스럽게 노려본다. 여기서 입장
료를 내야 폭포로 들어설 수 있기에 비싼 입장료를 치루고 유료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제주도의 남부를 이루고 있는 서귀포에는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天地淵瀑布), 정방폭포(正
房瀑布) 등 3개의 유명 폭포가 있다. 이들은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지역 명소로
크게 두각을 보인 존재로 그중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버린 초등학교 시
절(1988년)에 인연을 지었고 천제연폭포는 무려 30여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인연을 짓는다. (이
들 폭포 외에 소정방폭포와 엉또폭포, 원앙폭포도 있음)

정문을 지나면 천제연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이내 2갈래로 갈라져 오른쪽(북쪽)은 천
제연폭포(1폭포), 왼쪽(남쪽)은 천제연2폭포, 3폭포로 이어진다. 제2폭포 남쪽에 걸린 선임교
를 건너 여미지식물원과 롯데호텔제주 일대까지 접근이 가능하며, 제3폭포를 지나 제주올레길
8코스와 베릿내오름, 대포 해변(주상절리)까지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천제연폭포만 보고
돌아갈 요량이 아니라면 '폭포 정문 → 제1폭포 → 제2폭포 → 선임교 주변과 천제루 → 제3
폭포 → 폭포 후문 → 제주올레길8코스(베릿내오름, 대포해변)' 순으로 이동하길 권한다. 그
러면 영양만점의 여로가 될 것이다.

* 천제연폭포 소재지 :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2232 (천제연로 132, ☎ 064-760-6331)


▲  천제연폭포 제1폭포

제주도 최대의 관광단지인 중문관광단지 한복판에 천제연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1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곳은 무려 3개의 폭포를 지녀 조금은 단조로운
저들과 크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천제연폭포 3형제는 편의상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라 불리나 제1폭포가 원래 천제연폭포
이다. 폭포의 높이는 22m에 이르며, 그 앞에 펼쳐진 못을 천제연(天帝淵, 웃소)이라 부르는데
, 못의 밑바닥이 흔쾌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으나 겉보기와 달리 21m의 깊이를 지녀 만만히
보면 안된다.

호랑이가 담배를 알기 훨씬 이전에 옥황상제 직속의 선녀 7명이 밤이면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그 선녀의 주인이 옥황상제라 그 명칭을 따서 '천제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
는데, 이는 상상 속의 존재인 선녀와 옥황상제가 군침을 흘릴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지녔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경승지에 학이나 용, 신선, 선녀 등을 엮어놓는 것을 좋아했음)
조선시대에는 천제연 동쪽에 중문원(中文院)을 두었는데, 제주목사(濟州牧使, 현 제주시장)가
이곳에 쉬면서 폭포의 경치를 즐겼다. 이때는 폭포 양쪽 언덕에 표적을 세우고 군사들에게 활
쏘기를 시켰으며, 양쪽 언덕 사이로 긴 줄을 걸어놓고 줄에 매달려 건너가 화살을 수거하도록
했다. 바로 중문원에서 서귀포 시내의 서부를 이루는 중문(中文)이란 지명이 생겨났으며, 천
제연폭포를 빚은 계곡을 중문천이라 부른다.

제1폭포는 대자연이 절묘하게 빚은 주상절리(柱狀節理)식 벼랑으로 실로 감탄을 머금게 한다.
그런데 그 폭포 위(북쪽)에 천제교란 다리가 걸려있어 적지 않은 옥의 티를 내고 있다. 그 다
리는 서귀포시내와 모슬포를 잇는 다리로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여 이곳의 적막을 수시로 아작
을 낸다. 도로와 다리를 놓는 것은 좋지만 꼭 폭포 윗도리에 저렇게 볼썽사납게 개설해야 했
는지 의문이 든다. (다리가 보이지 않게 좀 북쪽에 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포라고는 하지만 정작 위에서 떨어지는 물은 없고 음악 무대의 뒷배경처럼 주상절리 벼랑만
덩그러니 있다. 이는 겨울 가뭄으로 중문천 상류에 물이 거의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폭포 앞 못(천제연)에는 물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보통 폭포가 쏟아낼 물이 없으면 그 밑
의 못도 갈증을 겪기 마련인데 말이다. 허나 이곳은 절벽과 점토층 사이에서 물이 꾸준히 나
와 천제연을 채우고 있고 폭포 동쪽 동굴에서도 물이 나와 아무리 상류에 물이 증발해도 전혀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곳 물은 제2폭포, 제3폭포를 빚으며 유유히 바다로 흘러간다.

제1폭포의 폭포다운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비가 한바탕 온 직후에 가기 바란다. 그 외에는 병
풍처럼 멀뚱히 서 있어 이곳이 폭포인지 단순히 못인지 햇갈리게 만든다.


▲  천제연폭포 제1폭포와 옥처럼 맑은 천제연(웃소)

폭포 동쪽 벼랑에는 조그만 바위동굴이 있다. 그 천장에서는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
고 있는데, 예로부터 물맞이 명소로 백중(百中)과 처서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허나 지금은 폭포 보호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접근을 통제
하고 있어 물맞이를 할 수 없다.


▲  물맞이 명소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그림의 떡이 되버린
천제연 동쪽 바위동굴

▲  천제연 제1폭포 앞 계곡(중문천)

천제연폭포와 계곡 좌우에는 푸른 빛의 숲이 짙게 우거져 있다. 제주해협 건너 북쪽은 겨울
제국의 핍박으로 남쪽 바닷가를 제외하고는 자연산 푸른 잎사귀가 거의 사라졌으나 제주도는
겨울의 힘이 미약해 푸른 잎의 나무와 숲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 땅이다.

이곳을 장식하고 있는 숲은 보통 숲이 아닌 따뜻한 기후대에서 뿌리를 내리는 난대성식물(暖
帶性植物)의 보금자리로 희귀식물인 솔잎란과 백량금, 죽절초, 담팔수나무, 구실잣밤나무, 조
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감탕나무, 바람들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 등이 식구를 이
루고 있다. 희귀식물과 난대성식물이 어우러진 이 땅의 대표적인 난대림지대로 '천제연 난대
림(暖帶林)
'이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 37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제1폭포 서쪽 벼랑에는 높이 13m, 둘레 2.4m 규모의 담팔수(膽八樹)나무가 있는데, 그는
별도로 '천제연 담팔수나무'란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기념물 14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담팔
수나무는 아주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만 있다. 천제연계곡에는
20여 그루의 어린 담팔수가 자라고 있는데, 주변에 여러 나무와 뒤섞인 상태라 일반 사람들은
구별하기가 어렵다.


▲  세월을 간지나게 탄 제1폭포와 제2폭포 사이 계곡(중문천)

▲  제1폭포에서 제2폭포로 인도하는 산책로
천제연계곡(중문천) 벼랑에 닦여진 길이라 벼랑 구간이 많다.

▲  천제연 관개수로(灌漑水路) - 등록문화재 156호

천제연폭포 구역에는 대자연이 빚은 중문천(천제연계곡) 외에 사람들이 만든 조그만 관개수로
도 존재하여 2개의 물줄기를 보여주고 있다.
천제연폭포의 작은 운하인 관개수로는 마르지 않는 샘인 천제연 물을 농업용수로 활용하고자
닦은 것으로 대정군수를 지낸 채구석(蔡龜錫, 1850~1920)이 이재하(李載廈), 이태옥(李太玉)
등과 함께 중문과 창천, 감산, 대포리 지역 사람들을 동원하여 2회에 걸쳐 만들었다.

채구석은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관리를 지낸 제주 토박이로 제주판관(判官)과 대정군수를 지냈
다. 1894년 제주판관 시절에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자신의 봉급을 털어 백성을 구제했고, 대
정군수 시절인 1895년에는 주민들이 갑오개혁(1894년)으로 생겨난 신제도에 반발해 경무청을
파괴하자 이를 진압했다. 또한 1901년 이재수(李在守)의 난을 진압한 공로가 있으나 군수에서
파직되어 3년간 금고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중문에 거주하면서 바다로 매일 버려지는 천제연 물을 보며 '저 물을 이용해 논 농사를
할 수 없을까?'
궁리하다가 3년 동안 폭포 주변 지세를 직접 조사했고 천제연 물을 활용하여
논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하여 1907년 천제연 토지신(土地神)에게 토신제(土神祭)를 지내고
공사에 들어갔다.
 
천제연계곡에는 암반과 벼랑이 많아서 공사가 꽤 힘들었는데, 소주 원액을 쏟아붓고 장작불로
바위를 폭파하기도 했으며, 제1폭포 주변 창구목과 화폭목은 가장 난공사 구간으로 화약을 구
해 화포를 만들어 바위를 건드리거나 장작불로 바위를 부셨다. 그렇게 1년의 공사 끝에 1908
년 수로가 완성되었고, 성천봉(星川峯, 베릿내오름) 밑에 5만여 평(약 231,000㎡)의 논을 닦
으면서 논농사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에 한줄기 빛을 선사했다.
그리고 1917년 2월, 2차 공사에 들어갔는데, 이때도 채구석과 이재하, 이태옥이 돈을 내어 추
진했다. 하지만 1920년에 채구석이 사망하는 등, 여러 진통이 있었으나 1923년 공사가 마무리
되어 2만여 평의 논밭이 추가로 개척되었다. 하여 중문마을은 동쪽에 자리한 강정마을과 함께
제주도의 대표 쌀 생산지로 번영을 누렸다. (공사에 참여한 일꾼의 일당은 3돈이었다고 함)

1차 공사 때는 천제연폭포(웃소)에서 베릿내오름골 앞을 돌아 국제컨벤션 앞 밀레니엄관까지
수로를 닦았고, 2차 공사는 천제연 제2폭포(알소)에서 국제컨벤션까지 닦았는데, 이들 수로는
채구석, 이재하, 이태옥이 중심이 된 '성천답회'에서 관리하다가 1957년 국유화되어 서귀포시
에서 관리하고 있다.
천제연의 물을 먹고 자란 성천봉 밑 옥답은 중문관광단지가 닦이면서 싹 사라지고 말았다. 제
주도 논농사의 성지(聖地)와 같은 곳인데 일부를 기념으로 남겨두어 약간의 논농사라도 했으
면 좋았을 것을 개발 지상주의는 그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수로의 길이는 1.9km로 최근 정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콘크리트 떡칠이 되었으나 논농사가
힘들었던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극복한 현장으로 그 시절 농업환경을 전해주는 존재라 등록문
화재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허나 이제는 물을 대줄 논도 모두 사라져 무늬만 남은 상태이며,
일부 수로는 아예 물이 말라버렸다.
그래도 산책로 옆에 이렇게 100년 묵은 수로가 물을 머금고 흘러가 조촐하게 볼거리를 선사하
니 천제연폭포에서 생각치도 못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  오늘도 묵묵히 흘러가는 천제연 관개수로
한때는 농업용수 수송으로 바쁘게 살았으나 이제는 천제연폭포를 수식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  제2폭포로 인도하는 벼랑 산책로

산책로 오른쪽(서쪽)은 깎아지른 듯한 천제연계곡 벼랑, 왼쪽(동쪽) 역시 주름선이 진한 벼랑
이다. 저 단단한 벼랑과 암벽을 뚫고 힘들게 관개수로를 닦았으니 제주도 농업 발전과 식량확
보에 대한 강인한 집념이 없었으면 불가능하다.


▲  산책로 옆 바위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관개수로
바위들이 목이 많이 말랐는지 이곳 수로는 물이 말라버렸다.

▲  위에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제2폭포

제2폭포는 제1폭포와 비슷한 높이로 그 앞에 '알소'라 불리는 못(소)이 형성되어 있다. 제1폭
포와 달리 물이 굉음을 내며 떨어져 귀신도 놀라 도망칠 정도인데, 만약 비가 와서 수량이 많
았다면 지금보다 소리가 더 요란했을 것이다.
알소 남쪽에 닦여진 관람공간까지 접근이 가능하나 그 이상의 접근은 통제하고 있다. 제1폭포
는 그래도 못과 계곡의 물을 만질 수 있으나 아랫 폭포로 내려갈수록 자유의 공간이 절반 이
상씩 줄어든다. (제3폭포는 아예 접근도 불가능하여 위에서 바라봐야됨)


▲  확대해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의 위엄
폭포 좌우에 우거진 나무들은 '천제연 난대림'의 일원이다.

▲  제3폭포로 흘러가는 제2폭포 앞 계곡(중문천)



 

♠  선임교(仙臨橋) 주변

▲  선임교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선임교는 천제연협곡(중문천)에 높이 걸린 다리로 제2폭포와 제3폭포 사이에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7명의 선녀가 천제연폭포에서 노닐었다는 전설에 맞추어 다리 밑도리에 하얀 피부의 칠
선녀상을 달았는데, 밑도리 옆구리에 각각 7명씩, 총 14명의 선녀상이 새겨져 있다.
선녀의 길이는 1명당 20m로 각자의 악기를 든 선녀 누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을 웅장하게 자아냈다. 하여 칠선녀다리, 칠선녀교, 구름다리 등의 별칭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작교(烏鵲橋) 스타일의 아치형 다리로 가운데 부분이 하늘로 향해 볼록 솟
아있으며, 다리 길이는 128m, 폭 4m로 230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또한 야경까
지 고려하여 100개의 난간 사이로 34개의 석등을 설치해 햇님의 퇴근 이후, 일제히 빛을 쏟아
내게 했다. 하여 이곳 야경은 천제연폭포에서 가장 일품으로 칭송이 자자하다.

천제교와 천제2교 사이, 천제연협곡에 걸린 유일한 다리로 이렇게 구름다리처럼 높이 닦은 것
은 협곡이 깊고, 천제연 난대림이 우거져 있어 그들의 피해가 덜 가게끔 하고자 함이다.
오로지 뚜벅이를 위한 다리로 그것을 건너면 천제루 구역이며, 중문관광단지의 일원인 여미지
식물원과 이어진다. 허나 천제루 구역만 천제연폭포 관람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이상을 가
려면 폭포 서문을 나와서 접근해야 된다.

▲  잘생긴 석등이 마중하는 선임교 동쪽

▲  볼록 솟은 선임교 한복판


▲  선임교에서 바라본 바다 방향 천제연협곡(중문천)
계곡은 천연기념물 난대림에 둘러싸여 있어 금지된 공간이 되었다.

▲  선임교에서 바라본 제1폭포 방향과 한라산(漢拏山)
멀리 구름에 감싸인 높은 뫼가 제주도의 심장이자 성역인 한라산이다.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  선임교에서 바라본 제2폭포와 무성한 천제연 난대림

▲  나그네의 동전을 노리는 오복천(五福泉)

선임교는 그 길이가 128m라고 하지만 다리 높이가 상당해 은근히 염통을 쫄깃하게 만든다. 하
여 체감거리는 2배 이상으로 다가온다.
다리를 건너면 천제루 구역으로 오복천이란 분수대가 마중을 한다. 여기서 오복(五福)이란 장
수를 뜻하는 거북이와 부자를 뜻하는 돼지, 귀함을 뜻하는 용, 사랑을 뜻하는 원앙, 자식복을
뜻하는 잉어를 뜻한다. 그 동물상 앞에는 복주머니로 포장된 돌통이 각각 설치되어 있어 거기
에 동전이 들어가면 해당 동물상의 복을 받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렇게 긁어
모은 동전은 나중에 불우 이웃을 돕는데 쓴다고 안내문에 당당히 적혀있다. (정말로 그럴까?)


▲  천제연폭포의 칠선녀 전설과 폭포 안내문을 머금은 돌병풍식 석물

▲  꽃길만 걷자~~ 동백이 화사하게 꽃길을 이룬 천제루 주변 산책로
동백(동백꽃)은 친 겨울파의 꽃으로 초봄까지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①
동백이 붉은 입술을 도도하게 드러내며 나그네의 정처 없는 마음에
마구 돌을 던진다.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②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③

▲  밑에서 바라본 천제루(天帝樓)
선임교 서쪽 높은 곳에 자리한 천제루는 천제연협곡 전망대용으로 세워진 2층
누각이다. 1층은 매점으로, 2층은 전망대로 쓰이며, 2층에 오르면
천제연협곡과 제2폭포가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  천제루에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와 천제연 난대림

▲  선임교 동쪽에서 바라본 천제연협곡(중문천)과 천제연 난대림

▲  선임교에서 천제연폭포 제3폭포로 내려가는 길

▲  제3폭포로 인도하는 나무데크길

▲  제3폭포 입구 주변 천제연 관개수로
이곳 관개수로는 제2폭포에서 성천봉 옥답을 잇는 수로로 1917년에 닦기 시작하여
1923년에 완성을 보았다.

▲  제3폭포 입구 갈림길



 

♠  천제연폭포 제3폭포와 대포해변

▲  천제연폭포의 막내, 제3폭포

제3폭포는 높이가 10여m로 제2폭포보다 넓은 못(소)을 가지고 있다. 폭포수는 실타래를 굵게
풀어놓은 듯 제2폭포보다 장쾌하게 쏟아지고 있으며 못은 청정하고 요염한 색깔을 보이고 있
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이라고 해도 엄연한 겨울의 한복판이라 폭포의 유혹이 먹히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여름의 한복판에 왔더라면 그 유혹에 일부러 넘어가 접근 금지를 무시하고 풍덩
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접근이 어느 정도 허용된 제1폭포, 제2폭포와 달리 폭포 주변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폭
포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제1폭포와 제2폭포, 선임교 주변까지는 관광객들이 많았으나 선임교 남쪽부터는 사람 구경하
기가 힘들다. 다소 구석진 제3폭포 주변까지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제3
폭포도 엄연한 천제연 식구이고 제2폭포 못지 않은 외모를 지녔으니 꼭 살펴봐야 나중에 저승
이나 하늘나라에 가서 옥황상제에게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선임교까지만 둘러봐
도 충분하다 여기고 천제루 구역 쪽으로 빠지거나 천제연폭포 정문으로 되돌아감)


▲  시원하게 쏟아내는 제3폭포의 위엄
폭포 앞 못에 모인 중문천(천제연계곡) 물은 여기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지척에 보이는 바다로 길을 재촉한다.

▲  제3폭포 입구에 세워진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畓灌漑遺跡碑)

천제연폭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천제연 관개수로를 만들어 제주도 농업사의 커다란 빛
을 주었던 채구석이다. 제3폭포 입구에 채구석을 기리고자 2003년 2월에 세운 '성천답 관개유
적비'가 자리해 있는데, 비좌(碑座)와 검은 피부의 비신(碑身), 이무기가 새겨진 이수(螭首)
를 고루 갖추어 맵시도 좋다.
천제연폭포 정문 주변에도 1957년 8월 대정 지역 유림들이 세운 '통훈대부 채구석기적비(通訓
大夫 蔡龜錫紀蹟碑)'가 있는데 그 기적비는 존재를 몰라서 지나치고 말았다.


▲  제3폭포에서 폭포 후문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관개수로(왼쪽)

▲  제주올레길8코스와 만나는 천제연폭포 남쪽 후문

제3폭포 입구에서 나무데크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뻥뚫린 남쪽 후문이 나온다. 철저하게 금
줄을 치며 입장료를 챙기는 정문, 서문과 달리 후문은 지키는 사람도 없고, 제재하는 시설도
없어 그냥 대놓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갔을 때는 그랬음)
이곳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지 폭포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니며 일루 들어가지 말고 정문
을 이용할 것을 권하는 경고판이 인상을 쓰며 지키고는 있으나 정작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그
경고가 먹혀들어갈 턱이 없다.
천제연폭포의 개구멍 같은 곳으로 이곳의 존재를 알았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곳을 이용하
는 것인데,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서귀포시는 이렇게 후문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매표소를
두어 후문 수요라도 좀 챙기기 바란다.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 제주올레길8코스

남쪽 후문에서 제주올레길 8코스와 만난다. 8코스는 월평에서 대평포구까지 이어지는 19.6km
의 긴 올레길로 천제2교에서 베릿내오름(성천봉) 서쪽 자락을 지나 폭포 후문을 거쳐 베릿내
오름 정상을 찍고 다시 천제2교로 내려간다. 하지만 나는 오름 정상은 가지 않고 서쪽 자락길
을 통해 천제2교로 내려가 한참이나 떨어진 약천사까지 올레길의 신세를 졌다.
제주올레길 장거리 탐방은 전날 절부암에서 수월봉까지 제주올레길12코스에 이어 2번째이다.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에서 바라본 천제연계곡(중문천)
계곡 너머 언덕에는 중문관광단지의 일원인 별내린전망대와 씨사이드아덴리조트가
둥지를 틀고 있다.

▲  중문천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천제2교와 너른 남해바다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에서 바라본 모습)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 (제주올레길8코스)

▲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제주올레길8코스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옆 구간)

베릿내오름을 완전히 내려가면 천제2교가 나온다. 여기서 올레길8코스는 '중문관광로'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다가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직전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그 길을 3분
정도 가면 남해바다와 스킨쉽을 즐기는 대포 해변이 나온다.
대포주상절리까지 제주부영호텔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남쪽을 지나가는데, 이 일대는 예전 천
제연 물을 먹고 자랐던 제주도 제일의 옥토, 성천답이 있던 터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 식량
을 조달하던 농업 현장이 이제는 휴식과 여흥의 장소로 싹 바뀐 것인데, 이곳 옥토에 대한 미
련이 없어질 정도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해진 모양이다. (밥은 굶지 않게 되었으나 삶이 팍팍
한 것은 여전함)


▲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옆 제주올레길8코스 (북쪽 방향)

▲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해변 ①
저 멀리 봉긋 손짓을 하는 산이 산방산이다. 내가 저 부근에서 여기까지
이동을 한 것이다. (천제연폭포 정류장부터 여기까지 도보 이동)

▲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해변 ②

▲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해변 숲길 (대포주상절리 서쪽)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대포 해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포주상절리가 나온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꺼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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